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4)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4화(4/392)
< 종잣돈 >
어젯밤은 피곤했다.
고종 황제의 호주머니에서 비자금을 어떻게 빼낼지, 밤새 고민했으니까.
‘황제의 비자금이 얼마였더라?’
한인 신문에서 읽었던 ‘별별 세상 뉴스 토픽’ 기사 내용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그래.
고종의 비자금은 대략 200만 달러 정도 되었었지.
‘이 정도면 일개 종잣돈이라 말하기에는 제법 많은 양인데······.’
일이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다음 달쯤엔 엄청난 거금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고종 황제의 비자금은 가만히 두면 결국 독일과 일본에 빼앗길 돈이었다.
그렇기에 죄책감도 별로 들지 않았다.
남 좋은 일 해 줄 바에, 내가 가져와서 좋은 일에 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커피와 오믈렛을 내오게나.”
“예.”
황제의 비자금을 가져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밤을 새워 가며 계획을 짰다.
‘이런 날에는 역시 카페인이지.’
날밤을 새웠으니, 커피와 설탕으로 몸을 충전해야겠지.
“아! 오늘은 좀 많이 피곤하니 커피에 샷을 좀 추가해서 가져오게.”
“예? 샷 추가라니요?”
“거, 커피 원두를 우릴 때 있잖은가······ 원두를 볶은 후 한 번 더 내려, 평소보다 진하게 타 오라는 뜻일세.”
“아, 예. 그리하겠습니다.”
“자네는 왜 안 시키는가?”
나는 나를 따라 내려온 우현식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우현식이.
“돈을 좀 아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며 뒤끝을 보였다.
“이 사람도 참······ 여기. 여기도 커피 한잔 내오게.”
“아껴야 합니다. 전하!”
우현식은 나의 자금을 관리하는 재정 관리인이다.
지난밤에 내 자산을 확인하던 중 모아 둔 돈이 하나도 없던 탓에 고까운 소리를 좀 했는데······.
이거, 사람 무안하게 뾰로통한 소리를 한다.
‘이리도 소심해서야······.’
잠시만······.
다시 생각해 보자.
여태 그 많은 돈을 누가 썼는가?
이강이다.
우현식이 초반에 열심히 만류했는데도 이강은 파티에 돈을 그리 쏟아 가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이놈은 잘못이 없어.’
소심할 뿐.
돈 관리는 잘했다.
잘 생각해 보면 빚은 없지 않은가?
“내가 불편해서 그러네. 자, 먹게나.”
“안 됩니다. 아껴야 합니다.”
에잇!
이런 푼돈은 아껴도 부자가 안 된다고.
이런 돈 아껴서 잘 살았으면, 세상천지의 사람들이 죄다 부자가 되었을 거다.
“밥은 먹고 살아야지. 그래야 열심히 일하지 않겠냐?”
“······.”
“어젯밤은······ 커흠. 미안하네. 내 지난날 행동을 잊고 있었네.”
우현식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하긴.
윗사람이 사과하는 것은 보기 힘든 모습이지.
“자자······. 그러니 이제 아침밥을 먹게. 웨이터. 나랑 같은 메뉴로 하나 더 내오게.”
나의 권유에 우현식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좀 풀렸는지, 조식이 나오자마자 우걱우걱 제 입에 음식을 넣기 시작했다.
‘먹음직스럽게도 먹네.’
음식을 흡입하는 우현식을 보다 보니, 궁금해진다.
이자와 나는 무슨 관계일까?
왜 이자는 이 먼 곳까지 날 따라온 것일까?
‘그러고 보니, 우현식은 돌아가신 원 몸뚱이와 피로 맺어진 관계군.’
왕족은 아니지만.
우현식은 이강의 친모와 외종 오촌 관계다.
그래서일까?
이 몸에 빙의한 후, 이자와 같이 보낸 시간은 겨우 이 주지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이강의 기억 때문인지 친밀감이 상당하다.
‘어릴 적부터 산전수전을 함께 겪어서 그런 모양이군.’
아, 그러고 보니.
나를 따라서 미국으로 떠난 이는 두 명인데.
한 명은 지금 내 곁에 있던 우현식이고, 다른 하나는 최현우였다.
며칠 전까진 있는 듯 없는 듯 따라다니더니, 오늘따라 최현우는 어디 있는 것일까?
“아······ 자네 말고 그, 있잖은가.”
“예?”
“최현우.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서둘러 다른 가신의 신상을 물었다.
그러자, 우현식이 막 나온 커피잔을 들다가 다시금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밖에 볼일이 있다고 이른 새벽에 호텔을 떠났사옵니다.”
“호텔을 떠나?”
일본 정부에서 온 이를 따라 우정국으로 급히 갔다고 한다.
