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17)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17화(317/392)
< 고종의 깜짝 제안 (2) >
고종의 서찰을 속독한 하란사.
히- 끅-
너무 당황해서 그런 것일까?
그녀가 딸꾹질하기 시작했다.
‘히- 끅- 폐하께서, 두 번째 파천을 생각하고 계신다니······.’
하란사는 현재 이화 학당에서 총학사를 역임하고 있다.
총학사는 지금으로 따지면 교장 바로 아래에 있는 교감 정도의 위치.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높은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미국까지 가서 공부했던, 이 시대에는 보기 드문 유학파 엘리트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운 법이다.’
유학파답게, 그녀가 주로 가르쳤던 과목은 영어였다.
하지만 일제의 압제 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하란사는 대한의 역사를 학생과 좀 더 심층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했다.
이에 하란사는 방과 후에도 종종 학생들과 함께 모여서 우리네 역사를 주제로 토의하며 학구열을 불태웠는데.
그때 함께 공부했던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아관파천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고종에게 무슨 답변을 해야 할지 고심했다.
『자칫 잘못하면 폐하의 안위 또한 위험해질 수도 있나이다.』
『내, 예전에도 한 번 해 보았다. 그 정도는 진즉에 알고 있도다.』
고종은 지금으로부터 약 이십여 년 전, 아관파천을 강행했다.
일본의 압박을 피해, 아들이었던 순종과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신했던 것인데.
한 나라의 군주가 타국의 땅으로 피난 가는 사례는 전례가 없는 행동이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종묘에 계신 선대왕들께서도 못난 후손을 이해해 주실 것이니······ 잔말 말고, 제대로 된 탈출 계획이나 짜 오거라.』
적국의 병사들을 피해 다른 지방으로 떠나는 경우는 고종 말고도 왕왕 있었다.
진격하는 일본군을 피해 의주까지 도망갔던 ‘프로파천러’ 선조가 그 대표적인 예이며, 손자였던 인조 역시도 청나라 군대의 남하를 피해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신했다.
비단 조선 말고도.
전조였던 고려의 임금들 또한 파천을 자주 하였다.
비운의 명군인 고려 시대 현종만 하더라도, 개경을 떠나 나주까지 고난의 행군을 떠났으며.
여몽전쟁 때는 파천을 넘어 수도를 아예 옮기는 천도까지 감행했다.
고종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결정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종묘에 계신 선조들이 자신의 결정을 지지해 주실 것이라고 믿으며, 하루빨리 일본의 마수에서 벗어나기를 고대했다.
『저희 측 사람들과 우선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여라. 다만, 하루빨리 이를 정해 줬으면 좋겠다. 그대가 말하길, 워싱턴에서 큰 회의가 열린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란사의 완곡한 거절에도 고종은 집요하게 이를 요구했다.
이에 그녀는 궁궐을 빠져나와 익문사 고위 간부들과 다시금 만나고자 했다.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 *
“전하께서 익문사 개편을 지시하셨단 말입니까?”
요동반도의 항구 중 한 곳이었던 잉커우 항에서 익문사 고위 관료들이 대거 모였다.
익문사의 장이었던 이위종을 필두로.
애국단의 단장인 안중근, 부단장인 김구까지.
삼대 인물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함께했던 거다.
그 자리에서 이위종은 이강이 지시했던 사항을 발표했다.
“익문사 안의 하위 조직인 애국단을 완전히 흡수 통합하실 모양입니다.”
“그렇소이다.”
이위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뀐 개편안을 그들과 공유했다.
“호칭 또한 변경될 것 같습니다.”
“하긴, 제국 익문사란 호칭은 대한제국 산하의 단체 같긴 하니까요.”
“바뀐 명칭에는, 분명 합중국이 들어가겠군요.”
이위종은 이강이 지어준 사명을 김구와 안중근에게 보여 줬다.
“예. 아마도 합중국 정보국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 기존 호칭과 이 명칭을 두고 저울질하시는데······ 후자를 더 마음에 두고 계시니까요.”
한참.
바뀐 명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똑똑-
잉커우에 있는 대한합중국의 비밀 기지 문을 누군가 노크했다.
밖에는 요원들이 지키고 있기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모임에 참석한 이들이 모두 일어나자, 새 인물이 얼굴을 비췄다.
“하란사 동지!”
