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4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45화(345/392)
< 대한재건펀드 (1) >
맨해튼에 있는 호텔에서 사흘 밤을 보낸 유길준.
그는 뉴욕에 온 지 나흘째 되던 날, 워싱턴으로 떠났고.
“전하. 유 총리가 D.C.에서 다시금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래?”
복귀한 유길준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아무래도 휴즈가 유길준을 많이 홀대한 듯했다.
‘선거가 코앞이다. 더욱이 현 집권당인 공화당은 열세인 상황.’
제 코가 석 자인데.
어찌 유길준 같은 자가 휴즈의 눈에 들어오겠나?
나도 함께 백악관에 방문했다면 모르겠지만, 유길준 홀로 워싱턴에 갔는데 좋게 끝날 리가 없지.
투정 몇 마디 정도 들어주고 바로 축객령을 내린 모양이다.
“얼굴 좀 펴게.”
“······.”
“예상했던 대로 일이 흘러갔을 뿐일세. 이젠 그에 맞는 대응책을 세워야 할 때지.”
살짝 침울해 보이는 유길준을 한참 토닥였다.
그때였다.
유길준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또 다른 우려 사항을 내게 보고했다.
“전하. 안 좋은 일이 한 가지 더 있나이다.”
“어떤 일이 또 자네를 힘들게 했나?”
“그게······.”
유길준은 마치 유치원 선생님에게 비밀을 토로하는 아이의 얼굴을 하며, 내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토로했다.
“지난해 대한합중국에 투자를 약조했던 서구의 자본가들 상당수가······ 기존 투자 계획을 미루거나 철회하고 있습니다.”
1918년 가을.
이범윤이 제헌의회 임시의장으로서 미국에 들렀을 때.
나는 이회영을 시켜, 뉴욕에서 대한합중국에 관한 투자설명회를 개최하라고 일렀다.
그때 훈춘-가목사 신규 노선을 비롯하여.
안동(단둥)에서 해삼위.
그러니까 압록강-두만강을 따라 이어지는 신 남만주철도 노선에 사용될 외국 자본 유치를 성공리에 끝맺었다.
더불어 압록강 수계를 활용하기 위한 수력발전소 건설, 광산 개발, 연해주 산림 벌채 등.
여러 공공 인프라 사업 분야에서 역시 막대한 투자 자금을 모으기도 했고.
“흠. 큰일이군.”
유길준의 주장이 전부 사실이라면, 살짝 심각한 표정을 지을 만했다.
대한합중국이 발전하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인프라 건설이 급선무인데.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이것들이 사실상 올스탑된 상태로 몇 년을 허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도 이해는 가네. 지금은 투자할 적기가 아닐세.”
대충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서구 투자자들이 왜 그리 행동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때문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무슨 말씀을······.”
고개를 갸웃하는 유길준을 바라보며 세계 주요국의 경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에 있는 선진 열강들의 재건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네. 그러한 와중에 그동안 호황을 누렸던 미국과 일본마저도 전후(戰後) 불황으로 흔들리고 있지.”
그간 열심히 제품을 생산하고 전쟁터로 보냈으나, 이젠 이를 사들일 주체가 없다.
당연하게도 창고에는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고.
이를 눈치챈 각 기업의 경영자들이 기존 생산 설비를 멈추며, 미래 투자 역시도 줄여 갔다.
“세계 각지의 경제 상황이 이 꼴인데, 서구 자본가들이 리스크가 큰 신흥국에 투자하겠나? 다들 제 살길을 만들기도 바쁠 텐데 말이야.”
“아!”
암울한 예상이 내 입에서 흘러나올수록.
유길준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져 갔다.
“표정이 어둡군. 하지만 너무 불안에 떨진 말게나. 미국은 금방 회복될 걸세.”
대공황에 앞서, 미국은 1920년대 초에 살짝 불황을 겪었다.
하지만 건강한 환자가 살짝 고뿔에 걸린 정도였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나라는 불황이 좀 더 길어질 수도 있단 말입니까?”
“그럼.”
유길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었다.
“일본은 아마도 이번 공황을 아주 격하게 앓을 걸세.”
미국이 감기를 앓는 정도라면.
일본은 독감을 넘어서, 코로나에 걸린 기저질환 환자와도 같은 상황이니까.
이는 두 나라의 기초 경제 체력이 다르다는 점도 한몫했다.
“미국은 십여 년 전부터 세계에서 제일가는 경제 대국이 되었네. 반면 일본은 다르지.”
행정이나 군사, 더불어 시민 의식 등 여러 면에서 이류에 머물렀을 뿐.
미국은 사기적인 영토를 밑바탕으로 이미 세계 최강대국이 될 준비를 진즉 끝냈다.
“하긴, 그렇지요. 그에 반해 일본은 십여 년 전만 해도 막대한 외채 탓에 헐떡거리지 않았습니까?”
“그래.”
운 좋게 유럽에서 터진 전쟁으로 이를 탈피했지만, 산업 전반의 근본은 그대로인 상황.