‘일본 정부 요원을 따라갔다라······.’
무언가 찜찜함이 나를 덮쳤다.
그렇게, 한참 동안 밥만 먹으며 최현우에 관한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 * *
“전하.”
“말하라.”
“저기, 호선(최현우의 호)이 보이옵니다. 방금 호텔에 도착한 것 같사옵니다.”
우현식의 말대로 내 눈에 최현우가 보였다.
키가 왜소한 일본인들 사이에서 걸어와서 그런지 쉬이 눈에 띈다.
최현우도 우리를 발견한 건지, 서둘러 다가왔다.
“전하.”
내가 막 돌아온 최현우에게 손짓하며 같이 동석할 것을 권했다.
“자네를 잠시 찾았는데······ 지금까지 어딜 다녀온 건가?”
행선지를 묻자, 최현우가 빠르게 답했다.
“소신 급히 우정국에 다녀와야 했습니다.”
“우정국?”
“예. 한양에서 전보가 왔다는 소식에, 전하께 조금이라도 일찍 드리고 싶어 이른 새벽부터 움직였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최현우가 종이 하나를 내게 건넸다.
전보 내용이 해석된 글이었다.
“흠······ 보자.”
일전에 사람을 보냈다.
내 집에서 일하고 있는 쓸 만한 장정 중 몇몇을 동경으로 보내 달라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 내 사람을 좀 더 추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를 수신했다고, 전보로 답변이 왔다.
“······그래. 이게 끝인가?”
“예.”
“한양에서는? 내 귀국 문제는 어찌 진행되고 있지?”
“그게······.”
돌아갈 마음은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비자금에 손을 대려면 계속 조선에 입국하고 싶어 하는 척 연기를 해야 했다.
‘사람을 좀 만나야 하거든.’
원 몸뚱이의 주인과 그의 아버지인 고종과의 관계는 썩 좋지 못하다.
대략 4년 전, 일부 강성진보 개화파가 주축이 되어 과격 혁명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괜한 불똥이 튀었지.’
이 실패한 반역분자들이 고종 대신 이강을 새 황제로 추대하려 했다.
이강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 덕분에 이강의 친아버지인 고종은 제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귀비의 부추김에 두 부자의 사이는 더욱 나빠졌고.
‘쉽게 비자금을 내놓을 양반이 못 되니······.’
고종이 아닌 금고지기를 공략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파란 눈의 금고지기.
헐버트와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자와 만나기 위해선 내가 조선으로 들어가거나, 헐버트가 일본으로 와야지.’
조선으로 돌아가는 게 어찌 보면 제일 쉽겠으나, 한 번 들어가면 언제 또 빠져나올 수 있겠냐는 게 문제였다.
더불어 조선에서도 내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테니, 비자금을 관리하는 금고지기를 쉽게 만날 수도 없을 터다.
그럼 남은 방안은 하나.
최대한 자연스럽게 헐버트를 일본으로 불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연기가 필요해.’
내가 아침부터 호텔에서 커피를 홀짝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 나누는 대화들을 다른 이들이 모두 알았으면 좋겠으니까.
나는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고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또 같은 소리로군. 기다려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 앵무새 같이 반복만 하고 있어.”
쾅- 쾅-
탁자를 주먹으로 두들기며 큰 소음을 냈다.
목소리도 있는 힘껏 냈다.
“뭐야?”
“저 동양인은 뭔데 흥분하는 거야?”
이목이 쏠린다.
나의 의도대로다.
‘자자······ 날 관찰해라. 그리고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그대로 전달하는 거야.’
모두가 들리도록, 나는 더욱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가! 에잇!”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나의 가신들이, 그리고 감시자들이 나를 따라 이동했다.
* * *
1막이 끝났다.
다음 2막을 준비할 차례.
흥분한 표정을 계속 유지하며 잠시 방으로 이동했다.
“전하.”
“알겠네.”
다시금 저녁밥을 먹을 시간.
나는 두 명의 조선인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보스!”
그때였다.
호텔 앞에서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다가왔다.
익숙한 얼굴들.
“보오- 스!”
“후······ 뽀스. 날이 더워서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주근깨투성이에, 빨간 머리가 인상적인 이들.
몸 크기는 다 다르지만 얼굴은 비슷한 색목인들.
이들을 보며, 나는 반가움을 표현했다.
“아론. 그리고 카플란, 맥스.”
이들은 미국에서부터 날 따라온 이들이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이강이 저들 어머니의 병원비를 지원했다가 인연이 된 이들.
‘6년 동안 다녀온 유학의 결과이기도 하지.’
저들 삼형제는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 미국인들이었다.
그 말은 즉, 상류층은 아니고 하류층에 가까운 이들이란 뜻.
그렇기에 나를 왕자가 아닌 보스라 칭한다.
