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51)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51화(351/392)
< 로열웨딩 (2) >
‘이자가······ 히로히토라고?’
현대에서 박병준으로 살았을 때, 나는 재미교포인 탓에 동아시아 위인보단 유럽 위인을 더 많이 알았다.
하지만 이자의 이름만큼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8월 15일.
라디오에서 일본 시민들에게 무조건 항복을 권했던 자가 바로 내 앞에 서 있는 이자 아니었나?
‘히로히토는 S급 전범이지만 재판에는 서지 않았던, 일본의 살아 있는 신이었다.’
그런 그자가 지금 내 앞에 있다.
원 역사에서 전사한 미국인을 포함,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을 죽였던 일본 제국의 수장이 내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미친.’
나는 끓어오르는 속마음을 전문가답게 삭히며 가만히 히로히토를 쳐다보았다.
“······.”
“······.”
면전에 대고 쌍욕을 박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기에, 나는 의도적으로 히로히토의 인사를 무시했다.
“제가 별로 반갑지 않나 봅니다.”
“······.”
“······아! 이해합니다. 삼남, 그러니까 야마토 주가 아직도 일본 제국의 아래에서 통치되고 있어서 그럽니까?”
히로히토는 어렸지만 만만치는 않았다.
내가 계속 무시로 일관하자, 일본어로 작게 속삭이며 말을 걸어왔다.
옆에 있던 통역 역시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 히로히토의 말을 조선말로 통역해 주며 나를 도발했다.
이에, 나는 주먹을 꽉 쥐며 그를 노려보는 것으로 응수했다.
“황태제 전하의 삼남 사랑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다면서요?”
“······.”
“아직 어리긴 하지만 전하께 한 가지 조언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야마토 주는 우리 일본이 합법적으로 인수한 지역입니다. 대한제국이······ 아니지. 이제는 조선이라고 불리는 합중국의 일원이, 우리 일본으로부터 빌린 막대한 외채를 상환하기 위해 양도한 영토이지요. 우리 일본은 이 지역을 절대 반환하지 않을 것입니다.”
히로히토는 속삭이듯 말하며 내게 계속 도발을 걸었다.
“옛말에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도 하루속히 고국으로 돌아가심이 어떠십니까? 정처 없이 유랑하시는 것보다는 말입니다.”
통역이 조선말을 할 줄 안다.
이는 곧 준비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나와 마주했을 때 할 말들을.
“내, 감동하였네. 처음 본 그대가 나를 이렇게 걱정해 주다니.”
나를 위해 이리 지극정성으로 선물을 준비했는데, 나야 질 수 있겠나.
나 역시도 통역관을 데리고 왔다.
영어를 아주 수월하게 구사하는 내가 영국 결혼식까지 왜 통역관을 데리고 왔겠나?
바로 오늘 일어날 수도 있는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뱉은 주장들은 하나같이 거짓투성이로군. 그 옛날, 우리 조선을 약탈했던 왜구(倭寇)들의 수장답게 말이지.”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도발한다면 도발로 대응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나?
‘어차피 여기 있는 서양인들 대다수는 일본어나 조선말을 하나도 못 할 텐데.’
웃으면서 싱글벙글 대화를 나눈다면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것으로 알지, 서로 칼을 겨누며 치고받고 싸운다고 눈치채겠나?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길래 자국어로만 대화가 오가는가?”
봐라.
내 옆에 있던 헨드릭만 해도 그렇다.
동아시아어로만 대화가 오가니.
저놈이 알 턱이 있나?
“여기 알렉세이와 앨버트 왕자 역시 자네와 인사를 나누겠다고 기다리는 중일세.”
아아.
히로히토와의 대화에 집중한 나머지.
알렉세이와 영국의 둘째 왕자가 근처까지 다가오는 것도 눈치를 못 챘네.
“대부님. 강녕하셨습니까?”
“그래. 건강은 어떠냐?”
“대부님 회사에서 제조한 약 덕분인지 많이 아프지는 않습니다.”
“앨버트 왕자도 와 있으셨구려. 반갑소이다.”
“또, 또 뵙네요. 이, 이 황태제님.”
헨드릭은 슬쩍 나와 히로히토를 번갈아 바라보며 호기심 넘치는 눈빛으로 한 가지를 물었다.
“우리도 좀 끼워 주게나.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자네와 히로히토 황태자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던 겐가? 옆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만 오가서 그런지, 더더욱 궁금해져서 꼭 물어보고 싶네.”
“아! 내가 왜 속히 고국으로 못 돌아가는지, 여기 있는 히로히토 황태자가 나를 걱정해 주었다네. 내 말이 맞지요? 히로히토 황태자?”
