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26)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26화(326/392)
< 파몽 (1) >
체감상 길고 길었던 출국심사를 마치고, 다시금 열차에 올라탄 고종.
“크크크, 크크, 크크.”
대한합중국의 영토인 안동역 도착한 후, 그는 남쪽을 바라보며 어깨가 위아래로 들썩들썩할 정도로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고 있던 웃음보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냈노라. 해냈어!’
일전에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 왔을 때처럼.
고종은 이번 파천의 성공 또한 모두 자신의 공으로 돌렸다.
‘이 일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완벽히 통감부 놈들을 속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던가?
백성들에게 딸년까지 팔아먹으려는 파렴치한이라고 손가락질까지 받지 않았던가?
‘내 완벽한 연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실제로 파천 계획이 헝클어진다면, 진짜로 일본 정부에게서 신붓값을 받을 생각이었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고종은 그중 T.O.P.이다.
고종은 그때의 나쁜 마음가짐을 싹 잊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을 조선 최고의 독립투사라 여겼다.
“하하하. 하하하.”
고종은 속 시원히 한 번 더 웃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하- 짐이 이리 박장대소를 터트릴 줄이야. 얼마 만이었더라?”
그래.
생각이 난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때.
그의 둘째 아들인 이강이 일본을 한 방 먹였을 때.
그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
고종은 한참 웃다가 급히 정색했다.
헤이그 평화회의 때의 일을 회상하다가, 꼴도 보기 싫은 둘째 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엉망이 된 것들을 제 위치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 나라는 잘못 돌아가고 있다.
외국물 좀 먹었다고, 절대 군주를 폐지하고 입헌군주제를 추구하다니.
무엇보다도 이 나라의 군주는 하나.
바로 자신이어야 했다.
아무리 아들이라도 군주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면, 제거해야 할 정적에 불과하다.
적어도 고종은 그리 생각했다.
“폐하.”
고종을 호위했던 일행들이 큰절하며 고종의 기분을 더욱더 띄워줬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모르는 얼굴도 보인다.
정보국이 임시정부에 연락이라도 했는지, 임시정부 내각 인사 일부가 안동역까지 와서 친히 고종의 파천을 환영한 거다.
“감축드리옵니다.”
“그래그래. 짐이 드디어, 왜놈들의 마수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노라.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해라.”
이어서 고종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아바마마. 감축드리옵니다.”
고종보다 늦게 철교를 건넜던 옹주가 나타났다.
그녀는 뒤늦게 큰절까지 하며 고종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오냐. 옹주. 옹주 또한 무사히 이곳에 도착했구나.”
“예. 그렇사옵니다.”
고종은 살짝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옹주를 바라보았다.
출국심사를 할 때, 하란사는 일행을 두 팀으로 분리해 심사를 받자고 제안했다.
본디 위험을 줄이려면, 분산투자 하는 것이 맞기에.
마지막 순간.
일행을 나누자고 한 거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
하란사는 고종에게 이리 말했다.
옹주를 먼저 보내냐, 고종을 먼저 보내냐.
이를 두고 고종에게 선택권을 주었던 거다.
『짐은······.』
잠시 고민했던 고종은 결국 옹주보다 먼저 출국심사를 받는 것을 선택했다.
위험한지 안 위험한지.
고종의 자녀를 위해 스스로 실험용 쥐를 자처한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본심은 따로 있었다.
하루빨리 국경을 건너서 안동 땅에 도착하고 싶어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한양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는 것이 발각될 것이었기에.
옹주의 안위를 내팽개치고 자신부터 살려고 했던 것.
“옹주. 아픈 곳은 없느냐?”
“예. 아바마마.”
하지만 결론적으로 둘은 무사히 압록강을 넘었다.
고종은 그때의 부끄러운 기억을 잊고 싶은 듯, 한참 옹주만을 바라보다가 같이 왔던 여성 요원 하나를 불렀다.
“김 요원.”
“예. 폐하.”
“이곳에 올 때까지, 근 이틀간 옹주는 딱딱한 좌석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앉아 있어야 했네. 옹주를 데리고 좀 쉬고 있게나.”
이에 김 요원이 옹주를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아바마마.”
“응?”
“저기. 짐보따리에 소녀의 팽이가 있사온데, 이것을 가지고 나가도 되옵니까?”
옹주는 현재 남장을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의 보따리에는 이 시대 헝겊 인형 같은 여성용 장난감은 없고, 모든 아이가 가지고 놀만 한 놀잇거리만이 존재했다.
“물론이지. 가지고 나가서 팽이치기라도 하고 있거라.”
“예.”
옹주가 팽이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그때였다.
“그대는 뭘 하고 있나?”
“예?”
가만히 서 있는 하란사를 향해 고종이 핀잔을 주었다.
“서둘러 기자들을 부르지 않고. 기자회견을 해야 하지 않느냐?”