왕자란 말은 낯간지럽고, 그들이 증오하는 영국 왕실이 생각난다 했기에 이강이 직접 자신을 보스라 부르라 명한 거다.
‘인맥이란 게 그래.’
돈 쓸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친해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막상 더 뜯어먹을 게 없게 되면 그 인맥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동양의 왕자.
처음 봤을 때는 호기심이 넘치고, 이놈에게 뭔가를 얻어먹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겠지.
하지만 후계권은커녕 고국에서의 영향력은 하나도 없는 쭉정이라는 게.
지갑마저 텅 빈 존재라는 게 밝혀져 봐라.
사람들은 금세 외면할 것이다.
‘이놈들이라도 따라온 게 어디야.’
미국의 상류층 사회에서 이강은 그냥 가십거리였다.
결국 이강을 끝까지 따라온 이들은 이자들뿐.
“그래······. 내가 알아보라 한 일은?”
화를 잔뜩 내고 객실로 돌아온 후, 옆옆방에 묵고 있던 이들에게 몇 가지를 부탁했다.
미국으로 유학 가 있을 때도, 이강이 시켰던 허드렛일을 제법 했던 이들.
보스라 부르며 충성을 다하는 자들답게, 역시 밥값을 해내었다.
“여기 있습니다.”
가장 큰 형이며, 세 형제 중에서 머리를 담당하고 있는 아론이 내게 서류를 건넸다.
영어로 메모가 적혀 있다.
내가 쪽지를 가리키자 아론이 입을 열었다.
“가장 빠른 쓰시마행 배편은 내일이랍니다. 그다음은 다음 주 월요일이고, 그다음은······.”
남자인데도 목소리가 굉장히 미성인 맥스가 옆에서 추임새를 넣었다.
“뽀스. 가는 김에 동래나 인천으로 가시지요. 굳이 볼 것도 없는 쓰시마는 왜 가십니까?”
실시간으로 두 한국인 가신들의 얼굴색이 변한다.
한 놈은 새하얗게 질려 가고, 다른 이는 반대로 얼굴이 잿빛으로 바뀌어 갔다.
‘그래그래. 더 촐싹거려라.’
이강이 넘겨준 기억 속에서도, 맥스는 참 눈치가 없고 말을 재잘거리는 촉새였다.
역시나 지금도 이강의 기억대로 행동한다.
주변의 시선이 어떻든, 맥스는 계속 주둥이를 나불거렸다.
“듣자 하니 쓰시마는 별것도 없다던데······. 쓰시마에서 동래까지는 날이 좋으면 하루도 안 걸리지 않습니까? 이참에 보스의 조국으로 귀환하시지요.”
“맥스. 보스께선 깊은 뜻이 있을 거야. 입국 허락이 아직 안 떨어졌다고 지난날에 말씀하셨잖아.”
“그까짓 거 그냥 무시하고 가면 안 됩니까, 형님. 보스, 우리 보스는 왕자님이시잖아요. 뭐가 무서워서 그리 몸을 사리시는 것입니까?”
대화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최현우가 급히 끼어들었다.
“전하. 정녕 이들의 말대로 쓰.시.마.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응?
나는 태연하게.
무슨 잘못을 했냐는 얼굴로 최현우를 쳐다보았다.
“동경에만 있는 것이 답답해서, 내 이자들을 통해 쓰시마 배편을 알아보라 했네.”
뭘 잘못했는데?
생각해 보면, 애초에 나는 동경에만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동경이 그나마 일본 내에서 발전한 곳이라서 있는 거다.
‘더하여, 쉬이 전보에 접근할 수 있어 본국과 빠르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서 이곳에 있는 거고.’
전보 근처에 살아서 뭐 하나?
협상은 본래 사람 대 사람이 만나서 해야 하는데.
‘한마디로, 굳이 이곳에 안 있어도 된다는 말이지.’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기왕 일본에 온 김에 지방 각지로 여행도 좀 다녀 봐야 하지 않겠나?”
“에이, 보스. 그러지 말고 동래로 가시죠.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이 뭡니까?”
아론이 맥스의 옆구리를 툭툭 친다.
굳어 버린 조선인 가신들의 얼굴을 지켜보다가 분위기를 파악한 모양이다.
“아 왜? 그럼. 언제까지 기다릴 건데.”
그러자 맥스가 짜증을 있는 대로 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잘한다, 이놈.
“전하!”
최현우가 내 표정을 읽고 엄포를 놓았다.
“폐하의 허락 없이 입국을 시도하신다면······.”
“죄를 짓는 것이지. 암. 그것은 나도 잘 아네.”
나는 아주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며 다음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나는 폐하의 자식일세. 설마 폐하께서 제집에 돌아온다고 나를 벌하실까?”
< 종잣돈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