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67)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67화(67/392)
< 끝판왕과의 협상 >
“이 왕자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모건 주니어가 매력적인 미소를 뽐내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군.”
“맞습니다. 한 반년 만에, 다시 뵙는 것 같습니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 막대에 손을 갖다 대며, 모건 주니어에게 부탁했다.
“아, 모건 부은행장.”
“예. 이 왕자님.”
“이 지팡이 말일세. 좀 치워 줄 수 있겠는가? 조금 불편하군.”
나의 정중한 부탁에 모건 주니어가 재빨리 나무 막대기를 치웠다.
“죄송합니다. 아······ 그보다, 유럽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몸은 좀 어떠십니까? 오랜 여행으로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만.”
“아닐세. 겉모습은 이래 보여도 나는 제법 건강하네.”
나는 그리 말하며 모건의 행동을 천천히 관찰하였다.
‘지아니니를 무시하는 것은 여전하군.’
지난번 허스트와의 만남에서 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잠시 회상했다.
‘하긴, 반년 만에 사람이 바뀔 리가 없지. 예전에도 모건 주니어는 내 옆에 있었던 지아니니를 투명인간처럼 취급하지 않았던가?’
아마도.
모건 주니어는 지아니니가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만한 레벨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서 저런 행동을 하는 걸 거다.
아버지 모건은 몰라도, 아들 모건은 철저한 계급론자니까.
이 점을 기억하며 나는 모건 주니어와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보다 자네 아버님은 요즘 좀 어떠신가?”
“바쁘십니다. 생각보다 많이요.”
모건 주니어의 말대로, 그의 아버지인 J.P.모건은 현재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
말썽꾸러기들이 그의 영지인 뉴욕 여기저기에 똥을 아주 거하게 싸질러 놓은 상태니까.
주가 조작과 회계 부정으로 은행권의 신용이 바닥을 뚫는 상황에서 J.P.모건은 뱅크런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홀로 막아 내야 하지 않는가?
‘피똥 좀 싸겠네.’
그러거나 말거나.
모건이 힘든 거지 내가 힘든 건가?
나는 모건 주니어를 쓱 한번 쳐다보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날 만나러 온 목적을 물었다.
“그래.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뭐, 딴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 왕자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이리 찾아왔습니다.”
모건 주니어는 호텔의 출입구 방향을 가리키며 내게 시간을 내어달라고 정중히 권했다.
“할 이야기가 많아서 시간이 좀 많이 소요될 듯합니다. 이곳은 눈과 귀가 많으니 자리를 좀 이동했으면 합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가방을 슬쩍 들어 보이며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보다시피 뉴욕에 막 도착해서 말이야. 대화를 한다 한들 짐을 좀 내려놓고 나서야 할 수 있을 걸세.”
“아······.”
모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잘 되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왕자님, 기왕 이리된 김에 저희 아버님 댁으로 가시지요.”
“뭐라?”
“비싼 돈 주고 호텔에서 묵지 마시고 저와 함께 아버님 댁에서 잠시 지내시란 말입니다. 찰스!”
모건이 손짓하며 호텔 로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자.
“헉.”
“보, 보스.”
1층에 있던 남자들이 죄다 벌떡 일어나며, 모건의 명령을 따를 준비를 했다.
어떤 이는 이미 호텔 벨보이에게서 나의 짐을 인계받기도 했다.
‘작정하고 온 모양이군.’
뭐, 예상은 했다.
원 역사에서의 J.P.모건도, 이렇게 뉴욕의 명사들을 반강제로 한자리에 불러 놓은 다음 대책 회의를 열었으니까.
‘전해져 오는 일화에 따르면 일이 해결될 때까지 J.P.모건의 집에서 못 나왔다지?’
물론 나는 예외일 것이다.
모건 주니어의 강권에도 내가 강하게 반발하면, 결국에는 호텔에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그의 집에 반강제로 끌려가야 할 만한 신분이 아니잖아?’
다른 이들과 다르게 일국의 왕자니까.
‘하지만 그리 행동하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다.’
앞으로 모건의 집에서 열리는 회의는 차기 미국의 금융 헤게모니가 결정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공황이 극복된 이후에 설립될 연방준비제도(FRB)에 관한 이야기가 반드시 논의될 터.
이리 중요한 자리에 내가 굳이 불참해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쉬이 가 주면 안 된다.’
내가 은혜를 베풀어 모건 주니어의 제안에 수락하는 것처럼 행동해야지.
“어쩔 수 없군. 자네가 이리 애원하는데······ 가 줘야겠지.”
“감사합니다.”
“다만, 내 일행들과 함께 가겠네. 지아니니 은행장.”
“예. 이 왕자님.”
