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58)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58화(58/392)
< 헤이그 (2) >
“도착했군.”
회의장이 코앞이다.
남은 건 하나.
입구 컷만 피하면 된다.
“마음 단단히 먹게.”
“예, 전하.”
나와 이위종은 5월 중순쯤에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도착했다.
이후에 이준과 이상설이 우리 일행에 합류했고.
“슬슬 이동하세나.”
“예.”
한 달간 네덜란드에 머물며 사전 준비를 해 왔기에, 나는 적어도 회의장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자신 있었다.
“죄송하지만 본회의장 출입에 앞서 잠시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예상대로 회의장 출입 관리는 빡빡했다.
각국의 고위 관료들이 파견된 만큼, 주최 측이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가지고 계신 신분증을 잠시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직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 일행은 가지고 있던 여권을 쓱 내밀었다.
한시라도 빨리 만국평화회의 행사장에 출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에서 오신······ 귀빈들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직원은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우리와 여권을 한번 쓱 대조한 후, 옆에 있던 직원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어서 확인이나 해 주게나.”
“예예.”
이에, 이위종은 당당한 말투로 우리 일행을 대표해서 대답했다.
현재 국제공용어라고 볼 수 있는 프랑스어를 그가 제일 잘 썼기 때문이다.
“정회원국이 아닌 나라는 의장이나 부의장의 초청장도 함께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여기 있네.”
“아, 귀국의 군주께서 귀빈 여러분께 권한을 위임했다는 서류 또한 저희에게 주셔야 합니다.”
“받게나.”
2주 전에 막 합류한 이상설이 품 안에 있던 초청장을 건넸다.
이준은 제 서류 가방에서 위임장을 꺼낸 후, 직원에게 넘겼고.
따로따로 해당 서류를 가지고 온 것만 해도, 고종이 보안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 님.”
입구를 지키고 있던 깐깐한 남자는 두 서류가 조작되었는지 열심히 돋보기까지 사용하며 확인한 후, 우리에게 이를 다시 건넸다.
“신원 확인했습니다. 서류 검토 또한 끝났고요. 이강 선생님의 여권 역시 확인했습니다. 여기 받으시지요.”
가만히 내 곁에서 입을 다물고 있던 이상설이 눈을 부릅뜨며 카랑카랑한 말투로 직원의 말을 정정했다.
“이강 선생님이 아니고 이강 왕자님일세. 이 자리에서 즉시 바로잡아 주게.”
“아, 죄송합니다. 이강 왕자님, 신원 확인 끝냈습니다.”
동양인이라도 왕족은 왕족.
특히나 네덜란드는 현재 이웃 국가라고 볼 수 있는 프랑스같이 공화정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엄연한 왕국이었기에, 직원들은 다시금 예의를 차리며 내게 깍듯이 인사했다.
“잠시 여기서 기다려 주실 수 있습니까? 이 왕자님 일행을 안내할 직원이 곧 도착할 것입니다.”
“알겠네.”
우리는 잠시 행사장 입구에서 우리에게 배치될 안내원을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각국의 외교관들이 행사장 입구를 계속 통과했다.
“어이, 거기.”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행사장 입구 앞에서 계속 기다려야 했다.
이에 이위종이 대표로 나서서 만국평화회의를 진행하는 네덜란드 직원들에게 항의했다.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하지? 이러다간 회의가 다 끝나 버릴 것일세.”
이에 방금까지 우리들의 신원을 확인했던 직원이 눈알을 팽글팽글 돌렸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신원을 재차 확인하는 중이라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 같습니다.”
“뭐라? 신원을 다시 확인한다고?”
이위종이 성난 표정을 한껏 지으며 직원들을 압박했다.
“여기 계신 분은 대한제국의 둘째 왕자님이신 이강 왕자님이시네. 아까 여권도 확인했고, 자네의 조국인 네덜란드 왕실에서 인증한 통행증도 있지. 그런데 또 뭘 확인하려고?”
목소리가 높아지자, 회의장 밖에 있던 수행원들이 웅성웅성하며 우리가 있는 입구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자 우리 앞에 있는 직원의 상사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강 왕자님. 저는 이번 회의의 보안을 책임지는 로빈 막스입니다.”
“그래. 자네가 내 안내를 맡은 그 직원인가 보군. 늦었네, 많이.”
로빈이 고개를 굳은 표정으로 우리 일행에게 통보했다.
