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38)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38화(338/392)
< 반민특위 (2) >
“본 검사는 피고인을 반민족 행위법 위반 혐의로 이 자리에 기소하였습니다.”
검사였던 박찬수는 합성협회 제1기 장학생으로, 미국 대학에서 법학까지 공부한 초엘리트 인재다.
그는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법정에 기소된 한 남자를 쏘아봤다.
“피고인 이해승은 조선의 왕족이었으나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앞장서 일본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그들의 침략행위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피고인.”
박찬수는 피고인 앞으로 조금 걸어가며 그를 다시금 불렀다.
“피고인은 이에 동의하십니까?”
“······.”
“피고인.”
“······.”
“피고인!”
박찬수의 재촉에 이해승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지금 불리는 그의 호칭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어필했다.
“모두, 잘 듣게. 본인의 이름은 피고인이 아닌 이해승일세! 세간에서는 본인을 가리켜 청풍군이라고 칭하네.”
이해승은 왕족이었다.
그는 자신의 혈통이 자랑스러운지, 법정에 기소된 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본인의 부친께서는 전계대원군의 봉사손인 풍선군이시네. 이 나라 조선에 몇 없는, 장조대왕(사도세자)의 핏줄이란 말일세.”
조선 왕실은 후기로 갈수록 손이 귀해졌다.
헌종 사후 방계의 방계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 또한 이 때문.
이해승은 손이 귀한 조선에서 몇 안 되는 왕족이었다.
그는 자신의 핏줄을 자랑하며 모두가 어려워하는 한 남자를 거론했다.
“그 말은 즉, 미국에 계신 의왕 전하와 한 식구란 소리일세.”
“······.”
“······.”
이강의 이름이 거론되자, 법정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만큼 이강은 조선 그리고 대한합중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그가 미국에 있건, 조선에 있건.
거의 신처럼 받들어지고 있었기에, 이강이 언급되었다 하면 일단 숨부터 고르며 다들 말을 조심했던 것이다.
“한데 그대들은, 지금 무고한 나를 강제로 연행하여 법정에까지 세웠네!”
“······.”
“감히 귀하디귀한 왕족을, 이 도떼기시장 같은 이 자리에 끌고 오다니! 겁대가리를 상실하지 않고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
기세를 타서 그럴까?
이해승은 살짝 신이 나는 목소리로 법정에 있는 판사와 검사, 그리고 증인들과 방청객을 겁박했다.
“네놈들이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의왕께서 미국에서 돌아오시면 네놈들은 죽은 목숨이다.”
이해승이 내뱉는 말이 진짜일까?
다들 의구심을 품고 있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기에 법정의 분위기는 숙연했다.
“퉤- 어디서 왕족 행세를 하는 거야!”
그때였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이해승에게 침을 뱉으며 헛소리 좀 그만 지껄이라고 화를 냈다.
“맞아! 일본 놈들에게 후작위를 받은 매국노 주제에!”
“네놈은 그때부터 왕족이 아닌 매국노야!”
“뭐야!”
한 사람이 시작하니, 다시금 분위기가 바뀐다.
다들 이해승을 향해 성토하며 그를 죽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정숙! 정숙!”
이번 법정에 주심 역할을 했던 김가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사람들을 진정시키고자 판사 봉을 휘둘렀다.
“매국노 새끼야! 뒤져라!”
“네 어미가 네놈보고 그리 살라더냐?”
“법정 내 질서 유지를 위해, 삼십 분간 잠시 휴정을 선포합니다.”
정숙하라는 명령이 먹히질 않자, 김가진은 들고 있던 봉을 탕탕 치며 휴정을 선포했다.
더하여 법정을 호위하고 있던 경찰들을 호출하였고, 소란을 피우는 자들을 밖으로 내쫓았는데.
그 과정에서 자투리 시간이 생겼기에, 이해승은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대감!”
“돌쇠야.”
이해승의 집에서 일하던 돌쇠를 만나게 된 것도 판사가 법정을 휴정시켜 준 덕분이었다.
이해승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돌쇠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래. 바깥 분위기는 어떻더냐?”
돌쇠는 이해승이 잡혀간 이후 상황을 그에게 설명하며 과장된 표정을 지어 댔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 무슨 큰일?”
“사람을 풀어서 알아보니, 의양군과 완순군 대감은 물론이고 영선군 대감께서도 체포당하신 것 같습니다.”
반민특위의 최우선 기소 대상은 왕족이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이강의 평소 전언을 강력하게 참조하여 그리 행동했던 거다.
