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6)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6화(6/392)
< 종잣돈 (3) >
“바,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헐버트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박병준으로 살던 때 내 직업은 로비스트였다.
그리고, 로비스트의 필수 덕목은 바로 사람의 표정 변화를 읽어 내는 거다.
‘보아하니,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실수를 연발하겠군.
견적을 뽑은 나는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일본 놈들 말일세. 아바마마의 비자금을 찾겠다고 벼르고 있는 모양일세.”
“······.”
“해외에 있는 은행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좀 하고 다니나 보이. 사방팔방 쑤셔 대서 요새 좀 말이 많네.”
비자금의 위치까지 언급했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 있다고.
확신에 가득 찬 내 태도에, 헐버트의 파란 눈이 더욱더 좌우로 크게 요동쳤다.
“자네는 정녕 이 사실을 모르는가?”
“흠, 흠. 왕자님께서도 참······.”
헐버트는 작금의 상황을 모면하려고 기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따라 준 술잔을 비운 후, 내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농담이 과하십니다.”
“과하다?”
“예. 비자금이라니요? 그,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대, 대한제국에는 이미 궁내청이란 기관이 존재합니다. 황실에서 소요되는 예산은 다 이곳에서 처리하지 않습니까?”
변명을 늘어놓는 헐버트를, 나는 조용히 관찰했다.
아직도 목소리가 떨린다.
몸짓도 과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모국어인 영어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 거슬렸다.
‘쯧쯧. 노력은 하고 있지만,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군.’
그가 영어를 사용하자, 나 역시 아주 자연스럽게 영어로 그의 말을 되받아쳤다.
그러나 술기운으로 정신이 흐릿해진 건지, 헐버트는 내가 그 자신에게 맞춰 주고 있다는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그의 표정 변화를 읽어 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내 말을 부인하기에 바빴다.
“궁내청이 있는데 굳이 번거롭게 해외까지 가서 자금을 보관하겠습니까?”
“왜, 무릇 통치자라면 다들 하나씩 딴 주머니를 차고 있지 않은가? 관료들 모르게 돈을 비밀리에 집행해야 할 경우도 있으니까. 비자금 조성의 장점은 누구보다도 아바마마께서 잘 알고 계실 것일세. 내 말이 틀렸는가?”
고종은 권력의 화신이다.
한국사를 잘 모르는 나도 그간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추론하면 알 수 있을 정도니까.
‘해외에 비밀 자금을 조성하려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거다. 아마 본인이 진두지휘했을 테지.’
내가 손가락을 튕기며 시선을 살짝 좌측으로 돌렸다.
술에 만취해 쓰러진 이완용.
그가 있는 옆 객실을 바라보며 헐버트에게 속삭였다.
“아바마마는 제 잇속만 챙기는 이리 같은 놈들 사이에서 국정을 운영하셔야 하네. 아바마마께서 가장 잘 느끼고 계실 걸세. 쌈짓돈이 제법 많이 필요하다고 말이야.”
대한제국을 삼키고자, 대내외적으로 온갖 잡놈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비상시국이라는 것을 헐버트 뇌리에 상기시켰다.
이에 헐버트가 식은땀을 흘리며 재차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앞선 말이 전부 사실이라 가정해도······ 폐하께서 왜 이 일을 외신에 맡기시겠습니까?”
내가 잠시 침묵을 이어 가자, 헐버트가 제 가슴을 팡팡 치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외신은 대한제국의 사람이 아닙니다. 미국인이란 말입니다! 그런 제게, 어찌 과중한 일을 맡겼겠습니까?”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론했다.
“그러니까 자네에게 맡겼겠지. 아무도 자네를 의심치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 한양에 자네만큼 믿음직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현재 고종 황제 곁에 있는 이들은 전부 자신과 가문의 영달을 위해 일하는 놈들뿐이다.
그렇기에, 고종은 내 앞에 있는 파란 눈의 외국인에게 그리 큰 자금을 맡겼겠지.
“자네야말로 이 일의 적임자지. 아바마마께서도 분명 그리 말씀하셨을 텐데?”
내 앞에 있는 헐버트는 지난 이십 년간 조선에 머물며 조선을 위해 봉사했다.
여타 외국인.
예를 들면 같은 미국인인 ‘알렌’처럼 ‘운산 금광 채굴권’ 같은 현지 이권을 요구하지 않은, 욕심 없는 진정한 충신이었다.
‘이 모든 것이 다 고종의 업보긴 하다만······.’