“죄송하지만 이강 왕자님과 그 일행분들께서는 이곳에 출입하실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지? 아국은 만국평화회의 정식적으로 초청받은 옵서버(초청국)네. 출입권과 발언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이를 대표하고 있네. 그런데 어째서 내가 이곳에 출입할 수 없다는 말인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상부에서 지시받은 내용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연신 굽신거리며 내게 양해를 구했다.
이어 내부에서 격론이 오가고 있어서 잠시만 대기해 달라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내게 해 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지난 한 달 동안 했던 일을 회상했다.
‘열심히 특사들을 만났는데······ 이리 끝난다고?’
러시아 수석대표이자 평화회의 의장이었던 넬리도프를 만나, 의장 권한으로 출입 허가를 요청했다.
물론 그의 앞에 그냥 빈손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안녕, 난 애기 황금이야.』
러시아는 서유럽과 다르게 곤궁해서 그런지, 청렴도가 일반 서구 열강과는 좀 달랐다.
그래서 의장을 매수하려고 했는데, 이놈이 황금만 싹 먹고 입을 닦은 것 같다.
‘고국의 눈치를 볼 수도 있겠고, 참가국들의 의견을 모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돈을 너무 적게 줬나?
어찌 되었든 단칼에 딱 잘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측의 회의 참가에 논의하고 있다고 하니,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싶다.
‘나의 출입은 명분상으로 너무나도 완벽한데.’
위임장도 있고.
초대장도 있으며.
나의 신원 또한 위조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리 입구 컷 당했다면······.’
이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만약을 가정했다.
내가 없었더라면, 내 앞에 있는 세 명의 특사들은 어찌 되었을까 가정한 거다.
‘항의 한 번 못 해 보고 이 행사장에서 쫓겨났을 거다.’
다행히도, 내겐 비장의 필살기가 하나 더 있다.
허리춤에 차인 시계를 보았다.
이때쯤이면, 그자가 짠하다고 나타나서 나를 구해줄 때가 되었는데 말이다.
‘나타났군.’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씩씩대고 있던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근 한 달간.
여기 헤이그에서 뻔질나게 만나서 막 친해진 친구였다.
“흠,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내 친구여.”
키가 190센티에 달하는 거대한 장신.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지고 있는, 품격 있는 남자가 일행을 이끌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에 책임자인 막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헤, 헨드릭 공?”
* * *
헨드릭.
그의 본명은 하인리히 메클렌부르크-수베린이다.
발음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는 독일에서 태어난 귀족으로.
성년 이후, 네덜란드로 건너와 이 나라의 명목상 통치자인 빌헬미나 여왕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헨드릭 공? 헨드릭 공께서 여긴 어떻게······.”
지금의 이름은 네덜란드로 건너온 후, 네덜란드식으로 바꿔 불렀기 때문이다.
마치,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인 필립공이 총각 시절 필리포스라 불렸다가 개명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는가? 각국의 외교관들이 이곳 회의장에 집결했다고 하던데. 네덜란드를 위해 나 역시 외교활동을 하고자 이곳에 왔네.”
“······그,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내 친구인 이강과 무슨 말을 나누었는가? 언뜻, 멀리서 들었을 때는 살짝 다투는 느낌이 나던데······.”
네덜란드에 온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왕족들과 약속을 잡는 것이었다.
현재 이곳의 공식 통치자는 여왕.
아무리 내가 왕자라고 해도 성별이 다른 여인과 자주 접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공략 대상은 누구겠나?
그야 당연히 여왕의 부군이다.
“이자가 나의 행사장 출입을 막았다네. 친구여.”
“그래? 어째서 그런 거지?”
헨드릭이 막스를 쏘아보며, 해명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했다.
이에 막스는 안절부절못하며 나와 헨드릭을 번갈아 보았다.
“모르지. 엄연히 여기 초대장도 있고, 우리 황제 폐하께서 옥새로 인증해 주신 위임장도 있는데 말이야. 이상하게 시간을 끌며 내 출입을 방해하고 있더군.”
“그게 사실인가?”
“헨드릭 공. 그게······.”
아!
여기 내 앞에 있는 헨드릭과 어떻게 친해졌냐고?
그야, 넘치는 돈으로 이자의 환심을 샀지.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인 세상이 아니던가?
‘헨드릭에 관한 정보는 쉬이 살 수 있었지.’
