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27)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27화(327/392)
< 파몽 (2) >
오늘 점심은 평소와 비슷했다.
맛있게 차려진 한정식으로 배를 채운 후, 달콤한 후식을 한입 베어 물며 입가심을 하고 있으니까.
“전하.”
“그래.”
“오늘로, 워싱턴에서 군축 회의가 개회한 지 열흘째가 되옵니다.”
하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특히나 나와 점심을 함께 한 일행들의 구성이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는데.
이는, 대한합중국에서 온 대표단들이 우리 집에 초대되어 식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겠다.
“벌써 그리 되었단 말인가?”
“예.”
“시간 참 빠르게 흘러가는군.”
사흘만 있으면 2월이라니.
이거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흘러가는데?
나는 달력을 한번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금 테이블로 시선을 돌리며 다과 옆에 놓인 수정과를 들었다.
“그래. 회의 분위기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수정과를 한 모금 홀짝인 후, 대표단 삼인방과 시선을 교환하며 그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 보게.”
뒤에 말에 힘을 주며 안심해도 좋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표단 단장인 이준을 비롯하여, 이상설, 이승만은 입을 꾹 다물 채 그들 앞에 있는 수정과만을 홀짝였다.
“뭔가 생각보다 안 풀리는 모양이로군. 입으로 벌어 먹고사는 그대들이 이리 조용한 것을 보면 말이야.”
“······.”
“······.”
“······.”
나는 다 안다는 표정을 지으며 옆에 서 있는 최현우와 시선을 교환했다.
“여기 있는 최 비서실장을 통하여 회의 내용을 꾸준히 보고받고 있다네. 그렇기에, 내 대충 돌아가는 상황은 알고 있다네.”
“그, 그러시옵니까?”
입을 가장 먼저 연 이준, 너로 정했다.
나는 자못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현장에서 일하는 자네들의 고견을 직접 경청하고 싶어서 질문한 것이니······ 부디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주게나. 그래. 자네부터 말해 보겠나?”
이준을 꼭 집어서 호명하자, 그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전하. 일본의 배수진이 제대로 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예. 최근 영국 쪽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영국 대표단도 은연중에 일본의 일부 주장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요새 그리 느끼고 있었으니까.
‘뭐, 혐성국이 혐성질 하는 게 하루 이틀인가?’
이를 막아낼.
비장의 무기만 완성된다면야.
그치들도 이상한 짓은 더는 못할 터.
“이곳에 들르기 전, 오늘 오전에······ 사이토 특사가 자네들을 은밀히 따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시중에 돌던데.”
영국 문제는 일단 다음으로 미루어 두고.
나는 오늘 내 앞에 있는 이들이 일본 특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부터 알아낼 생각이다.
“그치가 자네들에게 무엇을 제시하던가?”
옆에서 조용히 우리 대화를 경청하던 이승만이 나섰다.
“조기 합의를 종용하였나이다.”
“합의?”
“예. 삼남 영유권 반환, 더 나아가 대한제국의 외교권 회수에도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일부 이권을 대한합중국에 넘겨주겠다고 사이토가 제의하였습니다.”
눈알을 뱅글뱅글 굴리며 이승만이 내 눈치를 본다.
내 앞에 있는 삼인방 중, 가장 나의 표정을 가장 유심히 관찰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이승만을 향해, 한쪽 눈썹을 꿈틀거린 후 그에게 물었다.
“일부 이권이라면······ 도대체 뭘 말하는 것인가?”
“압록강, 두만강 수계 이용권과 함께 함경도 무산에 있는 노천 탄광 접근을 허용하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래?”
나는 재팬타운 근처 호텔에 머무는 사이토의 얼굴을 회상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어이가 없군. 내어 주겠다는 것이 고작, 이 두 가지라니······ 하!”
기가 막힌다.
사이토의 제안을 곱씹어 본다면, 아무것도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가?
‘지난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 낭인들이 날 급습하며 한반도에 있는 광산 이권 일부를 내가 받게 되었다.’
그 말은 즉.
무산 노천 탄광은 내 것이라는 말이다.
대한합중국 인부들이 이곳 노천 탄광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뜻은 정말이지 별거 아니라는 것.
압록강, 두만강 수계도 그렇다.
현재 일본군은 아국의 국경에서 50km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있다.
자칫 불의의 사건으로 분쟁에 휘말릴 수 있기에, 군대를 뒤로 뺀 것인데.
그 말은 국경지대가 반쯤은 대한합중국 손아귀에 들어왔다는 말과도 같았다.
