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89)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89화(389/392)
< 변곡점 (2) >
“사건이 일단락난 것 같군.”
“예. 소인 또한 그리 생각합니다.”
간토에서 자행된 관동대학살은 십여 년 뒤 벌어진 난징대학살만큼이나 끔찍한 사건이다.
21세기.
재미교포 2세로 살았기에, 한국의 근대사는 비교적 많이 알지 못했지만.
AP 역사 수업을 들으며 심화 학습으로써 관동대학살은 굉장히 슬프고 비극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은 따로 배웠기에.
나는 사전에 대표부 건물을 튼튼하게 만들고, 비상 식량을 쌓으며 정보부 요원을 파견하는 등 교민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여러 조처를 모색했다.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나 보군.’
한 일을 쭉 나열해 보면 별것 없어 보이지만, 이 일에 성공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자원이 소모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기관총만 배치했어도 쉽게 끝나는 일인데······.’
대표부 건물에 중화기를 배치하려면, 일본에 우리 군을 파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느 미친 일본 총리가 이 요구를 수락할까?
그랬기에 다른 방안을 일단 모색해야 했는데, 다행히도 내 계략이 잘 먹힌 것 같았다.
“늦었지만 하라가 일본군을 대표부 건물에 보내 주어서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치도 많이 고민했을 텐데 다행히도 옳은 결정을 내린 모양이로군.”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양보했을까?
잠시 하라 다카시로 빙의하여, 그가 정적들에게 무엇을 제안했을지 예상해 보았다.
‘줄였던 군 예산을 살짝 늘리며, 동시에 금융 규제를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들어줬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양보하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황태자비 후보 또한 정적의 요구대로 바꿀 수도 있겠다.
‘진짜로 전쟁이 발발하기라도 한다면, 군부에 의해 바로 쫓겨날 테니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이었지.’
이를 뭉개며 골든타임을 허비할 수도 있었으나, 하라는 명석한 정치인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이번 일을 추진했다.
그게 그도 살고, 동시에 일본도 사는 길이었으니까.
‘대충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공과를 매길 시간이다.
‘일등 공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후버야.’
이승만의 아메리카 쉴드술이 매우 빛나긴 했지만, 정작 하라를 움직인 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후버였다.
그는 일본 총리에게 직접 전화까지 하며 하라를 압박하였는데.
그 덕분에 삼천여 명의 대한합중국 시민이 성난 일본 군중에 살해되지 않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게 되었다.
“후버의 다음 지방 순회가 어디라고?”
“이곳입니다.”
나는 최현우가 가리키는 미국의 지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을 세운 자에게는 상을 줘야 하니까.
“떠날 채비를 하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떠날 준비를 했다.
“아! 떠날 때 가방들 좀 챙기게.”
“예.”
정치 자금을 두둑이 챙겨 줘야 한다.
미국은 자본주의 사회.
온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다음에도 도와줄 터.’
나는 더 챙길 건 없는지를 살피며 시카고로 향할 준비를 이어 갔다.
* * *
20세기 초.
시카고는 뉴욕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어서 오십시오. 이 황태제님.”
9월 말이 되었을 때, 나는 시카고로 향했다.
이제는 대통령이 된 후버를 만나기 위해서다.
“비서실장의 보고론, 이곳에서 오랜 시간 저를 기다리셨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아닙니다. 이제 막 도착하여 대통령님의 연설을 중간부터 경청하고 있었던 중입니다. 너무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후버는 하딩이 그랬던 것처럼, 지방 곳곳을 순회하고 있었다.
이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1년도 남지 않는 대선에 대비하고자 함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으로 치면 사전 선거 운동을 하는 셈이었는데.
미국에서는 합법이었기에 후버 역시도 열심히 지방을 순회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행사장 분위기가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기쁩니다.”
시카고는 뉴욕이나 서부 3개 주만큼이나 공화당에 친화적인 도시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었던 하딩이 올해 여름에 이곳에 방문했을 때는, 유세장 분위기가 참으로 차가웠다.
잇따른 비리 스캔들에 골수 공화당 지지자들마저 하딩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최근에 조사한 여론 조사 결과지를 후버에게 선물로 건네며 활짝 웃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님의 지지율이 무섭게 상승하고 있답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재선도 비교적 무난히 성공하실 것 같습니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선거에 웃고 운다.
선거가 치러지지 않는 기간에는 여론 조사 동향을 관찰하며 애를 태우는데.
후버의 얼굴에는 긴장감은 하나도 없고 여유만 넘쳐흘렀다.
아마도 내가 굳이 여론 조사 결과를 언급하지 않았어도.
유세장 분위기만으로도 현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이 황태제님 덕분입니다.”
일반적인 서양인답지 않게.
후버는 겸손을 떨며 이 모든 공을 내게로 돌렸다.
“이 황태제님께서 조언하지 않았습니까? 이전 정부와 선을 그으며 차별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라고요.”
후버 역시 하딩의 내각 인사 중 일부였다.
하지만 빠르게 꼬리를 자르며 부패에는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자, 사람들도 점차 후버를 하딩의 부통령이 아닌 미국의 29대 대통령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성난 미국 시민들을 위해 현직 장관 둘을 제물로 바치니,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동의합니다.”
여태까지 현직 장관이 구속된 적이 있었던가?
후버는 하딩이 사망하며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번에 구속된 내무장관을 임명하지도 않았고, 그에게 정치적으로 빚을 진 것도 없었기에.
사상 초유의 현직 장관 구속을 결정할 수 있었는데.
후버는 바뀐 여론에 고무되었는지, 한참 동안 그 이야기만을 해 주었다.
“아, 이거 너무 제 이야기만 했군요.”
후버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살짝 긴장한 얼굴로 내 심기를 살폈다.
