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49)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49화(349/392)
< 구원 요청 (2) >
“전하. 농담이 아닙니다. 정말, 상황이 아주 심각합니다.”
존 록펠러 주니어는 싱긋 웃는 나를 향해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재차 경고했다.
“허스트 대표님.”
“아, 예. 록펠러 대표.”
록펠러의 재촉을 시작으로.
허스트는 제 서류 가방에서 문서 하나를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이왕 전하. 이것들을 좀 보십시오.”
그가 건넨 문서들은 지난해 연말.
캘리포니아주에서 행해졌던 여론 결과 결과표였다.
쓱-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넘겨 보니.
그 안에는 수많은 숫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쓱- 쓱-
또다시 몇 장을 넘기자, 표와 함께 몇몇 그래프들도 곳곳에 보였다.
이를 읽는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었을 배려가 눈에 들어온다.
“흠.”
덕분에, 대충이나마 안에 적혀 있는 세부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온 것 같다.
하지만 짧은 시간만으로 보고서를 속독했기에, 놓친 중요 내용이 있을 법도 했다.
그렇기에 나는 찾아온 이들과 시선을 교환한 후, ‘이 안에 적어 둔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봐.’라는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이왕 전하.”
샌프란시스코에 일어난 대지진 때문에 쫄딱 망할 뻔했던 황금왕 잭 마일로.
내 도움 덕분에 구사일생한 그는 애원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와 눈빛을 교환했다.
“캘리포니아는 공화당의 세가 비교적 강한 지역입니다.”
그는 작년 초순.
캘리포니아주 공천위원장으로 당선되어, 생애 처음으로 선거를 진두지휘하게 되었다.
오늘 찾아온 세 명 가운데 가장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유도 이 때문이겠지.
일개 사업가에서 캘리포니아주 공천위원장으로 변신한 그였으니.
다시금 본래 자리로 돌아갈 수도 있단 불안감이 클 테니까.
사람은 본래 한번 감투를 쓰면, 그 맛을 잊지 못한다.
특히 재물을 다 모은 후, 명예 쪽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기업인들은 더더욱 그렇고.
잭 마일로는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평시라면 우리 캘리포니아주는 절반 이상이 붉은색으로 덮여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거가 고작 1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80% 이상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당마다 그 당을 상징하는 색이 있다.
보통 선거에서 공화당은 ‘붉은색’.
민주당은 ‘푸른색’을 제 당의 상징색으로 사용한다.
“캘리포니아가 회색빛이라.”
방금 잭 마일로와 내가 언급한 회색은 해당 선거 지역구에 있는 후보들이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치르고 있을 때, 이를 비유하는 색이었다.
나는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잭 마일로에게 다음 말을 했다.
“정말 큰일이로군. 공화당의 세가 강한 캘리포니아에서도 박빙이라면, 다른 주는 볼 것도 없을 테니.”
“······예.”
잭 마일로는 한껏 침울한 표정으로 내 예상을 받아쳤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대선과 함께 치러집니다.”
“그렇지.”
개개인의 역량이나 선거 공약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간선거와 다르게.
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해의 선거는 어느 대선 후보가 대중들의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서 선거 결과가 종종 뒤바뀌기도 한다.
빨간색이 전부 붉게 칠해져 있다 한들, 막판에 부동층이 민주당으로 몰리면 간당간당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접전인 상황이라면.
자칫, 이번에 모든 지역구가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완패로 귀결될 수도 있었다.
“자네들이 이리 덜덜 떨며 불안해할 만도 하군.”
“예.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연방의회 전체를 민주당 놈들에게 헌납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지난 중간선거 때보다도 더 큰 패배를 당하리라.
대통령 자리는 물론이고.
상원과 하원.
양원에서 모두 지게 되면, 민주당이 원하는 모든 정책이 이 나라에 펼쳐지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연방정부 건물에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이 생겨나는 인종차별 법안이 제정될 수도 있고.
기껏 체결해 놓았던 대한합중국과 미합중국의 군사동맹마저 조기에 와해할 수도 있었다.
‘이자들과 나는······.’
서로 이해관계는 다르지만, 한배를 탄 동료들이다.
그래서 록펠러는 물론이고.
허스트와 잭 마일로도 연초에 나를 찾아와선 대책을 연구하라고 압박을 하는 것이 아니겠나?
“흠.”
