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46)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46화(46/392)
< 교민 구출 (3) >
윤치호에게서 전권을 다시 가져온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에 만났던 멕시코 관료들과 다시 약속을 잡는 것이었다.
이에 윤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은 이미 지난 만남을 통해서 우리 부탁을 여러 차례 거절하며, 안 된다고 대놓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뭐, 윤치호의 생각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
그럼에도 나는 이들을 다시 만나고자 했다.
그들에게 전과는 다른 제안을 할 생각이었으니까.
“이 왕자님. 한참 한인 이민자 문제로 바쁘실 텐데, 무슨 일로 저희를 다시 보자고 한 것입니까?”
멕시코 고위 관료들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더 냉랭한 분위기로 우리를 맞이했다.
마치 왕자이기에 한 번 더 만나 주긴 하겠다만,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어주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자리에서 내 부하가 무리한 요구를 해 자네들을 당황케 했더군. 이 자리에서 사과하겠네.”
나는 이에 능글능글한 얼굴로 그들의 비위를 맞췄다.
그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라, 살짝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어 댔다.
“사과하신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왕자님.”
“알고 있네. 일단 내 선물부터 받게나. 다들 뭐 하는가? 준비한 것들을 내오지 않고?”
회담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샌프란시스코부터 함께 했던 자개 상자였다.
예전에 조지 파디의 부인에게 선물로 주었던 나전칠기 상자와 크기가 비슷했다.
“무엇입니까?”
이에 멕시코 관리들은 다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전칠기함을 바라봤다.
“조개껍데기로 장식을 한 상자일세. 안에 있는 내용물도 확인해 볼 텐가?”
나는 그 자리에서 선물로 준 자개함을 열어젖혔다.
그 안에 황금이 들어 있었다.
이 시대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통화는 달러가 아니었으니까.
오직 황금만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화폐라 볼 수 있는데, 나는 이를 뇌물로 주고자 했다.
“이, 이렇게나 많이.”
처음 만난 농무부 장관은 입을 떡 벌린 채로 감탄했으며.
“······.”
법무부 산하 법제처장은 침묵으로 작금의 상황을 즐겼다.
“왕자님!”
다만, 고상한 척이 몸에 밴 이민국 국장만큼은 버럭 화를 냈다.
“저를 모욕할 생각이십니까? 이렇게 대놓고 뇌물을 주시다니요. 그러셔도 저는 왕자님을 도와드릴 수는······.”
나는 아무 말 없이 자개함을 그에게로 밀었다.
엄청난 황금이 그들의 앞에 똬리를 틀자, 이민국장 카를로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나와 황금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그런 카를로스를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지난번에 했던 부탁은 잊게. 자네가 어떠한 권한을 가졌는지는 나 또한 잘 알고 있으니까.”
거액을 쏟아붓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으나, 그리되면 일본 정부와 멕시코를 두고 베팅을 해야 한다.
개인이 국가를 이길 수는 없기에, 나는 우회로를 찾고자 했다.
“듣자 하니 자네 사촌이 칸쿤 인근에서 대농장을 운영하고 있다던데 말이야.”
중앙 관료 대부분은 부유층 출신들로 다들 제 고향에서 힘 좀 쓰는 인물들이다.
특히나 이민국 국장인 카를로스는 그의 가족이 농업재벌 방계 출신이었다.
“마, 맞습니다.”
“개인적으로 자네 사촌에게 전보를 좀 넣어 주게나.”
“전보요?”
“그래. 나에겐 시간이 곧 금이니,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긴 싫네. 그러니 편의를 좀 부탁하고자 하네.”
인근의 한인 교민들을 그의 대농장으로 불러들이라고 제안했다.
대농장 소유주들은 계약 기간이 남은 일꾼들을 때론 주고받기도 했으니까.
“자네 사촌과만 거래를 하고 싶군. 아, 돈이야 걱정하지 말게. 알다시피 나는 아주 부자일세.”
“그 정도야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왕에 돈을 쓴다면 멕시코 고위층들에게 쓰는 것이 낫지.
지방 농장주들은 한번 들렀다가 미국으로 돌아가면, 다신 보지 않을 인물들이니까.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더불어 해안가 근처에 땅도 좀 사들이고 싶군.”
“땅이요?”
“농사지을 수 없는 땅들 위주로 사고 싶네. 해안가 인근에 사적인 휴양지를 좀 만들어 볼까 하니까.”
“아하!”
더욱이 칸쿤은 나중에 멕시코 최대의 휴양지가 된다.
교통수단이 발달한 1970년대나 되어야 빛을 보게 되겠지만.
내가 나선다면, 1920년대에도 충분히 세계적인 휴양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도시였다.
타이타닉 같은 ‘크루즈선’을 활용한다면, 원 역사보다 더 빠르게 개발될 수 있을 거다.
