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57)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57화(57/392)
< 헤이그 >
“이 왕자님, 몸조심하시고 부디 무탈하게 귀환하십시오.”
“걱정해 줘서 고맙네.”
“아! 돌아오실 때,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할 것입니다. 저 때문에 깜짝 놀라실 테니까요.”
제시 리버모어는 유럽으로 떠나는 나를 배웅하며, 마음속에 있었던 포부를 당당하게 밝혔다.
“유럽에 갔다 오실 동안, 제가 이 왕자님의 재산을 열 배 이상 불려 놓겠습니다. 이번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실오라기 하나도 안 걸치고 골방에 박혀 기도하던, 보잘것없고 변변찮은 리버모어는 이 세상에 없어졌다.
자신감 넘치는 리버모어만 있을 뿐.
나는 그를 보며,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 많이 걱정되기도 했다.
‘지난 한 달간 무려 이백만 달러를 벌었지, 아마?’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흐른다면, 내 손에 쥔 현금만 천만 달러가 넘을지도 모르겠다.
카네기, 록펠러, 모건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한 손에 꼽히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다.
‘저자는 충분히 그 일을 해낼 위인이다. 이번 달 초부터 능력이 만개하고 있으니까.’
네덜란드 헤이그로 갈 준비를 하며 틈틈이 리버모어의 트레이딩을 직접 내 눈으로 지켜보았기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무서운 놈이지.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주식만 했다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놈으로 변하지 않던가?’
리버모어 때문에 벌써 두 개 기업이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주가가 너무 내려, 재정 건전성에 주주들이 의구심을 품어서다.
이에 공매도 당한 해당 회사는 추가 대출을 못 받고, 기존 자금은 조기에 상환해야 했다.
그러니 부도 직전까지 몰릴 수밖에 없겠지.
‘이 기세대로라면, 뉴욕에 있는 모든 은행이 전부 뱅크런이 일어날 때까지 공매도를 계속 칠 것 같은데.’
이 타이밍에 뉴욕을 빠져나오는 건 분명 잘한 선택이다.
동업자로 볼 수 있는 자가 뉴욕 증시에 불을 지르고 있지 않은가?
자칫 잘못했다간 나까지 그 불길에 휘말릴 것이다.
‘아직 J.P. 모건이 등판하지 않았으니까. 일단, 난 무사할 거다.’
모건은 작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일시적인 경기침체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뭐, 현재 다우지수만 놓고 보면 모건의 추측이 마냥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80포인트를 지지대로 삼아 살짝살짝 반등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 않나?
약세장에 진입했지만, 아직 공황 정도라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
이름 모를 회사가 하나씩 부도나고 있지만, 아직 견실한 은행이나 투자신탁, 증권사 같은 금융 회사들은 무사하다.
‘다만, J.P. 모건의 생각대로 그리 흘러가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 문제지.’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단순하게, 기술적 반등이라는 소리.
앞으로 시장을 뒤흔들 악재가 터진다면······.
예를 들면 ‘회계 부정’이나 ‘주가 조작’과 같이, 시장의 신뢰를 무너트리는 소식이 뉴욕 전역에 퍼진다면.
진짜로 뉴욕 증시가 저 멀리 낭떠러지로 떨어질 테지.
자본주의의 근간이 휘청거릴 정도로.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나.”
“예?”
제시 리버모어에게 한 발짝 다가가며 강조했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공매도를 치는 것이지, 시장을 완전히 무너트리려는 아나키스트는 아닐세.”
“······.”
“이 점, 명심하게.”
“예.”
제시 리버모어에게 단단히 경고한 후, 그 옆에 서 있던 지아니니를 바라보았다.
나는 떠나기 전, 지아니니에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이거 받게나.”
“이 왕자님, 이게 뭡니까?”
그는 내게서 받은 보고서를 힐긋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내게로 돌리며 물었다.
“혹시나 해서 사람을 풀어 조사를 좀 해 두었지. 자네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일세.”
안에 있는 자료는 서부에 있는 주요 은행들 목록들이었다.
현재는 은행 하나당 하나의 점포를 가지도록 하는 ‘단일은행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1907년 금융공황의 여파로 곧 연방정부가 이를 개혁할 거다.
미국답다고 포장되어 온 과거의 은행 시스템은 이제 안녕이란 말.
‘제도가 변할 때, 그때가 기회지.’
기존 기득권층들이 쥐고 있던 헤게모니(권력)를 후발주자가 손에 넣을 수 있을 때는 많지 않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역사적인 변곡점이 시작될 때다.
‘하나하나 새로운 점포를 내는 것보단 기존의 은행을 빠르게 인수해서 몸집을 확장하는 것이 낫지.’
나는 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미래 지식도 있고, 유럽에 갔다가 돌아오면 곧 자본도 넉넉해질 것이다.
더욱이 지아니니라는, 머리 좋고 일 잘하는 경영자도 내 곁에 있다.
적극적으로 확장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이번에 리버모어에게 공매도를 배우며 제법 돈을 좀 벌었다 하던데.”
