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21)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21화(321/392)
< 파천 (2) >
이위종은 내 질문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서류 가방에 보관했던 보고서 하나를 내게 건넬 뿐이다.
“······.”
“······.”
그가 건넨 계획서를 빠르게 속독했다.
솔직히 박병준으로 살았을 때도 그렇고, 이강의 몸에 빙의되었을 때도 그렇고.
정보요원으로 활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보고서 내용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나보다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이를 더 잘 알 테니까. 믿고 맡겨 보도록 하자.’
어떻게 구출하는지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
다만.
추가로 조언해 줄 구석이 몇 가지 존재하기에, 나는 이에 관해서만 언급을 할 생각이다.
“두 가지가 아쉽군.”
“두 가지씩이나 되옵니까?”
이위종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다.
나름대로 이 계획을 짜면서, 자신이 있었나 본데.
내가 태클을 거니 당황한 모양이네.
“첫째는 시기네.”
“······.”
“여기 적힌 계획서 안에는 12월 중순쯤에 파천이 행해진다고 적혀 있더군.”
“예. 그렇나이다.”
이위종이 머리에 물음표를 띄운다.
이에 나는 답했다.
“이를 조금만 더 뒤로 미루게.”
이위종이 품 안에 있는 수첩을 꺼냈는데, 맨 뒷장에는 올해와 내년 달력이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전하께서는 언제가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위종의 물음에 답했다.
“그야, 워싱턴에서 군축회의가 한창 행해질 때지.”
회의 도중에 이러한 깜짝 사건이 발생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회의 전체를 뒤흔들 수 있지.
일본이 당황하게.
“전하.”
이위종이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어 대며 나를 바라보았다.
“듣고 있네. 말하게.”
“이 일을 전담하고 있는 김 부국장이 주장하길, 시기를 조금 미룬다면 실패할 확률 또한 조금 높아질 수 있다고 제게 보고하였나이다.”
“그래?”
“예. 이런 일은 외부에 정보가 새어 나갈 수도 있기에, 되도록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말입니다.”
그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라도 파천 시기를 조절해야 하는지 이위종이 내게 묻는다.
이에 나는 팔짱을 끼며 잠시 눈알을 열심히 굴렸다.
“시기를 미루면서 성공확률을 높일 방안도 있을 터.”
“······.”
“김 부국장과 함께 이를 고민해 보고, 정 안 된다면 다시금 내게 고하라고 전하게. 김 부국장과 안 부국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암살 의뢰도 여러 차례 성공시키지 않았던가? 분명, 이를 해결할 다른 방안 또한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을 것일세.”
일반적인 대한제국인이었다면, 효를 가장 중요시하기에 이를 바로 물리겠지만.
나는 아니올시다.
그렇다고 그냥 내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면, 나중에 불효자로 몰릴 수도 있을 터.
그렇기에 나는 부하들을 믿는다고 말하며, 동시에 대안을 세우라고 요구했다.
정 못할 것 같으면 다시 내게 이야기를 하고.
“예. 알겠나이다.”
이위종은 방금 꺼낸 수첩 뒤에, 내가 요구한 바를 상세히 기록했다.
이후에 다시금 나와 시선을 교환하며 다른 질문을 내게 던졌다.
“나머지, 아쉬웠던 점은 어떤 것이 있사옵니까?”
나는 잠시 내 앞에 있는 따뜻한 녹차를 홀짝였다.
이후에 찻잔을 다도상에 놓으며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이 파천 계획에 협업하는 현장 인력들 말일세.”
“예. 전하.”
이강의 기억 파편 속에 존재한 한 여성을 떠올렸다.
김규식과 함께 미국에서 함께 유학했던 동무.
하란사의 얼굴을 회상하며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간 정보국과 덕수궁을 오가며 중간책 역할을 하는 하 총학사도 그렇고, 덕수궁과 경복궁에서 우리를 돕고 있는 이들도 제법 많다고 알고 있네.”
“그렇지요.”
“이번 사건이 터진다면 필히 그들에게도 피해가 갈 터. 하 총학사만 해도 일본인들에게 주범으로 지목되며 곤욕을 치를 것이 뻔한데······ 이에 대한 대비책이 없지 않던가?”
고종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한양 내에 갖춰 두었던 합중국 정보국의 조력자들 또한 내겐 소중한 이들이다.
고종 하나를 빼내겠다고 이들을 갈아 버린다면, 나중에 누가 아국의 정보국에 협조를 할까?
이점을 언급하자 이위종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 점 보완하라 일러두겠습니다.”
파천 계획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이들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나 보다.
적어도 하란사는 이 계획을 시연하기 전에 합중국으로 빼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국장.”
“예.”
“파천 계획에만 너무 몰입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살짝 걱정되어서 이위종을 근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파천 계획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대업이 곧 우리 앞에 행해질 예정이니까.