“뭐라? 영선군 대감 또한 무뢰배들에 의해 구금되었단 말이냐?”
“예.”
영선군 이준용은 그냥 왕족이 아니다.
고종의 형.
흥친왕 이재면의 아들이었다.
“······.”
“······.”
이강과 이준용은 흥선군이라는 같은 할아버지를 공유하는 관계다.
찐 사촌 관계로, 그런 영선군이 포박되었다는 말은 상황이 예사롭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이곳뿐만 아니라 여러 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 재판이 진행되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분위기가 썩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떤데 그리 말하는 것이냐?”
“죄가 가장 가볍다는 영선군께서도 사형에 처할 것 같다는 풍문이 사대문 전역에 돌고 있습니다.”
영선군은 신궁봉경회 총재로서 조선에 일본 신궁을 세우는 일에 앞장선 인물이다.
조선과 일본이 하나가 될 수 있게 하는 사업을 한 것인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친일 행위를 한 것이긴 하나, 앞서 구금된 다른 왕족들보다는 죄질이 가벼웠다.
“더불어 오늘 점심쯤에는 북에서 내려온 군대가 해풍부원군의 형님이신 윤 시종원경(侍從院卿)의 사택을 에워싼 것으로 확인되었나이다.”
왕족에 이어서 그다음 타깃은 외척.
죽은 고종비의 친지들.
여흥민씨 일가가 이에 해당하는데.
이들 말고도 조선엔 대표적인 외척 가문이 하나 더 존재했으니, 바로 해평 윤씨 가문이었다.
“윤 시종원경께서는 창덕궁으로 급히 피신하셨다는데, 그 뒤로 어찌 되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
이해승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왕족이라는 신분 하나로 이 거대한 파도를 넘으려 했는데.
자신보다도 뒷배가 많은 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것을 보니,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자자, 본 재판을 다시금 재개하겠습니다. 아! 피고인.”
“예?”
이해승은 살짝 어리바리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옛날 조선 통감에게 했던 것처럼 싹싹한 표정을 지으며 법정을 주관하는 김가진을 바라보았다.
“아, 친애하는 판사 나리. 말씀하십시오.”
김가진은 대표적인 복벽파 신료로, 지난 훈춘 대회의 때 북으로 넘어간 인물이다.
본 역사에는 일본제국에서 남작위를 받았다가 반납했지만, 바뀐 역사에서는 작위를 아예 받지도 않았다.
“사건을 심리하기에 앞서, 본 판사는 피고인에게 한 가지를 경고하고 싶습니다.”
김가진은 지난 3년간 이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려 온 이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이해승을 노려보았다.
“······마, 말씀하십시오.”
“조선 땅에서 이루어진 합중국의 첫 번째 재판인 만큼, 한 가지를 먼저 언급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대한합중국에서는 사건을 심리할 때 신분이나 직업, 성별 등 출신 성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평등하게 봅니다.”
복벽파 관료였기에, 김가진은 누구보다도 이강을 따랐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평소 이강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한동안 경청했던 그는 이강이 강조했던 평등사상을 떠올리며.
왕족이라고 으스대는 이해승을 아니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점을 알아주었으면 하며, 본 법정에서 소란을 피울 경우 가중 처벌이 될 수 있음을 참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예. 명심하겠습니다.”
겁을 먹어서일까?
이해승은 꼬리가 말린 강아지처럼, 조금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고자 했다.
“그럼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검사 측. 그동안 조사한 피고인의 죄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여 주십시오.”
* * *
순종 부부가 기거하는 창덕궁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화, 황후 마마! 살려 주시옵소서.”
남자의 정체는 이완용과 함께 대표적인 친일파로 손꼽히는 윤덕영이었다.
윤덕영은 어리숙한 순종보다는 순종비에게 찾아가 호소했다.
그는 현 황후의 큰아버지, 백부 격 되는 사람이기도 했기에 핏줄을 거론하며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구걸했다.
“북쪽에서 내려온 무뢰배들이 소신의 집안을 송두리째 박살 내고 있나이다.”
“······.”
“마마. 바, 밖을 보십시오. 소신까지 잡아가려고 사람들이 건물 밖까지 소신을 쫓아왔나이다.”
윤덕영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만, 황후가 기거하는 건물은 아무리 새 정부의 인사라도 허락 없이는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윤덕영을 쫓던 새 정부 치안국 인사들은 윤덕영이 자진해서 밖으로 나올 때까지 조용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디 소신과 소신의 핏줄들을 가엽게 여기시어 구원해 주시옵소서.”
