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71)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71화(371/392)
< 네가 와라, 하와이 (3) >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와 돈을 빌리는 채무자.
이 둘의 관계는, 태생적으로 ‘갑’과 ‘을’이 명확하게 구별되는 계약 관계다.
하지만 아주 가끔 이들의 상하 관계가 역전되곤 한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채무자가 한바탕 눈이 회까닥 돌아가 버리면, 둘 사이의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굳건한 관계가 때론 변하기도 하니까.
‘사람마다 액수는 다르다만, 살면서 한 번쯤은······ 재수 없다면 여러 번 당하기도 하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채무자가 사회적으로 신용을 저버리면서까지 자신의 배를 째라고 냅다 드러눕는 케이스를.
21세기 박병준으로 살 때는.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쩔쩔매면서 채무자에게 자신의 돈을 갚으라고 애원하며 무릎까지 꿇은 장면 또한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아주 극히 드문 경우고, 대다수는 채권자들이 공권력을 동원하거나 물리력을 사용하여 어떻게든 빚을 받아 내지만.
진짜로 채무자가 채권을 상환할 능력이 하나도 없다면, 제도권 법치 국가에서는 밀린 빚을 받아 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래서 여러 장치가 생겨났지.’
기본적으로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고, 채권자들은 수천 년간 이런 최악의 사태를 경험했다.
그랬기에 채권자들.
특히 돈 빌려주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이들은 이런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여 여러 대비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 바로 방금 위안커원의 입에서 흘러나온 ‘담보’ 설정이었다.
“담보라······.”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려서일까?
위안커원의 얼굴색이 조금 밝아진 것 같다.
그는 평소보다 조금 더 높은 톤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예. 담보를 준비했습니다. 거대한 태평양을 건너면서까지 여기 머나먼 하와이까지 달려왔습니다. 일국의 총통이라는 자가 설마 빈손으로 왔겠습니까?”
그는 내 눈치를 슬슬 보며 내 표정을 유심히 살피는 것 같았다.
“······.”
“······.”
목소리가 살짝 떨리긴 했지만.
빠르게 제정신을 차리며 무표정한 태도를 유지했기에, 쉽사리 내 속마음을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협상장 분위기 자체가 살짝 달라진 것은 이 자리에 참석한 이라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든 알 수 있는 사실.
그랬기에 위안커원은 한층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나를 계속하여 떠보기 시작했다.
“어째 구미가 당기시나 봅니다. 아! 혹시 저희 만주국에 원하시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있다면, 전하의 의견을 반영하여 조건을 바꿔 보겠습니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 내가 원하는 이거 이거인데.’ 하고 알려 준다면?
나는 바로 위안커원에게 호구 잡힐 것이다.
내가 말한 것들은 쏙 빼놓고 다른 소갈머리 없는 조건들만을 계속하여 나열하다가, 마지막에 이를 슬쩍 뒤에 끼워 넣으며 빌리려는 돈의 액수를 왕창 끌어 올릴 테니까.
적어도 나라면 그리 행동할 거다.
“흠. 평소 만주국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딱히 생각해 둔 조건은 없었다오.”
“그렇습니까?”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천하의 J.P.모건 앞에서도 뻥카를 여러 번 날려 보지 않았던가?
위안커원 같은 애송이 앞에서 내 본심을 감추는 것 따위는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웠다.
“다만······.”
“다만?”
“방금 대화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은 알게 되었소.”
“무엇입니까?”
“위안 총통의 진심.”
“제 진심이요?”
“그렇소. 그저 생떼나 부리려고 차관을 요청하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단단히 준비한 것 같아서 말이오.”
“······.”
“그 진심에 반하여, 내 귀하의 제안을 유심히 경청할까 하는데······ 혹 삼천만 달러를 빌리기 위해, 위안 총통은 본인에게 무엇을 담보로 내놓고자 하오?”
사람 간의 관계는 밀고 당기기를 잘해야 한다.
너무 관심 없어 하는 표정을 보여 주면 멀리까지 온 손님을 문전 박대하는 셈.
그렇기에 나는 ‘네 말을 끝까지 잘 들어줄 테니 어디 한번 말해 봐라.’하는 표정을 유지하며, 위안커원에게 한 줌의 희망을 심어 주었다.
이에 위안커원은 살짝 다급한 표정으로 서류 가방에서 무언가를 바리바리 꺼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개중 가장 윗단에 놓여 있는 지도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킨 후, 책상 위에 놓인 지도를 바라보며 위안커원에게 물었다.
