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29)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29화(329/392)
< 파몽 (4) >
“발표에 앞서, 기자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공지부터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전하께서는 몸이 불편하신 관계로 이 자리에 불참하셨습니다. 그 점 양해 바랍니다.”
이강은 현재 기자회견장 바로 옆 건물에서 행사장 분위기를 조용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 짜잔 하고 나서서 이번 기자회견을 진두지휘할 수도 있으나, 사람은 본디 낄 자리 빠질 자리를 알아야 하는 법.
지금 이 자리는 고종의 추한 사진을 들고 설명해야 하는 자리다.
국익을 위해서라지만, 가족의 치부를 밝히는 일.
이강이 직접 나서면 자칫 불효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강은 이번 기자회견을 협상단 삼인방에게 전부 일임하고 뒤로 물러서는 선택을 했다.
“전하께선 괜찮으십니까?”
“현재 전하께서는 통탄을 금치 못하며 식음을 전폐하셨습니다. 내면에서 폭발하는 분노로 인해 시름시름 앓고 계시기도 하고요.”
기자의 질문에 협상단 대표였던 통일부 장관 이준이 짧게나마 이강의 현 상태를 설명했다.
“하지만 전하께선 곧 이성을 되찾으셨고, 이번 기자회견의 모든 권한을 저희에게 일임하셨습니다.”
협상단 대표였던 통일부 장관 이준을 시작으로 이상설, 이승만이 차례로 기자들을 향해 호소하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이에 우리 대한합중국 대표단은 문명인으로서 개인적인 감정은 최대한 배제해 두고 기자 여러분께 사실만을 공유할 것을 이 자리에서 굳게 약속하겠습니다.”
“자, 지금부터 나누어 드리는 자료는 우리 대표단이 확보한 파천 시도 당시의 사진입니다.”
이승만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한합중국 대표단에 속한 일행들은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이 수집한 증거들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세상에······.”
“이게 진짜였어?”
기자들이 웅성거린다.
“맙소사.”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떤 이는 손으로 입을 막기도 했다.
과잉 행동을 보이는 이들 중 상당수는 유럽에서 온 이들.
대다수는 왕정 국가 출신으로, 한 나라의 왕이 여장까지 하고 제 나라를 탈출하려는 촌극을 벌인 것이 진짜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것이 전부 거짓이었습니다.”
이승만이 고개를 돌려서 이상설을 쳐다보았다.
무언의 제스처를 읽은 이상설은 빠르게 이승만의 말에 이어서, 자신이 들고 있던 스크립트들을 읽기 시작했다.
“일본은 험악한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제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외교권을 위임받았다고 서구 열강에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밝혔듯, 그들은 대한제국 국민의 이익은 뒷전으로 한 채 제 잇속을 지키기에만 급급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이번 군축 회의 때 강제로 퇴위하신 상황 폐하의 침묵을 빌미로 아국의 외교권 회수를 방해하기도 하였습니다.”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사진들.
이준은 그러한 사진 중.
고종이 화장을 덕지덕지한 사진 하나를 집어 든 후, 이를 기자들 앞에서 흔들며 상황의 파천 노력을 설파했다.
“상황께서는 일본의 이러한 간악한 계략을 파악하시고, 국제사회에 진실을 고발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여장을 한 채로 합중국으로 향하셨습니다. 노령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말입니다.”
“하지만 영악한 일본은 이를 다시 한번 강제로 제지하였고, 그 과정에서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상황 폐하를 바닥에 질질 내팽개치는 무도함까지 보였습니다. 일국의 통치자를 개돼지처럼 다루는 등 극악무도한 처사를 계속하여 보인 것입니다.”
삼인방 중 하나였던 이승만은 눈을 부릅뜨며 주먹으로 탁자를 쿵 하고 쳤다.
살짝 어수선한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함이었다.
“사실, 대한제국은 일본이 손을 내밀지 않았어도 자생적으로 근대화를 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나라였습니다.”
“맞습니다. 대한제국은 기독교를 자생적으로 받아들인 유일한 국가입니다.”
“시간만 충분했다면 일본의 도움 없이도 세계적인 근대화의 물결에 올라탔을 것입니다.”
본디 사람들을 선동······.
아니지.
설득하려면, 조그마한 사실을 바탕으로 이를 부풀려 설명해야 한다.
조선이 정말 외세의 도움 없이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나, 서학을 스스로 받아들인 것은 팩트.
지금 삼인방 앞에 있는 기자들은 전부 서구 기독교 열강 출신들이다.
비기독교 국가인 일본과 비교해 우위에 서기 위해선 이러한 작은 진실을 강조해야만 했다.
옆 건물에 있는 이강이 이 점을 콕 집어서 회견장에서 발표해야 함을 주장했고, 삼인방 역시 이를 언급하며 단번에 외신 기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양심 있는 지성인들과 국제사회 일원들에게 고합니다.”
“부디 일본의 만행을 눈감지 말아 주십시오.”
“혹시 질문 있습니까?”
길고 긴 기자회견이 끝났다.
