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40)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40화(340/392)
< 상과 벌 (2) >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대한합중국으로 넘어간 지 근 넉 달째.
“그어억-”
“사, 살려 주시오.”
반민특위 재판은 아직도 활발하게 열리는 중이었다.
최상위층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심판은 이제 언론과 교육계는 물론이고.
그간 치안을 담당했던 작은 소도시의 순사들, 헌병보조원들로도 확대되고 있었다.
“벌써 11월이로군.”
친일 청산이 계속되는 사이.
대한합중국은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여섯 왕국에서 치르기로 한 총선거가 두 번의 연장 끝에 결국 11월 초에야 치러진 거다.
“곧 추수감사절이 다가옵니다. 전하.”
“그래. 그렇지.”
입헌군주로서 이번 총선에 개입하지 않으려 최대한 관련 보고서 확인을 미루고 있었다.
부정선거 의심자들은 언젠가 처단해야 하겠지만, 그것마저도 새 정부에게 먼저 일임할 생각.
그래서 나는 고국의 정치계보단 현재 미국의 정계와 재계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내년이면 대선이다.’
짧게는 4년, 길게는 8년.
미국을 이끌 차기 지도자가 내년 말에 결정된다.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미국의 재계는 물론이고.
대한합중국의 이후 외교 방향도 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일은 전부 제쳐 두고 이 일에만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도 뉴저지로 향할 예정이십니까?”
그럼.
록펠러 가문과의 우호를 공고히 다질 수 있는 공식적인 이벤트 아니던가?
올해 대한합중국으로 바로 귀국해서, 더는 이런 행위를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내 부친께서 시기적절하게 하늘로 승천하신 덕분에, 조금 더 미국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이번 기회를 아주 잘 활용하고자 했다.
이번에도 역시 록펠러와 입을 맞추며 차기 대통령은 누가 좋을지, 사전에 이를 조율하고자 한 거다.
“그럼 록펠러 이사장에게로 빠르게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아, 그전에······ 한양에서는 답이 왔던가?”
하란사가 미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 에델이 목록 하나를 다시금 창덕궁에 보냈었기에.
나는 이에 대한 답이 왔는지를 확인했다.
“예. 관련 증서와 예물이 막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그래?”
그럼.
이를 올해 추수감사절에 건네주면 되겠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상황에서 서로 자랑할 수 있도록 말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최현우의 안내를 따라 작위 증서가 보관된 창고로 향했다.
* * *
“그러니까, 제가 예전에 조선에서 작위를 받았다면······.”
에델의 큰언니이자 윌리엄 록펠러의 장녀인 엠마가 잘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한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종굥, 아니지 종켱부인(정경부인)이라는 칭호로 불렸겠네요?”
“그렇다던데, 언니?”
하하- 호호-
언제나 밝은 분위기를 유지했지만.
올해 추수감사절은 더 화기애애한 것 같았다.
“아, 복잡한 원 명칭 배울 시간에, 저기 있는 칠면조나 좀 건네줘.”
에델의 바로 위 오빠인 퍼시 록펠러가 살짝 짜증 내는 표정을 지으며, 한창 작위 자랑 중인 엠마에게로 자신의 그릇을 건넸다.
“어허.”
“······.”
“감히 누가 공작부인에게 버르장머리 없이 구는 게냐?”
그간 한 것도 없으면서, 록펠러 가문인데도 불구하고 고작 백작 작위나 받았으면서.
하는 표정으로 엠마가 퍼시를 고깝게 바라보았다.
씩씩-
이에 퍼시의 얼굴이 뻘게졌다.
그는 제 형인 윌리엄 록펠러 주니어를 바라보며 한마디 해 달라고 졸랐지만.
“그러게, 잘 좀 하지.”
그의 형도 퍼시를 나 몰라라 했다.
사실 윌리엄 록펠러 주니어 역시 그간의 공을 인정받아 연해 왕국에서 공작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쯧쯧. 채신머리없게, 이왕 전하 앞에서······.”
형제들 간의 분쟁은 록펠러 여사가 커트했다.
“전하. 드시지요.”
우리 말에,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하지 않던가?
사실 서양권에선 동양권과 달리 딸에 대한 주도권 문제로 장모와 사위, 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이나.
록펠러 여사는 벅찬 자신의 막내딸을 내가 잘 데려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생각했는지.
