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82)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82화(382/392)
< 미끼 (2) >
유우키는 8월 초에 공무원으로 막 임용된 애송이 신입이었다.
그가 처음 배정받은 부서는 현 일본 내각의 총리대신인 하라 다카시의 비서실.
막내인 그는 출근하자마자 몇 가지 허드렛일을 꼭 해야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총리실 곳곳에 배치된 달력들을 제날짜에 맞게 넘기는 일이었다.
‘후-’
오늘 아침은 유독 바빴다.
하루하루.
날이 바뀔 때마다 뜯어 내야 하는 달력 말고도, 한 달에 한 번 해당하는 달에 맞춰 넘겨야 하는 탁상 달력 또한 손봐야 했기 때문이다.
‘벌써 9월이라니.’
유우키는 잠시 창문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다.
무더웠던 지난 여름날의 추억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서다.
‘올해는 유난히 힘들었어.’
선진 서구 열강에서 온실가스를 본격적으로 무자비하게 배출한 탓인지 몰라도, 올해 여름은 전 세계적으로 더웠다.
일본 역시도 그랬다.
더욱이 일본의 여름은 다른 선진 열강과 달리 습도 또한 높기에, 불쾌지수 역시 상당히 높아서 일본 국민은 두 배로 고통스러웠다.
밤까지 그 열기가 이어지며 열대야 때문에 잠도 못 잤는데.
이 때문에 일본의 일반 서민들은 극도로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요새 자잘한 지진도 자주 일어나서, 사람들이 엄청 예민해져 있지.’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서민들.
반면, 일본의 귀족들은 비교적 평온하고 여유로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서구에서 들여온 에어컨이란 냉방 장치 덕분에, 귀족들은 밤잠을 설칠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
‘돈을 많이 벌면, 나도 우리 본가에 저 기물을 설치해야지.’
유우키는 총리실 한편에 설치된 에어컨을 바라보다가 한 인물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면, 미국에 있는 이 황태제도 참 대단한 인물이야.’
이강은 열도의 최대 숙적이다.
하지만 유우키는 이강의 능력만큼은 높게 보았다.
그는 투자했다 하면 성공했으니까.
그들의 차기 덴노 후보자인 히로히토와는 다르게 말이다.
‘비결이 뭘까?’
지금 일본의 총리실에서 열심히 가동 중인 에어컨을 만드는 회사만 해도, 이강이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비록 유우키가 해외정세에 약한 비유학파 신입 공무원이긴 했지만, 그런 그 또한 이 점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일본 신문에서 간간이 이강의 업적을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부정적인 어조로.
이강의 모든 행위를 비판하고 있었지만, 그가 계속 성공하고 있다는 것은 차마 가릴 수 없었기에.
이강이 성취했던 업적은 문자를 아는 지식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상태였다.
그랬기에, 유우키는 뛰어난 적장 때문에 일본의 총리들이 얼마나 괴로울까를 생각하며 가지고 있던 행주로 총리실 책상을 다시금 닦아 나갔다.
“유우키! 유우키!”
“예. 갑니다.”
잠시 여유를 부렸던 유우키.
그런 유우키를 향해 선배 비서들이 매서운 말투로 그를 찾는다.
“유우키! 어딨느냐!”
“예!”
유우키는 한숨을 푹 쉬며 오늘은 얼마나 또 길고 힘들지를 생각했다.
선배들의 신입 길들이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지난 한 달 동안 충분히 경험했기에, 유우키는 깊은 한숨을 푹 쉬며 복귀했다.
* * *
“오셨습니까?”
총리인 하라 다카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한 사내를 맞이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하라 다카시는 방긋 웃은 후, 일본의 원로 중 하나인 사이온지 긴모치를 환영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비서실장에게 눈 신호를 보내자, 비서실장인 켄지로는 다른 직원에게 이를 알렸고.
그들은 재빨리 막내였던 유우키에게로 고개를 돌려서 커피를 타라고 명령했다.
“어째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바쁜 비서실 뒤 풍경과는 다르게, 총리실 집무실 분위기는 비교적 화기애애했다.
“제가 그 이유를 한번 말해 볼까요? 총리께서 이리 방긋방긋 웃고 계신 건 아마도······ 상왕 노릇을 하던 야마가타가 세상을 떠나서, 속이 후련해서 그런 것일 겁니다.”
야마가타는 현직 총리인 하라 또한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죽은 이에 불과했다.
아직 영향력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의 파벌은 조각조각 나뉘어 다른 후계자들에게로 상속될 터.
그래서일까?
야마가타의 정적이었던 사이온지는 십 년 묶은 체증이 내려갔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의원님께서도 참.”
그렇다, 아니다.
별다른 답변 없이 히죽히죽 웃기만 하는 하라 다카시.
그는 유우키가 막 건넨 커피를 한잔 홀짝이며 사이온지와 시선을 교환했다.
“의원님께서는 나이가 들수록 장난기가 심해지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요?”