나는 피식 웃으며 헨드릭에게 별거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히로히토 역시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합중국 국민이 이 황태제 전하를 몹시도 그리워하고 있는데 말이죠.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이 황태제는 삼남이······.”
내 딸과의 국혼 때문인지, 헨드릭은 일본과 우리 합중국 사이에 갈등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핸드릭도 내가 왜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는지를 대신 설명하려고 했는데.
나는 그의 말을 살짝 끊으며 오히려 헨드릭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자네! 내가 왜 아직도 해외를 전전하고 있는 줄 아는가?”
“······.”
“방금 자네가 언급했던 삼남 문제도 문제지만, 이보다 심각한 하나가 내 앞을 가로막아서라네.”
헨드릭과 앨버트, 그리고 알렉세이는 ‘그게 뭔데’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에 나는 숨겨 둔 애로사항을 언급했다.
“만약 내가 당장 조선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밖에서 한동안 지내야 할 것이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세계 제일의 부자에게 집이 없다니.
듣고 있던 세 명의 청중은 그게 어디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보였다.
아, 정정한다.
넷, 아니지, 그 이상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히로히토와 그의 무리도 세 사람처럼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으니까.
“예부터 조선에서 국본(國本)의 거처는 동궁이라고 불렸네. 내 알기로, 동궁은 보통 경복궁 자선당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나는 숨은 비화를 언급하며 그들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으며 많은 것이 달라졌다네. 그중 하나가 바로 경복궁 건물의 철거였지. 뭐, 이쪽에서는 여러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네. 오 년 전에 일어난 한양 대화재 때문에 왕실 어르신들이 거주하시는 창덕궁이 불탔고, 이를 복구하기 위해 경복궁 건물 일부를 헐긴 했으니까.”
나는 일본 측 인사들이 변명을 늘어놓을 구실들을 하나씩 내 손으로 제거하며 현재 자선당 건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자선당이 이 때문에 사라진 건 아니네. 자선당이 사라진 건, 동아시아 전역에서 보물들을 훔치던 오쿠라 기하치로가 이를 불법적으로 불하받아 일본으로 가져갔기 때문이지.”
내가 미국에 머무는 것은 삼남 문제도 문제지만, 그자 때문이라도 하다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히로히토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내게 변명할 거리가 있느냐고 무언의 제스처를 취한 거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는 것이지.”
“그 무슨 해괴망측한······.”
히로히토는 당황했는지 얼굴을 붉게 붉히며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이에 나는 히로히토의 어깨를 두들기며 화를 가라앉히라고 권했다.
“이 좋은 날, 남의 집 경사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좋은 손님으로서의 덕목이 아니네.”
“······.”
“그러니 우리 조용히, 한 가지 내기로 이번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어떤가?”
히로히토는 살짝 흥분하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먼저 들어 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나는 안주머니에서 만년필 하나를 꺼낸 후, 행사장 주변에 보이는 냅킨 하나를 집어 들었다.
“조금 전 내가 했던 말.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네는 그 즉시 자선당을 대한합중국에 반환하게. 일국의 황태자로서 그 정도는 쉬이 진행할 수 있겠지?”
“만약 본인이 이기면 제게는 뭘 주실 것입니까?”
히로히토의 물음에 나는 다음을 말했다.
“만약 내 말이 거짓이라면, 내 사과의 의미로 오백만 달러를 자네에게 건네겠네.”
엄청난 금액이 오가는 내기다.
이에.
헨드릭은 물론이고 알렉세이와 앨버트 왕자의 눈까지 동그래졌다.
“증인은 여기 있는 세 분이 맡아 주시는 거로 하고. 어떤가? 나의 제안이······.”
히로히토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잠시 고민하던 히로히토는 내게로 다가온 후 탁자 위에 있는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만년필을 내게 건네며 한 가지를 더 추가해 달라고 요구했다.
“만약 조금 전 했던 말이 거짓이었다면······ 방금 저와 우리 일본을 모욕하신 것에 대해 사과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말입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나 역시 황태자 그대의 사과 또한 받고 싶지만······ 내가 먼저 제안한 내기니,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하겠네. 자, 그럼. 사인하겠나?”
나의 권유에 히로히토가 만년필을 건네받았다.
그는 자신이 이길 것을 확신하는 듯한 표정으로 내가 건넨 만년필을 움직였다.
“흠. 아직 어려서 그런가······ 자네 사인이 생각보다 별로구먼.”
“······.”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라도, 멋들어진 사인을 하나 고안하도록 하게.”
진짜로 형편없어서 했던 충고였다.
높은 확률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고, 일본은 추축국이 될 거다.