자신이 구축한 친위 세력에게 힘을 실어 줬다가 개혁 과정에서 그들이 절대왕권을 위협하면, 고종은 반대파를 이용하여 그들을 가차 없이 제거했다.
고종이 그런 식으로 내친 인재만 수십, 수백 명.
아들인 이강의 기억에도 이리 부정적으로 남아 있는데.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다.
‘비싼 돈 들여 유학을 다녀온 이들의 말로가 어찌 되었던가?’
상당수가 갑신년에 반역자로 찍혀 목이 날아갔다.
나머지 역시, 과격 혁명 반동분자로 찍혀 곧 제거되었고.
대한제국을 위하는 충신들을 고종이 스스로 제거한 셈.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러시아나 일본 등에 후원을 받는 매국노들뿐이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미국을 떠돌며 많은 명사를 만났네.”
내 말의 신빙성을 높여야 했다.
헐버트도 내 행적까진 온전히 알지 못했기에, 최대한 그럴싸한 말을 지어냈다.
“그중에는 유럽의 귀족도 있었고, 미국에서 은행을 운영하는 자본가도 있었지. 그 과정에서 정보를 사고파는 브로커 또한 만날 수 있었네. 그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
이번에는 헐버트가 입을 꾹 다문다.
내가 하는 말을 한번 들어 보겠다는 모습이다.
‘좀 더 확신이 필요하겠군.’
머릿속에 있던 사건 하나를 언급하며 나는 헐버트를 내가 아는 지식을 설명했다.
“아바마마께서는 이미 한번 비자금을 뺏기셨네. 이는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누구에게 빼앗겼냐고?
누구긴 누구야.
일본 놈들이지.
“작년쯤이라고 알고 있는데 말이야. 자네가 원한다면, 그 돈을 관리하던 자의 이름 또한 말할 수 있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미교포 2세.
미국에서 교육받았기에 한국사는 잘 모른다.
하지만 고종의 비자금 관련해서는 꽤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었다.
고종의 비자금 규모와 위치, 또 언제 발각되었는지까지 아주 상세하게.
‘그때는 그저 가십거리로 읽었는데······.’
유학생 친구가 가져온 한인 신문.
그곳에 매주 재미난 기사들이 실렸는데, 개중 하나가 바로 고종의 비자금 관련 기사였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마치 러시아의 마지막 왕녀 아나스타샤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기사를 읽었는데.
지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로써 내 종잣돈 마련 계획에 큰 뼈대가 되고 있었다.
“아직도 날 못 믿나 보군. 이용익 그자가 자네의 전임이지 않던가?”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헐버트가 입을 떡 벌리며 재차 경악한 표정을 지어 댔다.
그러곤 처음으로, 내가 한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작년에 있었던 사건을 왕자님께서도 알고 계시는군요.”
“그래. 그 사건은 나도 안타깝게 생각하네.”
“끙······.”
헐버트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전직 비자금 담당 관료였던 이용익은 작년에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그 사건 이후로 일본놈들이 눈에 불을 켜기 시작했네. 아바마마의 추가 비자금을 찾겠다며 말이야.”
“저도 소문을 건너 들었사오나······.”
“진짜로, 국내를 넘어 해외에까지 손을 대고 있을 줄은 몰랐나 보군.”
“예.”
“최근에는 상해로 사람을 보냈다고 하네.”
“사, 상해로 말입니까?”
고종의 비자금은 상해에 있다.
상해라는 단어에 헐버트가 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래. 아직 다행인 점은 구체적인 비자금 위치는 모르는 모양일세. 허나, 이대로 가다간 곧 발각될 것일세.”
“그렇겠지요.”
헐버트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고종의 비자금이 일본의 손에 다시금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내 이 사실을 한시라도 빨리 알려야 했네. 아바마마께 직접 이를 고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차선으로 자네를 만나야 했네. 알다시피, 나는 조선 땅을 밟을 수가 없으니까.”
나는 헐버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지금껏 한양에서 온 왜 관료들을 힘들게 했는지, 그 이유를 헐버트에게 알려 주었다.
“한양 관료들 앞에서 주사를 부렸던 것도 다 오늘날의 만남을 위해서네.”
“전하······. 전하께서 그런 깊은 뜻을 품고 계실지 외신은 몰랐습니다.”
헐버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쐐기를 박았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이 짓도 참으로 할 게 못 돼. 아바마마는 이런 내 깊은 뜻을 아셔야 할 텐데······.”