“최근에 안 좋은 소식이 동아시아에서 들려오던데 말입니다.”
“예. 일본 정부가 생각보다 늦게 약탈자 무리를 단속하는 바람에, 오십하고도 한 명의 한국인이 이번 사태로 사망했습니다.”
“저런······.”
후버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위로의 말을 해 주었다.
“마음고생이 많았겠습니다.”
“그래도 이쯤에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대통령님 덕분입니다.”
나는 이에 화답했다.
오십여 명만 죽는 선에서 이리 끝날 수 있었던 건 모두 후버의 도움 덕분이라며.
이 모든 공을 그에게 돌린 거다.
“하라 총리에게 직접 전화까지 해 주신 덕분에, 일이 생각보다 쉬이 풀렸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한합중국과 우리 미국은 군사동맹 관계입니다. 이 정도야,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당연하게도 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후버와 나는 계속하여 네 공이 컸다고 서로 칭찬을 주고받았다.
마치.
저녁 식사 결제를 자신의 카드로 하려고 애쓰는 일반 직장인들의 회식 자리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번 사태로 죽은 한국인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끔, 제가 최선을 다하여 이들을 후원하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든든합니다.”
어차피 후버에게 거액의 정치 후원금을 낼 것이기에.
저녁 식사는 내가 결제하는 셈이지만, 이런 형식적인 칭찬은 서로의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었다.
나는 별 불편함 없이 이를 진행하며 후버의 손을 다시 한번 꼭 붙잡았다.
“그보다, 이 황태제님.”
“예. 말씀하시지요.”
“지난번에 부탁하신 것 중······ 한 가지가 살짝 걱정되는데 말입니다.”
“정확히 어떤 부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 황태제님께서 지난주에 간곡히 부탁하셔서, 이 말까지 함께 하라 총리에게 말하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라가 영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아서요. 이번 달 안에 해외 자본 규제안이 의회를 통과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 그 이야기!
‘눈치 참 빠르네.’
전임 대통령인 하딩이었으면, 아무 생각 없이 내가 하라는 대로 말했을 텐데.
역시 후버는 유능한 기업가 출신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경제 쪽으로는 굉장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발 더 나아가 금해금(金解禁) 정책을 당장 내일이라도 공표할지 모릅니다. 그리되면 이 황태제님의 회사는 물론이고······ 우리 미국의 은행들도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일본에 투자했던 자금들이 아주 오랫동안 묶이게 될 테니까요.”
맞다.
얼마나 강도 높은 규제가 시행될지는 모르겠지만.
21세기만 해도 상당수의 개발도상국은 자국에서 번 이익들을 해외로 유출하는 데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ATM기로 불리지.’
베트남이나 중국 같은 국가와는 달리 IMF를 한번 겪은 한국 경제는, 다른 일반 개도국과 비교하면 이러한 규제가 상당수 해제된 상태였으니까.
아무튼, 각설하고.
후버의 예측은 상당수 들어맞는 내용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의사 표현을 했다.
“맞습니다. 일본 정부가 해외 자본을 규제하기 시작한다면, 수많은 투자자가 손해를 볼지도 모릅니다. 일본에서 쉬이 돈을 뺄 수 없게 될 테니까요.”
“······.”
후버는 계속하여 근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그때 전화로 강요하지 않았던 것이 더 낫지 않았겠습니까? 괜히 하라와 일본 고위 관료들의 신경만 자극하여, 해당 규제가 기존보다 더 빠르게 생길까 우려되는군요.”
역시.
미국의 대통령답다.
자국의 회사들 안위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대통령님.”
“예. 이 황태제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것도 생각지 않고, 일본에 거액을 투자했겠습니까?”
내가 후버에게 이를 언급하라고 부탁한 것은, 하라가 하루빨리 외국자본을 규제하길 바라서였다.
“물론 대통령님이 우려하시는 대로 일이 흘러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지만?”
불안해하는 후버.
그런 후버를 뒤로하고, 나는 피식 웃으며 왜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저는 대책을 다 세워 두었습니다. 비단 제 회사인 케미컬투자은행뿐만 아니라 록펠러의 내셔널시티은행, 모건의 JP모건 역시도 관련 규제를 예상하고 상당수를 현금화하여 다시금 미국으로 자금을 보낸 상황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예.”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살짝 난감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일본에 투자한 미국계 은행들 전부가 이에 대비하진 않긴 했지만요. 그렇지만 적어도 대통령님을 지지하는 세력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
후버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방금 후버 그가 홀로 생각한 바가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만약 일본이 외국자본을 규제하기 시작한다면, 다음번 대선에 출마하려는 다른 공화당 후보들 그리고 민주당 쪽 지지자들. 그쪽에 줄을 대려는 이들의 자금은 한동안 일본에 묶여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자들이 돈을 회수해서 어디에 쓰겠나?
전부 후버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의 정치 자금으로 들어갈 터.
나는 이를 상세히 설명하며 어깨를 으쓱댔다.
“더불어 이 정도 손해는 미국 경제에 타격을 입힐 정도도 못 됩니다. 미국의 경제는 생각보다 거대하니까요.”
오히려 후버와 나, 우리 둘에게는 이득일 터.
후버는 재선이 되어서 좋을 테고, 나는 정적들의 힘을 빼놔서 좋고.
“그 말은 곧 이번 기회가 정적들의 선거 자금을 끊는,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는 뜻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후버의 표정이 이제야 밝아진다.
미국계 자본 역시도 살짝 타격을 입겠지만.
기존 경제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고.
무엇보다 자신의 재선에 걸림돌이 될 만한 이들이 이번 사태로 타격을 입을 것이 뻔했기에 안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나는 샴페인을 건네며 씽긋 웃었다.
후버의 재선이 진짜로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 변곡점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