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391)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391화(391/392)
< 파리 올림픽 (2) >
중세 시대에는 안 살아 봐서 잘 모르겠지만, 근대나 현대의 왕족들은 대체로 몸을 사리는 편이었다.
입헌군주제가 대세인 지금.
과거처럼 제 목소리를 필터링 없이 냈다간 여론의 뭇매를 한 몸에 처맞기 딱 좋았으니까.
“아, 안녕하십니까? 이, 이 황태제님. 오, 오랜만입니다.”
“오. 앨버트 왕자시구려! 다시 만나게 되어서 참으로 반갑습니다. 그래요. 요새 런던은 좀 어떻습니까?”
“뭐 펴, 평소와 비, 비슷합니다.”
“그렇습니까?”
“예. 혹 마, 맛있는 영국 음식이 그리우시면 어, 언제든 런던으로 놀러 오십시오. 제, 제가 직접 마중 나가서 이 황태제님을 화, 환영하겠습니다.”
현 왕세자인 에드워드 8세의 남동생이자, 엘리자베스 2세의 부친이기도 했던 말더듬이 조지 6세.
그가 나를 살살 꾀듯 시원찮은 농담을 내뱉었다.
‘맛있는 영국 음식이라고?’
설마 괴식으로 내 위장을 가득 채워서 고통스럽게 고문이라도 할 생각인가?
나는 그런 앨버트 왕자의 권유를 그저 웃어넘기며, 바로 옆에 서 있던 유럽의 다른 왕족과 악수했다.
“아, 크리스티안 왕세자께서도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예. 덴마크 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해 이곳 파리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황태제께서도 같은 이유로 오셨겠군요.”
“예. 앗 쿠베르탱 위원장님!”
“오! 이 황태제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예. 아주 잘 지냈습니다.”
입헌군주정에서 왕족들은 보통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야 한다.
하지만 딱 한 분야에서만큼은 지금도, 그리고 현대에서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스포츠 분야다.
그렇기에 자국의 협회에서 협회장을 맡거나, 더 나아가선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기도 하는데.
상당수 왕족은 현재 IOC 위원으로서 대외활동을 하고 있었다.
‘IOC 위원들은 보통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나 선수들에게 관심을 보일 뿐, 이를 주관하는 윗사람이 누구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언론을 아예 안 타는 것은 아니었다.
그 나라에서 크나큰 국제 행사를 개최하게 된다면, 뉴스에 제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되니까.
하지만 걱정 없다.
이때만큼은 왕족들도 언론에 자유로이 노출되어도 괜찮았다.
자신의 타고난 영향력을 국익을 위해 쓰는 행위.
보통 같았으면 나댄다고 언론에 한 소리 듣겠지만, 국제 무대를 유치하는 데 그 힘을 쏟아붓는 것이기에.
이때만은 언론도 찬사를 보내며 왕족들을 응원했다.
그랬기에 이렇게 파리 올림픽에 수많은 왕족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겠다.
밖으로 나다니며 스트레스도 풀 겸.
언론에 좋은 보도도 덤으로 낼 겸.
“이 황태제님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제게 말입니까?”
IOC 위원이 되고 싶어서, 수뇌부에 돈을 좀 먹이긴 했는데 말이다.
쿠베르탱이 이리 대놓고 나를 추켜세워 주다니!
효과 한번 확실하네.
“오호, 흥미롭군요.”
“위원장님께 어떤 조언을 한 것입니까?”
다수의 왕족이 이에 관심을 보인다.
갑작스러운 관심에 깜짝 놀란 나는, 저도 모르게 마시던 샴페인을 살짝 잔에 내뱉고 말았다.
그러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 양반들이 왜 이러나?’ 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쿠베르탱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하던 말을 이어 갔다.
“이 황태제님께서 4년 전에 제게 조언을 하나 해 주셨습니다.”
“4년 전이라면······.”
“그 IOC기 관련으로, 보관 문제에 관하여 저희에게 경고하시지 않았나이까?”
제1회 올림픽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지만.
흔히 ‘오륜기’라고 부르는 IOC 깃발이 도입된 대회는 4년 전인 1920년 안트베르펜 때부터였다.
“아! 기억납니다. 누가 훔쳐 갈 수도 있으니, 보안에 특별히 유념하라고 한마디 하긴 했지요.”
“예. 그렇습니다.”
IOC기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그런 말을 하냐 내게 물을 수도 있겠다만.
본디 아무것도 아닌 돌에도 의미가 부여되면, 문화재가 되곤 한다.
지금의 경우는 오륜기라는 깃발에 처음이라는 의미가 부여된 상황.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협회 차원에서는 기념이 될 만한 사안이었기에, 위원장이 저리 진땀을 흘리면서 내게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하는 것이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동시에 머쓱한 표정도 지었다.
“그리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큰일이 아니라니요? 이 황태제님께서 저희에게 경고하지 않았다면, 빌어먹을 도둑놈에게 우리 깃발을 도둑맞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 말은 사실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대회가 끝난 직후 사라졌으니까.