굉장히 잘 대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나는 언제나 그렇듯, 말없이 그녀의 음식을 건네받으며 꿋꿋이 접시를 다 비우기 시작했다.
“이왕 전하.”
그때였다.
한참 갈굼을 당하던 퍼시가 내게 물었다.
“궁금한 점이 있사온데······ 하나만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보자, 퍼시가 살짝 걱정하는 눈빛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소문으로는, 작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대한합중국에 들러야 하고, 일정 기간 그곳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말입니다. 사실입니까?”
“나 또한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나는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냐는 표정을 지으며 퍼시를 살짝 추궁했다.
이에 그가 살짝 주눅 드는 표정을 짓자, 얼굴 표정을 풀며 정석적인 대답을 그에게 했다.
“정확한 답변은 내 돌아가서 확인한 후에 알려 주겠네. 정 급하다면 저기 있는 최 비서실장에게 당장 알아보라고 하겠네만.”
“아, 아닙니다.”
퍼시는 급히 고개를 돌려서 다른 대화 상대를 찾았다.
“엠마 누나.”
“응?”
“전에 한번 대한제국에도 다녀왔었지?”
“그런데?”
“어땠어? 괜찮았어?”
엠마가 괜히 내 눈치를 본다.
이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퍼시는 계속 질문을 퍼부었다.
“내 아들 녀석도 요새 대한제국에 관심이 커져서,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조르더라고.”
“아······.”
“거긴 어땠어? 살기 좋았어?”
엠마는 살짝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그녀의 앞에 놓인 포도주를 냉큼 비웠다.
그러곤 잠시 뜸을 들인 후, 대한제국에 방문했던 기억을 회상했다.
“좋긴 좋았어.”
“좋았다고?”
“응. 근데 아무리 좋더라도, 고향만 한 곳이 없더라고.”
“그래?”
“말도 잘 안 통하고, 그쪽 음식도 맛있긴 한데······ 오래 지내다 보면 뉴저지 음식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그럴 수밖에.
엠마가 들른 곳은 목포와 평안도 안주로, 한반도에 있는 도시 중 작은 소도시에 속했다.
옛 러시아제국의 유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나 칭다오에 살다가 일본인에 의해 쫓겨난.
독일계 이민자들이 가득한 안동(단둥)에 방문했다면 그녀 또한 살 만했겠으나, 내가 의도적으로 좀 더 낙후된 곳에 방문하게끔 유도하여.
지금 엠마가 가진 대한합중국의 기억은 썩 좋지 못했다.
“그럼 엠마 누나는 계속 여기서 거주할 거야?”
“글쎄.”
의도한 대로, 엠마는 대한합중국에 거주하는 것은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괜히 우리가 갔다가 구설에 오르면 어쩌려고. 피부색이 달라서 눈에 확 띄는데.”
내가 있는 자리다.
대한합중국에 관해서 함부로 안 좋을 말을 할 수는 없기에.
엠마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 가며 돌려 말했다.
“너나 네 아들이 합중국으로 간 다음에 여자들이랑 술집을 드나든다고 생각해 봐. 그럼 네 누이나 이왕 전하만 난처해져.”
“하긴. 그러면 안 되지. 암.”
사실.
에델의 형제들은 다른 뉴욕의 최상류층과 비교해 물욕이 많이 없는 편이다.
다만 명예욕은 좀 있어서, 그간 귀족 타이틀을 따기 위해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회수하도록 열심히 움직이기도 했다.
‘외척이 나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그들의 관심이 대한합중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할 수밖에.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귀족 작위뿐이지 않던가?
“밥도 먹었겠다. 잠시 나갈까?”
“어? 전하께서도 밖으로 나가시는 겁니까?”
“바람이나 좀 쐴 겸, 자네들 곁에서 대화나 하고 싶네.”
“좋습니다!”
나는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담배나 시가를 잘 태우지 않는다.
하지만 록펠러 일가의 남자 일원 중 상당수는 애연가였다.
저녁 식사 후, 정기적인 식후땡 담배 타임이 필요하여 잠시 밖으로 나왔는데.
“전하. 저와 밖에서 산책하시는 어떠십니까?”
이 집안의 가장이자 스탠다드 오일의 창시자, 존 록펠러가 슬그머니 다가와 독대를 요청했다.
