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42)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42화(342/392)
< 더치 보이 (2) >
힐 호텔에서 체크아웃한 후, 나와 함께 뉴욕 별장으로 이동한 헨드릭.
그는 우리 집 안주인인 에델을 보자마자 곧장 허리부터 굽히며, 유럽식으로 간드러지게 인사를 했다.
“이 왕비 전하. 초대해 주셔서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친 헨드릭은 살짝 긴장한 제 아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한마디 했다.
“뭐 하느냐? 네 앞에 계신 이 왕비 전하께 인사 올리지 않고.”
“······.”
헨드릭은 얼음공주 같은 빌헬미나와는 다르게, 굉장히 유쾌한 남자였다.
과거 에델과 함께 네덜란드를 방문한 적도 있었는데, 에델과 헨드릭은 그때 대화하며 서로 면을 튼 사이.
“설마 여기 계신 왕비 전하가 너무 아름다우셔서 얼어붙은 거냐?”
그랬기에, 헨드릭은 농담까지 하며 자칫 딱딱하게 얼어붙을 수 있는 분위기를 빠르게 풀어 보고자 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 왕비 전하.”
“그래. 네가 율리우스구나.”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에델은 율리우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전부 훑었다.
마치 과거 내가 박병준으로 살았을 때, 사귀던 여자친구 집에 방문했다가 처음 마주친 그녀의 어머니와 비슷한 눈빛이었다.
‘율리우스가, 얼어붙을 만해.’
저렇게 매의 눈으로 자신을 훑어보는데, 긴장하지 않을 아이가 어디 있겠나?
예비 장모가 사위를 처음 반기는 모습은 어딜 가나 비슷한 것 같기도 하여서, 나는 속으로 조용히 배꼽을 잡고 웃었다.
“만나서 반갑다.”
에델은 헨드릭 대공과 율리우스의 인사를 받은 후,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우리 아이들을 보았다.
유모의 손에 들려 있는.
올해 초에 태어난 막둥이 딸까지, 여섯 형제자매가 쭉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헨드릭은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 살핀 후, 천천히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후 그는 대견스럽다는 눈빛을 보이며 작게 속삭였다.
“부부 사이에 금실이 아직도 좋은가 보이.”
“나야 늘 그렇지.”
“그보다, 자네는 참으로 좋겠군.”
“왜? 내 아내가 아직도 예뻐서?”
“아니. 그건 하나도 안 부러운데, 자식 복은 참으로 많은 것 같아서.”
나는 순간.
헨드릭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씁쓸해하는군.’
헨드릭과 빌헬미나 역시도 율리우스를 낳은 다음, 또 다른 자녀를 낳고자 했다.
하지만 본디 사람 일은 계획대로 잘 흘러가진 않는 법이다.
‘안타깝지만, 율리우스의 동생 소식은 그 이후에도 전혀 없었다.’
들리는 풍문으로 헨드릭이 홍삼을 섭취한 뒤부터는, 빌헬미나와의 부부 사이가 다시금 좋아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두 부부의 아이는 율리우스 하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둘이 난임 부부이기 때문.
내가 이강의 몸에 빙의했다고 해서 이것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기에, 이번에도 자식 복은 참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정말 타이밍 좋게 방문하긴 했어.’
이 두 부부는 결혼 생활 8년 만에 기적적으로 율리우스를 낳았다.
그때 내가 이 부부의 관계 회복에 이바지했었고.
그래서일까?
두 부부는 아직도 나를 인생의 은인이라 생각하며, 매해 율리우스 생일 때마다 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고맙다고 말이다.
‘뒤통수가 따갑군.’
자식이 많은 것도 어찌 보면 복.
헨드릭은 내 여섯 자식을 바라보더니, 한동안 질투 어린 시선으로 내 뒤통수만 쏘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다른 곳에 관심이 생겼는지, 자못 풀린 얼굴로 내게 말을 걸었다.
“아, 자네 막내딸 말일세.”
