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6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65화(365/392)
< 폰지 (4) >
“아! 기억납니다.”
히로히토가 손뼉을 한번 친 후, 스기우라를 바라보며 뭔가 알아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 번쯤 들어 봤던 이름이라 어디서 봤나 했는데······ 지난번 방문한 런던에서 그자를 만났던 것 같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예. 정확히는 에드워드 왕세자의 결혼식에서 보았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아리송했는데, 이제야 그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군요. 그때 이······ 윽-”
“세, 셋쇼노미야님!”
말을 열심히 잘하던 히로히토.
그가 갑자기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인상을 팍 찌푸리며 비틀거렸다.
“셋쇼노미야님!”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주변의 대신들이 모두 일어나서 히로히토를 부축하기 시작했다.
“아, 잠시 어지러워서 그만.”
히로히토 또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역시 갑작스러운 몸의 반응에 놀란 것이다.
‘뭐지?’
그저 이강의 얼굴을 한번 떠올렸을 뿐이었는데.
순간 속에서 화기가 확 올라오며 숨이 막혔고,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아마도 이강과의 내기에서 졌던, 그때의 안 좋았던 추억이 트라우마로까지 발전한 모양이다.
그래서 이강을 생각하기만 해도 몸이 자연스럽게 방어기제를 펼치는 것 같았다.
“······.”
“······.”
괜찮다고 말했지만, 대신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히로히토를 계속 관찰했다.
이는 히로히토가 몸이 편찮은 다이쇼 덴노를 대리하여 섭정을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덴노가 아픈 상황에서 섭정까지 쓰러진다면, 일본의 최고 통수권자 자리는 일시에 공백이 되어 버린다.
히로히토에게는 동생이 무려 3명이나 더 있었지만, 다들 아직 어렸고 제왕 수업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랬기에.
이 자리에 모인 관료들은 히로히토를 흘깃흘깃 곁눈질하며 그의 건강을 계속 걱정했다.
“본의 아니게, 스승님들을 불안하게 만들었군요. 고개 숙여 사과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
“그나저나, 폰지라는 인물이 그리도 대단합니까?”
히로히토는 능수능란하게 대화 주제를 자신의 신변에서 폰지라는 인물로 다시금 돌렸다.
그의 스승들은 의심 가득한 표정을 거두진 않았지만, 히로히토의 질문에 대답하며 대화 주제가 폰지에게 쏠리는 것을 용인했다.
“그자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도착하자······ 수많은 영국의 귀족들이 그자에게 아양을 떨며 접근하긴 했었는데 말입니다. 스승님들께서도 뭔가 들은 게 있으십니까?”
스기우라는 영국 유학파 출신 관료였다.
이 시대 일본은 서로 밀고 당겨 주는 문화가 주를 이뤘는데.
대부분 같은 지역에 연고를 두었거나 학교 선후배들 등의 인적 네트워크로써 얽혀 있었고, 스기우라 역시 그랬다.
그는 영국에서 유학 중인 제 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거론하며, 폰지가 영국에서 얼마나 유명한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셋쇼노미야님. 제 후배들이 고하기론, 런던에 사는 귀족 중 그자에게 돈을 안 맡긴 자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수익률이 높아, 다들 가진 재산을 모두 맡겼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스기우라의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일단 영국에서 폰지가 유명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귀족들은 일단 서민들과는 달리, 자신의 재산을 폰지에게만 맡기진 않았다.
로스차일드 계열 투자은행 같은 기존 거래처와의 관계를 단박에 끊긴 어렵고.
더하여 갑자기 떠오르는 폰지의 회사가 끌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살짝 위험해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가진 돈의 아주 소량만을 넣어두며 간을 보고 있는 상태였다.
“허허. 폰지가 그런 유명한 인사였다니. 영국에 있을 때 폰지와 좀 더 이야기해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이거, 참으로 아쉽습니다.”
폰지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신대륙이나 아시아 사람이 아니었다.
미국인을 포함한 타 비유럽인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영국인들로서는 모건이나 록펠러, 이강보다는 폰지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영국인들은 폰지를 과대평가했고, 이 평가가 그대로 스기우라에게 전해져 히로히토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다.
“때마침 다음 달이면 폰지가 이곳 도쿄에 들른다고 하니, 한번 만나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스기우라의 제안에 히로히토는 잠시의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수용했다.
“알겠습니다. 내 스승님들을 믿고 그자를 한번 만나 보겠습니다.”
* * *
폰지는 요즘 잠을 통 못 자고 있었다.