나는 포장했다.
최근의 주사와 난동은 다 대한제국을 위한 쇼였다고.
그러자, 헐버트는 완전히 내 말을 믿었는지 완전히 넘어온 모습을 보였다.
‘보아하니, 나의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었겠어.’
고국이 그리워서 술주정이나 부리는 철없는 왕자에서, 제법 나라를 생각하는 왕족으로.
크게 격상되었겠지.
“말이 길었군. 오늘은 이 정도로 하지.”
바로 몰아붙여, 고종의 비자금 위치를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이를 내게 가져오라 설득해 볼 수도 있고.
하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한 번 더 참기로 했다.
‘생각할 시간을 주자.’
뭐, 내일 당장 헐버트가 떠나는 것도 아니고.
다 된 밥을 망칠 수도 있으니, 오늘은 그냥 보내야지.
“아······ 그나저나.”
“예?”
“헐버트 자네, 술은 얼마나 잘 마시나? 어느 정도 마셔야 정신을 잃지?”
술 주량은 알아놔야지.
그래야, 내일 또 단둘이 대화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같이 헐버트만 편애했다간 나의 계획이 들통날 수도 있어. 내일은 적당히 먹어야 해.’
나의 물음에 헐버트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곤 이리 답했다.
“외신은 술에 취해 본 적이 없습니다.”
“뭐? 단 한 번도?”
“예.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전하께서 계획하신 대로 내일 술자리를 열어 주십시오.”
그렇다면야.
헐버트의 답변 덕분에 나는 한층 편안한 느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 * *
“자자······ 마셔 보게나.”
“저, 전하!”
“어허, 한번 마셔 보래도?”
다음 날 저녁도 술과 함께 시작되었다.
시간을 아끼고자 신세 한탄 따위는 집어치우고 술부터 말기 시작했다.
“이게······ 미국에서 배운 혼합주라네. 일명 폭탄주라고 하지.”
가장 거슬리는 이완용부터.
“자, 마시게.”
“저, 전하.”
이완용은 ‘뭐 저런 술고래가 있어’ 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도 한 잔 쭉 들이켜겠네. 자자······.”
이완용이 오만상을 찌푸린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의 지위가 더 높았기에, 그는 군말 없이 내 술 권유를 받아들여야 했다.
“자네도, 그리고 자네 역시 함께하도록 하지. 쭉- 마시게나.”
“으······ 으······.”
대학 시절, 한인 유학생 친구에게 배웠던 폭탄주를 이들에게 선사했다.
연속해서 술을 비우게 했기에, 이완용을 비롯한 다수의 인사는 어제보다 더 빨리 정신을 잃고 바닥과 한 몸이 되었다.
“이쪽 창가로 와서 대화를 나누세.”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이들과 적당히 거리를 벌린 후, 나는 헐버트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전하.”
“그래, 말하게.”
어젯밤 깊은 대화를 나누어서 그런지 몰라도, 헐버트의 태도가 제법 변한 것 같다.
나를 꽤 신뢰하고 존중한다.
“혹······ 전하께선 저들의 눈을 피해 비자금을 운용할 방법을 마련해 두고 계신 겁니까?”
허, 그래서 그런가?
잡담 없이 본론부터 바로 말하네.
나 역시 이를 환영했기에, 헐버트의 물음에 대한 답을 빠르게 알려 주었다.
“가장 좋은 최선책은 자금을 옮기는 것이네. 일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예를 들면?”
“자네의 조국, 미국 같은 곳이 좋겠지. 아바마마의 비밀 자금을 예치하기엔 제격이네.”
“외신도 그리 생각했습니다.”
“오오······. 생각이 통했군. 거기에 추가적인 안전장치까지 마련한다면 더더욱 안심하고 지낼 수 있을 것일세.”
“추가적인 안전장치라면 무엇을 뜻합니까?”
헐버트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이내 예정해 두었던 걸 알려 주었다.
“믿을 만한 사람을 섭외한 후, 현지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면 되네.”
나의 답변을 듣고, 헐버트가 잠시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침을 한 번 삼킨 후, 헐버트는 내게 조용히 무언가를 물었다.
“예를 들면······ 왕자님 같은 분을 말씀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훅- 하고 직구가 들어온다.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내게 돈을 맡겨라, 그런 본심을 보이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
그렇기에 실현 불가능한 방법을 먼저 헐버트에게 제시했다.
“나 말고 자네를 뜻하는 것일세.”
“예? 외신이 어찌?”
