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48)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48화(48/392)
< 동부로 (2) >
지난 멕시코 여정과는 다르게, 이번 동부로 가는 교통편은 미주대륙 횡단 열차를 이용할 생각이다.
파나마 운하는 아직 착공도 안 한 상태이고, 도중에 디트로이트도 들러야 하니까.
그렇게.
우현식을 샌프란시스코 중앙역사로 보낸 후, 나는 또 다른 여정에 필요한 물품을 추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 왕자님.”
그때였다.
사전에 연락은 없었지만, 반가운 손님 한 명이 불쑥 우리 집에 찾아왔다.
“지아니니 은행장?”
직원들을 채찍질하며 뱅크 오브 이탈리아의 자산을 불리는 데 바쁘신 분일 텐데.
우리 집에는 왜 왔을꼬.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지아니니를 집 안으로 들였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무슨 일이 있기는요. 저와 제 식구들은 퍼킹 그레이트하게 평온합니다.”
어휴.
입이 걸걸한 건 여전하네.
“그렇다면 내게 무슨 부탁이라도 하러 온 것인가?”
지아니니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음 말을 꺼냈다.
“역시 이 왕자님께선 눈치가 빠르시군요. 예, 맞습니다.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왕자님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무슨 놈의 제안? 설마 예치한 예금을 조금 더 자네 은행에 보관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절대 안 된다.
꼭 써야 할 때가 있으니까.
“아, 최근 현금흐름이 좋아져서 왕자님의 돈은 전부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다른 일 때문에 왔습니다.”
지아니니가 손사래를 치며 빠르게 내 물음에 답했다.
“다른 일?”
“예. 들리는 풍문에, 왕자님께서 동부로 출장을 가신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문을 긍정했다.
진짜로 떠나니까.
이에 지아니니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저도 왕자님과 함께 동부로 갔으면 합니다.”
“나랑? 자네 은행은 어쩌고?”
“X 같은 대지진이 일어난 지, 반년이나 지났습니다. 이재민들에게 긴급 대출을 해 주는 것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습니다.”
6개월이나 지났고, 문을 닫았던 다른 은행들도 속속 업무를 재개하고 있지 않던가?
그렇기에 BOI도 예전만큼 사람이 붐비진 않겠지.
“덕분에 요즘 발을 쭉 뻗고 편히 잠을 자고 있습니다.”
“커피와 다과를 준비해 왔습니다.”
내 집에서 일하는 메이드가 지아니니에게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선약 없이 왔다지만, 빈속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뜨뜨-”
지아니니가 서둘러 커피를 마시다가 입천장이 뎄는지 오만상을 다 쓴다.
나는 그런 지아니니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나와 동행하고 싶다는 것인가? 그래, 자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가는 방향이 같아도 목적지가 다르면 같이 다니는 게 힘들 것 같은데 말이야.”
동부는 여기 서부와는 다르게 도시들이 많으니까.
나의 물음에 지아니니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당연하게도 뉴욕이지요. 금융쟁이가 어딜 가겠습니까? 아! 이 왕자님께서도 뉴욕에 가시려는 것 아닙니까?”
스토커도 아니고.
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뭐 이런 놈이 있어 하는 눈빛을 보내자, 지아니니 급히 본래 목적을 내게 알렸다.
“아, 저는 다른 이유는 아니고······ 시간이 있을 때, 선진금융기법을 배우고 싶어서 뉴욕에 가려고 합니다.”
“선진금융기법?”
지아니니는 제 머리를 오른손 검지로 통통 치며 말을 이어 갔다.
“예. 아시다시피, 제가 근본도 없이 밑바닥부터 커 온 새끼인지라 정통 금융 지식이 많이 없습니다. 회사가 더 커지면 지금 같은 여유도 못 부릴 테니, 지금이라도 뉴욕에 가서 제 부족한 점을 채우려고 합니다.”
지아니니와 BOI의 강점은 지역 주민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그 과정에서 알아낸 사적 정보로 지역특화 신용대출을 해 주는 거다.
그는 여태껏 지역거점 상업은행만을 운영해 왔다.
전혀 다른 길이라고 볼 수 있는 투자은행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굳이 이 자리에서 지아니니의 계획을 지적하지 않았다.
지아니니급 위인이라면, 알아서 잘할 테니까.
새 영역에 도전하다 성공한다면, 동업자이자 BOI 주주인 나는 당연히 좋지.
몇 번 부딪치다가 다시 자신이 잘하는 분야로 돌아온다고 해도, 그 또한 나쁘지 않고.
경험을 쌓은 셈이니까.
‘때마침, 1907년도 다가오고 있지.’
내년은 내 자산 형성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해다.