“저, 저!”
“질문 있습니다.”
희대의 사건이다.
마초 사상이 만연히 퍼져 있는 20세기.
빌헬름쯤 되는 변태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겠으나 고종은 평범한 군주였다.
이런 고종이 ‘여장’을 하고 타국으로 도망쳤다.
유일무이한 특종에, 호외에 눈이 뒤집힌 기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 사건을 주목했다.
“맨 앞에 계신 뉴욕 월드 기자님부터 질문하시지요.”
질문할 기자 역시도 이미 선정된 상황.
이강이 원하는 질문이 기자회견장에 나올 수 있도록, 회견의 모든 것을 미리 손써 둔 상황이었다.
“저기, 여러 사진 중에 말입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는데······.”
* * *
“이왕 전하.”
“이왕 전하.”
“괜찮으십니까?”
주미 영국대사 스미스.
주미 프랑스대사 다프네가 나의 뉴욕 별채로 찾아왔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니, 괜찮은 듯 보이는군.”
“전하.”
“충격이 크시겠습니다.”
“그렇게 보지 말게나. 본인은 이보다 나쁜 일도 많이 경험했으니까······.”
다프네가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이를 물었다.
“이보다 나쁜 일이라면?”
“거, 대사님도 참······ 이왕 전하께선 과거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 낭인들의 습격을 받지 않았나이까?”
스미스가 내 대신 과거 일을 이야기해 줬다.
이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잊힌 과거의 사건 또한 거론했다.
“그보다 더한 일도 있다네. 내 어머니가 일본인의 칼에 난도질당하신 적도 있었지.”
“······.”
“······저런.”
예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기에, 구구절절 이를 전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일본 놈들은 굉장히 사악한 놈들이라는 것을 되새김질해 주기만 하면 될 뿐이다.
“그때 내 나이가 아마 18살이었던가? 그랬을 거야. 그 일을 겪은 뒤로 한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지. 눈만 감았다 하면 그때 그 장면이 회상되었으니까.”
움찔움찔.
잠에서 급작스럽게 깨는 동작을 하며 아직도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암암리에 알린다.
이에 스미스와 다프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서양인들이 개인주의적이라곤 하지만, 이런 슬픈 사건에는 동양인보다도 훨씬 더 극성맞게 공감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본은 그런 나라일세. 자네들은 그런 일본과 손을 잡았던 것이고.”
“······.”
“······.”
다프네와 스미스가 침묵한다.
다 예상했던 반응이기에, 나는 하던 말을 계속 이어 갔다.
“뭐, 이해하네. 국익을 위해서라면 뭔들 못 할까?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는 게 이 시대의 위정자들이지 않은가?”
은연중에 ‘일본 = 악마’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하지만 이 세상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네. 악마와 손을 잡게 된다면, 언젠가는 크게 탈이 나게 될 거란 말일세.”
일본의 전략이 무너진 상황.
더는 영국도 프랑스도 그들 편을 들 이유가 없다.
적어도 외교권 회수 문제에 관해서라면.
“당장 전보를 넣어 다우닝가에 관련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저 또한 엘리제궁에 급보를 보내겠습니다.”
나는 씩 웃으며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부디 좋은 소식을 가져오게나.”
* * *
“으으······.”
야마토(삼남)의 총독이자 이번 협상단의 일본 대표를 맡고 있던 사이토.
그가 얼마 남지 않은 머리털을 쥐어짜며 괴로워했다.
“당했군. 이 왕자에게 속절없이 당해 버렸어!”
초반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기세등등하게 밀어붙이며 군축 항목을 제외하곤 제법 괜찮은 성과 또한 보이지 않았던가?
“제길.”
하필이면 사이토가 밀고 있는 카드를 이강이 반박해 대는 통에 골치가 더 아팠다.
여태까지의 협상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데, 그 대안이 딱히 보이질 않았으니까.
“어떡하지······.”
이강은 일본 정치인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통하는 인물이다.
이토 히로부미도 그렇고, 가쓰라 다로도 그렇고.
이강과 엮이기만 하면 정치 커리어가 박살 나니까.
‘설마 나도 이토 전 통감처럼?’
여기서 그쳤다면 좋겠지만.
저승사자, 오니, 야차라는 별명이 있듯 이강과 대립했던 일본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높은 자리에서 낙마한 후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
뭐, 이토와 가쓰라 다로는 고령의 정치인이라 언제 죽어도 이상치 않은 인물들이었지만.
이성보다는 미신이 지배하는 이 시대.
우연치고는 너무 딱딱 들어맞았고, 이강과 대립했다 하면 죽어 나갔기에, 사이토 또한 가슴 한쪽 편에 두려움이 모락모락 생겨나기 시작했다.
“총독 각하! 총독 각하!”
후지와라를 비롯한 협상단 일원들이 사이토가 머무는 객실로 찾아왔다.
이강의 기자회견 소식을 들은 모양인지 다들 우거지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한목소리를 내며 사이토에게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청했다.