“응? 요 아이는 왜?”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지난번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헨드릭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많은 것을 공부하고 왔다.
공부한 것 중엔 아이들의 이름도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 이름은 전부 외웠지만 막내 딸아이의 이름만은 모른다며 내 막둥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율(燏)이네.”
나는 방긋 웃으며 유모로부터 막내를 넘겨받았다.
그러곤 막내를 헨드릭에게 자랑하듯 보이며 이름을 알려 줬다.
“유리 이?”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이름을 단번에 제대로 발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이미 익숙했기에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막내의 이름을 아주 정확하게 다시 알려 줬다.
“유리가 아니고 율. 이율.”
중간 이름인 록펠러의 록 자만 따서 이록율이 될 수도 있다만.
이건 우리 둘 사이에서도 완전히 결정되진 않은 사항이니 스킵하고.
“흠.”
헨드릭은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아시아 사람들의 이름은 참으로 어렵단 말이지. 우리네 사람들과 다르게 성과 이름도 뒤바꾸어 쓰고. 아아, 아시아의 이상한 고대 상형문자로 표기한다고도 하던데.”
정성이 대단하다.
내가 본 헨드릭은 공부에 영 재능이 없어 보였는데.
사전에 이런 정보들을 외우느라 정말이지 진땀을 좀 흘렸을 것 같다.
“나 또한 서양 사람들의 이름이 참으로 어렵다네.”
“에이, 무슨 소리. 영어 발음은 나보다 더 잘 구사하면서······ 또 또, 이상한 헛소리를 늘어놓는군.”
나는 피식 웃으며 헨드릭의 정성을 한껏 높이 샀다.
“그나저나 우리네 문화에 대해 생각보다 많이 조사한 듯한데. 늦은 나이에 공부하기 힘들지 않았나?”
“뭘······ 이 정도야.”
헨드릭은 어깨를 으쓱대며 내게 말했다.
“아무튼, 아······ 내 듣기로 대한합중국 사람들의 이름에는 숨은 뜻이 있다던데, 자네 아이들의 이름도 한번 설명해 주게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헨드릭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일단. 내 이름에 사용되는 한자부터 설명하겠네. ‘강(堈)’이란 단어에는 본래 언덕이라는 뜻이 있네.”
“아, 그래서 자네 소유 회사 중 일부가 힐이라는 영어를 사용하는구먼.”
“그래.”
나는 새근새근 자는 막내딸을 바라보다가 막내의 말랑말랑한 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막내의 이름에 사용된 한자 ‘율’에는 빛난다는 뜻이 담겨 있네.”
이후에 고개를 돌려, 제 어머니 옆에 숨어 있는 어린 꼬맹이들을 바라보았다.
“둘째는 곱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선(嬋)’, 셋째는 보배가 되라는 의미에서 ‘진(珎)’을 붙여 주었다네.”
“오호. 그런 뜻이 있었군.”
천천히 아이들을 살피던 헨드릭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이제 막 아홉 살이 된 우리 공주님들에게로 꽂힌 것인데.
그는 똑같이 생긴 쌍둥이를 바라보며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가씨들. 여기 계신 대공 전하와 왕세자 저하께 다시 한번 인사를 올리거라.”
“예. 아버지.”
두 아이 중 한 아이가 반걸음 앞으로 나오며 방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지니라고 해요. 정확히는 지니 록펠러 리.”
그때였다.
옆에 있던 다른 한 딸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제 자매가 이상하다는 양 쳐다보았다.
“어? 내가 지니인데? 왜 그래, 언니.”
“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지니고 언니는 써니잖아?”
두 쌍둥이가 티격태격한다.
뭐, 생소한 광경은 아니다.
이미 많이 겪었던 장면.
“내가 지니라고!”
“아냐. 내가 지니야!”
셋째와는 다르게 둘째 써니는 장난기가 많아서 가끔 동생인 척을 하곤 했다.
“왜 날 봐요.”