‘막말로 우리가 이곳에 댐을 세운다고 해도, 자기들이 뭘 하겠어.’
그런데 이를 1차 세계대전 대가로 제시하다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네.
“전하.”
“말하게.”
내가 표정 관리를 못 하자, 가장 오른편에 앉아 있던 이상설이 나를 달랬다.
“개회한 지 삼 주나 지났지만, 합중국과 일본이 본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옵니다.”
나는 이에 이상설에게 되물었다.
“저리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한 것 또한 일본의 협상의 전략이란 말인가?”
“예.”
그렇지.
일본으로서는 외교권 반환과 삼남 영토 양도가 말도 안 되는 생떼라고 여길 테니.
일단은 작게 질러 놓고 서로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자는 것인데······.
“소신 또한 그리 생각합니다.”
“소신 또한 동의하옵니다.”
나는 협상의 달인이다.
이 또한 당연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이리 협상단 앞에서 대놓고 화를 낸 것은 이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였다.
‘조금씩, 진짜 외교관으로 성장하고 있군.’
아직은 미숙한 면도 간혹 보이지만.
강화도조약을 체결했을 때처럼, 외교 분야에 젬병인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성장하고 있는 대한합중국의 관료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조금 웃었다.
“아마도 대한제국의 일부 북방 영토를 아국에 넘기는 선에서 이번 회의를 마무리하려고 노력하지 않겠나이까?”
대표단 삼인방은, 그들이 생각하는 중간 타협안을 내게 고하며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떠보는 것 같았다.
“소신들의 예상으로는 청천강에서 함흥을 잇는 국경선이나 북위 39도 정도를 합의로 제시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겠지.
이들의 의견에 격하게 동의한다.
사실, 그편이 일본 측으로서는 더 이익이니까.
‘북방에 자리한 광산들이 아깝겠으나······ 의용군의 게릴라 활동으로 정상적인 광산 운용이 불가하지. 그 덕분에 돈 안 되는 북쪽 광산들이 속속 폐광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더욱이 일본은 국제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
대한합중국에 외교권을 넘기라고 영국과 미국이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상태.
외교권을 반환하지 않는다고 해도 일부 성의는 보여야 할 터.
영토 양도는 필수였는데, 일본으로서는 청천강-함흥 라인이나 평양-원산 라인을 차선책으로 정하고 국경으로 삼고자 할 거다.
그 편이 수비하기도 쉽고, 대한합중국에도 타격을 입힐 묘안이니까.
“하지만 그리 되어서는 안 되네.”
나는 목소리를 높이며 일본의 꼼수를 경계했다.
“대한합중국은 갓 건국된 신생국이네. 나름대로 준비를 하여 건국하였다고 하나, 여러 가지 약점을 품고 태어났다네.”
개중에 하나가 바로 수도의 위치다.
“한양같이 국력을 한곳에 집중시킬 만한 도시가 보이지 않아서 임시적인지만 안동과 훈춘, 해삼위로 수도의 역할을 나누지 않았나? 본인은 평양 또한 한양만큼이나 좋은 수도 후보지라 생각하고 있다네.”
하지만 이리 타협하게 된다면, 평양을 제대로 개발할 수 없을 터.
적국이 멀쩡히 존재하는 상태에서, 국경 인근에 수도를 세우는 짓은 바보나 하는 짓이니까.
‘39도 라인으로 정해진다면, 평양은 38도 선에 걸쳐 있는 개성만큼이나 애매한 도시가 될 것이다.’
차후에 일본 놈들이 39도 선 아래 있는 대한제국 영토를 강제로 합병이라도 한다면.
진짜로 코 밑에 적을 두고 있던 셈이 된다.
“소신들 또한 동의하옵니다.”
“맞사옵니다. 그렇기에 특사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하고 나왔나이다.”
이준과 이상철이 내 의견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이에 이승만은 살짝 우려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론을 뒤집을 만한 특별한 카드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어찌하여 39도 라인을 타협안이라고 들고 왔겠나이까?”
그야 39도 라인은 지정학적으로 일본이 수비하기 쉬운 라인이니까.
더하여 역사적으로도 한번 거론된 적이 있는 국경선이었기에, 다른 서구 열강들을 설득하기도 쉽다.
‘러일전쟁 때였나?’
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하기 직전.
일본은 러시아에 한반도를 이분할 하자고 제의했다.
그 기준이 바로 39도 선이었는데.
일본은 이를 활용하여 다시금 영국과 미국을 설득할 모양인가 보다.