1907년 금융 공황이 날 기다리고 있으니까.
지금 이때, 뉴욕에 가려는 이유도 이 금융 공황 때 한몫 챙기기 위해서다.
지아니니도 함께 뉴욕으로 가서 이 혼란을 겪는다면?
그 안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한다면, 나야 좋지.
나는 머릿속으로 이를 한번 계산한 후, 지아니니의 동행을 허락했다.
“자네가 그리 원한다면 함께 나와 함께 동부로 가세나. 아, 뉴욕에 들르기 전에 나는 디트로이트를 경유해야 하는데. 혹, 괜찮은가?”
지아니니가 손뼉을 한번 탁- 치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오! 저도 슬슬 자동차 하나 구매할 때가 되었는데 말입니다. 모터 시티에 가신다니 딱 좋겠네요. 왕자님이 개인적인 용무를 보시는 동안 저는 제가 몰 자동차나 한 대 사들이도록 하겠습니다.”
* * *
보름 뒤.
모터 시티, 혹은 아이언 시티라고도 불리는 디트로이트에 도착했다.
‘다들 얼굴이 밝군. 희망이 보인다.’
21세기 디트로이트는 미국의 제조업이 몰락하며 함께 쇠락의 길로 빠져들었다.
높은 실업률로 인한 치안 악화는 배트맨 시리즈의 고담 시티를 뺨칠 정도로 심각했는데.
지금은 현대와는 다르게 그저 생동감과 젊음이 넘치는 신도시 같다.
‘어휴, 엄청나게 춥네. 생각해 보니 조금만 더 지나면 크리스마스가 오는군.’
디트로이트는 샌프란시스코와 다르게 진짜 ‘겨울’이 오는 도시였다.
곳곳에는 연말을 알리는 장식들이 가득했고, 거리에 새하얀 눈도 제법 많이 보였다.
그랬기에 연말이 다가왔다는 것이 확실히 온몸으로 체감되었다.
호호-
따뜻한 입김을 불어 가며 얼어붙은 손을 녹이고 있었는데.
“어이. 칭챙총.”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응?”
“너 말이야. 이 냄새 나는 원숭이 새끼야.”
너무도 오랜만에 칭챙총이라고 놀림당해서일까?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환영식 한번 거하게 하네.’
그래.
이곳은 서부가 아니고 동부라 이거지.
‘고작 보름 만에, 샌프란시스코가 그리워지는군.’
제집을 떠나면 고생이라고 했던가?
역시.
한 발자국만 벗어나니, 잊고 있던 인종차별의 망령이 나를 밝게 맞이한다.
“콱 씨. 눈 안 깔아?”
“뭐?”
내가 반응도 하기 전에 지아니니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험상궂은 표정으로 그들을 위협했다.
“엔쵸비 새끼가······ 낄 때 안 낄 때 구분 못 하나 봐?”
그러자, 디트로이트역에서 어슬렁거리던 한량들이 우리 일행 쪽으로 다가오며 위협했다.
“뭐, 엔쵸비? 아직 제 엄마 젖도 못 뗀 것 같은 X만 한 애송이가 뚫린 입이라고 씨부렁거리고 있네.”
지아니니는 당당했다.
홀로 오지 않았으니까.
“형님. 여기 어미·아비도 없는 X 같은 XXX들이 형님께 엔초비라 했습니까?”
“그래, 여기 이 왕자님께는 칭챙총이라고 했다.”
“제가 대신 손봐 줘도 되겠습니까, 왕자님?”
“어, 그러도록 하게.”
지아니니는 그와 함께 다니던 이탈리아 패거리들과 함께 디트로이트에 방문했는데, 그 수가 이십여 명에 이르렀다.
뒤늦게 역에서 짐을 챙기고 온 지아니니 동생들이 가세하자, 한량들이 겁먹을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저희는······.”
희한하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 같단 말이야.
아!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왔을 때도 이 사달이 났었구나.
“뽀스, 지아니니 저놈의 눈을 좀 보십시오. 회까닥 돈 것 같습니다.”
맥스가 팔짱을 끼며, 촐랑거리는 말투로 지아니니의 행동을 분석했다.
“지난번에 시장통에서도 엔쵸비라는 말을 듣고 저러던데······ 지아니니 저놈,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은행장이 아니고 마피아 보스 같습니다.”
맥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지아니니에게 빼앗겨서 그런지,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맥스를 보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인종차별은 당해도 당해도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언제까지 저런 쓰레기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어야 할까?
얼른 더 유명해져야겠다.
그래야 동부에서도 남들이 날 무시하지 않겠지.
‘정책에 더 깊게 관여할 수 있게 권력도 쥐어야 해.’
