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16)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16화(316/392)
< 고종의 깜짝 제안 (1) >
“이왕 전하.”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대통령 각하.”
휴즈가 뉴욕에 방문했다.
월가와 뉴욕의 공립 학교 몇 곳을 들른 후, 비공개 일정을 가졌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 집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이곳이 이왕 전하의 뉴욕 저택이로군요.”
“아, 각하께서는 이곳이 처음이시겠네요.”
“예. 그동안 이왕께서 백악관에 몇 번 들르셨지만, 반대로 제가 전하의 집에 초대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리 집 옆에는 뉴욕의 명물, 센트럴 파크가 존재한다.
바로 옆에 자리한 공원을 바라보며, 휴즈는 우리 집 풍경을 칭찬했다.
“이쪽으로 들어오십시오.”
보는 눈이 많다.
나는 서둘러 휴즈를 우리 집안으로 들였다.
“호오. 집 안에, 예술품이 상당히 많습니다.”
휴즈는 두리번거리며 우리 집을 관찰하다가 한 그림 앞에서 멈췄다.
“이왕 전하.”
“예.”
“이것은 무슨 작품입니까?”
나는 슬쩍 우리 집에 걸려 있는 그림을 확인한 후, 작품명과 이를 그린 작가의 이름을 알려 줬다.
“뭉크의 ‘태양’이라는 그림입니다.”
“오오.”
제법 마음에 드나 보다.
의미가 없는 작품이었다면, 언제 사람을 통해 이를 선물했겠으나.
지금 내 앞에 걸려 있는 작품은 내게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기에, 나는 이를 선뜻 휴즈에게 건넬 수 없었다.
나는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어 대며, 휴즈에게 이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예전에 이 작가의 작품을 영국에서 몇 점 사들였습니다. 그 덕분에 뭉크가 세간에 많이 알려져서, 그때부터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지요.”
“뭉크라······ 본인 또한 한 번쯤은 들어 봤던 작가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아무튼, 오 년 전에 뭉크가 개인적으로 제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왕 전하께요?”
“예. 제게 선물을 하고 싶다면서 작품 하나를 뉴욕으로 보냈는데, 그게 바로 이 작품이랍니다.”
휴즈는 그림 앞에서 뭉크의 태양을 조금 더 감상하다가 고개를 돌려서 내게 물었다.
“이 작품은 무엇을 표현한 그림이랍니까?”
“제 모국의 미래에 대해 그렸다고 합니다.”
“모국이요?”
뭉크의 태양은 바닷가에서 막 뜨는 태양 같다.
집권 6년 차.
이제는 슬슬 대통령 임기 후반기로 접어드는 휴즈와는 정반대와도 같은 그림.
막 대통령이 되었을 때가 생각나서 그런 것일까?
휴즈는 뭉크의 태양 앞에서 한동안 발을 떼지 못하고, 이를 계속하여 부러운 듯 감상했다.
“참으로 아름답군요.”
하지만 이 그림은 내게 의미가 있는 그림이다.
이를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줬기에, 휴즈로서도 쉬이 요구할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입맛만 다시다가 그는 내게 덕담을 하나 해 주었다.
“이 그림처럼 대한합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떠오르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 좋게 말씀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각하.”
우리 집에는 그림 말고도 여러 가지 예술품이 가득하다.
정원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옛 그리스의 조각상이 즐비하며, 몇몇 방에는 여러 유명 작가들의 사진들 또한 전시되어 있다.
“오호.”
집 안에 걸려 있는 사진들은 다양했다.
대지진이 닥치기 바로 직전.
촬영되었던 옛 샌프란시스코의 시가지 사진도 있고.
저 멀리.
지금은 갈 수 없는 한양 도성의 현재 모습 또한 담겨 있다.
물론.
우리 집에 거주하는 내 가족들과 고용인들의 사진도 이곳저곳에 걸려 있었다.
“이왕 전하.”
“예.”
“이 꼬마 아기씨는······ 누구입니까?”
휴즈가 작게 속삭이며 내게 물었다.
여러 사진 중 최근에 추가된 액자 하나를 집어 든 것인데, 그 안에 전시되어 있던 소녀의 모습을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혹시······.”
우리 애들은 전부 혼혈이다.
그렇기에 서양인의 모습이 다들 조금씩은 녹아 있다.
하지만 지금 휴즈가 들고 있는 액자 속에는 순수혈통 아시아 여자 꼬맹이.
“하하하- 고국에 있는 제 늦둥이 막냇동생입니다.”