“난 아바마마의 눈 밖에 난 몸이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바로 뒷말을 이어갔다.
“일부는 나를 두고 희대의 방탕아라고 부르고 있네. 아바마마께서도 날 그리 생각하겠지.”
현재 나에 관한 여론은 양극으로 양립된 상황.
헐버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내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외신은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지가 개선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헐버트의 진심 어린 답변에, 나는 살짝 웃음을 보였다가 다시 표정을 찡그렸다.
“몹쓸 이들이 아바마마와 내 사이를 갈라놓고 있네.”
“맞습니다. 생각해 보면 방탕아라 말하고 다니는 자들, 그자들은 전부 귀비의 사람들입니다.”
“그래?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네 입에서 먼저 나올 정도면······ 다들 느낄 정도로 입을 떠벌리고 다니는 모양이군.”
제 아들을 다다음 후계자로 세우고자 하는 귀비.
그녀가 나를 험담하고 있다.
더불어, 일본 정부의 후원을 받는 친일 내각 관료들 역시 시누이 짓을 하며 곁에서 나를 모함하고 있고.
다행히도 헐버트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네가 나를 대리인으로 천거한다면 자네 역시 아바마마께 신임을 잃을 걸세.”
욕망 덩어리 고종이.
잠재적 경쟁자인 내게 그 큰돈을 내줄 리가 없지.
‘고종의 귀에는 절대 이 사실이 들어가선 안 돼.’
헐버트가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적임자가 진짜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신은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외신이 필요하시니까요.”
“그런가?”
“예. 그렇기에 외신의 생각에는······ 적임자는 미국으로 돌아가실 전하밖에 없사옵니다.”
“누차 말하지만, 아바마마께선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일세.”
“외신 또한 따로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미국으로 비자금을 옮기되, 따로 고종에게 이야기하진 않고 계좌 대리인을 나로 지정할 모양이다.
고종과 나는 혈연관계이니까.
대리인 자격이 충분하다는 말을 헐버트가 강조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넘어왔군.’
9부 능선을 막 올라왔다.
마지막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나는 미리 준비한 서신 하나를 헐버트에게 건넸다.
“자네가 했던 말을 실행하기 위해선 한 가지가 더 필요하네. 조선으로 돌아가서도 우리 둘은 서신을 주고받아야 해.”
“그렇겠지요.”
문제는, 전보를 보내게 된다면 도청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편지는 검열당하거나 분실될 확률이 높고.
“이리하세나.”
나는 헐버트에게, 조선으로 돌아가 내게 전보를 하라 명했다.
“미국으로 돌아가시라는 내용으로 전하께 전보를 보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바마마껜 일본에서 반쯤 나를 설득했다고 보고하게. 전보를 통해 이를 재차 설득하겠다고 말하고. 그리한다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걸세.”
미리 말을 맞춰 둔다면, 그 행위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으니까.
‘더불어 현재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있고.’
헐버트와 나는 말을 맞추며 구체적으로 몇 번 전보를 주고받을지, 또 미국에선 언제 만날지 등을 논의했다.
그렇게 점점 밤이 깊어져 갔다.
* * *
헐버트가 돌아간 후,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한양에서 전보가 왔다.
‘헐버트가 한양에 도착했군.’
두 번째 전보는, 고종을 설득해 상해에 있는 비자금을 옮긴다고 결정되었을 때 오겠지.
‘그다음은 상해에서 오는 전보일 테고.’
상해에서 전보가 오면······ 나는 그 즉시 떠날 준비를 할 것이다.
상해에서 전보가 온 후 두 달 뒤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헐버트와 재회할 예정이니까.
똑똑-
그때였다.
늦은 밤, 누군가가 내 방 문을 두들겼다.
‘이 시간에 누가 날 찾아온 거지?’
조선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가신들도.
미국에서 온 삼 형제도 모두 옆방에서 자고 있었다.
이들 말고 날 찾아올 자는 없는데.
‘설마, 헐버트?’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내게 찾아올 리는 없다.
헐버트는 그리 멍청하지 않다.
뚜벅뚜벅-
나는 천천히 객실 문으로 가다간 후, 방문한 이의 정체를 물었다.
“누구인가?”
“전하. 소신 이근상이옵니다.”
조선말이 들린다.
목소리의 주인은 남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객실 문을 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이근상이란 자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문밖에서 내게 속삭였다.
“귀비께서 소신을 전하께 보내셨습니다. 혹,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종잣돈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