“영국과 미국이 우리 편을 들고 있으나······ 국제외교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승만의 주장대로 미국은 굳건한 나의 편이지만, 영국은 조금 아리송한 상태.
그들은 식민지를 가장 많이 보유한 제국주의 국가다.
내가 기존 외교권을 양도받는 꼼수를 부려, 그들이 빠져나갈 만한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지만.
옆에서 계속하여 ‘너 대한합중국 편들었다가 잘못하면 인도도 독립한다.’라고 열심히 펌프질한다면, 영국으로서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래서 한 방의 카드가 필요하지.’
외교권을 반드시 돌려받을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지만, 간신히 못 이기는 척 과거의 약조를 회상하며 우리 편을 들어줄 테다.
영국이란 놈들은 본디 그런 놈들이 아니던가?
“그 문제는 내가 최대한 해결해 보도록 하겠네.”
조만간 해결될 거다.
고종의 파천.
이후, 그의 선언이 아주 좋은 트리거가 될 수 있을 때니.
“전하.”
그때였다.
밖에 서 있던 우현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야,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을 터.
“무슨 일인가?”
“이 국장이 알현을 요청하였나이다.”
이 타이밍에, 이위종이 나를 찾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 생겼다는 뜻인데.
“흠. 어쩌면 생각보다 더 일찍, 그 일을 해결할 수도 있겠군.”
나는 우리 둘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세 대표단을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들에게 이리 말했다.
“일단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게나. 내 잠시 상황을 파악한 후, 다시금 자네들에게 연락하도록 하겠네.”
* * *
“이 국장.”
“전하.”
이위종의 얼굴을 보자마자, 기분이 오묘해졌다.
파천이 기대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니까.
고종이 합중국에서 날뛰기라도 하면 낭패 중 낭패.
군축 협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하루빨리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한편으로 머리가 복잡해져 갔다.
“어찌 되었나? 파천은? 성공리에 끝난 것인가?”
이위종이 살짝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파천은 실패했다 하옵니다.”
“······.”
뭐 쉽게 성공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준비 기간도 너무 짧았고.
한 나라의 수장이었기도 한 고종을 국외로 이동시킨다는 계획 자체가 사실 태생적으로 어렵기도 해서다.
“저런. 그럼, 폐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신다는 것이냐?”
“폐하께서는 일본의 역도에게 발각된 후, 현재 한양으로 다시금 압송되고 있답니다.”
문뜩.
사진 속 한 아이의 얼굴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옹주는? 내 여동생은, 어찌 되었느냐?”
이위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게 보고했다.
“의주에 도착한 후, 다행스럽게도 일행이 둘로 쪼개졌다 하옵니다.”
“그래서?”
“하 동지께서 옹주마마의 호위를 맡았는데, 폐하의 파천이 발각되자 발 빠르게 다른 루트를 통하여 국경을 건넜다고 보고되었사옵니다.”
불행 중 다행이네.
그래도 상황이 잡힌 것은 내 예상밖에 일이다.
나는 자못 걱정되는 표정을 계속 지으며 이위종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황 폐하와 함께 이동했던 요원들은? 어찌 되었다는가?”
“둘 다 일본 철도경찰에 의해 잡혔나이다. 다만······.”
“다만?”
“둘 다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기에······ 조만간 풀려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긴. 지금이 어느 땐데, 이들을 고문하겠나?
대한제국 신민이었거나, 대한합중국 국민이었으면 예외 없이 고문이란 고문은 죄다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포되었다는 두 명의 요원들은 기본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재미교포들이었다.
“김 부국장이 신경을 많이 쓴 모양이로군.”
요원들의 안전에 특별히 신경을 쓰라고 요청했는데.
이런 복안을 마련하다니.
역시 능력 하나만은 출중한 인물이다.
나는 김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물었다.
“파천이 실패하였다고 하여도, 이를 국제사회에 잘 활용할 수 있으리라 보는데. 혹시 사진이나 녹음본 같은 증거물은 잘 확보하였다는가?”
이위종이 방긋 웃으며 그 물음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때마침, 외신 기자들이 의주에서 입국 심사를 해서······ 그때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고 합니다.”
“오, 그래?”
“예. 이를 빠르게 미국으로 들여오고 있기에, 조만간 관련 증거들을 활용하여 여론전을 펼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증거도 있겠다.
어떻게 하면 일본의 야무진 대륙 진출 꿈을 깨부술 수 있으려나.
나는 욕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위종과 시선을 교환했다.
< 파몽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