“오셨소이까?”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건물 안으로 들어온 신여성을 반기며, 세 거물이 그녀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전화로, 아주 간략하게 해당 내용을 전해 듣긴 했으나······ 확실한 내용을 하 동지께 직접 듣고 싶어서 이렇게 이 자리에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상황께서는 진짜 파천을 거론하셨소이까?”
“남자들이란······.”
하란사가 살짝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어 대며 손을 저어 댔다.
건물 안에 자욱한 담배 냄새가 못마땅했는지, 한참 얼굴을 찡그린 그녀는 들고 온 가방을 탁자 위에 놓고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연약한 여성이 바다 건너 이리 타국까지 왔는데······ 한다는 소리가 겨우 그거예요? 일단은 내 안부부터 물어야 하는 게 예의가 아닐까요?”
하란사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쳐대며 세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다못해 커피 한잔이라도 내오면서 나와 한양 내 소식에 관해 물을 수 있을 텐데요.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이거 너무나 대접이 궁색하네요.”
“아!”
안중근이 고개를 숙이며 하란사에게 사과를 했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하 동지께서 워낙 깜짝 놀랄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어서 저희도 모르게······.”
익문사의 장이었던 이위종이 직접 커피까지 타 오며, 하란사에게 이를 대접하자.
그녀는 비로소 기분이 풀린다는 표정을 지어대며 세 익문사 요원들을 바라보았다.
“하- 향이 참 좋네요. 덕수궁에서는 당황해서 그런가, 커피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는데.”
하-
하란사는 자신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들을 향해 한숨을 쉬었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눈 후에 본론을 꺼내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 다들 어미 새를 바라보는 새끼 새들처럼 저를 쳐다보니······ 부담스러워서 한시라도 빨리 이야기를 꺼내야겠어요.”
하란사는 재빨리, 덕수궁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주에, 상황의 교지를 받기 위해 덕수궁에 들렀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아직 상황께서는 지지 의사를 표명하시지 않고 있잖아요.”
“그렇지요.”
“이 자리에서 대놓고 파천 이야기를 꺼내시더라고요.”
“상황께서, 정말로 진심이신가 봅니다?”
“······예. 적어도 제가 생각할 때는 그랬어요. 워싱턴 회의가 끝나기 전까지 자신을 이곳 한양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하셨네요. 아! 지지 의사는 대한합중국에서 공개 발표하시기로 약조하셨고요.”
하란사는 자신의 앞에 있던 세 인물의 얼굴을 관찰했다.
한 명은 당황스러워하고.
한 명은 안쓰러워했으며.
마지막 한 명은 살짝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흠. 안 단장, 김 부단장.”
셋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던 이위종이 안중근과 김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두 분께서 보시기에는 상황 폐하의 파천 말입니다.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안중근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주 감시 타깃은 현재 필리핀에 머물다가 남중국으로 복귀한 쑨원이었으니까.
이에 안중근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김구는 과거는 회상하며 자신이 과거에 짜두었던 한 계획을 이들에게 언급했다.
“이러한 일 때문은 아니지만······ 두 폐하의 파천에 관해 진지한 토론을 하였습니다.”
“오호. 이에 관해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소이까?”
김구는 살짝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두 분을 다 국외로 모실 가능성은 ‘제로’.”
“허허.”
이위종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댔다.
하지만 뒤따른 김구의 말에.
굳었던 표정이 살짝 폈다.
“하지만 두 분 중 한 분만이 파천을 강행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꽤 높아집니다.”
“어느 정도로 예상하십니까?”
이위종의 물음에 김구가 답했다.
“운이 따르면 최소 5할 이상의 성공확률이 존재하리라 생각합니다.”
“정말로요?”
“예. 그렇습니다.”
* * *
“형님.”
안명근은 김구와 호형호제하는 관계였다.
본래 미국에 건너오기 전부터 친분을 쌓았던 사이로.
익문사 요원 활동을 하며 생사를 함께 해서 그런지, 이 둘의 관계는 더더욱 돈독해졌다.
“사람들이 그리 많은 자리에서, 형님답지 않게 너무 호언장담하셨습니다.”
안명근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구에게 다가갔다.
김구는 이에 담배 한까지를 안명근에게 권하며 하던 말을 계속해 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볼 때, 이번 건은 쉬이 성공할 건이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김구는 고종의 파천 계획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는 계획이라고 이위종에게 밝혔다.
