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5화(35/392)
< 사람 투자 (3) >
잠시 망설였던 김종림은 눈을 질끔 감았다가 뜬 후,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한 가지 소망을 내게 말했다.
“농기계를 새로 들였으면 합니다.”
“농기계? 어떤 농기계 말인가?”
“소달구지 같은 거 말고, 그 있잖습니까. 가축들 없이도 스스로 움직이는······.”
“아하! 트랙터 같은 것들을 말하는 건가?”
“예. 맞습니다.”
김종림이 내 눈치를 힐긋힐긋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언어가 잘 안 통하여 유길준 선생과 함께 시내에 나가 봤는데 말입니다. 알아보니 그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서 도저히 살 엄두가 안 났습니다.”
그래.
아무것도 없이 몸뚱이 하나만 덜렁 온 김종림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그 값이 비쌀 거다.
“소, 소인을 믿고 이를 구매해 주십시오.”
제 것도 아니고 남의 호주머니에서 거액이 나가는 일이다.
그랬기에 김종림은 살짝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살짝 굳은 얼굴과는 다르게 입은 좀 풀렸는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은 눈치 보며 계속 이야기했다.
마치, 내 절친이었던 제이(Jay)처럼 말이다.
“이 허허벌판을 이대로 놀리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흠······.”
“여기 현지인들 상당수는 농기계를 사용해서 농사를 짓습니다. 다들 합당한 이유가 있기에, 트랙터인가 뭔가를 사용할 것입니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입은 꼭 다물고 있었다.
나는 현대인으로서 기계의 우수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도입하지 않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시기가 애매해.’
트랙터는 이미 시중에 많이 보급되어 있다.
문제는, 그게 증기기관으로 돌아간다는 거지.
농업 쪽에 종사했던 것은 아니기에, 정확히 언제 ‘내연기관’이 탑재된 농기계가 시장에 나오는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거리 곳곳에 자동차가 보이는 것을 보면, 멀지 않은 시기에 분명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기다리며 관망하고 있었다.
“전하께서는 그저 저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이용?”
“예. 기계를 사용해 벼를 재배하는 것과 사람만을 이용해 벼를 재배하는 것. 두 가지를 비교한 후, 효율성을 따져 보시면 됩니다. 더불어 만약 효용성이 떨어지면, 제 봉급을 일부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라면 증기기관이 달린 트랙터를 사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농장을 소작하는 김종림이 저리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내 생각도 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종림의 말대로 얼마나 효율성 차이가 나는지도 알고 싶고.
무엇보다, 이들 스스로 어디까지 해낼 수 있냐도 궁금하니까.
‘살짝 무리일 수도 있으나······ 교민들 스스로 농기계를 개량할 수도 있지 않을까?’
농업 기술이 발전하며 여러 농기계가 속속 나오고 있지만, 아직 벼농사에 특화된 것들은 없었다.
그야 서양에서는 밀 농사가 주니까.
벼농사 관련 기계들은 수요가 크지 않다.
‘투자해 보자.’
나는 고심하는 척,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답을 내놓았다.
“흠······ 그대의 말도 일리가 있군. 자네 제안대로 트랙터 세 대를 사들이도록 하겠네. 한 대는 자네의 소작지에서 시험 삼아 사용해 보게나.”
“나머지 두 대는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세 대 중 한 대의 사용권을 줬으나, 나머지의 향방도 자못 궁금한가 보다.
나는 이 또한 김종림에게 알려 주었다.
“다른 한 대는 예비로 두고 쓸 생각이지만, 나머지 한 대는 화끈하게 분해해 볼 생각이네.”
“그 비싼 것을······ 부, 분해하신단 말입니까?”
“그래. 아, 기왕이면 시중에 나온 자동차도 사들여야겠군. 그것도 함께해체해 봐야겠어.”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기존 트랙터의 구조를 그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그래야 새로운 모방품을 창조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네에게 부탁할 게 있네. 주변에 손기술이 좋은 자들이 있나 한번 찾아내 보게나. 나는 그자들을 가르칠 선생들을 구해 보겠네.”