이를 유지하기 위한 돈도 더 많이 벌어야 하고.
쓰레기들이 내게 일할 열정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에 내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이 왕자님. 제가 저놈들을 잘 타일러 주고 왔습니다.”
잠시 사라졌던 지아니니가 일행을 이끌고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뒷골목으로 한량들을 데리고 가던데.
총소리는 나지 않은 걸 보니, 살아 있긴 하나 보다.
“왕자님. 뷰익, 닷지, 포드, 캐딜락 중 어디로 향하실 예정이십니까?”
지아니니가 여러 자동차 회사들의 사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중 하나를 선택했다.
“뷰익 모터스 본사로 갈 것일세.”
나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아니니의 물음에 답했다.
“그래도 차는 포드나 캐딜락이 낫지 않을까요? 혹시 제가 모르는 다른 이유라도 있습니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 이유를 지아니니에게 밝혔다.
“사실 지난번에 보험금을 현물로 수령하는 과정에서 뷰익의 주식을 일부 양도받았네.”
“아······.”
전체 지분의 3% 정도밖에 안 되는 소액주주였지만, 전혀 상관없는 외부인보다야 조금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겠지.
“슬슬 이동하세나.”
“예.”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뷰익 모터스의 본사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이 왕자님.”
하지만 나의 기대는 산산이 조각났다.
나를 맞이한 이는 뷰익 모터스의 사장이자 GM을 창시한 창업자 윌리엄 듀랜트는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 * *
“안녕하십니까? 이 왕자님. 제 부하들에게 간략히 전해 들었습니다. 기술 협력을 원하신다고 하셨지요?”
“그래.”
듀랜트는 탐욕에 가득 찬 눈빛을 내게 쏘아대며 다음 말을 내뱉었다.
“자동차 회사 하나를 세우실 생각이신가 봅니다. 혹,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새 회사를 차리려고 하십니까?”
“글쎄.”
본능적으로 이자에게 모든 것을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하니까.
나는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듀랜트의 질문을 회피했다.
“왕자님, 제게 아이디어를 파시지요. 적정 가격에 그것을 사들이겠습니다.”
아, 한 가지를 간과했네.
이 시대 경영인들은 독점주의에 찌든 놈들이다.
아이템 하나가 성공하면, 옆에 경쟁사들을 모조리 잡아먹으며 몸짓을 키우는 일이 다반사인 세상.
철강왕 카네기부터, 석유왕 록펠러, 금융왕 JP모건까지.
전부 독점 트러스트 지주회사 아래 경쟁 기업을 문어발처럼 인수해 댔다.
‘비교적 초창기라 그 버릇이 없을 줄 알고 찾아온 것인데, 아니었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절했다.
“나는 다른 것은 필요 없고, 기술 협력만 원하네.”
“그러지 마시고, 제게 아이디어를 파시지요. 이 왕자님 같은 높으신 분이 뭐 그리 번거롭게 회사를 차리려고 하십니까?”
듀랜트는 지아니니만큼 미국에서 유명한 자본가였다.
잠깐.
그의 일대기를 회상하다가 쓸 만한 정보가 떠올랐다.
듀랜트 이자.
이렇게 문어발 확장을 하다가 제 회사에서 쫓겨났었지?
마치,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말이다.
“말이 안 통하는군. 기술 협력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지. 아! 자네 시장에 풀려 있는 뷰익 사의 지분을 회수하고 있다던데?”
“맞습니다. 뷰익과 GM 사의 완전 합병을 위해 소액 지분도 죄다 거두어들이고 있지요.”
그래서 현금이 말라 갔구나.
한창 지분을 사들이던 1907년에, 금융 공황이 엎친 데 덮친격으로 터졌으니까.
“내가 가진 뷰익 사의 3% 지분을 넘기고자 하는데 어떤가?”
기술 협력은 물 건너간 셈.
다른 하나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로 지분매각이다.
“저야 좋지요. 오늘 자 가격에 10%를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일단 뷰익 사의 지분부터 정리하고자 한다.
앞으로 2년 동안은 똥값이 될 주식이니까.
“아, 그나저나 왕자님.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언제든 제게 찾아오십시오. 저희 회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듀랜트의 고집이 소의 심줄보다 더 질긴 남자였다.
떠나는 내게 계속 아이디어를 팔라며, 권유한다.
나는 피식 웃으며 듀랜트에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나 역시 항상 문은 열려 있네. 돈이야 얼마든지 있으니, 회사를 하나 새롭게 만들고 싶다면 날 찾아오게나. 언제든 내 두 팔 번쩍 들며 자네를 환영하겠네.”
< 동부로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