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44)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44화(44/392)
< 교민 구출 >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눈을 꾹 감은 채,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조용히 명상하고 있었다.
아론이 보고했던 마지막 정보가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움직임은 예상했던 일이야. 문제는 다른 곳에 있지.’
보헤미안 클럽 안에 일본 정부와 손을 잡은 내부자가 있다.
셀레나에게 돈을 주었던 미국인이 샌프란시스코 주재 일본 영사관에 잠시 머물다가, 이내 클럽하우스로 향했으니까.
아론이 확실히 보았기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범인은 세 사람 중 하나가 확실해.’
지난날 주지사를 제치려다가 감옥에 들어간 아베 루에프와 관련된 자일 수도 있고.
나의 클럽 가입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인종차별주의자 존 펠란 전 시장의 지시를 받은 부하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남태평양 철도회사의 신임대표로 취임한 앤서니의 측근일지도 모른다.
‘그간 앤서니가 날 호의적으로 대했다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으니, 넋 놓고 안심할 수는 없지.’
여기서 최악의 상황이 생긴다면.
셋이 똘똘 뭉쳐서 나를 몰아내려고 시도하는 것 정도일 텐데.
나는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일단 배후가 누구인지 모르잖아? 알아낼 때까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괜히 심력만 소비한다.’
아론은 셀레나에게 돈을 준 범인의 얼굴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만약을 대비해 몰래 그의 사진도 찍어 두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계속 활동하는 중인 것 같으니, 시간을 좀 더 가지고 그자의 행적을 조사한다면 곧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 낼 수 있을 거다.
대응책은 그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뽀스. 무슨 생각을 그리 진중하게 하고 계십니까? 설마 어제 만났던 셀레나, 고 계집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니시죠?”
계속 고민하고 있던 터라, 나는 센트럴 호텔을 떠날 때부터 계속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에, 맥스가 내게 농담을 던지며 차 안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런 맥스를 바라보았다.
“내 옆에서 5년이나 있지 않았나?”
“그랬죠.”
“그런데도 자네는 날 모르는가? 나는 떠난 여자에게 미련을 두지 않네.”
셀레나와 사랑을 나누지도 않았으니, 정확히는 그녀가 내게 온 것도 아니긴 하지만.
굳이 이것까지 바로 잡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씩 웃기만 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뽀스. 그 나쁜 년은 인제 그만 머릿속에서 잊으시지요. 떠난 여자에게 미련 두는 것만큼 바보 같은 놈은 없습니다.”
맥스가 쓱- 제 형인 아론을 쳐다본다.
이에 아론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이고, 아론아.
왕년에 사고 좀 치고 다녔구나.
떠난 여자에게 매달리며, 어리석게 좀 질척거렸나 봐?
‘아서라. 남의 연애사에 신경 쓸 시간에, 내 연애 상대나 구해야지.’
앞으로는 데이트 상대를 만나기가 더 어려워질 거다.
나는 계속 성장할 거고, 이에 따라 나를 싫어하는 세력 역시 늘어날 테니까.
‘제2, 제3의 셀레나가 등장하겠지.’
오히려 더욱 교묘해질 거다.
미인계를 사용하며 내게 접근하는 여인들의 연기력도 한층 더 좋아질 거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재혼 또한 슬슬 생각해 봐야 할까?’
아직 만으로 29살밖에 안 된 20대 청년이지만, 이것은 21세기 기준이고.
1900년대의 29살은 제법 나이가 꽉 찬 축에 속했다.
혼기도 찼고.
자식 또한 얻어야 하는 상황이기에, 슬슬 내 곁을 굳게 지킬 배우자가 필요했다.
‘운명적인 사랑을 기대해선 안 되겠지?’
신분이 왕자이지 않은가?
순수한 사랑만으로 결혼한다는 것은 동화에서나 나올 일.
그렇다면, 내가 대응할 확실한 방법은 하나다.
나도 상대의 배경을 보는 거다.
‘유력 미국 정치인의 딸이나 재벌 집 처자들을 알아봐야 하나? 아니면, 유럽 내 왕족이랑 혼인을 맺을까?’
머리가 너무 복잡하면, 그냥 이쁜 조선인이랑 결혼해도 괜찮겠고.
누가 좋으려나?
한참을 내 미래의 반려자에 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뽀스! 뽀스!”
“응?”