나는 크게 한숨을 들이마신 후에,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자네들 말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민주당에 모든 것을 내어줄 것일세. 큰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이 흐름대로 계속 흘러갈 테니까.”
민주당이 밀고 있는 선거 전략 구호는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눈에 확 들어왔다.
‘바꿔 보자, 우리 정치라······.’
1897년부터 1920년까지.
무려 24년간 공화당은 미국에서 대통령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이는 근래 민주당이 남북 전쟁을 일으킨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뭐만 했다 하면 그들의 과거 업보가 툭 튀어나오며 승부처에서마다 민주당에 패배를 안겨 줬으니까.
‘하긴. 그동안 공화당이 꿀을 빨며 오래 집권하긴 했지.’
공화당의 주요 표밭은 북동부 지역과 서부 해안 지역이다.
민주당 표밭인 남부 목화 벨트보단, 지난 이십 년 동안 상대적으로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었기에.
인구 비례로 선거인단을 책정하는 미국 대선 정치 구조상, 공화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레 포기하긴 이르다네. 이번 선거의 흐름을 바꿀 변수가 크게 두 가지 존재하니까.”
세 명의 남정네들은 ‘그게 뭡니까?’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에 나는 바로 답하지 않고, 손을 들어 보헤미안 클럽의 종업원을 호출했다.
“여기. 우리 회사에서 생산한 에델 바이스가 있나?”
“예.”
“한 병 내오게나.”
“예.”
에델 바이스는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막 생산되기 시작한, 내 회사에서 판매하는 포도주다.
나는 이를 소개하며, 살짝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들어온 후론 술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네. 내 목이 마르니, 목부터 축이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 가겠네.”
해결책을 알고 있는 자가, 술부터 한잔한 후에 알려 준다고 한다.
탐탁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할 테다.
버티면 버틸수록 기다리는 시간은 더더욱 길어질 테니.
잭 마일로와 허스트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내가 건넨 포도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응?”
“이거······.”
맛이 괜찮지?
나는 이들에게 우리 회사 포도주를 홍보한 후, 다시금 본론을 이어 갔다.
“다시 돌아와서, 기회는 두 번뿐이지. 한 번은 적백내전을 조기에 종전시킬 때 찾아올 것일세.”
“다른 하나는 무엇입니까?”
적백내전 조기 종전은 이들 머리로도 생각할 수 있던 아이디어다.
그렇기에 세 사람은 나머지 다른 혜안을 내 입으로 듣고 싶어 했다.
“두 번째는, 시민들에게 어필할 만한 경쟁력 있는 대선 후보를 찾는 것이네. 내 생각에는 이 두 가지 방법 외엔 공화당이 살길이 없다고 생각하네만.”
내 입에서 튀어나온 두 방안은.
정말이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모법 답안이었다.
“······.”
“······.”
“······.”
그래서일까?
세 사람은 실망한 티를 팍팍 냈다.
‘네놈들에게 당장 알려 줄 수는 없지.’
모름지기 비기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풀어야 하지 않겠나?
‘그 누가······ 원 역사에서 하딩이 다음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하겠어?’
이번 대선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유권자가 추가되었다.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진 거다.
‘그리고 하딩은 여성들의 몰표를 받으며 당선되었지.’
처음 치르는 선거여서 그런지, 이 시대 미국 여성들은 후보의 공약이나 신념보다 생김새를 보았다.
정말 대통령처럼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딩에게 표를 한 거다.
‘이미지 정치의 시작점이 될 거야.’
잘생긴 게 진짜로 정치에 도움이 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암살당한 케네디도.
불륜으로 탄핵당할 뻔했던 클린턴도.
왕년에는 여성들 울리는 뺨치는 미모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훔치던 놈들이다.
‘아직은 이를 몰라서, 아무도 주목하고 있지 않지만.’
이는 여성 유권자들을 우습게 봐서 그럴 것이다.
제 남편이 찍으라는 후보에 군말 없이 투표하리라는 그릇된 고정관념을, 여기 있는 이들 역시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나는 이 변수를 활용하여 이번 대선에서 역전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 * *
“저를 따로 보자고 하셨습니까?”
“그래.”
나는 허스트를 불러 놓고 한 가지를 물었다.
“십여 년 전에, 내가 자네에게 영국 채권을 매각하라고 조언했던 게 있지. 기억나나?”