에델과 시선을 교환하자, 그녀는 살짝 퉁명스러운 말투로 내게 물었다.
“설마 우리 전하께서, 아이들 이름이 헷갈리는 건 아니겠죠?”
“······.”
“저는 딱 봐도 알겠는데······ 혹시 아직도 우리 아이들을 구분 못 하는 거예요?”
아니.
평소라면 구분하겠는데.
이렇게 작정하고 장난을 칠 때는 나도 가끔 헷갈린다고.
넷째와 다섯째.
그러니까 남자 쌍둥이들은 즉흥적으로 이런 놀이를 해서 이젠 서로가 자신인 척해도 안 헷갈리지만.
둘째 써니는 셋째 지니의 스타일은 물론이고 언행까지 그대로 복사해서 행동하기 때문에, 진짜 작정하고 장난치면 구분하기 힘들었다.
‘젠장.’
등에서 살짝 식은땀이 난다.
쏘아보는 에델.
이를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보는 헨드릭.
이 둘의 시선을 외면하며, 나는 두 아이 중 한 명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흠흠. 헨드릭. 이 아이가 3분 차이로 언니인, 내 둘째 써니일세. 써니야, 헨드릭 대공에게 제대로 인사드려라.”
이럴 때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본능에 맡겨야 한다.
이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제6의 감을 믿어야 한다는 뜻.
이에 나는 서로 지니라고 주장하는 딸아이 중 한 아이의 어깨를 잡고 제대로 인사하라고 권했다.
“와. 대박. 아빠. 어떻게 맞췄어요?”
“힝.”
지니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사이, 써니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헨드릭에게 제 소개를 했다.
“흠흠.”
나는 헛기침을 한번 크게 내고는 에델과 시선을 교환했다.
다행히도 나의 찍기 실력은 아직 녹슬지 않았는지, 진짜로 정답인 것 같다.
“이 아비는 너희들을 그 누구보다 사랑한단다. 그렇기에 잘 알고 있지. 똑같이 생겼어도 너희들이 누구인지는 다 알지 않겠니.”
“와.”
나의 다음 말에, 셋째인 지니가 입을 쩍 벌리며 감동하는 표정을 짓는다.
써니는 ‘진짜야? 그냥 찍은 거 아니야?’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다리에 엉겨 붙어선 껌딱지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진짜란다. 그간 자주 틀렸던 것은, 너희들이 재미있으라고 속는 척해 준 것이지.”
“진짜요?”
“그럼. 이 아비가 언제 너희들 앞에서 거짓말이라도 하더냐?”
이 와중에도 첫째 현이는 씩씩하게 제 어미 옆에 서 있었다.
세쌍둥이보다 조금 더 어린 넷째와 다섯째는 벌써 인내력에 한계가 왔는지 유모에게 보채고 있었고.
“자네도 자네 나름대로 가정생활이 빡빡한 모양이구먼.”
헨드릭은 이를 지켜보다가 한마디 했다.
다자녀 가장의 비애를 단박에 알아챈 거다.
“그럼.”
“······.”
“세상은 원래 쉽지 않다네.”
모든 것은 일장일단이 있는 법.
나는 헨드릭에게 여섯 아이의 아빠는 얼마나 피곤한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 후, 집 안으로 안내했다.
“아, 율리우스.”
“예. 아버지.”
헨드릭이 눈신호를 날리자, 율리우스가 시종에게서 무언가를 건네받았다.
율리우스는 한 살 어린 둘째와 셋째 딸아이에게 각각 선물을 건네며 수줍게 말했다.
“약, 약소하지만 서, 선물이야.”
“꽃?”
셋째인 지니가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율리우스의 선물을 받았다.
“우와, 너무 이쁘다.”
“······.”
“진짜로. 와! 냄새도 너무 좋아요.”
하지만 셋째와는 다르게 둘째 써니는 살짝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내가 써니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써니야. 왜? 너는 마음에 안 드니?”