맥스가 급히 차에서 내린 후, 내 쪽 가까이에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지요.”
집이다.
제법 화려했던 센트럴 호텔에 있다 왔는데도 이리 반가운 것을 보면, 역시 내 집이 최고인가 보다.
나는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침대에 누운 채, 뒹굴뒹굴하며 몸을 편히 쉬고 싶었으니까.
운동이나 육체노동을 오늘 빡빡하게 한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했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발 보폭을 크게 하며, 집 앞에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쏜살같이 가로질렀다.
“이 죽일 놈의 배신자. 네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이곳에 들어온 게야. 썩 꺼지지 못해?”
응?
문을 열고 집안에 조용히 들어왔는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구당 선생님. 이거 놓고 말씀하십시오.”
“맞습니다. 이러다 좌옹 선생님께서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집안에서 일하는 이들은 다들 싸움을 말리는 데 정신이 팔렸는지, 내가 돌아온 지도 몰랐다.
“너 때문에, 네놈 때문에······ 수많은 동지가 목숨을 잃었어.”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 현 상황을 빠르게 파악해 보았다.
유길준이 누군가와 치고받고 싸우고 있고, 최현우와 우현식이 이를 말리고 있는 것 같은데.
“더욱이 의왕 전하 또한 그 사건 때문에 폐하의 신임을 잃게 되었는데. 감히, 네놈이 이곳에 발을 붙여!”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의왕 전하께서 폐하의 신임을 잃게 된 것은 모두 다 자네 탓일세.”
“뭐?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감히 막말을······.”
“사실이지 않은가? 자네의 신기루 같은 혁명 시도만 아니었어도, 아무도 희생되지 않았을 거야. 의왕 전하 또한 예전에 귀국하셔서 조선에서 잘 지내고 계셨겠지.”
“이 개자식이. 계속 말해 봐. 내 네 몸의 모가지를 오늘 기필코 꺾을 테다.”
“아이고, 우당 선생님!”
대화를 엿듣고 있자니 조금 흥미롭기도 했다.
‘내 이야기도 나오네?’
잠이 확 깨는 것 같다.
뒷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서, 걸음 속도를 한껏 끌어올리며 거실로 이동했다.
“저, 전하.”
“오셨습니까?”
거실 안에 들어서자, 그 안에 모여 있던 내 일행들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내 집에서 이리 소란을 피우는 것인가?”
“······.”
“······.”
유길준은 입을 꾹 다물며, 한 남자의 멱살을 계속해서 잡고 있었다.
“말해 보게, 구당. 일단 그 손부터 놓는 게 좋겠네? 그러다가 사람 하나 잡겠군.”
내가 그를 바라보며 지긋이 권유하자.
“송구하옵니다. 전하.”
“큭.”
유길준은 황급히 그 남자의 멱살에서 손을 뗀 후,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
우리 집에 방문한 낯선 이는 잡혔던 곳이 아픈지, 제 손으로 연신 목덜미를 문질러 댔다.
“······.”
“······.”
고요하다.
잠시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 때.
처음 보는 손님이 옷매무새를 빠르게 정비한 후, 내게 대한제국식 큰절을 올렸다.
“전하. 늦었지만 소인이 올리는 인사부터 먼저 받으시옵소서.”
낯선 손님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며 내가 입을 뗐다.
“자넨······.”
“전 외부협판이었던 윤치호 인사 올리옵니다. 그동안 평온하셨나이까?”
* * *
윤치호?
누구더라?
아······.
생각났다.
일본에서 막 떠나 하와이로 가는 길에 유길준에게 국내 정보를 물어보았었지.
그때 이자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유길준이 입에 거품까지 물며 ‘윤치호’ 만큼은 절대로 가까이하지 말라고 내게 조언했었는데 말이다.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네?
‘들어올 때부터 고래고래 배신자라고 힐난하던 게······ 모두 윤치호를 두고 하는 말이었군.’
둘이 함께 혁명을 꿈꿨는데, 윤치호가 이를 밀고했다고 했었나?
쓱- 고개를 돌렸다.
유길준의 표정을 살피기 위함이다.
그는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앞이라서 그런지 차마 화를 겉으로 표출하진 못하고 속으로 삭이는 중이었다.
나는 다시금 윤치호에게 시선을 돌리며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여긴 어떤 일이지? 본국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전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여, 이리 기별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윤치호가 품 안에 숨겨 두었던 서찰 하나를 꺼냈다.