“북만주의 지도가 아니오?”
“예. 그렇습니다.”
위안커원은 슬그머니 북만주 지도를 내 쪽으로 밀며 다음 말을 했다.
“전하의 크나큰 배려 덕분에, 돌려받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본래라면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서 반쯤 식민지화 된 상태로 머물러 있을 곳이다.
하지만 적백내전이 발발하고 러시아가 둘로 쪼개지며, 만주국은 아무르 임시정부에서 북만주 지역을 돌려받게 되었다.
물론 공짜로 이를 받은 것은 아니다.
이를 대가로 상당수 이권을 서구 열강들과 내게 퍼 줘야 했으니까.
“여러 권리 중 북만주에 매설된 지하자원 채굴권들을 전하와 이번 신규 투자자들에게 양도하고 싶습니다.”
위안커원은 돌려받은 북만주의 수많은 권리 중, 지하자원 채굴권을 내게 제시했다.
‘북만주라면······.’
아시아에서 제일가는 대경(다칭)유전이, 저 넓은 초원 밑에서 잠을 자고 있던 지역이 아닌가?
꿀꺽-
탐이 난다.
당장이라도 이를 냉큼 수락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하수나 하는 짓.
이 지역에 거대 유전이 묻혀 있다는 사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었기에, 나는 꾹 참고 한번 이를 후려쳐 보았다.
“만주국이 반환받은 동청철도 운영권이 아니고, 지하자원 채굴권을 넘긴다고 하셨소?”
이전까지는 러시아가 하얼빈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동청철도 운영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현재 동청철도 소유권 중 49%는 나를 포함한 서구 민간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51%는 만주국이 이를 가지고 있는 상황.
내가 이런 동청철도 지분을 언급하자, 위안커원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잠시 지으며 이내 한 번만 봐주라는 얼굴을 하며 내게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예. 그렇습니다.”
“······.”
“저희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거대한 만주국에서 유일하게 돈을 벌어다 주는 사업이 바로 철도 산업인데 말입니다. 이를 어찌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속으로 나는 좋아 죽으려고 했다.
동청철도 지분은 시장에 이미 나온 상장 회사다.
언제든 지분들을 사들일 수 있고.
국제적으로 대공황이 발발한다면, 만주국 역시도 자금 사정이 엉망이 될 것이기에.
언젠가는 위안커원이 이를 내게 조금이나마 더 팔려고 할 것이다.
물론 지하자원 채굴권도 역시 언제든 사들일 수 있지만.
보아하니 작금의 분위기상 이를 아주 떨이로 팔려고 한다.
더욱이 시간이 지날수록 대경 유전의 존재가 발각될 확률이 조금씩은 증가하기에.
관련 계약은 빠르면 빠를수록 조기에 마무리 짓는 것이 나았다.
“흠.”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에 위안커원이 발을 동동 굴렀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시는 것 같으십니다.”
“······.”
“······.”
약 2분여간.
무언가를 생각하는 척 시간을 끌며, 위안커원의 애간장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게끔 유도했다.
이후에 나는 과거의 한 사건을 회상하며 위안커원에게 북만주 채굴권 관련 이야기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내 따로 사람을 풀어, 만주와 한반도에 지하자원 탐사를 맡긴 적이 있소만. 위안 총통 역시도 이에 관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오.”
“혹, 현 미국 행정부에서 두 번째로 서열이 높으신 허버트 후버 부통령께서, 이를 직접 탐사한 이야기를 거론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최현우와 시선을 교환했다.
예전에 후버가 제출했던 북만주 탐사 보고서가 필요해서였다.
“이것은······.”
“관련 자료이오. 위안 총통이 혹시나 북만주 채굴권을 담보로 설정할까 봐, 내 예전에 받아 두었던 이 보고서들을 가지고 왔소만.”
“······.”
“한번 읽어 보겠소?”
위안커원의 얼굴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자신이 거액을 빌리는 대가로 담보를 진즉부터 제안할 줄 알았다는 나의 말에 놀랐기 때문이겠다.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춤추고 있는 기분이겠지.’
지금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위안커원이 제시한 비장의 무기를 해체하고 있던 셈이니까.
북만주의 지하자원 상황을 낱낱이 까발린 보고서를 면전에서 들이밀고 있으니 얼마나 당황스럽겠나?