하란사와 임시정부 요인들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고종을 만류했다.
“폐하. 이곳은 안동이옵니다.”
“맞사옵니다. 대한제국에 주둔 중인 일본군은 물론이고, 뤼순에도 관동군이 머무르고 있사옵니다.”
“특히나 뤼순은 이곳에서 엎어지면 닿는 거리입니다. 자칫하면······.”
고종은 만류하는 신하들을 뿌리치며 콧방귀를 꼈다.
“흥. 저 겁쟁이들이 압록강이나 넘을 수 있겠느냐? 그랬다가는 대한합중국 국군은 물론이고, 미국과 영국마저도 일본을 협공할 것인데. 아니 그런가? 하 총학사.”
하란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우물쭈물하는 하란사를 바라보며 고종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보게나. 여기 있는 이들 중 하 총학사가 제일 많이 국제 정세를 아는 인물일 텐데. 짐의 말에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서둘러 외신 기자들을 부르게나.”
그로 인해 전쟁이 나든 말든, 고종은 별 신경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어차피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은 청년들이지, 고종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기차에서 한 유용한 정보를 듣지 않았나?
‘워싱턴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권 회수 문제를 두고 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다 했지?’
이 회의에 숟가락을 올려야 한다.
그래야 자신에게 힘이 주어질 테니까.
외교권 회수 쪽으로 결론이 나기 전에,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고종은 성급함을 보이며 신하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 * *
외신 기자설명회는 성공리에 끝났다.
모든 외신이.
고종의 말에 관심을 보였고.
전 세계로 그의 주장이 실려 나가기 시작했다.
“폐하. 도착하였나이다.”
고종은 부리나케 내륙으로 이동했다.
일본군이 진짜로 압록강을 건너기라도 하면 낭패니까.
그렇기에 최대한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고자 했다.
“이곳이 우수리라고?”
“예. 임시정부를 세운 러시아 황족들 또한 이 주변에서 기거하고 있사옵니다.”
고종은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했다.
그때.
연해 왕국을 총괄하는 이범진이 기분 나쁜 보고를 고종에게 올렸다.
“폐하. 의왕 전하께서 이주 후에 해삼위에 도착하신답니다.”
임시 황궁에 도착한 고종에게 이범진이 이를 보고했다.
하지만 고종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이에 이범진이 그 이유를 물었다.
“왜 그러시옵니까?”
“너무 귀국을 서두는 것 같아서. 우려돼서 그런다네.”
“예?”
“그간 둘째는 미리견에서 국제 여론전을 펼치며 아국의 이익을 위해 애쓰지 않았던가? 짐의 주장이 틀리던가?”
“폐하의 말씀대로 의왕 전하께서는 그리하셨나이다.”
고종은 이강의 과거 이력을 언급하며, 이강의 대한합중국 귀국을 반대했다.
“그렇다면 이 일을 계속해야지. 회의 도중에 이를 박차고 나왔다가 외교권 회수 문제가 자칫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이 책임은 누가 지려고, 이리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인가?”
“······.”
이 와중에 고종은 정치질도 했다.
만약 이번에 대한합중국 대표단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부 ‘무모하게 귀국을 서두른 이강의 탓이다’라고 프레임을 짠 거다.
“이곳은 짐이 잘 관리하고 있겠으니, 의왕은 맡은 본문에 충실하며 미국에서 국제여론을 좀 더 관리하라 명하노라. 미국에 있는 둘째에게 이리 전하도록 하라.”
“예.”
이범진은 의외로 별 반대 없이 우수리 임시 황궁을 떠났다.
“최 요원.”
“예. 폐하.”
“여기 적혀 있는 인사들을 좀 불러 주게.”
고종은 함께 파천 온 최 요원을 불러서 명단을 건넸다.
대한제국에 있을 때.
그에게 호의적이었던 몇 안 되는 인물들의 목록을 최 요원에게 건넨 거다.
한편으로는 그가 몰래 챙겨 왔던 금붙이와 현금들도 최 요원에게 넘겼다.
“폐하. 이것은······.”
“그대의 공을 치하해야 하는데······ 아직 공신록을 작성하지 못하여 이것이 미뤄지고 있다네.”
“······.”
“짐을 돕는다면, 이 이상의 것을 그대에게 줄 것이니 부디 이 목록에 적혀 있는 이들을 내게로 데려오게나. 짐이 이자들과 긴히 논할 게 있어서 그러니 속히 불러와 줬으면 좋겠네.”
“소신, 폐하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역시.
돈이 최고지.
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매수만 한 것이 없다.
고종은 그리 생각하며 황궁을 나가는 최 요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잘못된 것은 다 고쳐 잡아야지. 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강의 입국을 막고.
입헌군주제를 폐지한 후, 다시금 전제군주정을 부활시킨다.