‘이번 대회인 파리 올림픽 때 다시금 만들어서 88년 서울 올림픽 전까지 사용했지.’
로비스트로서, IOC와 관련된 많은 사업을 함께 했다.
이 때문에 이런 역사적 헤프닝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이리 도움이 될지는 나도 몰랐다.
“이 황태제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IOC 위원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빈말이긴 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나로선 기분이 좋다.
내 조언 덕분에 역사적인 유물이 도둑맞지 않고 제자리에 보관되어 있었으니까.
더불어 IOC 내에서 내 영향력도 쿠베르탱의 발언 덕분인지 한층 더 높아졌기에, 나는 속으로 미소 지으며 곧 내년에 퇴임할 쿠베르탱을 위해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를 천천히 염두에 두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대회에 대한합중국 또한 선수단을 보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이다.”
비단 우리 대한합중국 말고도.
일본, 중국, 만주국까지.
동아시아 4개국이 이번 올림픽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원래는 유럽과 미국 등 서구인들만의 축제였지만, 진정으로 세계인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 대회가 된 것이다.
이 때문인지 쿠베르탱 위원장은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꽤 많은 선수를 이번 대회에 참가시켰다 들었습니다만.”
“예. 거의 모든 종목에 선수들을 출전시켰기에, 선수단 규모가 생각보다 크긴 합니다.”
원 역사에서는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후, 1948년에야 올림픽 대회에 출전한다.
하지만 나로 인해 역사가 바뀌었다.
무려 24년이나 더 빠르게 국제무대에 발을 들인 것인데, 쿠베르탱은 살짝 뿌듯해하는 나를 보며 한 가지 질문을 했다.
“황태제님께서는 IOC 위원이자 대한체육회 협회장이시지요?”
“예.”
“체육계에 상당량의 자금을 지원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이번에 대한합중국 선수단이 메달을 딸 것이라 기대하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어느 분야 선수가 유망합니까?”
“다들 국제대회에는 처음 출전하는 거라 많이 떨고 있을 겁니다.”
처음 발언은 여느 동양인처럼 겸손하게.
하지만 서양에서는 너무 겸손하기만 하면 무시당할 수도 있기에, 나는 마지막에 살짝 자신감을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양궁이나 사격 분야에서는 기대할 만할 것 같습니다. 최소 다섯 개 정도는 메달을 딸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정도나요?”
“예.”
“풋······.”
그때였다.
한 인물의 입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대는?”
“야스히토라 합니다. 대 일본제국의 이 황자입니다.”
비웃음이 터트린 이는 바로 히로히토의 동생 야스히토였다.
일본 내에서 스포츠 왕자라 불리는 자.
럭비와 스키 등 다양한 운동을 전 국민에게 보급하고 있는 아주 활동적인 남자였다.
그런 그가 내 말에 비웃으며 딴지를 걸었다.
“방금 본인이 한 말이 많이 웃깁니까?”
“아닙니다. 그저 너무 자신감을 보이는 것 같으셔서요.”
“그래요?”
“예.”
야스히토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말에 확신을 보였다.
“길고 짧은 것은 끝까지 가 봐야 알지 않습니까?”
“그렇죠. 다만, 너무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자칫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도 같다고 배워서요.”
“그렇습니까?”
“예.”
나와 야스히토가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에 유럽의 왕족들은 조용히 이를 지켜보며 ‘쟤네 또 저런다.’ 하는 표정을 보였다.
* * *
프랑스의 양궁 경기장.
나는 그곳에서 한 선수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디쓰(Dix)!”
“디쓰(Dix)!”
대한합중국 대표로 결승전을 치르고 있던 김익상이라는 선수의 경기였다.
“디쓰(Dix)!”
디쓰는 프랑스어로 10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지금 경기를 치르는 선수가 10점을 연속으로 세 번이나 쏜 것이었는데.
“와······.”
나는 물론이고 내 옆에서 이를 같이 관람하던 헨드릭 역시, 입을 쩍 벌리며 감탄을 연이어 터트렸다.
“대한의 선수들, 대단한걸?”
헨드릭은 부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대화를 이어 갔다.
“다음 올림픽 때 왜 양궁을 퇴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는지 이해가 가는군. 하나같이 신궁들만 모인 것 같네.”
1920년 파리 올림픽에서 양궁 종목은 걸려 있는 메달은 총 10개다.
현대에는 세분되지 않고 크게 뭉뚱그려서 경기를 진행하지만.
작금의 시대에는 단체/개인전뿐만 아니라 거리별로 세부 종목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더하여 이동하느냐의 여부로서 다시금 구분하고 있었기에, 현대보다 걸려 있는 메달 수가 많았다.
“정말이지 미친놈일세. 십 점만 계속 쏴 대다니! 저 선수도 금메달을 따겠어!”
