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5화(5/392)
< 종잣돈 (2) >
동경에서 두 차례 고성이 오간 후.
아버지의 사람들이 날 찾아왔다.
“호텔 로비에서 날 기다린다고?”
“예. 그렇사옵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들이 내 머릿속에 그렸던 계획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궁둥이가 꽤 무거워 보였는데······ 급하긴 한가 보군. 무려 닷새 만에 일본에 오다니.’
하긴, 내가 그리 열연을 해 댔는데 자기들이 일본에 안 오고 배겨?
‘진정하자.’
그래도 기쁜 감정은 잠시 감춰야 했다.
저들 앞에서 티를 냈다간, 나의 다음 계획이 자칫 틀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최현우에게 물었다.
“그래, 누가 대표로 왔다고?”
“내부대신이 전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내부대신이라면······ 이지용인가?
‘이지용, 이지용······.’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또 교육받았다.
재미교포 2세였기에 내가 아는 한국의 역사적 인물은 세종대왕, 이순신 정도.
그렇기에 이강의 기억을 천천히 더듬어 보았다.
‘이강과 법적으로 6촌 관계로군.’
그 말인즉슨, 왕실의 일원이라는 뜻이렷다.
흠······.
피붙이를 앞세워 나를 설득하려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지.
‘당연하지만 헐버트는 오지 않았다.’
다른 일행의 면면도 확인했지만, 외국인은 없었다.
뭐, 그가 이번에 올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았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생각해 봐라.
두 손, 두 발 멀쩡한 조선인 관료들이 고종 황제의 주변에 가득하다.
그런 상황에 외국인 관료인 헐버트가 나를 찾아온다?
그럴 리가.
‘하지만 나의 목적은 하나야.’
파란 눈의 금고지기 ‘헐버트’.
비자금을 얻으려면, 그자를 반드시 일본으로 불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 행동을 취해야 했다.
“돌아가라 전하게.”
“저, 전하?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지금은 내가 아주아주 유리한 위치다.
그리고 지금은 한 번쯤 강짜를 놓아도 될 만한 타이밍.
때문에 나는 아주 단호하게, 무표정한 얼굴로 최현우에게 다시 말했다.
“저들과 이야기해서 뭐하겠는가?”
“전하!”
“작금의 내 상황을 내부대신이 이해하겠는가? 그자가 타지에서 얼마나 살았다고? 태어나고 자란 곳이 한양이지 않던가?”
“하오나······.”
“두 번 말하고 싶지 않네. 저들에게 속히 돌아가라고 명하게.”
축객령을 내렸다.
하지만 대화 그 자체를 거부하진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에 계속 강조했다.
내 처지를 이해해 줄 사람과 대화하겠다고, 여러 차례 이를 언급하며 최현우에게 내 의도를 분명히 전달했다.
‘그러니까 사람 좀 바꿔서 와. 이왕이면 단번에 헐버트를 보내 주고 말이지.’
뭐, 그건 내 소망이겠고.
헐버트가 단번에 오지는 않을 것이다.
‘유학 경험 있는 한양 관료들이 먼저 올 테고···.’
다음에는 나와 친하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보낼 테지.
그래 봤자, 계속 내가 원치 않는 이들이 온다면 대충 신세 한탄을 하다가 ‘네놈은 나를 이해 못 한다’ 하고 또다시 축객령을 내리면 될 것이다.
나는 이 행동을 헐버트가 일본에 올 때까지 계속하여 반복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와 동시에 당장 한양으로 갈 것만 같은 움직임도 보여야지.’
그래야 한양 신료들도 조급해질 테고, 나를 달랠 놈을 찾을 테니까.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선 못 버틸걸.’
계속 무시하다간 진짜로 한양 땅에 발을 디딜 수도 있다.
아버지도.
귀비도.
한양의 친일파 대신들도.
그리고 일본 정부도.
내가 한양에 가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언젠간 헐버트까지도 일본에 올 것이다.
“뭐 하는가? 입 아프게 아까 했던 말을 다시 해야 하는가?”
다만, 옆자리에 서 있던 최현우는 그런 나의 속마음을 알 턱이 없었기에 아주 초조한 표정으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나의 거듭되는 호통에 최현우는 결국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1시간 뒤.
최현우가 한 번 더 객실로 돌아왔으나, 내가 또 불같이 화를 내자 황급히 밑으로 내려가선 현재 상황을 그들에게 재차 알렸다.
그로부터 1시간이 더 지난 후.