“아!”
옹주의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만 해도, 휴즈는 살짝 조심스러웠다.
혹여나 나의 사생아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나 보다.
“막냇동생이시군요······.”
“예. 이제 겨우 일곱 살이랍니다.”
“아이고. 꽤 늦은 나이에 자식을 보셨군요. 전하의 부친께서는.”
“예. 써니, 지니보다도 더 어리니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나는 옹주의 정체를 휴즈에게 공개하며 그에게 이 사진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밝혔다.
“최근에 일본에 있는 미국대사 부인을 통해, 이 사진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하. 그렇습니까?”
미국대사관을 통해 받았다.
그랬기에, 어쩌면 휴즈에게 이 소식이 전달되었을 수도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이를 못 들었나?
“사진을 입수하며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뭡니까? 그 소식, 저 또한 알고 싶습니다.”
내가 말끝을 살짝 흐리자, 휴즈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내게 물었다.
나는 휴즈에게만 특별히 알려 준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최근에 입수했던 썰 하나를 풀었다.
“일본이, 제 동생을 자국으로 데려가려는 것 같습니다.”
“일본이요?”
“예.”
휴즈는 나와 친하다.
그렇기에 모국에 있는 내 가족에 관한 정보 또한 살짝은 알고 있었는데.
그는 일본에 가 있는 영왕의 사례를 거론하며 옹주 또한 유학하러 떠나냐고 내게 물었다.
“바로 아래 동생은 유학을 명분으로 도쿄에서 공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도 모자라서 막냇동생 또한 유학을 제안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요 어린 것에게는 혼사를 권했다고 하더군요.”
휴즈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겨우 일곱 살짜리에게 말입니까?”
“예.”
“아직 초경도 치르지 않은 꼬맹이를 두고 혼사를 논하다니······.”
나는 속상하다는 표정을 팍 지어 대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속이 터지던지······.”
“압니다. 저 또한 딸 아이가 하나 있으니까요.”
휴즈 또한 아버지다.
딸 하나, 아들 둘을 둔 부모로서.
일본이 얼마나 무리한 요구를 해 대는지, 휴즈 또한 극렬하게 공감하는 표정을 지어 댔다.
“이 전에 이왕 전하께서 알려 주셨던 여러 숨은 일본의 음습한 비화들을 들었을 때는 믿기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저번에 터졌던 샌프란시스코 습격 사건도 그렇고, 이십여 년 전 비극도 그렇고······.”
그동안 나는 휴즈를 만날 때마다 일본의 숨은 비화들을 알려 줬다.
와패니즘 때문에 미국의 지식인들은 일본에 되지도 않는 환상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미리 예방주사를 놔 준 거다.
“이번에 추진되고 있는 일 또한 참으로 놀랍군요.”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동의했다.
“일본이란 그런 나라입니다. 쉬이 마음을 주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습니다.”
일본에 관해 한참을 뒷말하다, 휴즈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뗐다.
“아······ 다들, 잠시 자리 좀 비켜 주겠는가?”
휴즈의 반강제적인 권유에.
나를 빼고 모두가 1층으로 내려갔다.
“이왕 전하.”
“예. 대통령 각하.”
“슬슬 시작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휴즈가 비릿한 표정을 지어 대며 내게 고했다.
“일본과 영국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 * *
“내년 초에······ 워싱턴에서 군축 회담이 열린단 말입니까?”
“예.”
드디어 워싱턴 군축회의가 열린다.
‘하긴······ 일본도 영국도 똥줄이 타겠지.’
해상전에서 지지 않기 위해 양국은 해군 전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미국 또한 다시금 추가 전함 건조 계획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해군은 돈 먹는 하마야.’
영국은 전후 복구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 이놈의 해군력 증강 계획 때문에, 예산이 마르고 있었다.
일본도 비슷하다.
원래 막장이었던 세수는 세계대전의 호황으로 잠깐 숨통이 트였지만.
다시금 늘어나는 군비 때문에, 또다시 적자의 늪에서 허둥대야 할 지경이다.
그런데 미국이 다시금 해군 전력을 강화한다고 하니, 일본으로서도 또다시 해군 예산을 늘려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말은 군축 회담이지만······ 앞으로 펼쳐질 수 있는 제2의 세계대전을 막기 위한 회담이라 생각합니다.”
휴즈는 현 상황을 정확히 분석했다.
하긴.
원 역사에도 휴즈는 하딩의 내각 일원으로서 국무장관으로 워싱턴 군축회의를 주관했다.