그중 대한합중국 선수들은 총 7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고 있었다.
나의 로비 덕분인지, 양궁 종목은 원 역사와 다르게 1928년에도 계속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헨드릭은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이런 성과가 나왔냐는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만점으로 이번 결승 경기를 끝내는 것은 아니겠지?”
“나야 모르지.”
헨드릭이 다시금 자리에 앉은 후, 고개를 돌렸다.
경기장 반대편에 모습을 드러낸, 야스히토를 바라본 것이다.
“저놈은 속이 타겠군.”
“······.”
“주변인들로부터 제 형이 어떻게 망신당했는지도 듣지 못한 모양일세.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제 형과 똑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히로히토면 몰라도 야스히토는 나와 급이 맞지 않은 잔챙이니까.
저자와 대립할수록 야스히토의 존재감만 더 높아질 것이기에, 나는 일본의 이 황자를 이번 대회 동안 계속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헨드릭도 내 속마음을 읽은 모양인지, 계속하여 관련 내용을 물어보지 않고 대화 주제를 돌렸다.
“자네의 선조이자, 조선을 개국한 이가 명사수라는 이야기는 역사책에서 배웠는데······ 저자 말이야. 자네 선조를 꼭 닮은 모양일세.”
나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에도 헨드릭은 조선의 역사에 관해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의 입에서 관련 정보가 나왔기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에 관해 물었다.
“그런 것도 따로 공부했는가?”
“그럼. 사돈 될 사이인데, 이정도야 기본이지.”
“······.”
“자네도 우리와 영국, 그리고 우리와 벨기에 사이 관계에 관해 아주 빠삭하게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긴 한데.
“그보다······.”
이번에도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헨드릭이 재빨리 다른 이야기를 꺼내며 또다시 대화 주제를 돌렸다.
“다음번 올림픽 개최지는 어디가 될 것 같은가?”
“글쎄. 암스테르담 아니면 로스앤젤레스가 되겠지. 분위기상으로는 두 도시가 1928년과 1932년을 나누어 가질 모양새니까.”
암스테르담은 빌헬미나의 모국인 네덜란드의 도시다.
로스앤젤레스는 미 서부에 자리한 신도시로, 현재 내가 밀고 있는 개최지였고.
“나도 그리 생각하는데 말이야.”
본의 아니게.
우리 둘이 경쟁을 하게 되었다.
여태껏.
같은 편에 서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서로 경쟁자가 된 것인데.
헨드릭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다음 말을 이어 갔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올림픽을 개최하겠네.”
“······.”
“LA는 대한합중국의 도시도 아니지 않던가? 그러니 자네가 좀 양보하게.”
나는 그 즉시 팔짱을 끼었다.
헨드릭이 뭐라고 말하나 일단은 경청할 생각이었으니까.
“내, 우리 아들과 지니를 결혼시키기 위해서라도 1928년에는 암스테르담에서 올림픽을 치르고 싶다네. 개회식 때, 자네 딸이 우리 부부 옆에 서 있다면 얼마나 보기 좋겠나?”
“······.”
“더욱이 자네와 나는 예비 사돈 관계가 아닌가? 이 정도는 양보해 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1927년.
우리 딸이 16살, 성년이 되는 해에 기어코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말이지?
“글쎄.”
갑자기 내 속 무언가 알 수 없는 깊숙한 곳으로부터 반감이 올라왔다.
아직은······.
내 자식들을 내 울타리 안에 두고 싶은데 말이다.
적어도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품 안에 끼고 싶은데.
“나 또한 사정이 있어서 말이지. 그렇게는 못 하겠네.”
“에잇!”
나의 거절에 헨드릭은 살짝 화가 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내게 화를 냈다.
“고집이 고래 심줄 같구먼. 퉤- 그래. 끝까지 경쟁해 보세나. 내가 자네 코를 아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네.”
저, 저.
베베 꼬인 성격 좀 보소.
나는 씩씩대며 떠나는 헨드릭의 뒷모습을 잠시 관찰하다가, 이내 옆으로 다가오는 최현우를 쳐다보았다.
“전하.”
“그래. 무슨 일인가?”
“저 그게······.”
“왜? 누가 또 나를 만나고자 접견 요청이라도 하였는가?”
“예.”
최현우는 머리를 긁으며 파일 하나를 내게 건넸다.
그 안에는 다음에 만날 수도 있는 한 사내의 이름과 관련 정보가 적혀 있었다.
“이탈리아 총리가 전하와의 만남을 원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나는 최현우가 건넨 파일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이내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솔리니라······.”
히틀러, 스탈린과 함께.
서구에선 3대 악마로 불리던 독재자가 아니던가?
짝-
나는 파일을 덮은 후, 자리에서 일어서며 최현우에게 이를 건넸다.
“알겠네. 오늘 오후에 잠시 시간이 있으니, 내가 머무는 호텔로 오라고 하게나.”
< 파리 올림픽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