“예. 그리되었습니다. X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제게 이런 퍼킹 그레이트한 재능이 있다니요.”
역시 될성부른 인재는 뭘 해도 잘한단 말이야.
나는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지아니니에게 속삭였다.
“잘 되었군. 알짜배기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나오면 하나도 빠짐없이 죄다 인수하게. 자금이 모자라면 리버모어에게 이야기하여 내 투자 자금을 활용하도록 하고.”
“예. 맡겨만 주시지요.”
지아니니는 잠시 내가 건네준 목록을 바라보다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장 최상단에 있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말입니다.”
B.O.A는 캘리포니아 남쪽, 정확히는 천사들의 도시 LA에 있는 소규모 지역은행이다.
원 역사에서 지아니니가 이를 인수한 후, 기존 사명을 인수한 이 회사 간판으로 교체한다.
“다른 은행들은 그 사유를 적어 두셨는데 말입니다.”
조사한 결과를 보고서에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서캘리포니아 은행은 점포 위치가 좋고, 남컬럼비아 은행은 가지고 있는 자산이 알짜배기고.
다들 인수해야 할 만한 이유를 적어 두었는데, 뱅크 오브 아메리카만큼은 그 이유를 따로 적어 두지 않았다.
“이것만은 덜렁 은행명뿐입니다. 혹시 제가 모르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지아니니가 보고서 최상단에 적혀 있는 BOA를 손으로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그야······.”
나는 뒷말을 살짝 끌며 지아니니에게 의도적으로 기대감을 높였다.
무언가 진짜 큰 의미가 있다는 것처럼 행동한 거다.
“멋있으니까?”
“그렇죠. 멋있죠. 예? 잘못 들었습니다. 머, 멋있다고요? 그게 이유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홀리 쉣! 이 왕자님, 제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죠? 고작 이름 하나가 멋있다는 이유로 그 큰돈을 들여서 인수하시겠다고요?”
“그렇네.”
나는 방긋 웃으며 그 이유를 차분히 열거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미국인들의 은행. 이 얼마나 멋있는 회사명인가?”
“허······.”
지금이야 마케팅 학문이 발달하지 않아서 홍보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만.
라디오가 보편화하고 TV가 보급되기 시작하면 브랜드가 굉장히 중요해질 거다.
“자네, 평생 자네 동생들의 은행장으로만 남을 텐가?”
나는 지아니니의 역린을 슬쩍 한번 건드려 보았다.
최근 들어 동부에서 서부 촌놈으로 무시당하고 있었기에, 이를 이용한 거다.
“······.”
“뉴욕의 콧대 높은 양키들의 코를 야무지게 눌러 줘야 하지 않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름부터 갈아야 할 것이네. 그래야 좀 더 쉽게 전국으로 확장할 수 있을 테니까.”
BOI도 좋긴 하지만 너무 엔쵸비.
아니지, 파스타 냄새가 짙게 나잖아.
이탈리아라는 이미지가 미국에서 그리 좋은 이미지도 아니었기에, 할 수만 있다면 확장 전에 브랜드명을 갈아 끼우고자 했다.
사소하지만 이것 또한 좋은 하나의 홍보 방법이니까.
“알겠습니다.”
지아니니는 살짝 반발하다가 지난날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내 조언에 이내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다녀오십시오. 제가 이 목록에 있는 은행들을 열심히 인수하겠으니 왕자님께서는 본래 하셔야 할 일이나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오십시오.”
* * *
“잭, 저 지금 날고 있어요.”
어휴.
젊은 남녀 한 쌍이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배알이 꼴린다.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눈꼴이 셔서 그런 거다.
‘타이타닉 속 저 장면은 실화였나?’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배 안에서,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두 남녀를 속으로 저주했다.
나와 함께 온 일행들은 그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기에 바빴다.
“와! 이렇게 좋은 여객선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보스, 보스도 이런 여객선은 처음 타 보시는 거 아닙니까? 아니, 이미 타 보셨나?”
아니.
나는 태평양 횡단만 해서 모르겠는데.
‘근데 진짜 부하들 말대로 대서양횡단 여객선들은 이리 좋은데, 태평양을 횡단하는 배들은 왜 이럴까?’
단순 구매력의 차이 때문일까?
일부 요인은 되겠지만, 전부는 아니겠지?
은근 백인들이 이런 사소한 것에서 차별을 두곤 하니까.
‘미국으로 돌아오면, 조선소나 하나 인수해서 운영할까?’
농기계 회사를 하나 차린 상황이다.
유럽에 가는 김에 독일에도 한번 들러 디젤엔진을 개발한 디젤이나 만나 볼까 하는데.
기왕 일을 크게 벌이는 김에, 조선소도 하나 차리면 좋을 거 같다.
앞으로 만들어질 선체들은 증기기관이나 가솔린기관이 아닌 디젤기관이 장착될 것이니까.
분명,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태평양 서쪽에 캘리포니아에 공장을 만들면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제공할 수도 있지.’
그리되면, 서부에서 나의 영향력은 더욱 높아지지 않을까?
더욱이.
조선 산업은 여차하면 군수 산업으로 전환할 수도 있는 기간 산업이다.