하딩의 유일한 업적이 워싱턴 군축회의라는 평이 있는데, 이걸 휴즈가 뚝딱뚝딱 다 해 냈으니.
대통령인 지금에서는 더욱더 열의를 가지고 이를 마무리하리라 생각한다.
“그렇긴 하죠. 참여 하는 국가들을 본다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해양 강국들이 아닙니까?”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미국, 일본 등이 참여한다.
내전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와.
이번 전쟁을 통해 완전히 해군력이 박살 난 세 동맹국을 빼면, 거의 모든 나라가 이번 협상에 온다고 볼 수 있다.
‘해군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우리 역시도 참석하지.’
나는 팔짱을 끼며 굉장히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이에 휴즈가 내게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이며 시선을 교환했다.
“그 자리에서 못다 한 아시아 문제가 거론될 것입니다.”
“산동과 남양군도, 한반도 문제가 공식적으로 거론될 것이란 말이군요.”
“예. 자세한 논의사항은 이 임시의장을 통해 이왕 전하께 전달하겠지만, 대략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한 달 후.
이범윤 대한합중국 임시의장이 미국 워싱턴에 방문한다.
휴즈가 이를 거론하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영국도 프랑스도 동의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본을 한 번쯤은 누르고 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휴즈는 비릿한 표정을 지어 가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군사적 충돌은 최대한 자제하겠으나······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활용할 것입니다.”
“그 말은 즉, 제2의 삼국 간섭이 다시금 일어날 수도 있단 말이겠군요.”
“예.”
휴즈는 자신감을 보이며 가까운 미래를 예상했다.
“일본이 세계대전으로 아무리 이득을 보았다고 하나······ 아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목소리를 쉬이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대놓고 짬짜미를 하며, 그동안 이득 보았던 것을 다 토해 내게 할 생각인 것 같은데.
일본은 어떻게 대응하려나?
“하지만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그렇겠죠. 강화회의도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휴즈는 일본 특사의 무례한 행동을 지적하며 뜨거운 콧김을 내뿜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우리들의 제안을 수용할 것입니다. 명분과 힘, 모두가 우리에게 웃어 주고 있으니까요. 이번 회의, 기대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휴즈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나는 살짝 감동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 각하.”
“예. 이왕 전하.”
“이리 힘 써 주시니 정말이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휴즈는 소탈한 척,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며 끝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랬다.
“에이. 이게 무슨 고생입니까?”
“고생이지요. 회의를 주최하고 일본을 압박하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렇다면, 제가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부디 잊지만 마십시오.”
“잊지 말아 달라.”
“예. 곧 선거가 있지 않습니까?”
전임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에게는 그리도 당해 놓고.
휴즈 역시 상왕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정치인들이란······.’
뭐, 다음 대통령으로 유력한 놈이 하딩이니까.
충분히 상왕 정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될 수 있긴 한데 말이다.
“오늘 보여주신 대통령 각하의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휴즈만큼이나 궁합이 잘 맞는 공화당 정치인은 본 적이 없으니까.
이자와 계속해서 협력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휴즈와 악수를 하며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도 잘해 보자는 무언의 메시지를 나누었다.
* * *
고종이 머물던 덕수궁 함녕전에 한 여인이 당도했다.
여인의 이름은 하란사.
십여 년 전, 미국에 유학 갔던 신여성으로.
이강과 함께 그곳에서 공부하였기에, 친 이강 세력으로 분류된 인물이다.
이 때문에 하란사는 도통 고종과 만날 수가 없었다.
계속하여 대궐 문을 두들겼지만, 고종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순간은 겨우 다섯 차례.
무려 십여 년 동안 딱 다섯 차례밖에 못 봤기에 최근에 입궐을 타진하면서도 반쯤은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 방문은 이례적으로 굉장히 쉽게 통감부의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고종의 막둥이.
옹주의 혼사 문제를 두고 외부인과 논의를 한다는 명분을 고종이 내세우자, 일본의 통감부가 흔쾌히 하란사의 덕수궁 입궁을 허락하였다.
“폐하.”
“그래.”
고종은 하란사를 반기며 하란사와 동행했던 일본인 통감부 직원과 시선을 살짝 교환했다.
“자네도 왔군.”
“예. 폐하.”
고종은 빠르게 고개를 돌려 하란사를 바라보았다.
고종은 하란사를 바라보며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내, 궐 안에 갇혀 있지만… 그대의 소식을 익히 들어 알고 있도다. 이화학당에서 어린 여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지?”