그의 말도 안 되는 사기 행각이 막바지로 치달으며, 점점 기존 가입자들에게 이익을 배분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히로히토 황태자님.”
그래서 폰지는 결심했다.
이번 일본 일정에서 자신의 퇴직금을 만들기로.
“외신은 찰스 폰지라고 하옵니다.”
“내 그대의 위명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네.”
이러한 폰지의 속마음을 히로히토가 알 리가 없다.
그렇기에, 히로히토는 아주 극진하게 폰지를 응대하며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뉴욕에서는 자네를 두고 제2의 JP모건이 될 것이라 이야기한다던데.”
“혹자는 그리 부르긴 합니다만······.”
폰지는 살짝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당하게 고개를 들었다.
“저는 제2의 누군가보다는 찰스 폰지가 되고 싶습니다.”
“하하하, 그런가?”
살짝 오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겸손을 지향하는 동양인들과 달리, 서양인들은 제 능력을 남에게 자주 어필한다.
이번 영국 순방을 계기로 히로히토는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아주 제대로 체험했기에.
이러한 폰지의 오만한 모습마저 멋져 보였다.
“마음에 드네. 암. 그래야지. 사내라면 본디 누군가의 그림자를 뒤쫓기보단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법 아닌가.”
폰지는 세기의 사기꾼이다.
사기꾼의 제1덕목은 상대하는 이가 현재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지, 아니면 불신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전하께서 저를 찾으신 건, 저희가 운영하는 투자 포트폴리오에 관심이 있으셔서겠지요.”
폰지는 히로히토가 자신을 아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랬기에 계속, 살짝은 무례할 수 있어도 본론부터 꺼내며 속도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서양인들은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을 싫어하던데 자네도 비슷한 과인가 보군.”
폰지는 살짝 뜨끔했다.
히로히토가 의자에 등을 대며 팔짱을 끼는 방어적인 행동을 했으니까.
너무 서둘렀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지금 물러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기에 계속 당당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이에 히로히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가지를 고백했다.
“내 그대 앞이니 솔직하게 말하겠네. 그렇네. 솔직히 관심이 있네.”
“그렇군요.”
폰지가 서류 가방을 뒤적이다가 이내 서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뭔가?”
“특별 VIP들에게만 제안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폰지는 일반 투자은행과는 차원이 다른, 조잡스러운 투자 제안서를 히로히토에게 건네며 가슴을 팡팡 쳐 댔다.
“제 입으로 자랑하긴 좀 뭐하지만, 제게 모든 것을 위임하신다면, 보통 석 달 정도면 원금이 두 배로 불어나곤 합니다.”
“두 배?”
“예. 그렇습니다.”
폰지는 다른 사기 피해자들처럼, 히로히토에게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다른 투자회사들의 작년과 올해 성적을 거론했다.
“작년과 올해 수익률만 따지고 보면, 모건이나 로스차일드, 혹은 이 황태제의 케미컬투자은행보다도 훨씬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강의 케미컬투자은행이 언급되자, 히로히토의 콧구멍이 커지기 시작했다.
‘역시······.’
폰지는 히로히토가 이강과 내기에서 졌다는 풍문을 진즉 입수한 상태다.
그랬기에.
이강의 케미컬투자은행을 언급할 때 조금 더 목에 핏대를 세우고 강조했는데.
이게 효과가 있었는지, 히로히토의 눈알이 뒤집힌 것 같았다.
“내 당장, 이 프로그램에 가입하겠네.”
“전하!”
일본은 현재 유럽에 있는 선진국들과 비견될 정도인, 어엿한 선진 열강이다.
당연하게도.
일본 황실에는 기존 투자자문 직원 역시 존재했는데, 그들은 폰지의 말도 안 되는 투자 제안서를 히로히토가 냉큼 수락하자 두 손 들고 반발하기 시작했다.
“황실 금고를 외국인에게 맡기는 건, 우리 역사를 통틀어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러시아 제국도 외국인(이 황태제)을 재정관리인으로 등용하며 큰 이득을 보았네. 바티칸과 이탈리아는 JP모건을 앞장세워 자신들의 부를 지켰고.”
가신들의 설득에도 히로히토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미 폰지의 간사한 혓바닥에 홀라당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우리 일본 또한 달라져야 하네. 내 마음 같아서는 내각과 두 총독부에도 이를 권하고 싶지만······.”
히로히토는 판을 더 키우고 싶어 했다.
폰지를 앞장세워서.
