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76)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76화(376/392)
< Q&A (3) >
『······일 년에 지구 한 바퀴를 돌면서 이 편지를 수령한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졌습니다. 만약, 이 편지를 나흘 안에 다른 이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아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분이 터져 나왔다.
이거.
내가 박병준으로 살았던 때에도 유행했던 ‘행운의 편지’가 아닌가?
다른 이에게 똑같은 내용을 보내지 않는다면, 불운이 찾아올 것이라는 행운의 편지.
부들부들.
나는 안에 있던 내용을 소리 내 낭독하던 것을 멈추고, 들고 있던 편지를 힘껏 구기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전하!”
그러자, 세 발짝 떨어져 있던 궁내부 차관 윤홍섭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무,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기에 그리 흥분하시는 것이옵니까?”
“······.”
안에 있는 내용을 전부 다 소리 내어 말하기엔, 그 안에 적힌 내용이 너무나도 길었다.
나는 직접 읽어 보라는 표정으로 방금 뽑은 편지를 궁내부 차관에게 건넸다.
“이, 이런 내용이 적혀 있을 줄이야.”
“······.”
“송구하옵니다, 전하. 소인을 죽여주시옵소서.”
궁내부 차관인 윤홍섭은 친일파 윤택영의 장남이었다.
하지만 윤홍섭은 그의 아버지인 윤택영과는 다르게 민족을 배반하지 않았고, 오히려 음지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도우며 제 부친의 업보를 제 나름대로 갚아 나갔다.
더욱이 그는 나의 형수인 순정효황후의 유일한 혈육이기도 하여서.
나는 내게로 와서 용서를 구하는 윤홍섭을 정보국 현장 요원으로 삼지 않고, 좀 더 안전한 합중국으로 보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윤홍섭은 궁내부에서 일하며 나와 합중국에 있는 황실 어르신들을 이어 주고 있었다.
그런 그가 내게 죄를 고하며 무릎을 꿇었다.
“전하.”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기에 궁내부 차관이 저리 행동하는 것입니까?”
당연하게도 눈치 빠른 기자들은 현장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들고 있던 펜도 잠시 놓아 두고 나와 윤홍섭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이리 주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궁내부 차관이 들고 있던 편지를 기자에게 건네려고 했다.
“앗!”
“저, 전하.”
그런데 편지의 내용대로, 진짜로 불운이 찾아오기라도 한 것일까?
방금 건넨 쪽지를 급하게 윤홍섭에게서 빼앗으려다가, 그만 종이에 손가락이 살짝 베이고 말았다.
“전하!”
“다들 뭐 하는가? 의원을 내리고 오게나.”
이에 내 오른손 검지에서 피가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고, 나의 최측근들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 몸에서 피가 난 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인에게 습격을 받은 이후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전하. 베인 손을 잠시 제게 건네 보시겠나이까?”
대기 중인 의원이 급히 내게로 다가와선 몸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살짝 지나친 대응인 것 같았지만, 치료를 거부하면 오히려 시간만 더 소요될 것이다.
내가 치료를 받을 때까지 나를 계속 닦달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며 의원이 내 손을 치료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기에 전하께서 저리 흥분하신 거지?”
그때였다.
기자 중 한 사내가 아까 내가 있던 곳으로 다가와선 떨어진 쪽지를 주워 읽었다.
“뭐라고 적혀 있소?”
“휴, 흉서(兇書)이외다.”
“흉서요?”
“그, 그렇소! 질문지를 가장한 저주의 글인 것 같소.”
“······!”
“······!”
치료를 받느라 잠시 정신을 팔고 있는데, 기자들은 행운의 편지를 읽더니 오두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다른 이에게 해당 내용을 그대로 옮겨서 보내지 않는다면 1년 동안 재수가 없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소이다.”
“헉.”
“저, 저런 몹쓸.”
“적힌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재수가 없을 거라니!”
“감히 전하를 겁박한단 말인가!”
“어느 겁도 없는 놈이 이 편지를 전하께 보낸 것이오?”
“익명의 시민이라고 하오.”
“익명?”
기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편지를 보낸 자가 누구인지 자기들 나름대로 추측하기 시작했다.
“익명이면 누군지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오?”
“그래도 이 편지를 어떤 세력이 전하께 보낸 것인지는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소.”
“의심 가는 세력이라도 있소?”
“뻔하지 않겠소? 전하께 위해를 가하려는 세력이라면······.”