투덜거리며 호텔 밖으로 나가는 한 무리의 조선인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호텔 창문에 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 * *
사람을 물리고 또 물렸다.
그러기를 네 차례.
드디어 파란 눈의 금고지기가 일본에 도착했다.
“먼 길 오느라 힘들지 않았는가?”
헐버트와 악수하는 동시에 다른 한 손 쪽으로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군.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헐버트와 시선을 교환하며, 나는 고생했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곧 급히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남자에게도 똑같은 격려를 했다.
“그대도 잘 와 주었네.”
헐버트 홀로 일본에 왔다면 좋았겠지만, 예상대로 이들은 무리를 지어 왔다.
‘학부대신 이완용······.’
이완용은 나의 미국 유학 선배다,
이강의 기억 속에서 이완용은 머리가 꽤 비상한 인물.
‘뭐, 그러니까 지금 교육부 장관 정도 되는 학부대신 타이틀을 달고 있겠지.’
사람은 학습을 통해 성장한다.
일반인들도 그런데, 하물며 머리 좋은 이들이 한데 모인 한양 정부 관료들은 어떨까?
‘결국, 내 의도대로 이들을 보냈군.’
그들은 몇 차례 나의 행동을 분석한 후, 내가 원하는 이들로 무리를 구성해 일본으로 사람을 보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피날레를 끝내야 한다.
‘헐버트와 독대를 해야 한다.’
그다음 계획도 당연하게 준비되어 있다.
나는 미리 준비된.
탁자 위에 있는 술잔을 들며 작금의 신세를 한번 한탄해 보았다.
그 후, 최현우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최현우가 그들 앞에 빈잔 여러 개를 놓았다.
“요즘에는 이놈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네. 자자, 자네들도 한 잔 들게나.”
알코올은 사람 몸에 들어가면 긴장을 풀게 유도하는 성질을 지녔다.
꽁꽁 감춰 왔던 속마음 또한 잠시 남에게 보여 주는 마법을 부리기도 하고.
‘이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땐 가능하다면 술을 대접하곤 했다.’
그렇기에, 로비스트는 기본적으로 술을 잘 마셔야 했다.
의뢰인이나 혹은 로비 대상자와 대담을 할 때 먼저 술에 취해 버리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낼 수 없으니까.
‘뭐, 그 때문에 술을 내오는 것은 아니지만······.’
헐버트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헐버트 외에 다른 이들이 내 앞에 존재했다.
‘따로 만나자고 말하기엔 나를 감시하는 눈과 귀가 너무 많아.’
자연스럽게 헐버트와 독대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 방에 있는 이들을 모두 술로 기절시키는 방법밖에 없지.’
그 후, 헐버트와 이야기를 나누면 누구도 의심치 않는 장면이 연출될 것이다.
앞선 네 차례.
한양에서 온 이들과 만남을 통해서 그러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
남은 이와 끝까지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했던 것은 다 내가 의도했던 일이었다.
‘다행히도 빙의된 몸뚱이는 술이 제법 잘 받지. 이강의 기억 속 헐버트도 제법 술을 잘 마시는 듯했고.’
음흉한 속내를 감추며 내 앞에 앉은 세 명에게 술을 따랐다.
그 후 술잔을 비우게 하곤 다시금 빈 잔을 채웠다.
“그래. 좋은 소식을 들고 왔는가?”
이강의 본래 성격은 급하다.
원 몸뚱이처럼 행동해야 했기에 잡담은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물었다.
“전하.”
“말하게.”
“성상께서는······ 전하의 귀국을 허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한양행을 불허하셨다고?”
“예. 그렇사옵니다. 전하.”
몇 번을 만났지만, 한양 정부의 방침은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제법 화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답했다.
“내가 죄를 지어 유배를 온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집으로 돌아간다는데 어찌하여 아바마마께서 그러한 명령을 내리셨단 말인가? 이게 정녕 아바마마의 뜻인가? 그대들이 왜곡한 것은 아닌가?”
가슴을 쾅쾅 치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어냈다.
의심 가득한 눈빛을 마구 쏘아내며 나와 고종 사이를 너희들이 이간질하고 있지 않냐는 투로 쏘아붙였다.
물론 술도 한잔 마셨다.
“저······전하.”
화가 난 윗전이 술잔을 비운다.
그 후 눈치를 준다.
그러자, 아주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도 가득 찬 술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갑질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연출해야 해.’
왕년에 로비스트로 수많은 술자리를 접했다.