각양각색의 출신이 미주로 건너왔으니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이도 있겠지.
없다면, 우선 자원하는 이들 위주로 강의를 열어 볼 예정이다.
‘또 어찌 아나? 조선인들은 손기술이 좋으니, 자동차나 농기계를 뚝딱 만들어 낼지도.’
자동차 산업은 이제 막 태동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인이 세운 자동차 회사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그야말로 최고겠지.
농기계를 개량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어도 좋고.
최악을 가정해도, 기계 관련 기술자들이 생겨난다면 퉁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대지진 후 보험금을 수령하며 보험사에서 뷰익 자동차 지분도 일부 양도받았는데······.’
GM의 창업자인 윌리엄 듀랜트도 언제 한번 만나 봐야 할 것 같다.
그와 협업할 수 있는지도 문의해 볼 수 있고.
아니면, 내년 이후 일부 추가 지분 투자가 가능할지 물어볼 수도 있으니까.
어찌 되었건, 자동차 산업은 앞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곳에 살짝 발만 담그고 있어도 나의 재산 형성에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맡겨만 주십시오. 전하.”
나의 역제안에 김종림이 밝게 웃었다.
“그런데, 내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아까부터 계속 거슬리는 게 있었다.
김종림은 오른쪽 팔목을 의도적으로 가리고 있다.
“그 오른쪽 상처 말일세.”
“예? 이건, 왜 물으시는 것입니까?”
내 절친 제이와의 대화가 자꾸 생각나서 꼭 듣고 싶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호랑이와 싸워 오른팔에 큰 상처가 생겼다 했던가?
“그 상처는 무엇 때문에 그리된 건가?”
“아, 이거 말입니까?”
김종림이 과거를 회상하듯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상처가 생긴 일화를 내게 설명했다.
“제가 살았던 본가에서 고양이를 한 마리 키웠었는데 말입니다. 그놈이 어찌나 성격이 더럽던지······ 제 팔을 이리 만들어 놓았지 뭡니까?”
이 시대는 의학이 발전하지 않았다.
작은 상처가 덧나서 흉이 크게 지기도 했는데, 그의 팔에 난 상처 역시 이 때문이라고 한다.
“호랑이와 싸우다 생긴 상처가 아니고?”
“에이, 전하께서도 농이 지나치십니다. 제가 호랑이랑 어떻게 싸웁니까? 아무리 함경도에서 태어난 사내라도 그건 무리입니다.”
뭐야.
그럼 제이가 거짓말을 한 건가?
아니면······.
제 손자에게 허풍이라도 떤 것일까?
“혹, 전하께서도 애완동물을 키우십니까? 안 키우신다면 한번 꼭 키워 보십시오. 특히나 고양이 말입니다. 정을 주는 듯 안 주는 듯한데······.”
그 진실은 저 멀리에 있겠지.
이젠 확인할 방도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김종림은 고양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내였다.
“고양이를 한번 꼭 키워 보십시오. 진짜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시금 내 친구 제이랑 그 모습이 겹치는 것 같았으니까.
내 친구 역시 애묘인이었다.
그것도 광적으로.
* * *
김종림을 뒤로한 채,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돌아왔다.’
내 시야에 익숙한 풍경이 잡혔다.
정겨운 내 집.
약 두 달 만이기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도산(안창호)과 우성(박용만)을 불러주게.”
나는 빠르게 두 인물을 우리 집으로 호출했다.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전하.”
“일단 앉게나.”
막 내온 커피를 두 사내에게 건네며, 내가 없을 때 샌프란시스코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확인했다.
“남아 있는 교민들은 어찌 지내고 있는가?”
내 말에, 안창호는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곤 교민들의 상황을 보고했다.
“다들 합심하여 교민들이 우선 살 집부터 만들고 있습니다.”
“자금은 전하께서 출연하신 협동조합기금에서 일단 대출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재빨리 우현식을 찾았다.