초봄에 펼쳐진 살얼음 같은, 아직 너무 연약한 일본 재정을 강화하고 싶었으니까.
“이는 섭정으로서 월권을 행사하는 일이니, 이 일만큼은 참을 생각이네.”
“······.”
“하지만 황실 내탕금 관리는 엄연히 내 소관일세. 자네들 또한 이를 부정하진 않겠지?”
히로히토의 확고한 결정에 가신들도 더는 반발할 수 없었다.
이에.
히로히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후, 폰지에게 한 사내를 소개했다.
“여기, 내 금고지기인 사토시네.”
“예.”
“이자가 자네와 함께 이동할 터이니, 부디 잘 맡아서 굴려 주게나.”
히로히토의 승낙에, 폰지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으며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폰지는 이 돈을 투자금으로 쓰지 않고 비자금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거하게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친 상황에서, 노후 자금을 숨겨 놓아야 노년이 편할 테니까.
“어?”
뭐야······.
그렇게 사토시가 폰지에게 일본 황실의 가용 현금 규모를 알려 주며 그에게 맡길 황실 내탕금 예산을 공개하자, 순간.
폰지는 살짝 얼어붙으며 표정을 구겼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닙니다.”
폰지가 이리 실망한 이유는 일본 황실의 내탕금이 생각보다 적었기 때문이었다.
‘겨우 500만 엔이라니.’
달러로 치환하면 250만 달러 정도 된다.
예상치보다 훨씬 조촐한 규모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느 황실이건 그들의 최대 자산은 자국의 부동산과 문화재였다.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은 본래 적었는데, 폰지는 처음으로 황실 재산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기에 이 구조를 몰랐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예. 맡겨만 주시지요. 아!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사항이 있습니다.”
“뭡니까?”
폰지는 일본 황궁을 나서기 전, 사토시에게 추가 투자금을 요청했다.
“500만 엔도 거금이긴 하지만······.”
폰지는 이것만으론 VIP 프로그램에 가입하기엔 살짝 부족하다며, 추가로 대출을 받기를 권유했다.
“셋쇼노미야님께 건의하게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폰지는 도쿄 황궁을 나서며 한껏 투덜댔다.
“황실이라고 해서 노후 자금 좀 한탕 제대로 뽑아낼까 했더니······ 별것 없군. 젠장. 이강, 그놈을 제대로 꾀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이런 쭉정이들 말고.
경쟁자이지만, 진짜배기를 제대로 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폰지는 입맛을 다시며 제 숙소로 복귀했다.
“형님.”
“오냐.”
“모, 모아 둔 돈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함께해 온 폰지의 파트너 요셉이 떨리는 목소리로 폰지에게 현 자금 흐름을 알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틸 수는 없냐?”
“슬슬 한계입니다.”
“에잇.”
고고했던 영국의 귀족들이 슬슬 투자금을 더 늘리려 꿈틀거리고 있었다.
거기에 일본에 막 진출하며 신규 투자금 역시 적게나마 수급되고 있고.
“딱 한 달만 더 버티면 될 텐데?”
“어찌어찌 돌려막는다면 막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좀 불안합니다.”
요셉이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폰지에게 물었다.
“이러다간 정말로 거덜 날 텐데, 저희는 어떡합니까?”
폰지가 썩은 미소를 날리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떡하긴······ 최선을 다해야지.”
초창기부터 함께하긴 했으나, 폰지와 요셉은 기본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폰지는 매정하게 굴며 제 계획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저 먼저 샌프란시스코에 가 있으라고요?”
“그래.”
“형님께서는 어디에 들렀다가 가시려고요?”
폰지는 새끼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리며 따로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 후, 요셉과 헤어졌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이 돈을 좀 맡기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전부 엔화시네요.”
폰지가 향한 곳은 상해 덕화은행이었다.
“이곳에 돈을 예금했다는 건 아무도 모르겠지? 알아도 독일계 은행이니까, 영국 놈들이나 미국 놈들에게 이를 건네주지도 않을 테고.”
폰지는 덕화은행을 나오며 피식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한탕 제대로 털고 브라질로 떠나야지.”
폰지는 자신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여객선에 올라탔다.
* * *
히로히토는 요새 아침마다 즐거웠다.
밤새 꿨던 꿈들이 그의 아침을 늘 기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폰지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체포당했다고?”
이강보다 더 부자가 되어서.
유럽인들 앞에서 이강의 무릎을 꿇려 놓고 사과받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히로히토.
“예.”
“어째서······.”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 왔다.
< 폰지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