세계대전 붐이 꺼짐과 동시에 그들의 경제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였다.
‘일본의 경제는 미국과 비교하면 이류도 안 되는 삼류 수준이지.’
뭐, 대한합중국은 삼류 수준인 일본보다 못한 사류 폐급이지만.
이 역시도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천천히 따라잡으면 되니까.
내가 있지 않던가?
‘치트키인 내가 존재하기에, 이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다.’
당장 취소된 투자들.
나는 이것들을 모두 내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부자다.
‘하지만 신중해야 해.’
아무리 부자인 나 또한 가용할 수 있는 재화는 유한한 법.
21세기 연준처럼 돈을 찍어 낸다면 몰라도, 밑 빠진 독에 생각 없이 물을 부었다간 언젠가 크게 후회할 날이 찾아올 거다.
더욱이 대공황도 십 년 안에 들이닥치지 않던가?
‘염가로 사들일 기회가 있는데, 아깝게 정가로 구매할 수는 없지.’
이는 경제 개념이 없는 졸부나 하는 행동이다.
그랬기에, 나도 현재 예정되어 있던 국내 인프라 투자에 내 쌈짓돈을 마구 퍼붓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면, 당장 믿을 건······.”
유길준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그가 말을 끝맺지 않아도 나는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조금 무례하지만 유길준의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반대 의사를 밝혔다.
“재미 한인들은 내버려 두게.”
“······.”
“다른 쪽은 몰라도, 인프라 분야는 내가 어떻게든 활로를 찾을 테니. 민간 자금은 다른 분야 육성에 사용해야 하네.”
“······예.”
재미교포 2세로 미국에 살며,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공공 서비스의 부재였다.
‘미국은 건보를 비롯하여 전기, 가스, 지하철 등 모든 것이 민간 소유지. 자본주의의 끝판왕답게.’
이 때문에 돈 없는 미국의 일반 시민은 다른 나라보다 비싼 돈을 지급하며 공공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다.
나는 이러한 미국의 암울한 발자국만큼은 대한합중국이 밟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인들의 돈도 아껴야 한다.’
대공황 때.
이를 버티지 못하고 염가로 내게 팔 텐데.
코 묻은 돈을 냉큼 내 주머니로 가져올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민간 자본은 공공 인프라 쪽이 아닌 다른 산업 분야로 흘러가야 한다. 반드시.’
할 일이 많다.
대공황 때 단번에 수확하기 위해, 대한합중국에 외국 자본도 유치해야 하고.
민간 자본이 무럭무럭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보호도 해야 하고.
‘그나저나 위축된 서구 열강의 자본 투자는 어떻게 유도하지?’
유길준에게 장담은 했는데 말이다.
‘아! 맞다.’
그 방법이 있었네.
때마침 기가 막힌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에드워드 왕세자의 결혼식에서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늘었군.’
비밀리에 진행해야 할 일이다.
방금 떠올린 계획을 굳이 유길준과 공유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속으로만 쾌재를 불렀다.
“아, 유 총리.”
“예. 전하.”
나는 유길준을 바라보며 나 또한 서부로 이동하겠다고 선언했다.
“외교부터 경제, 행정까지 모든 것이 난제투성이지만, 머리를 맞대며 해결책을 찾는다면 광명이 보일 걸세. 이번엔 나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가지 않겠나? 이동하는 동안 잠시 나와 대화를 나누며 혜안을 찾아보자는 걸세.”
* * *
“저, 전하.”
나의 부드러운 권유에 유길준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또다시 그의 앞에서 벌어졌으니까.
내가 그와 함께 서부로 향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다.
그러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겠지.
“내 이전에 내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았나? 내 자네를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
“이번 방미 일정에서 워싱턴이나 뉴욕시 방문도 중요하지만, 자네에겐 그 두 곳보다 샌프란시스코가 훨씬 중요할 텐데? 내 말이 틀렸던가?”
유길준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은 왜 중요할까?
이건 바로 돈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국가를 운영하려면 본디 넉넉한 예산이 필수적.
이번에 막 합류한 조선 왕국의 북쪽 지방은 재정 상황이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국고가 텅텅 빈 상황에서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민간 투자가 필요한데.
세계 상위권에서 노는 나를 제외한다면, 대한합중국 정부가 손을 벌릴 수 있는 외부 세력은 딱 하나뿐.
바로 한인 교민 세력이었다.
‘앞선 자리에서 당부했지만, 당장 불 끌 물을 찾는 유길준으로서는······ 한인들의 자금을 인프라 건설에 활용하고 싶을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랜만에 서부로 향하려 했다.
“내 샌프란시스코에서 교민들을 만나, 어떤 분야가 유망한지 강연을 하겠네. 교민들도 내 말이면 조금은 신경 쓰며 집중할 테니까. 내가 없는 것보단 좀 더 나을 것일세.”
교민들의 호주머니는 세계대전 특수 속에 두둑해져 갔다.
상당수는 이번 호황을 틈타 소작농 신분에서 벗어났으며, 일부는 농업재벌이 되어 큰돈을 만지기도 했다.