보통 외간 남자가 궐에 방문하면, 궁궐에 사는 여인들은 발이라는 가리개를 내리고 대화를 하게 된다.
“백부님.”
“예. 마마.”
하지만 윤덕영과 황후는 서로 가족 관계다.
그렇기에 이 둘은 현재 아무것도 가리는 것 없이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뭐라고 하셨지요? 방금 무뢰배라고 하였습니까?”
“예. 북쪽의 무뢰배들이 오늘 점심에 소신의 집을 에워싸고······.”
“쯧쯧.”
황후 윤씨가 윤덕영의 말을 끊으며, 혀를 찼다.
그녀는 엄청나게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윤덕영을 꾸짖었다.
“상황이 이리 흘러가니, 백부님께서도 총기가 많이 흐려지셨군요.”
“마마?”
“백부님께서는 이 궐 안에 보이지 않는 눈과 귀가 수백 개나 달려 있다고 늘 제게 경고하셨습니다.”
“······!”
“방금 백부님께서 하신 말을 누군가 들었으면 어찌하시려고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하시는 것입니까?”
“······.”
윤덕영은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평소 그는 일본의 기세를 등에 업고 대궐을 자주 출입했다.
그랬기에 일국의 황후였던 자신의 조카 역시 이를 의식하여 윤덕영을 굉장히 어려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아니다.
황후는 마치 저 밑바닥에 있는 아랫사람을 보듯, 윤덕영을 깔보는 것 같았다.
“여기 있는 내 궁인 중 하나가 몰래 법정에 출두하여서 이를 증언한다면 어찌하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소, 송구하옵니다. 마마.”
아, 착각이었나?
황후는 윤덕영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그보다는 그녀의 평판을 더 신경 쓰는 것 같기도 했지만.
적어도 대화 초반에 느꼈던 싸늘함은 빠르게 사라졌기에, 윤덕영은 머리를 계속하여 조아리며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소신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황후는 팔짱을 끼며 등받이에 자신의 등을 기댔다.
그녀는 살짝 거만한 자세를 취하며 윤덕영을 내려보았다.
“그래서 내가, 백부님께 뭘 해 드리면 된다는 것입니까?”
꿀꺽-
윤덕영이 침을 한 번 크게 삼킨 후,
“마마께서는 의왕 전하의 친서를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
“소신과 소신 가족의 사면을 약조한, 의왕 전하의 자필 친서 말입니다.”
윤덕영은 이완용과 함께 대표적으로 친일을 했던 거물이다.
당연하게도 머리가 총명하며 눈치가 빠르다.
그런 그가 삼남을 떠나지 않고 한양에 계속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부디 소신과 소신의 가족들을 가엽게 여기시어 이를 반민특위에 하루빨리 제출해 주십시오.”
윤덕영의 부탁에도 황후 윤씨가 꾸물대자, 윤덕영은 다시 한번 떼를 쓰며 황후를 재촉했다.
“안 그러면 다 죽습니다. 마마.”
“······.”
“우, 우린 가족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황후 윤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속삭였다.
“하긴······ 우린 가족이지요.”
“예예.”
“그렇기에, 백부님께서 오 년 전에······ 제 치맛자락에 손까지 넣으신 것이 아닙니까?”
황후가 과거의 한 사건을 언급한다.
삼남이 야마토 주가 된.
그러니까 하삼도가 일본으로 넘어갔던 을묘국치 사건을 다시금 거론한 거다.
“힉- 윽-”
당황해서일까?
윤덕영이 연신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황후는 그런 윤덕영을 보며, 그때 일을 자세하게 풀어 설명했다.
“서학과 동학이 유행한다지만, 이 나라 조선의 국교는 아직 유교입니다. 가족이 아니고서는 쉬이 할 수 없는 일이긴 했지요. 어느 외간 남자가 황후의 치맛자락에 손을 넣을 수 있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조약이나 거래가 체결되려면, 최종 통수권자의 사인이나 도장이 있어야 한다.
친일 한양 정부 대신들은 1915년.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순종을 겁박하여 삼남을 일본에 넘기는 조약에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했다.
“그것은······.”
그때 순종의 아내였던 황후 윤씨는 대신들이 들고 있던 옥새를 빼앗아서 제 치마 속 속옷에 숨겼다.
이에 대신들은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조선은 유교의 나라.
기독교가 전해지고, 동학이 유행하고, 대종교가 탄생하였다지만.