“오랜만에 전하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뭐, 안 될 것도 없지.
나는 싱긋 웃으며 앞장서서 뒤뜰로 향하는 록펠러를 따라갔다.
* * *
록펠러 가문은 대대로 장사를 하던 가문이다.
그래서일까?
눈치 없이 나와 록펠러를 따라오는 다른 집안 손님들은 없었다.
“감사드립니다. 이왕 전하.”
주변에 아무도 없고.
둘만 남게 되자.
록펠러가 급히 내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자식들과 조카 녀석들이 저리 좋아하는 것을 보니······ 빵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록펠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는 무슨. 자네 가문이 여태껏 나와 대한합중국을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
“내가 지난번과 이번에 준 것은, 그 노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네. 오히려 뭘 더 못 해 주어서 미안할 뿐일세.”
11월 중순.
해가 진 저녁이라서 그런지 날이 제법 춥다.
나오기 전에 재킷을 걸치길 잘한 것 같다.
나는 록펠러가 사는 뉴저지 저택 인근을 거닐다가 그를 힐끗 바라보며 운을 뗐다.
“그나저나 말이야. 그대는 정말 작위를 받지 않을 생각인가?”
다른 가족들은 전부 나와 에델이 건넨 작위를 받았다.
하지만 오직 한 명.
존 록펠러만은 이를 완곡히 거절하며 끝끝내 작위 수여를 거부했다.
“······.”
“······.”
물은 후로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록펠러는 내 질문에 별다른 답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다시 한번 힘겹게 운을 떼며, 그의 답변을 재촉했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한사코 작위를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말이야. 혹 내가 자네에게 섭섭하게 한 것이라도 있는가?”
“······아닙니다.”
“그럼 어째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던 존 록펠러.
그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무거운 입을 간신히 뗐다.
“무엇을 바라고 전하를 도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전하께 크나큰 도움을 몇 번씩이나 받지 않았습니까?”
흔히들 서양인들은 개인주의고, 동양인들은 관계주의나 전체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대체로 그렇다는 거지, 전부가 그리 행동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 앞에 있는 록펠러를 보아라.
오히려 상류사회로 갈수록, 남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강해졌는데.
록펠러도 이 때문에 내가 주는 작위를 한사코 거절하는 것 아닌가?
‘제 아들이 이미 작위를 받았으니까. 사실 굳이 받을 필요도 없고.’
원하는 것은 이미 손에 쥔 상황.
작위는 대대로 상속되니, 록펠러 가문의 후손들은 대대로 귀족 행세를 해 가며 미국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다.
굳이 록펠러 자신까지 귀족 작위를 받지 않아도 말이다.
“더불어 최근에는 제 아들놈의 실수를 수습하느라, 전하의 부탁도 듣는 둥 마는 둥 하지 않았습니까?”
록펠러는 최근 일을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
“그 때문에, 마음속 한편이 불편합니다. 요새 들어, 제가 나섰다면 조선 반도의 남쪽 지방 역시 되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간간이 들었습니다.”
록펠러 가문은 최근에 꽤 복잡한 송사에 휘말렸다.
원 역사에선 러들로 대학살이라고 불렸던 사건.
내가 이강의 몸에 빙의하지 않았다면 1914년도에 일어났을 사건이, 올 초에 미 언론에서 그게 보도된 것이다.
“그 일은, 어떻게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가? 사람을 풀어 확인하니······ 대충 수습하고 매듭을 지은 듯 보이는데 말이야.”
타이타닉 사태로 청문회에 참석했을 때, 나는 민주당 연방의원들에게 공산주의자가 아니냐고 조리돌림을 당했었다.
노동인권이 확립되지 않던 시대.
주 6일, 나아가 주 5일제를 시범적으로 일부 사업장에 도입하고.
다른 공장보다 봉급을 더 많이 주며, 휴게실을 제대로 갖추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족이 진성 빨갱이가 되어 버린 것인데.
이 사건 이후, 나는 록펠러에게도 관련 기업 노동 환경 개선을 선제적으로 하라고 권했었다.
‘미국은 더는 이류 국가가 아니게 되니까.’
세계대전으로 미 전역이 황금기를 맞이하고, 자본가는 물론이고 중산층의 부마저 대거 늘어간다.
먹을 걱정이 없어지면 당연하게도 그다음은 자아실현의 욕구가 올라온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인권, 노동권 개선의 목소리가 전보다 더 강하게 요구된다는 말인데.
