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23)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23화(323/392)
< 한겨울밤의 꿈 (1) >
사이토 마코토는 4년 전 일본으로 병합된 조선반도의 남부 지방, 야마토 지역을 총괄하는 총독이다.
‘말년에 여행복이 터졌군.’
이제는 한 나라가 되었다지만, 사이토는 야마토 지역을 본토가 아닌 외지라 생각했다.
‘내 뒤를 이을 만한 쓸 만한 놈은 언제 나타나려나?’
일본의 최고위층 중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인물은 몇 없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이토는 현재 거대한 태평양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파리강화회의에 이어 올해 워싱턴에서 열리는 군축회의에도 일본 대표로 참석해야 하니까.
‘담배나 태우러 갈까?’
오랜 항해로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사이토.
그는 잠시 바닷바람을 쐬기 위해 갑판으로 향했다.
“총독 각하.”
“······.”
언제 따라온 것일까?
파리강화회의에 이어 워싱턴 군축회의까지, 2연속으로 그의 보좌를 맡게 된 후지와라가 빠르게 사이토에게 접근했다.
“자네, 또 잔소리하러 왔나?”
“예.”
후지와라는 충성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사이토에게 권했다.
“······속히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어째서지?”
“이 근방에는 모기가 많습니다.”
후지와라가 선체가 이동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육지가 보이고 거대한 항구가 시야에 잡힌다.
후지와라는 이제 막 눈에 들어온 해안 시설을 가리키며 이곳이 어디인지를 설명했다.
“저곳은 우리가 곧 이용하게 될 파나마 운하입니다.”
사이토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난해.
유럽으로 향할 때 또 다른 운하를 이용하긴 했다.
‘수에즈와 더불어 파나마 운하는 세계 양대 운하라고 불리는 곳인데.’
사이토는 제법 탐이 나는 표정을 지어 대며 후지와라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곳을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청인과 조선인들이 동원되었다지?”
“예.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의 인부들이 황열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후지와라는 열심히 사이토 주변으로 손을 털어 대며 혹시 모르는 모기의 접근을 막고자 했다.
사이토는 이런 정성스러운 후지와라의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총독 각하.”
“그래. 듣고 있네.”
“황열은 모기를 매체로 하는 전염병입니다. 자칫, 각하께서 이리 나와 계시다가 모기에 물리기라도 한다면······.”
후지와라는 제법 슬픈 얼굴을 하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갔다.
“우리 일본 제국의 장래가 어두워질 수도 있습니다. 각하께서 이 제국을 좀 더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시는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까 저는 두렵습니다.”
아부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를 후지와라가 손수 보여 준다.
사이토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후지와라의 신상 정보를 회상했다.
‘이토 전 총리의 심복이라던데. 소문대로 아부 실력이 장난이 아니군.’
계속하여 안전한 실내로 돌아갈 것을 원하는 후지와라.
그런 후지와라의 권유를 사이토는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며 원래 있던 특실로 다시금 돌아왔다.
“아! 후지와라.”
“예. 총독 각하.”
“아까 보았던 파나마 운하 말이야. 지금은 평민으로 몰락한 카이저 그놈이 자주 언급했던 구조물이라던데? 자네도 이를 알고 있었나?”
“예.”
사이토는 빌헬름의 얼굴을 떠올렸다.
살짝 기분이 나쁜지 이를 갈기도 했는데, 이는 빌헬름이 일본을 종종 악마화해서 국제사회에 경고했기 때문이다.
사이토는 과거 카이저의 언행을 회상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자식이 말이야. 우리 일본 제국이 파나마를 노리고 있다고, 미국에 이를 줄곧 경고했다던데?”
“그렇습니다. 일각에서는 카이저의 망상을 두고 황화론이라는 표현까지 써 주며 이를 부추겼다고 합니다.”
사이토는 조금 전 보았던 파나마 운하 시설을 회상하며 입을 열었다.
“이리 가까이서 직접 보니······ 참으로 탐나는 물건이긴 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이어 주는 운하라니까, 그 값어치가 상당할 테니.”
입맛을 다시며 사이토가 후지와라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무리지만······ 언젠가는 우리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이곳을 운영하였으면 좋겠군.”
카이저의 망상에 대해 힐난할 줄 알았는데.
사이토는 파나마 운하를 탐하기 시작한다.
이에 후지와라는 빠르게 자세를 바꾸어 파나마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리 된다면 태평양을 내해처럼 활용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그렇겠지?”
후지와라는 사이토의 허황한 꿈에 동의하며 맞장구를 쳐 댔다.
“조만간 파나마는 우리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88함대 건함 계획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사이토는 뒷말을 끌며 무언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상대방 역시도 해군 전력을 무서운 속도로 증강하고 있다네. 특히 미국의 해군력 증강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지.”
“······.”
“세계대전을 막 전쟁을 끝낸 영국 역시도 드레드노트 이상의 전함을 추가로 건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곳을 차지할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한다 생각하네만.”
