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36)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36화(336/392)
< 정리 (2) >
덕수궁에 막 도착한 이근상.
그는 엄 귀비에게 큰절을 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같은 성(性)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족 관계도 아니었기에.
현재 귀비와 이근상 사이에는 발이 처져 있는 상황.
그랬기에 귀비의 표정을 쉽사리 읽을 수는 없었지만, 촉이 발달한 이근상은 현재 귀비가 굉장히 조바심을 느끼고 있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귀비 마마. 그간 평안하셨나이까?”
“······.”
봐라.
평소라면 바로 대꾸하였겠지만.
지금은 생각하는 바가 많은지, 귀비는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입을 뗐다.
“인사를 해도 참.”
“······.”
“경이 보기에는, 그간 내가 평안하게 궁에서 지냈으리라 생각하오?”
한껏 성을 내며 조막만 한 손으로 탁자를 저리 쾅쾅 친다.
이근상의 예상대로 귀비는 지금 굉장히 불안에 떠는 것 같았다.
“하- 선황께서도 무심하시지······ 어찌 가녀린 본인을 두고 이리 급히 세상을 떠나실 수 있단 말이오.”
발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귀비는 머리가 아픈지 제 관자놀이를 연신 주무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마마. 온양으로 비접을 떠날 준비를 막 끝냈사옵니다.”
상궁 하나가 막 귀비가 머무는 건물 안으로 들어와 보고했다.
이에 이근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귀비에게 물었다.
“귀비 마마. 혹시 한양을 비우실 생각이십니까?”
“내 몸이 좋지 않아서, 잠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올 생각이오.”
허허.
지금이 어떤 때인가?
이리 중요한 시기에, 궐을 비우고 한양을 떠나려 하다니.
‘정치 감각이 있는 계집이, 어째서 저런 악수를 두려고 하는 것인가?’
한양에 버티고 앉아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이근상은 속으로 혀를 차며, 귀비에게 온양행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완곡히 돌려 말했다.
“마마. 의왕의 수족들이 마치 점령군처럼 남하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합니다.”
“······.”
“그런데 비접이라니요? 마마께서는 한양에 끝까지 남으셔서 그들의 횡포를 막으셔야 합니다.”
이에 귀비가 이근상의 직위를 불렀다.
“이 남작.”
이근상은 일본제국으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
막 귀족 작위를 받았을 때는 좋았다.
본디 조선에는 작위라는 것이 없었으니까.
기존 다른 양반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작위를 통해 뽐낼 수 있었기에, 초반만 하더라도 이근상은 이 작위를 연신 제 입으로 말하며 거들먹거렸다.
하지만 일본제국에서 작위를 받은 자는 애국단의 제1순위 제거 목표가 되었다.
그 때문에 밖에 나갈 때도 온 신경을 집중하며 암살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남하하는 이강 세력에게 숙청당할까 걱정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 달갑지 않은 옛 작위를 엄 귀비가 자꾸 콕 집어서 부르니, 이근상은 주먹에 손을 꽉 쥐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하지만 엄 귀비는 엄연히 왕족이다.
그녀에게 대들거나 성을 냈다간 본전도 찾지 못할 것이기에 이근상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래며 고개를 숙였다.
“본인도 눈이 있고, 귀가 있소이다.”
“······.”
이에 엄 귀비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괴뢰국 수괴들이 북쪽에서 역당 모의를 하고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소. 빠른 통합을 위해 인수위원회를 세우고, 더불어 친일 부역자들을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반민특위를 설립한다지요?”
반민특위.
이근상이 걱정하던 한 단어가 드디어 나왔다.
“예. 그렇다는 소문이 한양은 물론이고 대한제국 전역에 파다하게 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근상이 창덕궁까지 찾아온 거다.
자신의 유일한 동아줄인 엄 귀비가 어떻게 대응할지, 그녀의 계획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내 복중에서 태어난 황태자를 국본의 자리에서 폐한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지 않소? 적법한 절차를 통해 황태자 자리에 앉지 못했다는 이유로 말이오.”
엄 귀비는 대한합중국 세력의 움직임을 거론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다 주며 평생을 소원했던 영왕의 황태자 즉위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왜 한양을 떠나시려는 것입니까?”
이근상의 물음에 엄 귀비가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일개 아녀자에 불과한 내게 무슨 힘이 있다고 의왕의 패거리와 맞선단 말이오?”
“하오나······.”
엄 귀비는 재빨리 이근상의 말을 끊으며 제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황후가 아닌 황귀비였소. 일국의 국모가 아닌 선황의 일개 후궁이었단 말이오.”
“······.”
“의왕의 계모도 아닌 계집이 어찌 그와 맞서 싸울 수 있겠소? 더욱이 그간 의왕의 횡포에 우리를 지켜 주던 일본도 두 달 뒤면 이곳을 떠나지 않소?”
태후였다면 어떻게든 비벼 볼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 귀비는 고종의 후궁이었다.
물론 후궁인 엄 귀비 역시도 어찌 보면 이강의 어머니이긴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강이 어머니 대접을 해 줄 때나 해당하는 일이고.