“예.”
“자네가 가르치는 아이들 말이야. 자네만큼이나 유능했으면 좋겠군.”
“성은에 부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고종이 눈알을 팽그르르 굴리며 오늘 하란사를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다름이 아니고 오늘 자네를 이 자리에 부른 것은 옹주의 결혼 문제 때문일세. 서양에서도 이리 이른 나이에 혼사를 치르는 사례나 있나 싶어서 말이야.”
그러다가 갑자기 헛기침하기 시작했다.
“흠흠. 흠흠.”
고종은 아직도 하란사 옆에 서 있는 통감부 관료를 향해 꾸짖었다.
“자네, 아직도 나가 보지 않은 것인가? 언제까지 남아 있을 셈인가?”
“아, 예. 송구하옵니다. 폐하. 외신은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물러나겠다고 하였으나, 밖에 남아 분명 오늘의 대화를 엿들을 것이 뻔했다.
고종은 통감부 직원이 그의 시선에서 멀어졌으나, 경계심을 내리지는 않았다.
“아아, 짐이 무엇을 물었더라? 나이가 드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군.”
“서양에서도 이리 이른 나이에 혼사를 치르는 사례나 있나 물으셨습니다.”
“아아······ 내가 그랬지.”
고종은 주머니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며 하란사에게 물었다.
“그래. 서양에서는 이리 이른 나이에 혼사를 치르던가?”
하란사는 고종이 건넨 서찰을 빠르게 속독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대는 내 둘째 아들과 연락이 닿는가?』
하란사는 내용을 확인한 후, 빠르게 그 자리에서 고종이 건넨 서찰을 불태웠다.
“옹주마마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일곱 살에 혼사를 치르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서······ 다른 나라는 어떤가 이를 참고하고 싶었네.”
했던 말을 계속하여 묻고 또다시 답한다.
정작 중요한 대화는 다른 이들이 도청하지 못하게 글로 적었기에.
했던 말을 또 하고 다시 묻는 일이 반복된 거다.
『무슨 일로 소인을 찾으셨나이까?』
그녀가 건넨 서찰을 고종이 읽은 후 불태우자, 하란사는 재빨리 고종이 물었던 위장 질문에 관한 답을 했다.
“소인이 유학 갔던 미국. 아아, 대한제국에서는 미리견으로 불리지요? 미리견을 예시로 먼저 들어 보겠나이다.”
“그래.”
“미리견에서는 보통 스무 살 내외가 되었을 혼례를 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상류층 남자 자제들은 서른이 될 때까지 혼약을 미루는 경우가 있나이다.”
“더 일찍 하는 예는 없고?”
“예.”
대화가 부드럽게 이어질 때.
고종은 자신이 준비했던 또 하나의 서찰을 건넸다.
『대한제국의 외교권 회수 문제는 어찌 되고 있는가?』
『내년 초에, 미국에서 열강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그때 거론될 듯합니다.』
그렇게 하란사와 고종은 서로 다른 주제를 필담과 대화를 통해 나누었다.
“유럽은 어떠한가?”
“유럽 또한 비슷한 상황입니다.”
“전쟁 때문에 예정되었던 결혼이 뒤로 밀렸으니까요. 더욱이 생활이 아주 팍팍해지며, 바로 식을 올리지 못하고 또다시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하란사는 대화를 이어 가는 도중에도 글을 열심히 쓰며, 고종이 취해야 하는 스탠스를 설명했다.
『폐하의 지지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창덕궁에 계신 폐하의 성명은 진즉 확보하였으나, 아직 폐하께서는 묵묵부답이시지 않습니까?』
순종은 빠르게 답을 주었으나, 고종은 묵묵부답이었다.
대한합중국의 입헌군주제와 정년제도를 지적하며 계속하여 딴지를 걸어 댔던 것.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늘 고종은 이에 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 지지 성명을 건네기 전에 한 가지를 부탁하려고 하네.』
『무엇입니까?』
위장 대화와 함께 필담 또한 계속하여 오갔다.
만남이 막바지로 향할 때, 고종은 준비했던 서찰을 다시금 건네며 하란사에게 본심을 드러냈다.
『한양을 탈출하고 싶네. 지지 성명을 냈다가는 내 신변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나의 지지 성명을 정녕 원한다면, 대한합중국으로 파천할 수 있는 계획을 짐에게 바치게.』
< 고종의 깜짝 제안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