우현식은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서류 가방 여러 개를 들고 온 후, 그중 하나를 그들 앞에 내려놓았다.
“보험금일세.”
교민들과 일부 소수인종(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의 보험금 수령을 대리했다.
이를 다시 화재보험에 가입한 교민들에게 되돌려줘야 할 터.
내가 일일이 그들은 만나는 것은 번거로웠기에, 비교적 인망이 높은 이 둘에게 이를 맡길 생각이다.
“로이드사의 전환사채로 받아 왔네. 이게 더 유용할 것 같아서 말이지.”
“전하.”
안창호가 입을 뗐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끊고 먼저 말했다.
“나 또한 잘 알고 있네. 교민들은 나와 다르게 당장 쓸 돈이 필요하니까.”
“······ 맞습니다.”
“그래서 내 사비를 털어 여기 그들에게 줄 현금들을 마련해 왔네. 가져오게나.”
우현식이 다른 서류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리고 열었다.
그 안에는 현금다발이 가득했다.
“계약된 보험금에 10%를 더 얹었네.”
“······.”
“전환사채는 앞으로 더욱 뛸 것일세. 하지만 부득이하게 그 전에 팔아야 할 사람도 있으니······. 내가 볼 이익 중 일부를 이들과 공유하려고 하네.”
교민들은 내 자산.
그들에게서 신망을 잃으면, 내 힘의 절반은 뚝 떨어져 나갈 것이다.
사전에 막을 수 있다면, 막아야 하지 않겠나.
작은 구멍이 크기를 키워 댐을 무너트릴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 꼼꼼히 평판 관리를 시작하는 거다.
“자네들이 이들에게 잘 설명하고, 전환사채를 일부 섞어서 받을지 아니면 전액 현금으로 수령할지 결정하게끔 하게.”
선택권을 주되, 결정은 그들 몫이다.
내 설명을 잘 이해했는지, 안창호와 박용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자네들을 이리 따로 부른 것은 한 가지를 부탁하기 위함이네. 내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네.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이야.”
하와이에서도 한번 이야기를 꺼냈고 한 달 뒤면 공식적으로 장학재단 첫 수혜자가 나온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일단 수가 너무 적다.
더욱이 내게는 꼭 고등교육을 마친 이들만 필요한 게 아니다.
‘벼농사에 쓸 농기계만 해도 그래. 손기술이 있는 이들이 주변에 널려 있으면 얼마나 좋아. 그렇다면, 대충 말만 해도 뚝딱뚝딱 만들어낼 텐데.’
인재가 없다면 결국에는 키워 써야 한다.
시간도 많이 들고 돈도 제법 써야 하지만, 이 방법뿐이다.
“도산.”
“예, 전하.”
“듣기로 자넨, 교민들의 교육 활동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던데 말이야.”
“맞습니다.”
“여기, 샌프란시스코에······ 학교를 하나 세워 봄이 어떠한가? 내 자금은 전액 지원하겠네.”
안창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진의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학교라면······ 어떤 학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거창하게 대학교는 아니고, 교민들이나 그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문을 가르치고 싶네. 현지 학교에 보내도 좋겠다만, 알다시피 그곳에 보내면 완전한 미국인이 되어 버리지. 우리네 정체성을 잃게 될 수도 있네.”
나는 벌떡 일어선 후, 고개를 돌렸다.
내 방에 걸려 있던 세계 전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조선어를, 나아가 한글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네. 우리말을 잊게 만들 수는 없지.”
빙의한 후 여러 조선인과 교류하며 느낀 점은, 현대에 쓰는 한글과 지금 그들이 쓰는 한글은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좀 더 번거롭고 어려웠는데, 안창호가 이를 깔끔하게 정리하여 체계를 세운다면 현대 한국어처럼 간결해질 것 같았다.
“필요하다면 본국에서 학자들을 초빙해도 좋네. 그 비용까지 모두 내가 지원하겠네.”