그러곤 내게 건넨 후, 전후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폐하께서 소인에게 밀명을 내리셨습니다.”
아직 고종의 밀서를 펼치진 않았다.
나는 윤치호를 계속 바라보며 눈을 껌뻑껌뻑했다.
나에게 부탁을 한 것도 아니고.
윤치호, 그에게 고종이 명령을 내린 것인데.
왜 날 찾아왔냐는 무언의 대답이다.
이에, 윤치호가 솔직하게 답변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일이 꼬이게 되었습니다. 제 역량으로는 폐하의 밀명을 수행할 수 없겠다 생각이 들었지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고종의 황명이 담긴 밀지를 개봉했다.
그 안에는 멕시코에서 고통받고 있는 교민 천여 명을 구하라는 어명이 적혀 있었다.
“멕시코에도 우리 조선인들이 이민을 갔는데 말입니다. 사기를 당하여 현재 크게 고통받고 있다 합니다.”
재작년 영국인 마이어스와 일본 이민 주관사가 교민들을 속여 멕시코에 천여 명의 한인들을 팔아넘겼다 한다.
피해자들은 덥디더운 유카탄반도에서 선인장의 한 종류인 에네켄을 재배하고 있다고 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착취당하고 있다던데, 일본 정부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작년에 우리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해 외교권을 강탈당했습니다.”
윤치호가 을사늑약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외부협판 자리에서 물러서며, 그 당시에 강하게 반발했다는 걸 내게 몇 번이고 강조했다.
“그래서 한양 정부는 공식적으로 멕시코에 항의할 수 없습니다. 이에 황제 폐하께서는······.”
고종은 지금도 일본과 격렬하게 대치하며, 작년에 체결된 조약이 계속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제 사회에 조선이 아직 외교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나 보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윤치호를 바라보았다.
그 후, 그에게 물었다.
“보통 이런 일은 헐버트가 주로 하는 것으로 아는데, 왜 그자 대신 자네가 이 명을 받는 것이지? 혹시 헐버트가 아프기라도 한가?”
헐버트는 내게 꼭 필요한 존재다.
백인 지식인 계층 중에서 대한제국을 아무런 개인 욕심 없이 도와주는 이는, 헐버트 말고는 거의 없으니까.
“최근에 일본의 감시가 한층 더 강화되었습니다. 특히나 폐하의 수족들을 더욱더 옥죄고 있지요.”
다행히도 헐버트의 신상에는 별 이상이 없는 듯했다.
“헐버트가 멕시코로 떠나면, 일본이 사전에 이를 알아채고 방해할 수도 있으니 자네를 보냈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나는 밀서를 다시금 정독하며, 안에 적힌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듯 윤치호에게 물었다.
“교민 구제 활동비는 어떻게 마련하려고 했나? 천여 명이나 되는 교민들을 구출하려면 꽤 큰 비용이 들 텐데.”
“그것 때문에 전하를 찾아온 것입니다. 소인은 대한제국공사관 부지를 이용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설마 판 것은 아니겠지?”
“소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소인은 이를 제값에 팔고자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수소문해 보았지만, 쉽지 않아서 차마 팔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다행이네.
그 건물의 무형가치가 얼마인데 그걸 팔려고 해.
윤치호는 내 눈치를 보며 하던 말을 이어갔다.
“내게 대사관 용지를 팔아넘기고, 자네는 그 돈으로 교민들을 구하겠다?”
“예.”
아!
무언가 정리가 된다.
더불어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보이고.
‘내가 구해야 한다.’
교민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나의 강력한 지지기반이다.
더욱이 미주 이민의 구멍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회로를 하나 뚫어 놓을 필요도 있다.
마침, 딱 맞게 윤치호가 날 찾아왔네.
“다들, 떠날 준비를 하게.”
“예?”
윤치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유길준을 비롯한 조선인 일행들도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하는가? 내 말이 안 들리는가?”
“전하, 그게 무슨······.”
윤치호의 반응이 이해된다.
대사관 부지를 담보로 활동 자금을 끌어쓰려고 했는데 말이다.
내가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이니 눈을 크게 뜨는 것이겠지.
나는 윤치호를 보며 활짝 웃었다.
“내일 아침 멕시코로 떠나도록 하지. 나와 함께 교민들을 구하러 가세나.”
< 교민 구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