후지와라가 조심스럽게 사이토의 주장을 반박했다.
“하지만 양국 모두 이를 버거워하기에······ 우리를 워싱턴까지 불러서 군축회의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 아닙니까?”
“흠. 자네 말도 옳네.”
사이토는 팔짱을 껴 댔다.
그와 함께한 다른 일행들은 이미 한 번씩 사이토와 이야기를 나눈 상태.
사이토는 후지와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번 회의가 어찌 끝날지를 물었다.
“그래. 자넨, 어떻게 회의가 마무리되리라 생각하나?”
“글쎄요. 저는 우리 일본이 원하는 대로 회의가 잘 마무리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후지와라는 너무나도 일본을 믿는 것 같았다.
과연 사이토가 가지고 있는 보고서를 본 이후에도 그리 행동할까?
사이토는 자못 궁금했기에, 그의 서류 가방에 고이 보관되어 있던 한 보고서를 꺼내 들었다.
“이거 받게나.”
“뭡니까?”
“미국에 있는 우리 외교관들의 보고서네.”
후지와라가 빠르게 이를 읽는다.
보고서에 집중하는 후지와라를 바라보며, 사이트가 관련 내용을 요약했다.
“미국의 여론을 수렴한 모양일세.”
“아국의 해군 전력을 미국이 이렇게까지 제한하려고 한단 말입니까?”
사이토가 한숨을 푹 쉬며 어깨를 으쓱댔다.
“우리를 이미 가상의 적으로 생각해 놓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는, 어느 미꾸라지가 아주 제대로 분탕질을 했나 보네.”
“······.”
여기서 사이토가 언급한 미꾸라지는 바로 이강을 뜻한다.
이강이라고 콕 집어서 언급할 수도 있지만, 일본의 정치인들은 이를 본능적으로 꺼렸다.
이강과 엮였다가 말년이 좋았던 이들은 하나도 없으니까.
그렇기에.
이강은 지금 일본 정치계에서 ‘이름을 부르면 안 되는 자’로 통했다.
“그래도 우리의 전함 전력을 미국의 절반 이하까지 낮추라는 것은 너무한 처사인 것 같습니다.”
사이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본격적인 협상 전,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허세 같지만.
그만큼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사이토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다.
이런 사이토를 바라보며 후지와라가 일본 군부 측 의견을 밝혔다.
“더욱이 아국의 해군 장성들은······ 적어도 8할 이상을 유지하길 원하지 않습니까? 이대로 협상하고 돌아갔다간, 오랜 시간 동안 내홍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렇겠지.”
현 일본 정부는 군부 세력을 배제한 민주 정부다.
외신들은 이를 가리켜 ‘다이쇼 데모크라시’라고 칭하는데.
이번 협상 결과 때문에 가까스로 정권을 잡은 일본 민주정치가 뒤로 일보 후퇴할까 봐 후지와라는 두려웠다.
“더욱이 이번 협상에서 산동과 조선반도 역시 거론될 것입니다. 하나만 밀려도 삐걱거리는 이슈인데, 폭탄을 세 개나 다루어야 하지 않습니까?”
사이토는 군부 출신이지만, 현 정부에 굉장히 유화적인 인물이었다.
군부가 다시금 재집권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대로 민주정이 계속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류.
그렇기에 절박했던 후지와라와는 다르게 사이토는 마음이 제법 편했다.
“그렇지. 하지만 산동이야, 자오지철도를 양보한다면 더는 문제 삼지 않을 것일세.”
말이야 쉽지.
자오지철도는 요동의 만철과도 같은 철도다.
이를 빼앗긴다면, 이로 인해 벌어들일 엄청난 세수는 물론이고.
베이징으로 가는 주요 길목 중 하나가 서양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사이토의 주장처럼 쉽게 넘어갈 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물론 일부 강경파들은 칭다오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우리 일본군을 철수하라 압박하겠지만······ 조선반도 문제가 아직 남아 있기에, 그렇게까지 무리는 하지 않을 것이네.”
“그런가요?”
군축도.
산둥반도 이권도 뜨거운 이슈지만.
그보다도 더 핫 하고 위험한 이슈는 따로 있다.
바로 조선반도.
대한제국의 외교권 회수다.
더 나아가.
세계대전 때 강제로 합병해 버린 삼남 지방 반환 문제 또한 그들 앞에 놓여 있는 문제였다.
“미국의 대통령인 휴즈가 이강과 밀월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한은······ 그리 행동하리라 유추하네.”
“그렇지요.”
여기서 조금이라도 밀린다면, 향후 일본 정계는 아수라장이 되리라.
다 잡은, 아니지.
이젠, 내 것으로 생각한 물고기를 놓친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으니까.
“그래도 아직 희망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희망?”
“예. 조선의 상왕이 최근 들어 우리 편을 들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고종이 많이 조용해지긴 했다.
조선의 삼남 지방을 빼앗겼을 때만 하더라도, 언론에는 퍼지지 않았지만 고종은 단식 투쟁까지 하며 일본 정부와 맞서려고 했다.