“일본뿐이지. 내 손으로 장을 지질 수 있소. 이 편지는 일본 첩자 놈이 보냈을 것이오.”
고작 행운의 편지일 뿐이지만, 기자들의 호들갑에 탄저균이 든 생체 폭탄인 것처럼.
처음 뽑은 편지를 위험물로 지정했다.
“본인도 동의하오.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십 중 아홉은 왜놈들일 것이오.”
“박 기자 말대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맞소이다. 그치들은 우리와는 달리 영국으로 많이들 유학을 가지 않습니까?”
기자들이 큰 소리를 내며 계속 요란을 떨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윤홍섭의 얼굴이 더욱더 하얗게 질려 갔다.
그는 진짜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절망감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사과를 이어 갔다.
“전하. 소인을 죽여주시옵소서. 미리 안에 적힌 내용을 한번 확인해야 했습니다. 소인의 불찰 때문에 전하께서 흉서를 받으셨나이다.”
진중한 자리에서 행운의 편지를 뽑았기에,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리 야단법석을 떨 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더욱이 난 저주 글 같은 미신 따위는 믿지 않지.’
현시대.
합중국 시민들이라면 몰라도, 나는 적어도 그런 비과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궁내부 차관을 오히려 칭찬했다.
“아닐세. 나는 오히려 방금 그 편지로 이번 행사의 진정성을 느끼게 되었다네.”
“예? 그 무슨······.”
“이런 장난 가득한 편지가 섞여 있었다는 것은, 사전에 시민들에게서 걷은 쪽지를 하나도 검열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닌가?”
“······.”
“내 눈과 귀를 가리지 않고, 합중국 신민들의 민의를 고스란히 내게로 가져온 것만으로도 그대의 소임은 다한 셈일세. 그러니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하게 이번 행사를 진행하게.”
나는 윤홍섭의 어깨를 두들기며, 진짜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보였다.
“아! 혹여 아직도 불안하다면 자네가 안에 적힌 내용을 먼저 읽고 난 후에 내게로 주게나. 내 그 내용을 곧이곧대로 읽었는지 확인만 하겠네.”
나는 고개를 돌려서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어떤가? 나의 제안이. 자네들도 바뀔 규정에 동의하는가?”
“예. 전하.”
“물론입니다.”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다시금 자리에 앉으며 탁자 위에 놓인 생수를 한잔 마셨다.
이후 다음 말을 내뱉었다.
“그럼 첫 번째 편지는 대꾸할 가치가 없으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슬슬 다음 편지를 뽑아 보도록 하겠네.”
그 전에.
첫 번째로 뽑힌 행운의 편지는 다시금 회수했다.
처음으로 개최된 질답 행사다.
거기서 첫 번째로 뽑힌 쪽지였고, 내 피마저도 묻었기에.
외부로 유출되면 수집가들에게 값비싸게 팔릴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엔.’
내가 가지고 있는 편이 낫겠지.
지난번.
히로히토한테 사인받았던 냅킨 계약서처럼, 박물관 한편에 전시라도 해 둘 생각이다.
차후에 이를 기릴 수도 있으니까.
나는 조금 전 치료받은 손가락을 살살 만지작거리며 기자들을 바라보고 다음 말을 했다.
“그럼, 두 번째 질문을 뽑겠네.”
* * *
내가 두 번째로 뽑은 편지는 다행스럽게도 ‘행운의 편지’ 같은 장난기 가득한 질문지가 아니었다.
“흠.”
오히려 제법 진지한 내용이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몰라도.
한때 독일의 카이저였던 빌헬름 2세에 관한 일화와 함께 그의 현재 근황을 묻는 편지였으니.
『덕국(독일)은 세계열강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덕국의 황제가 유독 이쁜 손을 좋아하였다고 하던데, 이 소문이 사실인지 알고 싶습니다. 더불어 현재 덕국의 황제는 무슨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빌헬름과의 일화를 회상했다.
으으-
회상만으로도 본능적으로 꺼려지는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다시금 눈을 뜨며 해당 질문지의 답을 했다.
“의주에 사는 김 선생의 질문처럼, 카이저는 유독 이쁜 손을 좋아하긴 했네.”
온몸을 끈으로 묶은 후에 채찍으로 맞는 것도 좋아했지만.
이번 질답 행사는 어린아이들도 읽게 될 인터뷰였기에.