“······,”
혹여 자신의 계획이 사전에 유출되었나, 위안커원은 눈알을 팽글팽글 굴리며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새하얘진 그에게 계속하여 보고서를 들이밀며 북만주에는 사실 채산성 높은 별다른 광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미 쓸 만한 광산은 전부 개발되어서, 서양 열강에 팔렸다오. 그대가 제시하는 채굴권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미확인 지하자원이지 않소?”
“······.”
“시도는 좋았으나 그 정도로는 천만 달러는커녕 삼백만 달러도 빌릴 수가 없을 거요.”
분위기를 탔기에 나는 북만주 지하자원 채굴권을 평가 절하하며, 관심이 조금 식었다는 것을 팍팍 티를 냈다.
“다른 담보는 없소?”
“······.”
“이것으로도 부족한데······.”
이 당시.
다른 자본가들이어도 그리 평했을 것이기에, 위안커원은 딱히 반박하지 못하고 이내 다른 담보를 거론했다.
그는 무순(푸순) 철광의 남은 만주국 지분을 거들먹거렸다.
하지만 이 지분 역시도 이미 나를 포함한 서구 열강들에 8할 이상이나 팔린 상태였다.
“실망스럽구려.”
“······.”
“혹 추가로 제시할 담보가 없다면, 대출 금액을 조금 하향하는 것이 어떻겠소? 아니면 기간이나 이자율을 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오.”
만족스럽지 않다는 표정을 한껏 지으며 준비한 것이 이것뿐이냐고 재차 압박했다.
이에 위안커원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지막에 한 단어를 거론했다.
“잉커우!”
“?”
“잉커우를······ 합중국에 조차할까 합니다만.”
이에 나는 속으로 한쪽 입꼬리를 슬그머니 끌어 올렸다.
내가 바라던 담보 중 하나가 방금 위안커원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 * *
위안커원이 떠났다.
내가 원하던 담보들이 전부 협상 테이블에 나왔기에, 차관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전하.”
“듣고 있네.”
내 재정담당관이었던 우현식은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삼천만 달러나 되는 저 큰 금액을, 저리 저리(低利)로 빌려주셔도 되옵니까?”
“······.”
“만주국의 재정 상황은 엉망입니다. 필시, 제때 상환하지 못할 것입니다.”
담보를 세 개나 받긴 했지만.
그중 하나는 나만이 알고 있는 흙 속에 묻힌 진주 같은 존재였다.
나머지들은 제법 쓸 만하나 만주국이 내부에서 무너진다면 군대를 동원하여 인근 무순과 잉커우 정도는 무력으로 주둔을 할 수 있었다.
해당 도시들은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기에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우리 군을 파견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우현식과 최현우는 이번 거래에 살짝 부정적이었다.
“맞습니다. 더욱이 이번 거래로 동아시아의 정세가 어지러워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작금의 일본처럼 위안커원 역시도 전쟁을 일으켜서 이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
상환 능력이 전혀 없는 만주국.
그들이 살길은 무엇일까?
바로 이웃을 침공하여서 부채를 갚는, 일명 따갚되 전략을 사용할 것이 분명하다.
동쪽은 우리가 국경을 접하는 상황.
감히 채권자에게 총부리를 들이밀지는 않을 테고.
만만한 옛 북양군벌 동지들을 때려 눕히며 중원으로 진출하려고 몸을 꿈틀대겠지.
“내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네.”
“예? 그리되면”
“아!”
그래.
현재 북중국은 안휘군벌과 직례군벌이 서로 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옛 봉천군벌.
현재의 만주국이 끼어든다면 상황이 개판이 될 테다.
‘중원은 먹음직스러워질 테고.’
칭다오에 제 땅을 가지고 있고, 간접적으로 산동 군벌을 지배하던 일본은 이 사태를 어찌 바라볼까?
아주 당연하게도 그들의 시선이 한반도가 아닌 중원으로 향할 거다.
좀 더 먹기에 탐스럽고, 쉬워 보일 테니까.
그들이 중원으로 눈을 돌릴 동안, 우리 합중국은 내실을 다지며 성장할 것이고.
옆 나라에서 행해지는 분쟁에서 전쟁 상인으로 활약할 수도 있기에, 전쟁으로 인한 경기 호황은 덤일 테다.
나는 이를 노리고 이번에 위안커원에게 삼천만 달러라는 거액을 빌려준 것이었다.
‘판은 그려졌다.’
이제 기수들이 내 은밀한 의도에 따라 움직여 주기만 하면 된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북중국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 형세가 어떻게 변할지 이를 조용히 예측하기 시작했다.
< 네가 와라, 하와이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