이 말은 곧 미국에 있는 이강의 귀에도 해당 안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보고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검토해 보겠다고 말씀하셨어야지요.”
안명근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김구를 바라보자 김구는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털며 반박했다.
“우리가 여태껏 맡았던 사건들 말일세. 처음 맡았을 때는 다 불가능해 보였던 사건들이네.”
“······.”
“친일파를 제거하는 일도, 봉천에서 위안커원을 옹립하는 일도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었나?”
안명근이 다시 한번 눈에 힘을 빡 주며 말했다.
“그렇긴 해도, 이번 건은 신중해야 합니다. 대한제국의 황실 일원을 대한합중국으로 모시는 일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물론이고, 그분들까지도 다칠 수가 있습니다.”
원 역사대로 흘러갔다면, 대한제국 황실 일원들은 안명근이나 김구 같은 독립투사들 사이에서 뭇매를 맞아야 했다.
따뜻한 온실 속에서 일제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도 하지 않은 이들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강은 누구보다도 일본과 대립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에 앞장서고 있다.
이에.
무능력하지만 이강의 가족이라고 볼 수 있는 대한제국 황실 일원들의 인식 또한 나아지고 있다.
이강과 직접적으로 혈연관계인 고종과 순종의 신변에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 때문.
구시대적이긴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가 황족은 특별하다는 인식 또한 하고 있고.
안명근이 이를 지적하자, 김구는 안명근의 손을 꼭 잡으며 의지를 불태웠다.
“우린 할 수 있네.”
“······.”
“이 일이 성공해야 대한제국의 외교권 회수 또한 원활해질 것일세. 작금의 상황 속에서 상황의 지지 성명은 그야 말고 우리의 주장에 강력한 힘을 실어줄 무기니까. 더욱이 상황께서 대한합중국으로 대피하신다면, 국제사회 또한 일본을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낼 것일세.”
안명근도 이에 동의하긴 했다.
하지만 몰래 국경을 넘는 일이 어찌 쉽다고 말할 수 있나?
더욱이 상대는 고종이다.
일본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어떻게 그를 빼 올 수 있을까?
안명근은 이를 생각하기만 해도 골치가 아파졌다.
“저는 그동안 모아 두었던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겠습니다. 형님께서는 일단 다시 돌아가시어, 아까 했던 발언의 수위를 좀 조정하십시오.”
“알겠네.”
안명근이 떠나고.
김구는 다시금 제 호주머니 속에 있는 담뱃갑을 집었다.
그 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들며 김구는 작게 혼잣말을 했다.
“상황이 파천을 원한다······.”
김구는 상황인 이형의 얼굴을 회상하며 혀를 찼다.
“참으로 계륵 같은 존재야. 상황이라는 자는.”
김구는 눈을 감고 과거의 한 사건을 회상했다.
대한합중국의 초기 헌법을 논하는 자리.
훈춘 대회의 장에서의 왁자지껄한 풍경이 김구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상황의 존재가 언급되자, 회의장이 한바탕 뒤집혔지.”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이형은 애증에 존재다.
정확히는 증오하고 싶은데 증오할 수 없는 존재.
대한제국의 합법적인 군주이기도 하고, 이강의 생부이기도 하기 때문인데.
한 줌도 안 남은 극소수의 이형 지지자들이 이러한 애매한 이형의 위치를 알아차리고 초반에 준동하여, 회의장 분위기가 험악해졌던 것을 김구가 조용히 떠올렸다.
“성공해도 좋지만······ 반대로 실패해도 나쁘진 않지.”
대한합중국으로 건너와서 대한제국의 외교권 회수에 한목소리를 내 준다면 더할 것 없이 좋겠으나.
한 나라의 군주가 자신의 나라를 도망치다가 타국의 군대에 사로잡혀 끌려가는 것 또한 나쁜 것 같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도망쳤다는 사실 하나로 일본의 대한제국 장악이 아주 부당한 처사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으니까.
“흠.”
김구는 포근한 인상의 소유지만.
동그란 안경 안 뒤에 존재하는 그의 눈빛은 야수만큼이나 날카롭다고 말할 수 있었다.
잠시 담배를 뻐끔거리던 김구.
재떨이에 피우던 담배를 짓이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했다는 표정을 지어 대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시금 향하기 시작했다.
< 고종의 깜짝 제안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