고개를 숙이며 상대의 비위를 맞춰야 할 때도 있었으며, 한데 모인 이들에게 유희를 보여야 할 때도 존재했다.
어떨 때는 힘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며 반쯤 협박하는 행동을 취해야 할 때도 있었다.
‘지금의 경우는······.’
마지막에 가깝지.
나는 내 지위를 내세우며 이들의 술잔을 채우고 비웠다.
그러곤 언성을 높였다.
“무려 6년일세. 6년! 2,000일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떠돌이처럼 타지를 돌고 있네.”
“신들도 전하의 고충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니까! 이쯤 되면 내 조국으로 돌아가도 되지 않겠는가?”
“전하. 고정하시지요.”
나는 대표로 온 이완용의 두 손을 꼭 잡으며 하소연했다.
“자네는 내 심정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타국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자네 역시 경험하지 않았나?”
또르르-
눈물까지 글썽였다.
선즙필승.
진심인 척 포장하는 데 닭똥 같은 눈물만 한 아이템은 없다.
“전하!”
그러자 이완용이 반응했다.
“신 또한 전하의 심정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완용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어 갔다.
그는 나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신 또한 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암요. 타국 생활의 고단함은 경험해 보지 않은 자라면 알 수 없지요.”
“역시 자네라면 이해하리라 생각했네.”
“하지만······ 전하께서는 귀국하실 수 없습니다. 대한제국의 황실을 대표하여 미국에서 활동하실 분은 전하밖에 없으시니까요.”
참기름을 혀에 엄청나게 바른 듯, 이완용이 청산유수같이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는 국제 정세까지 내게 읊으며 나의 귀국을 재차 거부했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순간입니다. 국운이 달린 순간이란 말입니다. 부디 이 나라를 생각하시어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 주시옵소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왕족이라면, 이완용의 말을 듣고 감동했을 테다.
하지만 나는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미국에 남아 무엇을 하겠는가?’
일개 왕자 나부랭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파극은 여기서 끝내자.’
중요한 것은 이제 다음이다.
슬슬 헐버트와의 독대를 준비해야 했기에 빈 잔을 채웠다.
“일단 술이나 한 잔 더 하세나. 자네! 한잔 받게.”
자연은 약육강식의 세계다.
약한 놈부터 죽는 게 현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이부터 나는 죽이기 시작했다.
“저, 저는 이미 무리인데······.”
“어허, 한잔 받으라니까!”
덩치가 호랑이만 하지만 술을 못 하는 최현우부터 공략했다.
공식적으론 내 사람이지만, 지금은 헐버트와의 독대에 있어 방해만 되는 인물.
“내 상황을 자네도 잘 이해하지?”
“전하! 오늘 끅-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드디어 이완용도 혀가 꼬여 간다.
그럼에도 몇 번 더 술잔을 채우며 이완용에게 술을 권하자, 이완용이 갑자기 픽- 하고 쓰러졌다.
“아이고, 자네. 자네 자는가? 이 사람이······ 이리 술이 약해서야 쓰겠는가?”
어릴 적부터 알고 자란 우현식을 불러 쓰러진 이들을 챙기라 명했다.
우현식은 술에 취한 이들을 끙끙대며 옆방으로 이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술이 제법 세군.”
“아닙니다. 외신 또한 처음에는 잘 못 마셨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다 보니 드디어 헐버트와 단둘이 술을 기울일 기회가 생겼다.
“예, 그보다 전하께서는 하나도 안 취하신 것 같습니다.”
헐버트가 너스레를 떤다.
오히려 나를 추켜세우며 내 빈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자넨 역시도 안 취한 것 같네. 얼굴색이 그대로이지 않나?”
“원래 얼굴이 붉어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지난 4주 동안 한양 관료들을 숱하게 만나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다.
즉,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단 말.
“헐버트.”
“예. 전하.”
나는 타는 목을 축이며 파란 눈의 금고지기를 바라보았다.
더는 이 귀한 시간을 잡담하는 데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함께 온 이완용 같은 방해꾼도 술에 취해 이 자리에 없지 않은가?
“내 그대에게 할 말이 있네.”
지금까지는 살짝 취한 척을 해야 했기에 혀도 꼬인 척했고, 눈도 풀린 척 게슴츠레 떴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대화를 해야 할 시간이다.
헐버트의 눈을 바라보며, 난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의 비자금이 위험하네. 일본 놈들이 눈치를 챈 것 같네.”
< 종잣돈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