록펠러는 1914년.
그 소유의 광산노동자들이 파업했을 때, 나의 조언을 받아들여 파업 인력을 강력하게 제압하지 않고 잘 달래며 위기를 모면했다.
“예.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지만, 이 정도면 뭐 싸게 마무리한 셈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땜질식 처방이었다.
내가 대한합중국에 온 신경이 팔렸을 때, 해당 광산은 또다시 열악한 노동 환경을 거론하며 파업을 했고.
록펠러와 그의 아들이었던 록펠러 주니어는 5년 전과 달리 강경한 파업 대응으로 이 사건을 풀어가고자 했다.
“하- 전하께서 예전에 언질을 주신대로, 노동자들의 환경을 좀 더 개선해야 했는데 말입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1위 기업이 잘못하면 언론에 집중포화를 받게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삼X만 해도 그렇지 않던가?
다른 기업은 그냥 넘어갈 일도 삼X이 잘못하면 난리가 난다.
록펠러 일가의 소코니나 그 산하의 기업들 역시도 현재 비슷한 상황이었다.
“뭐, 지금 후회해 봐야 뭐하겠습니까? 인제 와서 허둥지둥 대책을 발표해 봤자, 말을 도둑맞고 마구간을 고치는 격이지 않습니까?”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한 사례 때 쓰는 격언이 있다.
말을 도둑맞고 마구간을 고친다는 속담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우리네 속담과 비슷했다.
나는 록펠러의 후회 섞인 한탄을 들으며 고개를 조금 위아래로 끄덕였다.
“뭐, 한번 크게 앓았으니, 다음부터는 같은 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자네도 이번 일을 통해 느낀 바가 있지 않던가?”
내 말에, 록펠러는 해당 주제에 관해선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대화 주제를 교묘하게 바꾸었다.
“아! 전하. 전하께서도 그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
“네덜란드 여왕의 부군이 이번에 미국에 방문한다고 합니다. 듣자 하니 빌헬미나의 남편 되는 헨드릭 경은, 전하의 오랜 친우라는 말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때 친해졌던 그 헨드릭을 말하는 것일까?
‘뭐, 우리 둘이 사업파트너이자 친구가 된 지도 12년이나 되었으니. 오랜 친우 관계이긴 하지.’
나는 고개를 한층 더 격하게 끄덕이며 록펠러의 물음에 답했다.
“친우지. 그것도 아주 친한 친우.”
“전하께서는 헨드릭 경의 미국 방문 계획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럼. 올 중순부터 상의했던 이야기라······ 익히 알고 있었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관련 정보를 록펠러에게 살짝 설명해 주었다.
“미국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지 않던가? 이 때문에 새 네덜란드 총리가 미국행을 원했다고 하더군.”
“그렇군요. 하지만 총리가 미국에 방문하는데, 부군께서는 어째서?”
“아, 그거?”
나는 헨드릭의 얼굴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알다시피 헨드릭 공은 유럽에서 알아주는 부자 아니던가?”
“그렇죠.”
“더욱이 나와는 사업파트너이기도 해서, 미국 재계인사들과 꽤 안면이 있다네. 자네는 아니지만, 자네 아들도 헨드릭 공과 몇 번 만났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예. 그렇습니다.”
록펠러는 헨드릭의 자산을 언급하며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부군이 운용하는 자산의 크기가 생각보다 엄청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말입니다. 그게 모두 전하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하의 유럽 파트너가 바로 헨드릭 공이지 않습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대며 겸양을 떨었다.
“나는 그저, 그에게 투자할 기회만을 주었을 뿐이네. 결정은 그치가 다했네.”
“에이, 그래도요.”
에이.
이거 왜 이래.
내 입으로 내 자랑을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아?
“아무튼 네덜란드 총리는 워싱턴에 계속하여 머물 것 같고, 부군은 그와 함께 대서양을 건넌 후 바로 이곳 뉴욕으로 온다고 하더군.”
“역시······.”
록펠러는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가 한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헨드릭 공의 방미행은 전부 전하를 보기 위함이었군요.”
나는 피식 웃으며 록펠러의 추정에 동의했다.
“그렇지. 정확히는 뭐······ 내 딸내미 때문이겠지만.”
< 상과 벌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