“······예.”
“그래도 율리우스의 선물인데, 그리 행동하면 율리우스가 섭섭해하지 않겠니?”
“고마워.”
내 말에, 그제야 써니도 영혼 없는 인사를 했다.
이에, 에델은 나중에 단단히 교육 좀 해야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써니에게 진실의 방 예약행 표를 발권했다.
“지니는 저리 좋아하는데, 우리 써니는 왜 별로일까?”
훈육은 이따 에델이 하겠지만, 일단 써니에게 다가가서 그 이유를 듣고자 했다.
표정이 살짝 굳어 있던 써니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자신이 실망한 이유를 설명했다.
“꽃은 금방 시들잖아요.”
“······.”
“나는 계속 가질 수 있는 선물이 좋아요.”
아아.
며칠만 있으면 못 쓰게 된다는 것이 써니가 울상을 짓는 이유였구나.
“아이고. 우리 공주님.”
“······.”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어요?”
헨드릭은 살짝 싸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써니에게로 다가와서 물었다.
“그럼, 우리 써니 공주님께서는 뭐가 좋아? 다음에 율리우스가 다시 선물해 줄 거야. 말해 볼래?”
써니는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그림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나는 이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림이요.”
“······.”
“나는 그림이 좋아요.”
이에 헨드릭도 고개를 돌려 써니가 가리키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그림의 화가를 잘 알고 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흠. 요즘 뜨고 있는 ‘고흐’라는 작가의 그림이군.”
“······.”
“해바라기가 참으로 이쁘게 그려져 있구먼. 아아, 자네 아는가? 저 그림을 그린 화가가 우리 네덜란드 출신일세.”
알지.
영국에 방문했을 때, 소더비에서 대거 사들였던 그림 중 하나가 바로 고흐의 작품이었는데.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저 그림은······.”
그때였다.
옆에서 가만히 써니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고 있던 에델 역시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모건 씨가 선물로 준 그림이네요. 그렇죠?”
“아, 그래.”
그렇다.
정확히는 헨리가 우리 집에 방문했을 때 들고 왔던 선물인 것 같은데.
“아? 진짜?”
이는 헨드릭도 익히 알고 있었다.
모건이 우리 집안 딸내미 중 한 명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이 차이가 열 살 정도 나서, ‘설마 모건의 막내아들에게 딸을 시집보내겠어?’ 하는 눈치긴 하지만.
우리 두 집안의 교류가 예상 밖으로 빈번하다는 사실에 살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흠.”
헨드릭은 더욱더 이상해진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우리 둘 사이에서 의젓하게 서 있던 첫째 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에 현이는 가지고 싶은 것이 없다고 했다.
그저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하다면 자신은 바라는 것이 없다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굉장히 성숙한 답변을 했다.
그 후, 다른 아이들에게도 받고 싶은 선물이 뭐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주식?”
“······.”
“소칼이나 JP모건이나 포드!”
넷째인 준이 또한 완만하게 넘어갔는데.
다섯째인 한이가 또 사고를 쳤다.
“아니 왜?”
둘째는 그렇다 치더라도.
넌 왜 답변이 그러니.
“아빠가 지난번 생일 때 그거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요! 엄마한테!”
“······.”
애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말랬는데.
옛 어르신들이 하는 말이 옳았다.
“와. 이거, 이 집안은 떡잎부터 다르구먼.”
손님들 앞에서 이리 망신을 당할 줄이야.
나는 다섯째의 입을 막으며 급히 변명했다.
“내, 에델 앞에서 장난 좀 친 것인데······ 그게 인상 깊었나 보네.”
“아, 예. 그러시겠죠.”
“진짜라니까?”
그렇게.
각자의 가족 소개가 끝난 후, 헨드릭과 나는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더하여 각 가족의 성향까지 파악할 수 있었는데.
헨드릭은 내 셋째 아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뉴욕 별채를 떠날 때까지 계속 지니만 힐끗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 더치 보이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