기존에 한반도에서 건너온 거부들 또한 금융이나 부동산, 동아시아 쪽 무역에 뛰어들어 여윳돈이 제법 생긴 상황.
나는 이 자금들을 올바른 곳에 쓰일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 줄 생각이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나의 서부행 선언에, 유길준은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럴 수밖에.
한인 교민들에게 있어서 나는 은인과도 같은 존재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부터 시작하여 나를 따르기 시작한 이들에게는 거의 재림 예수급으로 통하기도 했고.
그런 내가 서부에 방문하여 홍보를 좀 해 주겠다고 했으니, 저리 싱글벙글 웃는 표정을 짓겠지.
말이야 권유지.
어찌 보면 투자하라고 콕 집어 지시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내가 서부로 간다면, 한인들의 지갑은 반드시 열릴 거다.
“자네, 태평양을 건널 때 기업인들과 함께 왔다고 했지?”
“예. 그렇나이다.”
“자네와 함께 온 이들은 죄다 기자들이던데,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기업가들 대다수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러 있었다.
뉴욕이나 워싱턴에 오지 않고 서부에 머무는 것은 교민들의 투자에 집중하겠다는 뜻일 터.
서구 자본가들의 투자 활동 재개가 요원한 상황에서 고육지책을 강구하고자 그런 선택을 한 것이겠다.
“방미 기업인들의 목록 좀 내게 주게나.”
그러자 유길준이 곧장 리스트를 건넸다.
제일 윗단에 적혀 있는 자는 아주 당연하게도 이회영 일가.
‘일곱 형제가 합중국 전역을 부리나케 쏘다니는 것도 모자라서, 다시금 미국으로 돌아왔군.’
이회영 일가는 서간도.
그러니까 남만주 왕국 압록강 유역 인근을 새 터전으로 일구고, 가업을 키우는 중이었다.
반대로.
연해주에서 주로 활약하던 사업가 또한 존재했는데, 그들은 바로 최재형 가문이었다.
‘최부자 집과 동업을 하는 백산 무역의 안희제도 보이고.’
활명수를 팔며 독립 자금을 댄, 민강이라는 여흥민씨 출신 기업가도 목록에 적혀 있었다.
‘많이도 왔네.’
이번 방미행에 따라온 이들은 죄다 의용군을 지원했던 기업인들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방미 행렬에 적힌 기업인들 목록을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유길준이 건넨 해당 목록을 살짝 흔들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여기에 이번 연도 졸업생들과 신규 예비 유학생들이 더해져서, 이번 투자설명회가 합성협회 본사 건물 인근에서 크게 열린다고?”
“예.”
슬쩍.
고개를 돌려서 최 비서실장을 바라보았다.
그 후, 합성협회에 미리 연락하여 받아 둔 문서를 최 비서실장이 내게 건넸다.
“이게 졸업생들 목록이란 말이지.”
“예. 그렇나이다.”
수백여 명이 넘는 이들 중 한 사람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유일한. 이 학생이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군.’
학사는 물론이고 석사, 박사까지 딴 끈이 긴 인물이니까.
하지만 내가 이자의 이름을 외우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성(박용만)이 그리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초기 한인 비행학교 교장을 맡은 박용만.
그와 함께 미국에 건너왔던 이가 바로 ‘유일한’이라고 한다.
박용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일한을 언급하며 내게 언제 한번 꼭 만나 보라고 권유했다.
‘합성협회 장학생으로 뽑혔을 때, 그때 한번 만난 이후에는 처음이로군.’
얼마나 훌륭하게 성장했을지 기대가 된다.
나는 잠시 유일한의 지난 앳된 얼굴을 회상하다가
쓱-
나는 뒤에 처음부터 신규 장학생 목록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는 이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1919년, 합성협회 장학생 목록.
『이광수(1892), 최팔용(1891), 함석헌(1901), 박헌영(1900), 유관순(1902)······』
신규 장학생 이름 뒤에는 태어난 연도가 적혀 있었다.
나는 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한 사람 한 사람 그 이름을 살펴보았다.
‘크-’
누가 누구인 줄 알아야 뭘 주의 깊게 고르든 하지.
이름만으로는 전혀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3·1 운동에 가담했던 학생들이 이번에는 많이 뽑혔다고 들었는데.’
그나마 꼽으라면 ‘유관순’이라는 여학생 이름이 눈에 익숙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 유학 동기이자, 유일한 여자 사람 친구인 하란사가 추천한 여학생이니까.
‘내 협소한 근대 한국사 지식으로는, 아는 게 이승만과 김일성뿐이로구나.’
이승만은 연방의회 의원으로 활약 중이고, 김일성은 일단 이번 목록에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편히 넘어가도 되겠네.
나는 이번 신규 장학생 목록을 다시금 최 비서실장에게 반환한 후, 유길준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래.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일주일 정도가 소요된다.
그동안 나눌 이야기가 많았기에, 나는 유길준을 보면 무엇부터 논의해야 할지 고민했다.
< 대한재건펀드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