감히 일개 대신이 황후의 치마 속을 뒤져 가며 옥새를 꺼낼 용기는 없었으니까.
“그것은, 일제의 강압 때문에 그리된 것입니다.”
“······.”
그때, 자진해서 나섰던 이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윤덕영이었다.
황후의 아버지이자 친일파였던 윤택영이 애국단에 의해 암살당한 후, 황후와 가장 가까웠던 자가 배신하며 그녀에게서 옥새를 빼앗은 거다.
원 역사에서.
정미년, 합병조약 때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이들 앞에서 황후를 욕보이며 나라까지 팔아먹은 거다.
“아시지 않습니까? 오 년 전, 그들이 얼마나 미쳐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윤덕영은 식은땀을 흘려 가며 그때의 일을 해명했다.
“세계대전에서 승승장구하며, 왜놈들은 겁대가리를 점점 상실해 갔습니다.”
“······.”
“이에, 신료들과 일일이 대면까지 해 가며 우리를 겁박하지 않습니까? 하삼도 영유권 이양에 당장 도장을 찍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이라고요.”
“······.”
“마마의 조카들 목숨까지 위협하였나이다.”
자신의 변명이 전혀 먹히지 않자, 윤덕영은 자신의 자식들을 거론했다.
황후 윤씨는 자식이 없었기에, 그녀의 조카들을 유난히도 이뻐했는데.
이점을 고려하여 그의 자식들을 방패막이로 사용하고자 한 거다.
“이에 소신은 어쩔 수 없이······.”
황후가 윤택영의 말을 싹둑 잘라 내며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그래서 제 자식들을 살리려고, 이 나라의 절반을 팔아먹은 것입니까?”
“······.”
“버텼어야지요. 설령 조카들이 죽는 한이 있었어도 저항했었어야지요.”
“······.”
“내 언젠가 이곳에 돌아올, 시동생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황후가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며 윤덕영에게 소리를 질렀다.
“백부님 때문에 나라가 두 동강이 나지 않았습니까? 이 때문에 세간에는 백부님을 두고 죽은 이완용보다 더한 놈이라고 욕을 해 댑니다.”
황후가 소리를 크게 내지르자, 황후를 평소 호위하던 내관들이 칼과 총을 들고 대조전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빠르게 윤덕영을 포위했고, 이내 윤덕영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를 포박하기 시작했다.
“그리 나라를 팔아먹었으면, 응당 죗값을 치르셔야지요.”
“······.”
“내 친히 법정에 참석해, 그날의 기억을 증언할 것입니다. 내 백부가 이 나라의 절반을 팔아먹었다고. 그렇기에, 그에 대한 죗값을 꼭 받아야 할 것이라고요.”
윤덕영은 황후 윤씨를 믿었다.
그랬기에 지금 배신감 또한 크게 느끼고 있다.
그녀가 한양을 떠나려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부산으로 피신하였다면, 이런 수모는 겪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아! 아아!”
윤덕영이 부르르 떨며 소리를 내질렀다.
이에 황후는 꼴 좋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내려보았다.
“흑흑. 마마.”
“······.”
“부디 조카들을 생각하여서라도 그 결정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지만 친일파들은 다 그렇듯.
처세술이 굉장히 능했다.
윤덕영은 황후의 아픈 곳을 찌르며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마마의 핏줄은 그 아이들뿐이지 않습니까?”
“······.”
“의왕이 자식을 여섯이나 낳았다곤 하나, 핏방울 하나 섞이지 않은 남입니다.”
“······.”
“남은 조카들이 곧 마마의 자식들이란 말입니다. 그 점을 부디 고려하여······.”
이에 황후 윤씨는 또 한 번 윤덕영의 말을 잘라먹으며 크게 소리쳤다.
“나는 이 나라의 국모이니라!”
“······.”
“내게는 이천오백만의 신민들이 있도다. 그런 내게 그깟 조카들이 뭘 그리 대수라고 호소를 하고 자비를 베풀라 청하느냐!”
황후는 이내 윤덕영에게로 다가가선 평소 말투대로 나긋나긋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백부님.”
“예, 황후마마.”
“부디 이 나라를 위해, 거름이 되어 주십시오.”
“······!”
“백부님과 내 조카들의 피가 이 나라 조선에 양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건강한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라났으면 하는 것이 이 조카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마마!”
황후 윤씨가 가까이 있는 지밀상궁에게 눈신호를 보냈다.
이에 지밀상궁이 문서 하나를 그녀에게 가지고 왔다.
“어어!”