헨드릭은 네덜란드 여왕의 부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땡전 한 푼 없는 거지였다.
외국 출신 부군에게 거액의 생활비를 지원할 리 만무하고.
그의 영지 또한 매달 보내 줬던 지원금을 최근 들어 끊었기 때문이다.
헨드릭과 사이 나쁜 조카가 최고 권력자가 되며, 손절한 거다.
하지만 유럽의 최고위 상류층답게 그의 씀씀이는 줄지 않았는데, 덕분에 빚이 상당하다고 한다.
‘내기 골프 몇 번 하며 크게 져 줬더니 입을 귀에 걸며 한 달 동안 나와 찰싹 붙어살지 않았던가?’
헨드릭에게 있어서 나는 호구지만, 동시에 돈줄이기도 하다.
그냥 골프만 한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함께 하며 사업 또한 은연중에 제안했기 때문이다.
‘라이트&리 사 권리 일부를 그에게 넘겼지.’
유럽에서 비행기가 판매되면 수익의 약 10% 정도를 헨드릭이 가지게 될 거다.
그 대신 헨드릭은 유럽에서 라이트&리 사의 권리를 수호하며, 특허권 소송 같은 재판이 벌어질 때 우리 회사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하고.
나는 마냥 호구가 아니다.
라이트&리 사의 유럽 진출 또한 고려하여 파트너를 구한 것이었기에, 당장은 손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내가 더 이득을 볼 거다.
유럽 놈들이 뻔뻔하게 라이트형제의 비행기를 카피해서 지네들 나라에 팔아먹을 수도 있으니까.
사전에 이를 방어하고자 미리 수를 쓴 거다.
“아, 지금 신원 때문에 출입을 못 하고 있다고? 이 왕자는 나와 함께 행사장으로 들어가겠네. 내가 이를 보장하도록 하겠네.”
막스가 혼잣말로 한탄을 하다가 내 출입을 허락해 주었다.
“하- 협조를 요청했으면, 지네들도 제대로 처리를 했어야지. 빌어먹을 새끼들. 왕자 놈을 내가 어떻게 막아.”
이위종은 가만히 이를 듣고 있다가 내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네덜란드어는 생각보다 잘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 언어는 해석할 줄 알았기에 막스가 뭐라 했는지 번역한 것이다.
‘일본 놈들에게 돈을 먹은 건가?’
나는 행사장 입구를 통과하며 막스를 노려보았다.
이후 다시 고개를 돌려 헨드릭에게 악수를 청했다.
“고맙네.”
“아닐세. 자네와 나는 이제 동업자가 아닌가? 이 정도쯤이야 백 번 천 번도 더 해 줄 수 있네.”
“나중에 왕궁에 다시 한번 들르겠네. 그때 얼굴을 보며 다른 투자 건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도록 하세.”
“그래. 그때 보세나. 아! 골프 연습 좀 하게나. 매번 내게 질 수 없지 않은가?”
골프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또 헤- 하고 웃는다.
내가 일부러 져 준 것인데 말이야.
‘단순한 놈. 그리고 불쌍한 놈.’
여왕에게 잡혀 살아서 그런지 자존심에 생채기가 많이 난 것 같다.
내기 골프로 그런 걸 풀었나 보네.
“알겠네. 다음에는 꼭 자넬 이기도록 하지.”
“기대되는군.”
헨드릭을 뒤로하고 우리 일행은 회의장 안으로 향했다.
후다닥-
행사 주최국인 네덜란드인들이 우리 일행을 앞질러 달려갔다.
우리가 회의장에 들어가기 전에, 이를 다른 나라 귀빈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저쪽이 회의장 정문인 것 같습니다. 전하.”
본회의장 입구까지 거의 다 왔다.
그런데, 그때.
눈이 작고 생김새가 비열하게 생긴 동양인 무리가 회의장에서 급히 나와선 우리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 왕자님. 안녕하십니다.”
“그댄 누구지?”
“대 일본제국 만국평화회의 특사인 혼조 사토시입니다.”
아, 그랬구나.
서로 소개는 끝났으니, 좀 비켜 줄래?
나 바쁘다고.
“반갑네. 그럼, 회의장에서 보도록 하지.”
짧게 인사를 한 후, 그들을 제치고 회의장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사토시가 뒤로 몇 걸음 나를 따라 이동하더니, 이내 다시 내 앞길을 막았다.