“예. 예전에 제 상사로 계실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하하하. 그래요? 하긴, 나이를 먹을수록 느는 건 넉살뿐이긴 합니다.”
어려웠던 야마가타와는 달리, 사이온지는 비교적 편안한 인물이었다.
하라 다카시를 내무대신으로 임명하며 차기 총리 후보로 부상할 수 있게끔 밀어준 자 또한 눈앞의 사이온지 아니었던가?
그래서일까?
하라는 마치 친했던 외숙부와 상담을 하는 것처럼 사이온지와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마음속에 품고 있던 몇 가지 고민거리를 입 밖으로 털어놓았다.
“아, 때마침 돌아가신 야마가타 전 총리님의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말입니다. 의원님께서는 황태자비 선정에 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현재, 황태자비 후보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죽은 야마가타가 밀던 인물과 황태자의 스승인 스기우라 주고가 밀던 인물이 2파전을 이루었고.
그로 인해 내부에선 갈등을 겪고 있으니까.
“흠. 다른 이의 눈치는 보지 말고, 총리님 뜻대로 일을 마무리하십시오.”
“······.”
“그보다 골치 아픈 일들이 총리님 책상 위에 가득 쌓여 있지 않습니까?”
이에 사이온지는 조그마한 파열음에는 신경 쓰지 말라고 답하며, 바깥일부터 먼저 해결하라고 조언했다.
“의원님께서도······ 그 소식을 들으셨군요. 맞습니다. 요새 그 문제 때문에 골이 몹시 아픕니다.”
하라는 몸을 조금 굽힌 후, 목소리를 줄였다.
집무실 안에는 하라와 사이온지, 두 사람밖에 없었지만.
원체 조심스러운 성격의 하라는 평소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자연스럽게 몸을 굽히는 행동을 보였다.
하라와 오랫동안 만나 왔던 사이온지는 잠깐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은 후, 한번 말해 보라는 표정으로 얼굴을 싹 바꿨다.
그 표정을 보며 하라는 속에 있던 진심을 털어놓았다.
“의원님께서는 대한합중국과의 수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
“흠.”
사이온지는 한숨을 내쉬곤 잠시 눈을 감았다.
이후 눈을 뜬 후, 살짝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을 말하기 시작했다.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지요. 개인적으론 황태자비 선정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하라 또한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주장을 이어 갔다.
“대한제국과 우리 일본은 강화도에서 맺은 조약을 시작으로 수교를 체결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대한합중국이 남만주에 설립되며 이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죠.”
일본은 대한합중국을 괴뢰국 혹은 만주에 생겨난 중국의 지방 군벌쯤으로 보았다.
하지만 대한합중국은 일본의 예상과는 다르게 쉽사리 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덩치가 더 큰 대한제국의 영토 절반을 흡수했다.
계속하여 이를 억지로 외면할 수도 있지만.
이웃 국가이기도 하고.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무역 규모도 상당하니, 언제까지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
그렇기에 하라는 대한합중국과 정식 수교를 맺고자 했는데, 이것이 성사되려면 여러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최선은 대한제국과 체결했던 협정을 그대로 대한합중국에 요구하는 것이지만······.”
강화도조약은 1876년에 체결된 불평등 조약이다.
일본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현 조약을 대한합중국에 그대로 적용하고 싶었지만, 당연하게도 대한합중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었다.
“합중국 총리가, 더 나아가 이 황태제가 이를 용인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문제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조선 정부가 합중국 연방 정부의 지방 하위 조직이 되며, 기존 조약과 합중국이 맺은 조약이 충돌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합중국 정부는 이에 기를 쓰고 다시금 협상을 시도하며 기존 불평등 조항들을 하나둘 개정했다.
세계대전 참전과 스페인독감 백신 보급 때문에, 합중국 정부는 비교적 손쉽게 이를 해결했다.
이젠 일본만이 남아 있는 상황.
뒤늦게 일본이 다른 나라와 연대하여 이를 저지하려고 했지만 버스는 이미 떠났다는 말이었다.
“하! 총리님 말이 맞습니다. 더하여 우리 수도 한복판에 대규모 대표부 건물을 지은 것을 보십시오. 어디서 그런 부동산 계약을 체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작년과 재작년 두 해 동안 합중국 정부는 수많은 우리 땅을 사들인 후, 그들만의 성을 동경에 지었습니다.”
수교한 국가는 상대국에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짓는다.
하지만 미수교국이라고 해서 상대국에 자신들의 영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부라고 명명되는 외교기관이 존재했는데, 사이온지는 최근 동경에 생긴 대한합중국의 대표부를 거론하곤 그 크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대단히 무서운 인물이외다.”
하라도 동의했다.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영국이나 미국 대사관보다, 대한합중국의 대표부 건물 부지가 더 넓었으니까.
순전히 이강 개인의 돈으로 해당 용지를 마련하여 국가에 기부했다지만.
일단 그 크기가 정말이지 압도적이었기에, 하라는 혀를 찼다.