수위를 조절하며, 내가 아는 정보를 앞에 앉은 기자들에게 알렸다.
“이는 아마도 어린 시절 안 좋았던 기억 때문일 걸세. 어린 시절, 그는 팔에 있던 장애 때문에 좋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황족임에도 불구하고 피해 의식이 강했으니까. 이 때문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이쁜 손을 찾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
빌헬름을 처음 만났을 때.
내 손 또한 유난히 탐스럽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언뜻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으나.
이를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괜히 말했다가 빌헬름과 내가 도매금으로 엮일 수도 있기에, 사전에 나 스스로 검열을 한 것이다.
“아! 인제 보니 질문이 두 개였군. 카이저는 지금 어찌 살고 있는지를 물었던가?”
나는 피식 웃으며 기자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카이저는 잘 지내고 있다네. 다른 두 나라 왕족들과는 달리, 그는 제 재산을 온전히 지켰으니까.”
더욱이 나와 은밀히 거래도 했고.
공동개발한 특허권을 비롯하여 여러 이권을 넘기는 대가로 나는 카이저의 신변과 재산만큼은 보존해주자고 국제사회에서 주장했다.
같은 왕족이었고.
신분제가 남아 있던 이 당시, 왕족을 전범으로 처형하는 전례는 없었기에.
카이저는 무사히 망명하여 지금까지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 네덜란드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네. 아마도 이 근처에 살고 있을걸?”
내 말에 일부 기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빌헬름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도른에 들러서 취재라도 할 모양이다.
“전하. 이번 질문은 미국에서 유학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주야장천 공부하고 있는 중학생의 질문입니다.”
세 번째 질문 또한 두 번째와 결이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밖으로 나와서 거주하고 있어서인지, 해외 관련 질문들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학식을 쌓고 싶은데 회계와 행정, 두 전공 중 하나를 고심하고 있다라?”
합중국에서 어느 인재를 더 필요로 하는지, 운이 좋은 꼬맹이는 내게 제 미래 전공 관련 질문을 했다.
“평양에 사는 김갑범이라고 했던가?”
“예.”
나는 마치 김갑범이 내 앞에 있는 것처럼 그윽한 눈빛을 보내며, 기자들을 향해 대신 받아 적으라고 명했다.
“작금의 조선은 모든 분야에서 인재가 필요한 상황이네. 비단 회계나 행정 말고도 공학, 산학, 법, 경영, 의학 등 여러 분야의 인재들이 모두 부족하네. 그러니 공부하는 학생들은 다들 본인의 적성을 생각하여 미래 전공을 결정해 주었으면 좋겠네.”
일국의 군주였기에 이렇게 원론적인 답밖에는 내어줄 수가 없다.
특정 분야.
예를 들면 의·약학 분야가 유망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쪽으로 몰릴 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나······.’
나는 일반인이 아니다.
2천만 신민들에게 사랑받는 다음 황위 계승자였다.
나는 나의 영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조금은 답답하지만 원론적인 답변만을 하며 내 영향력이 좋게 쓰일 수 있게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 * *
솔직히.
이번 행사를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내 개인 신상이나 일본 관련 이야기, 혹은 세계 다른 왕실의 인물 등.
별것 없는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으로 생각했다.
“이 세상에 많은 기계가 전기로 돌아가는데, 왜 하필 자동차는 휘발유로만 돌아가느냐······.”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의 깊이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내가 합중국 신민들을 살짝 과소평가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연희대학교 기계과에서 공부하는 허해솔 학생의 질문입니다. 전하.”
이것 봐라.
이리 재미난 질문지가 내 앞에 있지 않던가?
“다음 질문지로 넘어갈까요?”
이번 행사를 진행하던 궁내부 차관 윤홍섭이 내 눈치를 슬쩍 보며 다른 질문지를 뽑으려고 했다.
내가 문과라서.
이과적인 부분은 전혀 알지 못하리라 생각해서 나를 배려하는 모양이다.
‘이래 봬도 나는 미래에서 온 빙의자다.’
이 정도 질문쯤이야 껌이지.
“아닐세. 이런 질문 정도는 본인 선에서 답변할 수 있다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 전기로 가는 자동차는 오십 년도 전에 개발되었다네.”
“······!”
내가 관련 답변을 말하기 시작하자, 기자들의 눈이 커졌다.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질 좋은 답변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자, 다들 놀란 눈빛으로 펜대를 굴리기 시작한 것이다.
< Q&A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