‘멕시코는 곧 혼란기에 접어들게 되지. 다만, 칸쿤 지방은 수도와 멀어서 전란을 피할 수 있어.’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는 늑대가 왕이듯, 중앙권력이 약해지면 지방 유지들이 날뛰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나는 카를로스 집안과 손을 잡고자 했다.
“이 왕자님. 칸쿤에 있는 교민들은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어도 메리다는 제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알고 있네.”
“그럼 어찌하실 것입니까?”
카를로스의 눈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칸쿤의 교민들은 그 수가 이백여 명 정도 되지만, 메리다에 있는 교민은 그보다 4배는 더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 자넨 도와줄 수 없다고 하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를 떴다.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 * *
멕시코 시티에서 대서양 연안 베라크루즈 항구로 이동했다.
메리다로 가기 위해서다.
“처참하군.”
이동 도중에 일하고 있는 한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번,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교민들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 보였다.
‘하와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군.’
하와이 교민들은 20대 남자들이 주축이 되어 일하고 있었다면.
멕시코 교민들은 어린아이부터 여인들 그리고 노인까지, 가족 전체가 땡볕에서 에네켄(용설란)을 재배하고 있었다.
‘피투성이야.’
처우는 더 나빠 보였다.
선인장의 한 종류인 에네켄잎을 따야 하니까.
에네켄이라는 농작물 특성상 교민들 몸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아이고. 이 왕자님. 안녕하십니까? 메리다 시장인 메이오입니다.”
외무부 관료를 통해 칸쿤 일을 처리했다면, 법무부 관료들 통해서는 메리다 일을 도움받고자 했다.
“법제처장인 헨리케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지요. 열흘 전에 전보를 받고 이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덥다 더워.
겨울이지만 30도 가까이 되고 있었기에, 나는 빠르게 내 용건을 말했다.
“내 사기 계약 건을 중재하고자 이곳까지 왔네.”
“사기 계약이라면······.”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다.
미리 준비된 상자를 메이오에게 건네자, 그가 밝게 웃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아이고, 이런 건 굳이 안 주셔도 되는데.”
“내 성의일세. 받게나.”
메이오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척하다가 이내 나를 바라봤다.
“아! 여기 농장주들과 맺었다던 계약을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일 년 전에 막 이주한 조선인들이 이곳에 정착하긴 했지요.”
들고 있던 서류를 건네자, 메이오가 한 장 한 장 계약서를 넘겨보았다.
“이 자식들. 작정하고 한인들을 부려먹었군요. 제가 인근에 있는 농장주들을 죄다 불러모으겠습니다.”
메이오는 다음날 인근 농장주들을 호출한 후, 그들을 꾸짖었다.
“자네들, 이분이 누구인지 아는가? 조선에서 오신 이 왕자님일세. 자네들이 조선인 인부들을 푼돈도 주지 않고 부려먹어서, 이 귀한 분이 이곳까지 행차하게 되셨지. 자자, 일단 이 왕자님께 사과부터 드리고 농장에 조선인들이 몇 명씩 있나 일단 명부부터 제출하게나.”
그는 싼값에 계약 해지를 주선해 주었다.
돈값을 하는 사내였다.
“한 사람당 10달러라······.”
메리다에 있는 교민이 팔백여 명이니까.
8천 달러만 쓰면 되는구나.
‘원래 계약대로 해지하게 되면······ 한 사람당 백 달러가 필요하군.’
내겐 적은 돈이지만, 여기 있는 교민들에게는 너무나도 큰돈이다.
일당을 한 달간 모아도 5달러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고위층에게 돈을 먹이니까. 이런 데서 절약이 되는군.’
개별 협상은 시간도 소요되고 돈도 많이 지출된다.
더욱이 한 놈이 마음먹고 알박기 작전을 펼친다면 이 두 가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고.
메이오 시장 덕분에 나는 빠르게 메리다 교민 일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자, 이제 돌아가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곳이다.
이곳에 더 있기가 싫어서 나는 재빨리 철수하고자 했다.
물론 교민들도 함께 나를 따라 미국으로 향할 거다.
* * *
윤치호는 협상 권한을 내게 넘긴 후,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옆에서, 내가 어떻게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나 매의 눈으로 날 지켜보기만 했다.
“의왕 전하.”
그러다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는 배편에서 그는 드디어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말하게.”
윤치호는 실망하는 표정을 잔뜩 지으며 내게 넋두리를 하기 시작했다.
“전하께서 이리 대놓고 저자들에게 뇌물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실망스러운가?”
“······.”
나의 퉁명스러운 답변에 윤치호는 차마 답을 하지 않고 입을 계속 다물었다.
하지만 짓고 있는 표정으로 추정컨대, 내게 크게 실망한 것 같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반응을 은연중에 돌려 깠다.