“내년 초에 열리는 워싱턴 군축회의 또한 집중해야 할 것이네. 지금은 영국도, 미국도 다들 우리 편을 들고 있으나······ 국제 외교라는 것이 어디 우리의 예상대로 흘러간 적이 있던가? 하루아침에 적과 아군이 바뀌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네.”
오죽하면 정글이라고 칭하겠어?
“단단히 준비하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에 대한 준비 또한 철저하게 진행 중이옵니다.”
이위종이 관련 보고서를 내게 건넸다.
이번 회의에 참여하는 주요국들.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의 정세를 아주 세밀하게 조사한 것들이었다.
‘흠.’
나는 그중 영국에 관한 보고서를 가장 먼저 확인했다.
휴즈가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미국은 계속하여 나의 편을 들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남은 세 국가 중 가장 영향력이 강한 상대는 영국이었기에, 이들의 여론 동향부터 파악하고자 했는데.
뜻밖에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타티아나와 에드워드의 국혼 여론이 생각보다 괜찮군.’
타티아나의 친부는 바로 니콜라이 2세다.
영국인들은 불과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니키를 이리 생각했다.
‘국민을 잔혹하게 진압한 독재 전제 군주라 여겼지.’
그랬기에, 지금 추진 중인 국혼 여론이 상당히 별로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예상외로 좋다.’
그동안 지속해서 기자들에게 돈을 먹여 가며 여론을 조성해서일까?
아니면, 니키가 적군에게 죽어서 영국 시민들이 그를 불쌍하게 여겨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타티아나가 동시대 왕족 중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미녀이기에, 다들 그녀의 미모에 취해 화가 누그러진 것일까?
‘뭐, 셋 다겠지.’
굳이 이 중 하나를 고르라면 두 번째겠고.
누구에게, 어떻게 죽었냐에 따라 역사적 인물들의 평가가 바뀌지 않던가?
‘가까운 예로······.’
이 몸의 법적 어머니이신 중전 민씨를 거론할 수 있겠네.
희대의 XX이지만, 일본 낭인들의 손에 죽었다는 이유로 후대까지 조선을 지킨 위인으로 칭송되고 있지 않던가?
‘아! 화가 나네.’
이 몸의 원주인인 의친왕 이강.
그의 몸에 빙의하며 몇 가지 그의 기억을 힐긋힐긋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화려했던 여성 편력과 더불어 가장 많이 지분을 차지했던 것은 바로 중전 민씨를 향한 증오다.
‘얼마나 개차반으로 대했으면.’
아직도 민자영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몸이 자연스럽게 부들부들 떨릴까?
‘잊자, 잊어.’
나는 영국의 여론 동향이 적혀 있는 보고서를 뒤로 미루며 다시금 니콜라이에 관해 회상했다.
‘그간 타티아나의 결혼을 위해, 이미지 메이킹을 해왔는데. 그것에 이번 일이 더해져 많이 좋아졌군.’
초반에는 비선 실세인 라스푸틴에게 농락당해서, 나중에는 레닌의 선동으로 결국 권력을 잃게 되었다고 선전해서일까?
니키는 무능력했지만, 제 가족에게는 한없이 따뜻했던 군주로 재포장되고 있었다.
타티아나는 이런 니키의 딸.
이 시대 왕비에게는 통치 능력보다 가족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만이 요구되기에, 더없이 그녀의 이미지가 나아졌다 볼 수 있다.
‘그나저나 고종은······.’
나중에 어떤 평가를 받으려나?
“아! 이 국장.”
고종의 얼굴을 떠올리다 보니, 지난날 외부에서 들었던 한 풍문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 아바마마께서 내 막냇동생을 가지고, 폐하께서 무슨 일을 꾸민다는 말이 있던데 말이야.”
나는 들었던 소문을 회상하며 이위종에게 물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그 소문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나?”
* * *
타닥- 타닥-
타닥- 타닥-
덕수궁 한편에 자리한 소주방.
그곳에 고종이 탐욕스러운 눈빛을 한 채로 서 있다.
꿀꺽-
평소에는 소주방 근처도 들르지 않지만, 겨울이 되면 고종은 가끔 이곳에 방문한다.
타닥- 타닥-
타닥- 타닥-
모두 고종 앞에 있는 이 음식 때문이다.
“아! 참으로 맛나도다.”
고종은 군밤을 사랑했다.
군밤만 먹으면, 만사 고민되었던 일이 사르륵 녹는 것만 같았으니까.
“폐하.”
갓 구워진 맛있는 군밤을 홀로 먹고 있을 때.
“하 총학사가 막 함녕전에 도착하였다 하옵니다.”
고종이 기다렸던 한 여인이 입궐했다.
“알겠다.”
고종은 소주방에서 구운 군밤을 애지중지 들고 가며 함녕전으로 이동했다.