갑판 위에 포탑을 달면 ‘군함’이 되고, 그 위에 비행기 실으면 ‘항모’가 되니까.
“전하.”
새로운 뉴비는 언제나 환영이지.
이위종이라고 했던가?
그래.
상담부터 해야겠지?
“어, 왔는가? 자네, 잠시 이야기 나랑 단둘이 이야기 좀 하지.”
* * *
“그러니까······.”
나는 이위종을 힐끔 보며 그의 소속을 파기 시작했다.
“현재 제국 익문사 요원이란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제국 익문사.
대한제국에 존재하는 첩보 기관으로 한국판 CIA라 볼 수 있었다.
뭐,
현재 미국엔 CIA는커녕 FBI도 설립되지 않은 상황이니, 이쪽이 더 먼저 원조라고 볼 수 있겠네.
‘탐난다, 탐나.’
슬슬 내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업무를 나누고, 이에 따라 조직도 짜고 위계 서열도 만들어야 할 때다.
대내외 첩보를 담당하는 기관도 있어야 했는데 딱일세.
궁내부 소속, 고종의 것이라고 하니 내가 슬쩍 상속받으면 되겠다.
‘아일랜드 삼 형제에겐 이젠 경호만 맡겨야지.’
이위종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가 대단한 인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구사하는 언어가 무려 7가지나 되는 청년이었다.
영어는 물론 이 시대 국제무대 공용어였던 프랑스어도 할 줄 안다.
영국과 함께 그레이트 게임을 하고 있던 러시아어도 제법 잘하고.
“자네 혼자만 이 밀명을 받은 것은 아니겠지?”
“전 학부협판 이상설과 일성(이준) 역시 폐하의 밀명을 함께 받았습니다.”
“이자들도 모두 제국 익문사 요원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오, 탐나는 인재가 세 명이나 된단 말이지.
나는 급히 빈 종이 하나를 이위종에게 들이밀었다.
“전하, 이게 무엇입니까?”
“자네가 아는 익문사 요원들. 누가 있는지 내게 알려 주게나.”
하지만 이위종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내 요청을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의왕 전하. 아무리 의왕 전하라고 하셔도 이를 전하께 알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지?”
“전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알려 드리고 싶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점조직이란 말이군.
하긴, 하나가 발각되어도 전체가 뿌리째 뽑히면 안 되니까.
의외로 체계적이네.
나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음을 물었다.
“앞으로 계획은 어찌할 것이지?”
“일단 몰래 헤이그에 있는 만국 평화회의장 근처까지 이동한 후······.”
나는 재빨리 이위종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군.”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일본은 이미 우리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을 것일세.”
뉴욕에 온 지 반년도 채 안 되었지만, 이래 봬도 나는 셀럽이다.
유럽으로 공무를 하러 간다고 뉴욕 내에 소문이 쫙 퍼진 상황이다.
낯선 동양인이 내 거주지에 들렸다는 것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테고.
일본이 이를 모를 리가 없지.
나를 감시하는 일본놈들이 알게 모르게 수두룩할 텐데.
“일단 자네 계획부터 계속 말해 보게. 만약 내가 폐하의 밀명에 응하지 않았다면, 어찌 행동할 생각이었지?”
“불경스럽게도 왕족 행세를 한번 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뭐라?”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왕자 사칭을 하려 드는군.
‘하긴, 그 방법이 최선이긴 하지.’
조선은 유럽에 많이 알려지지 않는 나라다.
더욱이 우리의 왕자 개념은 서양의 왕자 개념과는 좀 달랐다.
서양은 일단 후궁이라는 내명부 지위가 없다.
그래서 첩에서 태어난 아이는 사생아로 취급하는데, 그와 달리 동양은 이 역시 왕자로 쳐 준다.
‘이위종도 태조대왕의 핏줄을 이어받았다고 했던가?’
광평대군의 후손이라는데.
이런 문화적 차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이위종 역시 왕자 행세를 하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던 모양이군.
‘미국에 돌아가면, 이 점만은 확실히 내 주변 인물들에게 알려 줘야겠군.’
조선의 왕자는 단 세 명이며, 그중 둘은 조선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는 신세라고 말이다.
이위종은 좋은 의도로 왕자 사칭을 하려고 했지만, 다른 놈들은 나쁜 의도로 왕자 행세를 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나 없이 이대로 회의장에 갔다면.’
보나 마나, 입구 컷 당했겠네.
이위종은 내 눈치를 힐긋힐긋 보며,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의지했다.
“전하만 믿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부디, 위태로운 우리 대한제국의 등불이 되어 주십시오.”
그래.
내가 왔다고 많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회의에 참석할 수는 있겠지.
내 앞에 있는 이위종과 다르게 난 진짜로 왕자니까,
네덜란드 역시 공화국이 아닌 왕국이다.
그렇기에 나의 존재를 쉬이 무시하지는 못할 거다.
‘어떻게 풀어 갈까?’
나는 조용히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헤이그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우리 일행을 태운 배가 헤이그에 도착했다.
< 헤이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