“국가 간의 외교에서 정답과 정도가 어디 있다고? 외교관이란 본디, 자국의 국익만을 중요시하면 되네.”
“하지만······.”
나는 윤치호의 말을 빠르게 끊으며 내 외교 논리를 그에게 설파했다.
“좌웅, 그대가 부패라면 치를 떠는 것은 나도 익히 알고 있네. 나 또한 부패에 관해서 만큼은 자네와 뜻이 같지. 부정부패는 나라를 좀먹게 하고 종국에는 국가경쟁력을 빠지게 하는 기생충 같은 존재일세.”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다음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내 조국에 한해서야. 지난주에 막 처음 만난 저놈들 말이야. 뒷돈을 챙겨 먹든, 앞으로 대놓고 먹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우린 그저 우리의 목적만을 달성하면 그만일세.”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커졌다.
덕분에 윤치호 말고 다른 일행들 또한 우리의 대화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히려 감사하네. 저자들이 부패해서, 일을 쉽게 풀어 갈 수 있었으니까. 저들이 청렴했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메리다 땡볕 아래에서 교민들을 구하기 위해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일세. 이는 자네 역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윤치호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지만 반박은 하지 못했다.
내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이에 나는 비릿한 표정을 지으며 윤치호를 압박했다.
“이번 일로 내 자네에게 실망이 크네. 협상에 임하는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최종 목표가 설정되었으면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달려야 하지 않나? 자넨 마치 내 책임이 아닌 것처럼, 제삼자의 처지에서 방관하는 모습을 보였네. 협상 과정에서 내내 말이야.”
윤치호는 억울한 듯, 나와 자신을 비교하며 이를 내게 하소연을 했다.
“전하! 소인은 전하만큼 재산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하처럼 저들에게 줄 돈이 없었습니다.”
윤치호는 허리춤에 복주머니 하나를 달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아래쪽으로 내리며 그에게 물었다.
“내 떠나기 전, 자네에게 대사관 용짓값을 건넸지. 8만 달러나 되지 않았나? 자넨 대체 그 돈을 어디에 사용하려고 했는가?”
“그야······.”
처음엔 여행경비로 쓰려고 했겠지.
하지만 나와 함께 멕시코에 이동하지 않았던가?
윤치호는 내 도움 덕분에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뒷말을 계속 끌며 사용처를 대지 못했다.
“그 돈 이리 주게. 활동비 명목으로 폐하께 받은 것이지 않나? 교민들 구출에 내 사비가 사용되었으니, 이것을 다시 돌려받겠네.”
윤치호는 내 말에 즉각 반응했다.
이 돈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대사관 대지 관련 비용을 내게 넘긴 것이다.
“아! 돈이 없어서 교민들을 구할 수 없었다는 자네 주장이 백번 옳다고 치더라도 말이야.”
여기서 그냥 끝낼 수는 없다.
나는 끝까지 윤치호의 잘못을 물고 늘어지며, 그가 무엇을 실수했는지 하나하나 늘어놓으며 복기했다.
“······자넨 내게 현장에는 들러 보자고 제안해야 했네. 그런데 그때 내게 어찌 제안했지? 수도에서 부정적인 대답이 계속해서 오가자 자넨 지레 포기하지 않았던가?”
“······.”
“어떤 이는 결과만을 중시하고, 어떤 이는 그 과정 또한 참고해야 한다고 하지. 그런데 말이야. 자넨 이 상반된 두 관점을 기준으로 각각 평가해 보아도 영 실망스럽네.”
윤치호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복기에 관한 평을 내놓았다.
“많이 변하신 것 같습니다. 전하.”
나는 콧방귀를 끼며 답했다.
“여기서도 왕자님 놀이나 하고 있을 수야 있겠는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잡초처럼 생활하다 보면 이리 변하게 되네.”
나는 윤치호를 바라보며 옛날 일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지난번에 나를 두고 할아버님이 생각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합하께선 석파란을 많이 그리셨었지?”
“그랬지요.”
“합하께선 난초를 많이 좋아하셨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매화가 더 좋아. 엄동설한 속에서도 버티고 버티다가 남들보다 더 빨리 꽃을 피우지 않던가?”
온실 속 난초는 사절이다.
윤치호는 제법 똑똑하니 내 말뜻을 알아들었겠지.
‘어학 능력이 아깝군. 이를 제대로 활용도 못 하다니. 쯧쯧.’
그의 성향이 고쳐지지 않은 이상 나는 윤치호와 손을 잡지 않게 될 거다.
만약 손을 잡는다고 해도, 내게 현재의 윤치호는 딱 번역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그의 성향이 바뀌길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충고를 했다.
“부디,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자네가 매화 같은 남자가 되었으면 하는군.”
< 교민 구출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