“이 왕자님의 유럽행 소식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기어코 이곳 회의장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역시.
내 행적을 조사하고 있었네.
관음증 환자는 언론재벌 허스트 정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 얘넨 관음증 환자가 아니고 내 스토커겠네.
허스트와는 결이 좀 다르니까.
“대한제국의 왕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네. 그것보다 미안하지만 좀 비켜 주겠는가? 내 급히 회의에 참석해야 해서 말이야.”
“이 왕자님이 머무는 곳에 사람을 좀 보냈는데, 연락을 받지 못하셨습니까?”
“내게 사람을 보냈다고?”
헤이그에 머물 때, 일본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접근하긴 했었지.
그들을 접선 시도를 무시하며 네덜란드 왕실과 고위 관료들을 좀 만났었는데 말이다.
내가 모르쇠로 일관하자, 사토시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내게 물었다.
“이 왕자님, 어째서 이곳 헤이그까지 오신 것이지요?”
“어째서 오긴. 대한제국의 대표로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네.”
“이 왕자님. 저와 말장난할 생각은 그만두십시오.”
사토시가 한숨을 크게 쉬며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외지에 있으셔서 조선의 현실을 아직 잘 모르시나 본데, 재작년부터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우리 일본제국이 대리로 행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에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누구 맘대로?”
“예?”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강탈했으면서 외교권을 대리 행사하고 있다고?”
“적법하지 않다니요? 귀국의 대신들 과반이 찬성했고, 왕자님의 부왕께서도 이를 승인하셨습니다.”
“겁박과 회유를 통해 반강제적으로 체결한 조약은 법적으로 효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토시는 내 질문을 못 들은 척하며, 교묘하게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국제무대는 정글과도 같은 곳입니다. 허약한 조선이 살길은 우리 일본제국에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국제 정세를 잘 아는 이 왕자님께서 어찌 이를 부정하신단 말입니까?”
뭐래?
어디서 똥을 팔아.
“지금이라도 돌아가시는 것이······.”
나는 사토시의 말을 끊으며 그에게 지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그 잘난 일본 정부는 멕시코에 갇혀 있던 우리 교민들을 그리 방치했는가? 삐쩍 곪아 쓰러질 때까지 방관하면서 말이야.”
“······.”
“잘 보았네. 일본제국의 그 잘난 선진 외교법 말이야.”
사토시가 험악한 인상을 쓰며 내게로 다가왔다.
“이쯤에서 돌아가시지요. 굳이 어려운 길을 가실 필요가 있습니까? 저희와 척을 지게 되면 의왕 전하께서도 많이 피곤해지실 것입니다.”
어쭈?
반쯤 협박까지 하네.
“나는 항상 도전을 좋아하지.”
이에 나는 사토시를 힐끗 바라보며 그를 도발했다.
“여태껏 쉬운 도전은 없었네. 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타는 것만 같았어.”
“그런 식으로 나오신다는 것이지요? 후회하실 텐데요.”
내가 사토시에게 다가가며 밀착했다.
그와의 거리가 10인치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날 겁박하고 있군. 건방지게 말이야.”
“······.”
“작금의 상황에서 살살 달래도 시원치 않을 판에······ 내 히로부미에게 편지라도 한 장 써 줄까? 네 놈 때문에 회의에 참석 안 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이야.”
“······죄, 죄송합니다.”
조밥 새끼.
이토에게 일러바친다는 말 한마디에 바로 꼬리를 내릴 거면서.
왜 협박하고 지랄이야.
“어, 어떻게 하면······ 그냥 돌아가시겠습니까? 원하시는 것은 말씀하십시오.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전하!”
“이자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이에 내 옆에서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던 이위종과 이준, 이상설이 내 팔을 붙잡았다.
내가 일본의 회유에 넘어갈까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말씀하십시오. 원하시는 것이 금이라면 통감 각하께 잘 말하여 이 왕자님께 그것을 전부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사토시의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일세. 자네가 걸리적거리니, 내 앞길을 막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지.”
“······.”
“어차피 나는 이곳에서 발언권을 행사할 것일세. 나는 왕자고, 초대권도 있으며, 황제 폐하의 위임장도 있네. 그러니 곱게 말할 때 당장 비키게. 그리 행동한다면 최대한 완곡하게 회의장에서 일장 연설을 하고 내려오겠네. 알겠나?”
< 헤이그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