“둘째 아들에게 단단히 토라지기라도 한 모양인지, 우리에게 소심하게 반항을 하는 그의 첫째 아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 중입니다.”
과거 고종이 일본 정부와 대립했던 건, 자신의 것을 아무 상의도 없이 빼앗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고종에게 비자금을 찔러주며 살살 달래었고.
고종도 시간이 지나며 삼남의 권리에 대해 반쯤 포기하며 다시금 안락한 삶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최근 옹주의 국혼 동의 역시, 일본은 이 행동의 연장선이라고 봤다.
“대한합중국과의 국경을 폐쇄하라 명한 것도 상왕이 주도한 일입니다.”
“하긴 그간, 미국에 머무는 그 미꾸라지······ 같은 그놈과 상왕을 무던히 이간질하기 위해 노력하긴 했지. 그 노력의 성과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긴 해.”
“예. 더불어 조선의 상왕은 자신만의 안위를 추구하는 옛사람입니다. 입헌군주니, 민주주의니 하는 것에 몸서리칠 만도 합니다.”
외교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사이토는 현 정세가 일본에 많이 불리하지만, 일본 정부 역시 나름대로 준비를 해서 잘 대응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 골치 아픈 일이 잘 끝났으면 좋겠군.”
그는 천천히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선체의 움직임 때문인지, 고개를 돌려서 창문 풍경을 감상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으며 하루빨리 워싱턴에 도착하기만을 소망했다.
* * *
“이쪽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워싱턴에 도착한 사이토 일행.
주최국인 미국 측의 안내를 받으며 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오랜만이로군.”
“······!”
“······!”
회의장에 들어서기 전.
이들은 뜻밖에 인물과 조우할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이 왕자님.”
이강이었다.
이강은 회의장에 들어서려는 일본 측 대화들과 영어로 말을 걸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래. 오랜만일세.”
현재 일본은 대한합중국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사이토는 이강을 가리켜 ‘왕자’라 칭했다.
물론 이강 역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사이토는 ‘야마토’ 총독.
야마토는 구 대한제국의 삼남 지방으로 대한합중국 역시 삼남의 일본 병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에.
굳이 총독이라 칭하지 않은 거다.
“응? 자네 또한 구면인 것 같은데······.”
이강이 후지와라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 기억나는군. 자넨, 후지와라가 아닌가?”
“저를 기억하십니까?”
“그럼. 동경에서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늙은 것 같지만, 아직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것 같군.”
“옛 모습이라면······.”
“내가 머물던 호텔 앞 카페를 뻔질나게 들락날락하지 않았던가?”
“······!”
후지와라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식은땀까지도 흘렸는데, 이는 지금 이강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자주 봐서 그런지,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내 뇌리에 선명히 박혀 있네.”
후지와라는 과거 이강이 도쿄에 머무를 때, 그의 모든 움직임을 기록하는 총책이었다.
일선에서 활동하지는 않았기에, 그의 존재를 모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렇게 지난 일을 간접적으로 언급하자, 후지와라는 이강이 자못 무서워졌다.
“······그러시군요.”
“그럼. 내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데?”
이강은 두 사람의 어깨를 연신 쳐 대며, 일본 대표단들을 마치 아랫사람처럼 대했다.
“내, 못다한 이야기를 자네들과 나누고 싶지만 오늘 열릴 회의가 조만간 시작된다고 하더군.”
“······.”
“······.”
“자자, 어서 들어가 보게.”
발걸음을 떼려는 사이토.
하지만 다시금 멈춰 서며 그는 이강을 향해 질문했다.
“이 왕자님께서는 안 들어가십니까?”
“나는 군주이지 우리 정부를 대표하는 특사는 아닐세. 우리 측 외교관들은 진즉에 도착하여 상대국 특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네.”
“······!”
자신들을 이리 붙잡은 것은 대한합중국 특사들이 다른 대표단들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게 하기 위함이었을까?
아차! 하는 생각이 일본 대표단들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럼 저희는 이만.”
일본 대표단들은 빠르게 회의장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아, 그리고.”
이강은 잠시 한 템포 숨을 고른 후, 일본 대표단들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다시금 경고를 날렸다.
“난 왕자가 아니고 왕일세. 한 나라도 아니고 다섯 나라의 군주란 말일세.”
“······.”
“······.”
“여기 참석한 국가 중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대한합중국을 공인하고 대사관까지 차렸다네. 그러니 부디 이런 국제회의에서는 나를 이 왕자가 아닌 이 왕이라고 칭해 주게나. 호칭을 잘못 사용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큰 실례니까.”
꿀꺽-
반박해야 한다.
사이토와 후지와라는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이강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아우라에 짓눌린 것이다.
“외교 밥 좀 먹은 자네들이라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하네.”
“······.”
“······.”
“아! 나 좀 보게. 내 자네들을 또다시 오래 잡고 있었구먼. 어서 들어가게나. 회의가 곧 시작하겠네.”
< 한겨울밤의 꿈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