윤덕영의 눈이 커진다.
딱 봐도 알 수 있으니까.
한양을 떠나려고 할 때, 황후가 이를 보여 주며 남아 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화르르-
의왕의 친서가 황후 앞에서 불탄다.
“아, 안 돼!”
이에 윤덕영은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주저앉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저자를 끌어내거라.”
“마마? 마마! 아악- 으악! 놔라, 이놈들!”
황후 윤씨는 막판까지 추한 모습을 보였던 윤덕영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놓치지 않고 잘 지켜보았는가?”
“······예. 마마.”
황후에 물음에 한 여인이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다른 궁인들과는 다르게, 서양식 의복을 입고 있던 여인.
이강의 유학 동기이자, 고종의 고명딸을 우수리까지 피난 가게 만든 하란사였다.
“내 자네에게 참으로 미안하군. 못 볼 꼴을 보여 준 것 같아서 말이야.”
“······.”
“내 시동생에게 잘 좀 이야기를 전해 주게.”
조선에 있는 여인 중 이강과 가장 가까운 자는 누구일까?
백이면 백.
이강을 아는 이라면 다들 하란사를 꼽을 거다.
황후 역시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하란사에게 오늘 있던 촌극을 끝까지 지켜보게 하며.
오늘 보았던 것을 이를 이강에게 전하라고 명령했다.
“덕분에 십 년 묵은 체증이 오늘 확 내려가는 것 같네.”
친지 관계이지만, 윤덕영은 황후를 욕보였다.
여인의 원한은 오뉴월에 서리도 내리게 하는 법.
황후 윤씨는 그때 당했던 치욕이 분했는지.
그때를 회상하며 자신의 윗배를 살살 만졌다.
“아, 그전에 부탁했던 것들 말이야.”
“내명부 공신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황후는 하란사를 보며 계속 말했다.
“그래. 그것······ 내 의왕비의 뜻대로 진행해 줄 테니, 관련 목록을 보내 달라고 하게.”
“예.”
귀족 작위는 연합 군주나 한 나라의 왕이 내릴 수 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 대상이 남자일 때 가능한 일이고.
내명부는 오직 황후만이 할 수 있다.
그랬기에, 윤씨는 이강과 에델의 부탁을 군말 없이 들어주기로 약조했다.
“아, 황후마마!”
“아직 남은 것이 있는가?”
하란사가 조심스럽게 한 가지를 언급했다.
“죄인 윤 씨가 한양을 떠나기로 했다가 이를 반복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 과정에서, 일부 재산이 마마의 명의로 전환되었나이다.”
“그래?”
황후 명의로 해 두면 몰수할 수 없으니까.
윤덕영은 일부 재산을 그녀의 앞으로 두었는데, 하란사가 이를 언급했다.
“내, 이를 어찌했으면 좋겠나?”
하란사가 조심스럽게 이강의 제안을 윤씨에게 전했다.
“그 돈의 출처를 숨김없이 고백하십시오. 더하여 이를 활용할 방법을 마마의 주도로 대중에게 발표하십시오.”
“······예를 들면?”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돌봐 주는 기관을 하나 세우는 것은 어떻습니까? 안타깝게도 한양에는 제법 많은 고아가 하루를 근근이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황실이 거두어 보살피라?”
“예.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는 구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윤덕영이 몰래 황후의 이름으로 전환한 재산이 꽤 되니까.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구먼.”
이강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지금까지는 서로 분리되어 있지만, 외교권을 회복한 이후부터는 순종 부부의 이미지가 이강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알겠네. 혹 이를 잘 운영할 인재가 있다면, 부디 추천해 주었으면 하네만.”
“살펴보고 마마께 보고하겠나이다.”
황후 윤씨는 창덕궁을 떠나는 하란사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서구식 복장을 하고 자동차를 타러 가는 그녀를 보며,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갖 많은 잡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폐하.”
“화우, 그드인가?(황후, 그대인가?)”
“예.”
현실로 돌아와서.
황후는 순종을 찾았다.
“오느다라 기부니, 조아 보이지 아느군.(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군.)”
“아닙니다.”
틀니를 빼고 있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순종은 더욱더 어벙하게 발음했다.
‘폐하께서도 한때는 총명하셨는데.’
미국에 있는 시동생만큼은 아니지만, 참으로 빛나는 남자였는데.
황후는 출처를 모를 슬픔에 잠시 버거워하다가 순종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리 답했다.
“신첩은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폐하께서 신첩의 곁에 계시지 않습니까?”
< 반민특위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