죽은 중전 민씨처럼, 진짜 호적상으로 어머니는 아니었기에.
엄 귀비는 한양에서 맞서 싸우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제 살길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온양으로 비접을 가시려는 겁니까? 여차하면 삼남이나 일본으로 아예 망명을 떠나시려고요?”
“못 할 것도 없지. 선황도 안 계시는 마당에.”
“······.”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내 배 속에서 태어난 아들뿐이라오.”
엄 귀비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지, 자신의 계획을 최측근인 이근상에게 밝혔다.
“빤히 그 미래가 보이지 않소이까? 내 아들은 황태자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을 좁디좁은 저택에서 지내야 할 것이오.”
“······.”
“내 아들은 용이 돼야 했지만, 결국에는 승천하지 못했지.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잡은 탐욕스러운 의왕이 내 아들을 가만두겠소? 어림도 없지. 마치 새장에 갇힌 가녀린 파랑새처럼, 내 아들을 천천히 말려 죽일 것이오.”
남편도 떠난 마당에.
엄 귀비에게 남은 것은 하나뿐.
그의 아들인 영왕의 행복뿐이다.
“내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나 또한 자유로워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삼남으로 향하실 생각이십니까?”
엄 귀비는 발을 걷으며 이근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곤 확신을 두고 재차 물었다.
“그대 역시도 그리 생각하고 있지 않았소? 내 생각이 틀리오?”
“······.”
“아니었다면 실망스럽군. 의왕이 나는 몰라도, 자네는 가만히 놔둘 것 같지 않은데.”
십오 년 전.
이강의 귀국을 막은 자가 누구인가?
엄 귀비의 사주를 받았다지만, 제안을 전한 자가 바로 이근상이었다.
“······소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러시오.”
너 조만간 죽어.
진짜 이대로 한양에 머물 거야?
라고 말하는 엄 귀비.
이에 이근상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 채로 몸을 부르르 떨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이근상을 바라보며 엄 귀비는 작게 속삭였다.
“조만간 남쪽에서 보겠군.”
* * *
“아우님.”
이근상에게는 두 형이 있다.
그의 위에는 큰형인 이근호와 둘째 형인 이근택이 존재했는데.
둘 다 일본제국에서 작위를 받은 자들로, 삼 형제가 친일파인 집안이었다.
“조카 놈을 통해 들었네. 그래. 아우님들이 나를 급히 찾았다고?”
그중 가장 큰형인 이근호가 이근상의 집에 찾아왔다.
이근상은 현재 창덕궁에 가 있기에, 그 말고 둘째인 이근택이 마당에 서 있었는데.
이근택은 세 형제 중 유일하게 홀로 자작 칭호를 받은 인물로, 세 형제 중 가장 약삭빠르기도 했다.
“형님.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김포 땅은 어찌 처분되어 가고 있습니까?”
이근택은 개중 가장 빨리 돌아가는 형세를 읽었다.
그래서 올해 초부터 자신의 가족들에게 재산을 처분하라고 권했다.
“말도 말게나. 요새 한양 인근 땅을 급히 처분하려는 이들이 크게 늘어서 그런지, 땅 시세가 말도 못 하게 바닥을 치고 있네.”
“제길.”
이근택이 한숨을 쉬며 이근상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아직 다 팔지 못하셨다는 말입니까?”
“그래.”
이근상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동생인 이근택 역시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냐고 물었다.
“내 듣기로 아우님 소유의 동대문 땅도,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말이야.”
“그건 예전 땅 주인이 미국에 사는 의왕의 측근이라서 그렇습니다.”
“아, 그 땅이 전에 우당에게서 급히 인수한 땅이었던가?”
“예.”
이회영은 이강의 최측근이다.
그가 미국에서 돌아온다면, 아주 당연하게도 옛날에 그가 소유했던 땅 역시 되찾으려 할 거다.
이강의 최측근이기에 제값을 주지 않고 어떻게든 다시 사들일 것이 뻔했다.
그래서일까?
돈 좀 있다고 하는 한양의 부자들은 옛 우당 소유의 토지 매입을 주저했다.
이근택은 이 사실이 못마땅한지 연신 우거지상을 지었다.
“아우님.”
“예.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진짜로 떠나야 하는가?”
“······.”
“선산도 이곳에 있고, 우리 재산도 전부 땅에 묶여 있는데 말이야. 이것들을 두고 굳이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느냔 말일세.”
곳곳에 공장이 들어서고, 철도가 깔리고 있다지만.
1919년 조선은 아직 농경사회였다.
중세시대.
땅은 조상들이 대대로 그들의 후손에게 상속하는 부의 원천이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생전 살아 본 적 없는 타지로 이동한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
그랬기에, 이씨 삼 형제는 사태가 어떻게 안 좋게 돌아감을 눈치챘는데도 이리 망설였던 거다.
“형님.”
“말하게.”
“우리는, 안타깝게도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입니다.”
세 형제 중 눈치가 가장 빨랐던 이근택이 한숨을 푹 쉬며 삼남행의 이유를 밝혔다.