“······!”
허스트가 기억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난 직후, 여기 보헤미안 클럽에서 조언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 덕분에 큰 손해는커녕 오히려 짭짭한 수익까지 챙겼지요. 기억합니다. 암, 기억하지요. 이를 어찌 잊었겠습니까?”
허스트가 밝게 웃으며 내가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추론하기 시작했다.
“그에 감사하여, 저 또한 전하의 부탁을 세 번 들어주기로 약조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네.”
“예전에 한 번인가 두 번, 제게 사적으로 무언가를 부탁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나도 십여 년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얼핏 기억나기로는.
일본이 우리 대한제국의 문화재를 강탈해 간 것을 허스트를 통해 미국에 알렸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지. 두 번 남았나 한번 남았나 확실치는 않지만······.”
나는 한쪽 눈썹을 씰룩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내 남은 부탁을 이번에 사용해 볼까 하네.”
“무엇입니까? 도울 수 있다면 최대한 돕겠습니다.”
허스트는 특종감을 발견한 기자처럼, 군침을 삼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허스트와 시선을 교환하며 조용한 목소리로 다음 말을 속삭였다.
“아까 말했듯, 앞으로 다가올 대선에서 조금이나마 유리해지기 위해서는 적백내전을 빠르게 매듭지어야 하네.”
“예. 그렇죠.”
허스트가 고개를 돌려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보았다.
그는 다시금 내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이번 봄에 런던에서 열리는 로열웨딩에서 각국의 정상들과 외교관들이 집결하지 않습니까? 그때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이왕 전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허스트의 주장에 동의했다.
“종전 협상을 위해 현 내각의 관료 중 하나가 런던으로 떠나지 않겠나?”
“그렇겠죠?”
“이때 파디가 협상단 대표가 되었으면 하네.”
“국무장관이 아닌 부통령을 말입니까?”
“그래.”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과 다르게 부통령은 별다른 업무가 없지 않은가? 이번을 기회 삼아, 마지막 정치 경력을 쌓게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만.”
허스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겨우 그런 이유로 파디를 미는 것은 이상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전하께서는 파디 부통령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미실 생각이로군요.”
“······.”
때론 침묵이 답일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말씀해 주십시오. 전하께서는 파디 부통령을 다음번 대선 후보로 밀고자 하십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것은 대선만큼이나 변수가 많고, 각 세력의 이해관계가 치밀하게 얽혀 있네. 내가 원한다고 한들 파디가 다음번 대선 주자로 선정될 수 있겠나?”
그렇다, 아니다 등의 답은 말하지 않고.
이번에도 원론만을 이야기했다.
이에 허스트도 저 스스로 무언가를 추측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내뱉었다.
“전하께서 원하신다 해도, 정말 파디 부통령이 다음번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뭐, 아무튼······ 알겠습니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부탁은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언론사 사주는 힘이 있는 자리다.
특히나 허스트처럼 대형 언론 그룹의 사주라면, 오늘 내로 내각의 일원들과 대화를 할 수 있을 터.
“여우 같은 놈.”
나는 보헤미안 클럽 건물을 빠져나오며 허스트와의 지난 대화를 회상했다.
“저놈, 한 시간도 못 버티고 모건과 로스차일드 자식들에게 연락을 돌릴 걸세.”
“그렇겠죠?”
최현우와 대화하며, 허스트의 다음 행동을 유추해 보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공화당 파벌 수장들에게도 방금 얻은 정보를 공유할 겁니다.”
“그렇겠지.”
모건과 루스벨트가 다툴 때도.
록펠러와 모건이 다툴 때도.
중간에 끼어서 이중 첩자 노릇을 하던 이가 바로 허스트이지 않은가?
이놈만큼 입이 가벼운 자는 미국에 없기에, 나는 이놈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뭐, 그게 내가 원하는 바니까.”
파디는 버리는 패다.
본선 경쟁력도 별로 없고, 무엇보다 다른 경쟁자들의 시선을 이자에게 잠시 쏠리도록 만들어 둘 필요가 있기에.
이를 이용한 거다.
“슬슬 시간이 되어 가는군. 오랜만에 런던으로 떠나는데······ 준비는 착실히 하고 방문해야 하지 않겠나?”
혐성국의 중심에 방문한다.
까딱하면 언제 어떻게 또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을지도 모르니까.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 구원 요청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