“폰지 사기 피해자들로부터 해당 부지를 얻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그 소문은 본인도 들었습니다. 동경 토호 중 일부가 미국계 은행에 이를 담보로 돈을 빌렸다던데. 이를 이 황태제가 다시금 사들였다면서요?”
“예.”
사이온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좀 더 낮췄다.
“항간에는, 이 황태제가 폰지의 수사를 강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던데 말입니다. 유학 갔을 때 사귀어 놓았던 지인이 사람을 은밀히 보내어 알려 주었는데······.”
“본인 또한 비슷한 경로를 통해 관련 정보를 입수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뜬소문이 아닙니까?”
“그렇죠. 하지만 폰지의 구속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본 이가 바로 이 황태제이니······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하라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른 주제를 꺼냈다.
“이번에 이 황태제가 우리 일본에서 무슨 수작을 벌일 거라는 언질 또한 받았는데 말입니다. 그 정보도 방금 언급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인 것 같습니다.”
사이온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관해 따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하라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몹시 궁금했다.
“본인은 일단 사태를 관망할 생각입니다. 우리 말고도 이강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고. 더하여, 헛소문을 퍼트리며 일본의 국부를 빨아 가려는 늑대 같은 서구 열강 자본가들도 한 무더기 존재할 테니까요.”
“하긴, 한쪽 말만을 믿고 쉽게 판단할 수는 없겠지요.”
“예. 다만······ 일부 우리 측 경제계 인사들은 그렇지 못한가 봅니다.”
하라는 다시금 혀를 차며 일본 재계의 반응을 사이온지에게 알렸다.
“앞선 안 좋은 과거도 있고, 폰지 사기로 피해를 본 이들도 존재해서 그런지, 아주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주식시장에 외국인 자금 투자를 좀 더 엄격하게 관리해 달라고 주문하며 최근 일주일간 주식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합니다.”
“이 황태제가 공매도에 투자했다는 소문이 그쪽까지 흘러 들어갔나 보군요.”
“예.”
“쯧쯧. 다른 것은 몰라도 외국인 자금 투자 절차를 강화해 달라니. 그랬다가 자칫 우리 일본에 투자하는 서구 열강들의 자본이 단번에 빠져나가면 어찌하려고요.”
“제 말이 그 말이외다.”
하라는 정색하며 어제 그의 집무실로 방문했던 이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가 소를 죽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다른 이들도 아니고 관련 전문가들이 말이죠.”
“허허. 무지한 놈들 같으니.”
하라는 주먹을 불끈 쥐며 사이온지를 바라보았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본인이 총리로 있는 한은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역시······ 내 이래서 하라 총리만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멍청한 군부 출신들과는 다르게 이리 올바른 사상을 가지고 계시기에, 제가 발을 쭉 뻗고 잘 수 있는 것이외다.”
두 사람의 주고받는 덕담으로, 한참 다시금 분위기가 좋아질 무렵.
드드드드드드드드-
그때였다.
땅이 살짝 흔들렸다.
지진이 아주 약하게 일어난 거다.
“흠. 요즘 들어 메기들이 근처 냇가에서 자주 보이던데 말입니다······ 이러다가 크나큰 지진이 열도를 강타하는 것은 아닐지, 살짝 불안합니다.”
“그러게요.”
일본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다.
이 때문에 관련 속담도 많았는데, 일본은 지진의 전조 현상 중 하나로 메기의 활발한 활동을 언급하기도 했다.
“부디 무사히 넘어가야 할 텐데. 이거, 지진의 빈도수가 잦아지는 것을 보아서는 조만간 한번 크게 터지긴 할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다시금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이쿠.”
“흐익!”
이번 지진은 더 강했다.
내진 설계가 된 총리 관저가 통째로 흔들릴 만큼 건물이 좌우로 요동친 거다.
“총리 각하.”
“머, 머리를, 머리를 보호하십시오.”
비서들이 나와서 하라를 감쌌다.
“으악.”
“총리 각하!”
집무실 한편에 전시된 도자기가 깨지며 일부 조각이 하라의 뺨을 스쳤다.
하라는 잠시 고통스러워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비서들이 온몸으로 하라를 보호한 덕분인지 그 외에는 별다른 부상이 없었는데.
그는 지진이 멈추자마자 바로 밖으로 나왔다.
“크게 다치진 않으셨지요?”
“예. 총리께서는 어떠십니까?”
“무사합니다. 어? 으으.”
다시금 지축이 흔들린다.
하라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땅에 궁둥이를 붙이게 되었는데.
이는 여태껏 겪어 보지 못했던 땅의 뒤틀림이 동경을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맙소사.”
약 10분 정도 땅이 더 흔들린 후.
다시금 동경 일대가 조용해졌다.
“······.”
“······.”
하라와 사이온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동경의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
“······.”
하라는 마른세수를 하며 연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앞에.
지옥도가 펼쳐져서다.
< 미끼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