“형님과 제 조상이 성종 대왕의 열한 번째 왕자인 경명군이긴 하나······ 안타깝게도 본류와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이근택은 또 다른 친일파들을 언급하며 그들은 왜 한양에 남아도 되는지를 설명했다.
“완순군이나 의양군처럼, 우리가 종친이었다면 어찌어찌 이 커다란 파도를 넘어갈 것입니다. 의왕은 제 가족을 누구보다도 끔찍이 아끼니까요.”
“······.”
“현 금상의 외척 가문인 해평 윤씨 가문이었다 해도 어떻게든 비벼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
“하다못해 여흥 민씨 가문을 보십시오. 그 가문에는 의왕에게 중용되다가 이번에 막 귀국한 민영익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한양의 토호들은 여기저기 혼사로 얽혀 있다.
개중에는 극렬 친일파도 있고.
간도나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합중국 고위 인사로 변모한 이도 존재했다.
이근택은 이들을 거론하며, 자신의 가문은 안타깝게도 합중국과 아무런 연이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 삼 형제는 믿고 의지할 만한 버팀목이 없습니다.”
“세, 셋째가 엄 귀비와 연이 있지 않더냐?”
이에 첫째인 이근호가 반박했다.
이에 이근택이 또 한 번 한숨을 크게 내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선황이 살아 있을 때나 황귀비지요. 지금은 일개 후궁에 불과합니다.”
“그, 그래도.”
“의왕이 급히 귀국해서 엄 귀비를 산 중에 있는 절에 유폐해도 이상치 않다는 말입니다.”
“······.”
하긴.
그간 엄 귀비가 이강한테 한 짓을 생각한다면.
그리되어도 할 말이 없겠네.
“어, 저기 아우님이 오네.”
그때였다.
창덕궁에 방문했던 이근상이 제집에 돌아왔다.
“큰형님. 작은형님.”
“그래. 셋째야. 창덕궁에서는 뭐라고 말하더냐?”
이근상은 숨김없이 두 형에게 모든 사실을 말했다.
“······.”
“······.”
이에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반민특위라······.”
둘째인 이근택은 자작.
첫째인 이근호와 셋째인 이근상은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진짜로 반민특위가 열린다면 그들이 가장 먼저 제거될 거다.
“그거 보십시오. 이제라도 남은 재산을 빠르게 처분하고 떠나야 합니다.”
이에 이근택이 꼼지락거리는 이근호를 향해 성을 냈다.
“안 그랬다간 아주 난리가 날 것입니다. 형님. 그리고 아우님. 모두 내 말대로 전 재산을 처분하고 남쪽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할 것입니다.”
* * *
안타깝게도 대한제국의 외교권 이양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추가 협상은 4월에 이미 타결되었지만, 6월 말이 지나서야 모든 권한을 대한합중국이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이 모든 것은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아닌 승전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 역사에서의 미군처럼 점령군 신분으로 대한제국 땅으로 밀고 내려왔으면 모를까.
같은 승전국 간의 외교적 협상을 통해 이루어낸 결과기 때문에.
원 역사에서 광복을 맞이한 후, 쾌속의 속도로 권력을 이양받은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나마, 추가 협상을 하길 잘했어.’
기존에 존재하는 인프라를 부수지 못하게 하고, 혹시 모를 경제적 농간 시도를 사전에 막은 것은 다 이 때문.
“일본인들을 물론이고, 일부 조선인들이 삼남으로의 대거 탈출을 꾀하고 있다고?”
“예.”
나는 정보국의 보고를 읽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 역시도 사람이다.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들을 이리 쉬이 놔주는 것은 아주 당연하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보국 요원들을 통해, 미리 매수한 이들에게 통보하여 대한제국과 대한합중국이 통합하여도 대규모 숙청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소문을 퍼트렸으나······.”
이에.
여러 꾀를 내고 있다.
정보국 요원들을 풀어 방금 이위종이 언급한 소문을 전국에 내는 이유도 그 때문.
“반대 소문 또한 한양은 물론이고 대한제국 전역에 널리 퍼져서 상당수의 친일 세력들이 열도나 삼남으로 피신하고 있다 합니다.”
하지만 내 성격을 아는 이가 너무 많다.
더욱이 현 합중국의 수뇌부들 대다수는 반일사상이 아주 극렬하게 뼛속까지 박힌 이들이다.
그렇기에, 다수는 아주 철저하게 그들을 응징하리라 예상하기에.
이런 선동이 생각보다 약발이 덜 먹히는 것 같다.
“안타깝군.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단도리를 단단히 쳐야 하는데 말이야.”
그래도 완전히 실망스럽지는 않다.
일부 친일파 거물들이 한양에서 꿈쩍도 안 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황실과 이리저리 연이 있는지라······.”
합중국 주요 인사들과도 연이 있는 자들이 보이고.
그래서 돈을 좀 먹이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
몇 달간 감옥이나 지방에서 요양하다가 되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하나 본데.
‘어림도 없지.’
일단은.
남쪽으로 도망치려는 잔챙이들을 어떻게든 솎아 내야 할 것 같다.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라 이것을 이위종에게 알렸다.
이에 이위종도 만족하는지, 그의 눈빛 역시도 반짝이기 시작했다.
< 정리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