나는 이내 고개를 돌려 박용만을 바라보았다.
“학교뿐만 아니라 기술자들을 양성할 직업교육원 또한 있어야 하는데, 그건 우성 자네가 전담했으면······.”
“전하!”
박용만이 급히 내 말을 끊었다.
그는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내게 다른 것을 제안했다.
“직원교육원이 아닌, 군사학교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군사학교?”
“예.”
아! 맞다.
전에 한 번 대화를 나누었을 때, 박용만은 그쪽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바 있었다.
“어째서, 군사학교를 설립하고 싶은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이게 필요할 날이 곧 다가올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나는 살짝 뒷말을 끌며 박용만의 표정을 살피었다.
“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네. 하지만 군사학교보단 기술학교가 우선순위라서 말이야. 자네가 이를 맡아 줄 수 있겠는가?”
박용만은 만족스럽지 않은지, 입을 계속 꿈틀거렸다.
“우성, 넓게 생각하게. 기술학교에서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 또한 앞으로 자네의 계획에 도움이 될 것일세. 소총 같은 무기가 어디서 만들어지는지는 자네가 더 잘 알지 않은가?”
“끙······.”
“내 약속하지. 조만간 군사학교 역시 설립하도록 하겠네. 그리된다면 자네를 책임자로 임명할 것일세.”
“분명······ 그리 약조하셨습니다.”
박용만은 아직도 불만족스러운지 오른쪽 엄지손톱을 연신 물어뜯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안창호가 혀를 차며 그런 박용만을 질타했다.
“우성, 한동안 잘 참더니만 자네의 좋지 않은 버릇이 또 나오는군.”
“쳇. 도산 자네는 자네가 원하는 걸 얻지 않았나? 나도 전하께서 군사학교 하나 떡하니 차려 주었으면 이리 행동하지 않을걸세.”
나는 옥신각신 싸우고 있는 두 인물을 향해 재차 물었다.
“그래서, 어떤가? 둘 다 내 제안을 수락할 텐가?”
“전하께서 이리 친히 불러 부탁까지 하셨는데 저희가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런가, 우성. 응?”
“분명, 약조하셨습니다. 저는 전하의 그 약조만 믿겠습니다.”
끝까지 박용만은 아쉬운 티를 냈다.
그의 무서운 집념이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 * *
“크······.”
커피 맛 좋고.
‘이 집, 커피가 맛집일세.’
샌프란시스코는 한창 공사 중이었다.
나는 비교적 건물들이 남아 있는 노던 부두 인근을 돌아다니며 샌프란시스코에 무엇이 필요한지 조사 중이었다.
‘이자들이 다음 주에 장학금을 받을 인재들인가······.’
그와 동시에, 내 인재를 키우는 일에도 몰두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온 지 일 년.
두 달 뒤면 새 학기가 시작되기에.
대학에 입학할 새로운 인물들을 살피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처음 보는 동양인이 내게로 접근해선, 영어로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다, 이 왕자님.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내 경호를 맡고 있던 아론과 카플란, 맥스가 벌떡 일어났다.
낯선 사내는 더는 내게 접근하지 못한 채, 다섯 발자국 앞에서 멈췄다.
“흠. 자네는······.”
뒷말을 끌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자는 누구일까?
하와이에서도.
샌프란시스코 교민회에서도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인데.
‘조선인은 아닌가?’
왜 그리 생각하냐고?
그야, 동양인인데 내게 영어로 말을 걸고 있었으니까.
조선인이라면 편한 제1 모국어가 있는데, 굳이 번거롭게 내게 영어로 대화를 걸겠는가?
‘그 녀석들이겠지.’
높은 확률로 일본인일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경계심을 한층 더 끌어 올렸다.
“누구인가? 혹, 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가?”
“아, 제 소개를 안 했군요.”
낯선 손님은 방긋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이 왕자님, 제 이름은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입니다. 전에 한번 서찰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는데 말입니다.”
< 사람 투자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