이내, 한 여인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 * *
“늦었구나.”
고종은 자못 지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지난번에 당부한 그 일은, 어찌 되었는가?”
하란사가 입을 열기 직전.
고종은 다시금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던 한 사내를 노려보았다.
“자네, 아직도 안 떠났나? 이 자리에 계속하여 동석할 생각인가?”
“아, 아니옵니다.”
사내의 정체는 일본군.
떠난다고 말은 했어도 그는 밖에서 이 둘의 대화를 도청할 것이다.
“여기 있사옵니다. 폐하.”
이를 잘 알고 있기에, 하란사는 일본군 간부가 떠나기 전에 제품 안에 있던 서류 하나를 고종에게 바쳤다.
입궁 전에 일본군에게 몸수색을 당했을 때 이미 한번 그 내용을 공개했던 서신이었다.
“일본 정부 측은 어떻게 반응하던가?”
“그게······.”
해당 문서는 각국의 결혼 예법을 정리한 보고서였다.
하란사는 아직 일본군 간부가 함녕전 대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큰 목소리로 다음을 말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었습니다. 다만······.”
“다만?”
문이 열리고.
감시자가 떠났다.
하지만 계속하여 이 둘의 대화는 도청될 터.
고종은 필담을 나눌 준비를 했다.
이에 하란사는 이전에 했던 대로 말을 천천히 늘이며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준비를 해 댔다.
“일본 정부가 정해 준 신랑감과 옹주마마를 올겨울이 끝나기 전까지 결혼시킨다면······ 이번만은 특별히 이를 지원하겠다고 답하였나이다.”
“그렇군.”
고종은 제 딸을 대마도주 가문에 시집 보내는 대가로 지참금, 정확히는 신붓값을 받고자 했다.
“금액은 얼마나 된다던가?”
“10만 엔 정도 선에서 신붓값을 치를 것이라고 하옵니다.”
고종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앞에 있던 군밤이 가득한 접시를 하란사 쪽으로 살짝 밀었다.
“군밤 하나 먹겠는가?”
“괜찮나이다. 입궐 전에 과식을 좀 하여 속이 좀 더부룩하옵니다.”
“그래?”
이 맛있는 걸, 안 먹겠다고?
그럼 나야 땡큐지.
하는 표정으로 고종은 다시금 제 앞으로 군밤이 가득 담긴 접시를 옮겼다.
“이리 맛있는 군밤을 먹을 수가 없다니······ 참으로 안타깝군.”
필담을 나눌 준비가 끝나자, 고종은 재빨리 품 안에 미리 준비했던 서찰 하나를 하란사에게 건넸다.
『그 일은 어찌 진행되고 있지? 올해 안으로 그 일이 끝나리라 약조하지 않았던가?』
하란사는 이를 확인하고 불태운 후, 그녀의 앞에 준비된 흰 종이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리옵니다. 준비해야 할 것이 의외로 많사옵니다.』
고종이 짜증을 내자, 하란사는 살짝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어린애를 달래듯 고종을 타일렀다.
『서둘렀다가 일이 틀어지기라도 하면······ 폐하를 돕는 이들도 그렇지만 폐하의 안위 또한 장담치 못할 수도 있나이다.』
고종은 제 신변을 중시한다.
이를 거론하자, 고종은 못 이기는 척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나이다.』
고종이 글을 쓸 차례다.
살짝 뜬금없지만.
고종은 입으로는 오늘 날씨가 참 좋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며, 제 진심은 글로 빠르게 적어 나갔다.
『내, 간악한 일본 버러지들의 의심을 피하려고, 고명딸까지 팔아먹으려는 좀생이가 되고 있도다. 이 일을 하루빨리 끝내야 할 터.』
말은 핑계라지만.
떠나기 전, 진짜로 신붓값을 받을 생각인지 이리 선금을 달라고도 하는 이가 고종이었다.
물론 옹주 또한 대한합중국으로 함께 데려갈 것이라지만.
만약 파천 도중 옹주가 일본군에 잡히기라도 하면 낭패.
이에 하란사는 속으로 고종의 진의를 의심했지만, 이를 티 내지는 않았다.
『폐하. 폐하께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란사는 이번 파천 계획에서 만에 하나 선택해야 할 수도 있는 물음을 고종에게 하고자 했다.
『만약에 파천 도중······ 일이 잘못 틀어져 옹주마마와 폐하 중 한 분을 선택해야 한다면, 폐하께서는 어떤 선택을 하시겠나이까?』
고종이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하란사는 두 자녀의 부모로서, 이 질문이 과연 생각이 필요한 질문인가 의아해했지만.
일국의 황제라면 고민을 할 수도 있는 자리라 생각했기에, 그저 고종이 어떤 답변을 할지만을 기다렸다.
< 파천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