이후 강력한 왕권을 자신이 행사하며 일본에 복수하는 것이 바로 고종의 오랜 꿈이다.
“응? 이게 왜 여기에 있지?”
고종의 시야에 한 물건이 잡혔다.
옹주가 한양을 나설 때, 자신의 보따리에 몰래 보관해 둔 팽이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던 거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고종은 어렸을 때 팽이를 치던 기억을 떠올리며 바닥에 엎어져 있는 팽이를 집어 슬그머니 돌려보았다.
“어라? 어째서 팽이가······.”
쉴 새 없이 계속 돌아가지?
가만히 두면 속도가 줄며 멈춰야 하는데.
팽이는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돌아갔다.
마치 안 보이는 누군가가 계속하여 채찍질하듯.
1분.
5분.
더 나아가 몇십 분 동안 계속하여 팽글팽글 돌았던 거다.
‘어째서?’
그보다 눈이 무거워진다.
돌아가는 팽이를 계속하여 보고 있었더니 피로가 쌓인 모양이다.
고종은 그렇게 눈을 감았다.
물론 그 순간에도 팽이는 계속하여 돌아갔다.
* * *
파앗-
고종은 다시금 눈을 떴다.
‘어라?’
뭔가 이상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우수리에 있는 임시 황궁에서 잠을 청했는데 말이다.
‘요상하게 생긴 팽이를 굴리며, 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째서?’
아니, 그보다 왜!
지금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가?
마치 누군가가 그를 내팽개친 자세를 한 채로, 불편하게 말이다.
“%@#$%#^.”
일본어였기에, 고종은 누군가의 외침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고종은 바로 그 뜻을 유추할 수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고종을 옆에 서 있던 역무원들과 순찰대원들이 사방으로 둘러쌌으니까.
“아니 된다. 이놈들. 아니 된다.”
고종을 호위했던 최 요원과 김 요원의 외로운 외침.
하지만 매질에는 장사가 없다는 옛말이 있듯이.
이내 제압당해 몸을 축 늘어트린다.
‘뭐야!’
이제야 고종은 제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압록강을 건넌 후 우수리에 도착하여 편히 잠까지 잤던 기억은 다 그의 ‘꿈’이었던 것이었다.
“무도한 놈들! 나는 이 나라의 황제이니라! 감히 어느 놈들이 내 몸에 손을 데려는 것이냐!”
이후 일본군에 의해 질질 끌려갔는데, 고종은 다음 차례가 자신이라고 직감했다.
이에 큰 소리를 내치며 반항하기 시작했다.
쏙닥쏙닥-
조선어를 할 줄 아는 간잡이가 책임자 옆에서 고종의 말을 통역하는 것 같았다.
이에 의주 역사 책임자가 다시금 일본어로 통역관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상왕 전하.”
“······.”
“이대로 곱게 한양으로 돌아가시지요.”
“네놈! 무엄하도다. 감히 짐의 앞길을 막다니!”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는지 의주역 관리자는 철도경찰에 고종의 강제 연행을 지시했다.
이에.
철도경찰대원들이 고종의 양팔과 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그를 한양행 기차로 실으려고 했다.
“어! 저기······.”
“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본데?”
그때였다.
한 무리의 사내들이 고종 쪽으로 다가왔다.
고종은 고개를 돌려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하늘이 아직 그를 버리지는 않은 것 같다.
이제 막 의주역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린, 파란 눈에 머리가 노란 서양인들이 의주역 역사로 가득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 대한제국의 황제이니라! 무도한 일본인들이 나를 강제로 연행하고 있느니라. 지금 날 도와준다면, 나중에 큰 보답을 내려 주겠노라 약조하겠다!”
저기 저 철교만 넘으면 대한합중국 땅이다.
그랬기에, 용감한 서양인들이라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까?
고종은 그리 생각했다.
찰칵찰칵-
하지만 서양인들은 대놓고 그를 돕지 않았다.
그저, 카메라 셔터만 누를 뿐.
더하여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벌어졌는지만을 관심 가졌다.
이는 이들이 이강에 의해 고용된 서양 용병이 아닌 외신 기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외교권 회수와 7월에 치러질 대한합중국의 총선거 준비 사항을 취재하러 온 이들이었는데.
대한제국에 입국하자마자 특종을 잡게 되어, 웬 놈의 횡재냐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하여 셔터를 눌렀다.
“나는 이곳 대한제국의 황제이니라! 일본 놈들이 나를 강제로 연행하고 있느니라.”
기자들 옆에서 통역해 주던 통역관들이 아주 친절하게도 이를 외신 기자들에게 설명한다.
의주 역사 책임자는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며 이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사진을 수백 장이나 찍은 상황.
더욱이 이들을 죽일 수도 없기에, 진실을 묻을 수도 없었다.
“안 돼! 안 돼!”
그렇게 고종의 파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 파몽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