“어찌하옵니까! 각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권한이 많다는 것은 양면의 칼날과도 같다.
모든 공을 독차지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독박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이토는 좋지 않은 상황 속에 홀로 놓인 자신의 처지가 매우 외롭다고 느끼며 아이디어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이대로 넋 놓고 이강의 공격에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기댈 곳은, 속이 시꺼먼 조선의 상왕뿐일세.”
“상왕이요?”
“그래. 통감부에 빠르게 연통을 넣어 그자를 반드시 회유하라 전하게.”
사이토의 비서인 하야시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어떻게 조선의 상왕을 회유할 수 있겠나이까? 각하.”
“뭐든 제시해야지. 시간이 흐른 후에 외교권을 한양 정부에 반환하겠다고 제안을 넣든, 이면 계약을 작성하든, 칼을 들고 협박하든······ 수단과 방식을 가리지 말고 조선의 상왕을 설득하라 권하란 말일세. 내 이런 것까지 일일이 자네에게 설명해야 하는가?”
사이토의 호통에 하야시가 빠르게 1층에 있는 호텔 데스크로 내려갔다.
“각하.”
“듣고 있네.”
시간이 살짝 비어 있어, 후지와라는 사이토에게 물었다.
그는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간 하야시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각하! 상왕이 우리의 제안에 흥미를 보이겠습니까?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야마토 주(삼남)는 몰라도 대한제국은 대한합중국의 품 안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대한합중국은 이 왕자가 세운 괴뢰국이 아닙니까? 사이가 나쁘다고 하여도 이 왕자와 상왕은 부자지간 관계입니다.”
사이토는 이강과 고종의 관계를 설명하는 후지와라를 노려보았다.
그는 그러한 정보는 다 안다는 표정을 지은 후, 이면의 다른 관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희망이 있다는 것이네.”
“희망이라면······.”
“지금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대한합중국에 넘긴다면, 그의 둘째 아들이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될 것이니까. 적어도 조선의 상왕은 그리 믿고 있을 터.”
“······.”
“상왕은 한 줌도 안 되는 제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식은 물론이고 나라까지 팔아먹을 인물이네. 생각해 보게. 상왕은 우리들의 눈을 피해 국경 도시까지 도망간 다음, 출국 직전에 간신히 붙잡힌 인물이지 않은가.”
후지와라가 고개를 반자동적으로 끄덕이며 사이토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렇죠.”
“마음만 먹었다면 진즉 제 사람을 통해 이곳에 밀서를 보내고도 남았을 걸세. 대한제국의 외교권 반환에 관한 제 견해도 밝혔을 것이고.”
“······!”
“쉬운 방법을 두고 왜 이리 멀리까지 돌아가려 했겠는가? 그 모든 것이, 이번 회의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을 걸세.”
사이토는 비릿한 표정을 지으며 고종의 얼굴을 회상했다.
이에 후지와라가 살짝 풀린 얼굴로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향후 정국에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저리 무리를 하다가 붙잡혔다는 뜻입니까?”
“그래. 권력은 나눌 수 없는 무형물이네.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가 없지. 자네도 우리네 역사를 배워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이토가 후지와라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천여 년도 넘는 대일본제국의 역사를 줄줄이 거론하며.
그렇게 유구한 역사 속에서 쇼군이었다가 퇴위한 ‘오고쇼’와 현직 ‘쇼군’ 간에 갈등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구석에 몰린 우리에게, 이제 남은 것은 하나네. 상왕의 욕심에, 더하여 제 아들을 향한 상왕의 열등감에 기대하는 수밖에 없네.”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지만, 사이토는 초조한지 손톱을 연신 깨물어 댔다.
공이 고종에게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더는 내가 통제할 수 없고, 다른 이의 선택에 따라 내 운명이 결정되어 버렸기에 눈알을 팽글팽글 굴려 댄 것인데.
“총독 각하! 총독 각하!”
그때였다.
아래층으로 내려갔던 사이토의 비서 하야시가 급히 그의 숙소로 돌아왔다.
“무슨 일인가?”
“크, 큰일이 났사옵니다. 각하!”
“큰일?”
“예. 본국에서 전보가 왔는데 말입니다. 조선에서 꽤 큰 문제가 터졌다고 하옵니다.”
사이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어 대며 하야시를 노려보았다.
“······무능함이 아주 극치를 달리는군. 왜, 그새를 못 참고 조선의 상왕이 또다시 도망을 치기라도 했다던가?”
“그건 아니옵고.”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사이토는 하야시의 손에 들려 있는 종이 쪼가리를 급히 빼앗았다.
그러곤 영어 단어로 이루어진 전보문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
“······.”
사이토의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이에 옆에 있던 후지와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사이토에게 물었다.
“각하! 각하!”
“······.”
“무슨 큰일이기에 각하께서도 그리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 계십니까?”
“······.”
“각하! 각하!”
잠시 맹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이토.
그는 세상을 잃은 표정을 지어 대며 후지와라에게 전보 쪼가리를 건넸다.
“조선의 상왕이······.”
< 파몽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