원 역사대로 흘러간다면, 이자 역시도 항복 서명을 다시 한번 하게 되지 않을까?
그때를 생각하며 나는 한 가지를 충고했다.
“내 이것은 같은 아시아 왕족으로서 자네에게 조언해 주는 것이네.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고.”
“······.”
“사인을 새로 만들게. 지금 것은 너무 형편없네.”
* * *
히로히토의 유럽행은 1918년, 표면상 일본 황실을 찾은 영국 왕자들의 방문에 대한 답방이었다.
하지만 물밑에는 여러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전후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던 일본.
더욱이 잇따른 강화회의와 군축회의에서 일본 정부는 아무것도 얻어 낸 것이 없었기에.
일본 신민들의 불만은 현재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유럽으로 돌리기 위해 히로히토는 유럽으로 가야 했는데.
“그래. 확인해 보았나?”
“······.”
오늘 이강과 대화를 나누며 살짝 분란을 일으켰고, 지금 그는 후회 중이었다.
“그자의 입에서 나왔던 주장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전하.”
“······그래?”
“예. 송구하옵지만, 그렇다고 합니다.”
히로히토는 자신만만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다이쇼 덴노의 장남으로 태어난 직후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일본의 조선 점령은 그들이 원했던 일이라고 교육받았으며, 삼남의 양도 역시 그가 말했던 것처럼 조선 왕국이 그들의 부채 탕감을 위해 순순히 이를 넘긴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전하. 전하께서 당하신 오늘의 수모는 소장이 할복함으로써······.”
이강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며 대중들을 잘 선동한다고, 여러 은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내기에 응한 것이었다.
이강이 또 거짓말을 하며 자신을 기만하고, 결혼식에 참석한 청중들을 오도하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지금 그는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쯧쯧.”
히로히토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연달아 창피를 당하란 뜻인가?”
“······.”
“자넨 지금 남의 집 건물을 도둑질한 것에 이어서, 제 신료를 할복하게 만든 냉혈한으로 저들이 날 조롱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네.”
“······!”
히로히토는 어릴 적부터 도쿄에 있는 사관학교에서 전쟁 군주가 되도록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주변에는 유독 군인들이 많았는데, 이번 영국 방문길에서 그를 보좌하는 청년들 대다수도 사관학교 생도들이었다.
“이 왕자가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겠나? 또 그 가벼운 입을 가지고 사방팔방을 쏘다니며 험담하러 다니겠지. 아직 약관(弱冠)도 지나지 않은 나 또한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지는데, 그대들은 어찌하여······.”
히로히토는 한숨을 푹 쉬며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히로히토의 측근인 모리가 고개를 숙이며 히로히토의 의견을 물었다.
“그럼, 어찌 하올까요? 전하.”
“어쩌긴. 조금 전, 만인들 앞에서 했던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나?”
이 왕자의 의도대로 이 모든 것이 흘러가는 게 살짝 분했지만······.
어쩔 수 없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내기에 응했지 않았나?
“자선당을 대한합중국으로 반환하게.”
“······.”
“더불어 조금 전 이 왕자가 언급했던, 그 문화재 도둑놈. 오쿠라라는 놈의 집을 샅샅이 뒤져서 그자가 소유하고 있던 다른 조선 유물들도 넘기라고 하게나.”
“······!”
“······!”
히로히토의 측근들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말은 내기 조건에도 없던 것이었기에, 수하들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히로히토의 마지막 명령에 의문을 표했다.
“하오나······.”
“내기에 져서가 아니네. 오쿠라 놈의 도둑질로, 내 이 왕자에게 조롱당하지 않았나?”
이에 히로히토는 주먹을 꽉 쥐며 측근들을 설득했다.
“이 왕자에게는 훗날에 복수한다고 치고, 일단은 오쿠라라는 놈부터 처리해야 하네.”
“아, 그렇죠. 안 그런다면 전하의 위신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내기에서 진 원흉을 제거해야 했기에, 다음 명령까지 내렸던 거다.
측근들은 이를 그리 해석하며 자리를 떴다.
‘재수 없는 자식.’
하지만 히로히토는 한편으로 이강이 부러웠다.
일본 지식인들이 그토록 염원한 명예 백인 아시아 왕자가 딱 이강의 모습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무섭기도 하고.’
일본 정치인 중 이강과 엮여서 끝이 좋았던 자는 없다.
히로히토 역시도 어찌 보면 정치인.
‘하지만 나는 결코, 이강에게 지지는 않을 거야.’
히로히토는 주먹을 꽉 쥐며 다짐했다.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반드시 이기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는 잠을 청했다.
< 로열웨딩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