“보아하니 자네 일행도 모건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리버모어를 호위하던 지아니니의 동료들은 현재 모건의 집에 있을 거다.
나한테도 이러는데, 피라미나 다름없는 그들에게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뻔하지 않은가?
“혹시 시간이 있다면 나와 함께 가겠는가?”
내가 이를 언급하며 지아니니에게 제안했다.
“홀리 몰리······ 저야 좋지요.”
나는 슬쩍 모건 주니어를 보았다.
나의 동료들을 데려가도 되냐는 무언의 물음이었다.
“그렇게 하시지요. 이 정도야,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슬슬 움직이실까요?”
“그래.”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어마어마하네.’
뉴욕의 실질적인 지배자답게 모건이 사는 집은 그 규모가 엄청났다.
마치 왕궁에 온 느낌이다.
“제이스.”
“도련님.”
모건 주니어는 정문에서부터 집사를 찾았다.
“여기 이 왕자님을 모시고 왔네. 아버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는가?”
제이스라는 집사가 눈알을 팽글팽글 굴려 댔다.
내 앞에서 J.P.모건의 현 대화 상대를 말해도 되는지 고민한 거다.
“워, 워싱턴에서 오신 귀빈과 잠시 회의 중이십니다.”
“아, 그래?”
모건 주니어는 급히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왕자님. 그럼 일단 짐부터 푸시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지.”
모건 주니어가 숙소로 날 안내했다.
“이, 이 왕자님!”
내가 머물 숙소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리버모어!”
역시나 예상대로네.
모건 주니어가 떠나자, 나는 급히 리버모어에게로 다가가 안부를 물었다.
“그래, 몸은 좀 괜찮은가?”
“다행히도 아픈 곳은 없습니다.”
리버모어가 얼굴을 붉히며 내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이 왕자님. J.P.모건, 그놈이 절 이곳으로 끌고 왔습니다.”
나는 모르는 척, 그 사유를 물었다.
“어째서?”
“공매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 시장 교란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며 절 겁박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숏을 서둘러 정리하라고 압박했고요.”
“그래서? 모건의 제안대로 매도 포지션을 전부 정리했는가?”
“그럴 리가요. 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이득을 볼 것이 분명한데 왜 저만 공매도에서 손을 떼야 합니까?”
리버모어가 씩씩대며 나에게 부당함을 호소했다.
“진짜로 은행주에 저만 공매도를 했으면 이리 억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듣자 하니 카네기, 록펠러, 심지어 모건 소유의 은행 계열사들까지 전부 공매도에 참여했다던데 어찌 저만 이런 취급을 당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월가의 돈벌레들이 이 사태를 가만히 관망하고 있지는 않았겠지.
앞에서는 이를 어떻게 수습할까 열심히 회의하는 척하며, 뒤에서는 제 잇속을 챙기기에 바쁠 거다.
“그래서 아직도 숏을 유지하고 있단 말인가?”
“예.”
대단하네.
모건이 대놓고 협박했는데도 이리 강짜를 부리는 것을 보면.
이런 면에서 리버모어는 진짜 야수의 심장을 달고 있는 놈과 다름없었다.
“이 왕자님. 제가 이번 하락장에 얼마를 벌었는지 아십니까?”
“얼마인가?”
“무려 4,000만 달러나 벌었습니다.”
“400만 달러가 아니고 4,000만 달러나 벌었다고?”
“예. 이번 사태로 왕자님께서는 이 미국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가 되실 것입니다.”
1912년.
록펠러는 록펠러 재단을 세우고 자신이 평생 악착같이 모았던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했다.
그때, 처음 기부했던 금액이 무려 5,000만 달러다.
‘그보다는 적지만 아무튼······ 엄청난 금액을 벌게 된 셈이군.’
카네기, 록펠러, 모건.
이 삼인방을 제외하면 진짜로 명실공히 내가 그다음이겠네.
모두 다, 여기 내 앞에 있는 리버모어 덕분이다.
감금되기 전에 숏(공매도)을 그리 쳐 댔으니까.
“아, 이 왕자님. 이건 제가 받을 수수료를 제한 금액입니다.”
트레이더는 수수료를 받는데 통상 15~30%까지 떼어 갔다.
자본주의 세상인 미국에서는 공짜는 없으니까.
리버모어는 월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초보 트레이더였기에, 평균 15% 정도의 수익만 가져갈 거다.
‘그래도 어마어마한데?’
리버모어에게 돌아가는 것까지 합하면······.
진짜 록펠러가 재단을 세웠을 때, 그때 내놓았던 금액을 이번 한 번에 번 셈이네.
J.P.모건이 눈에 불을 켜고, 뉴욕의 명사가 아닌 리버모어를 따로 불러서 협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유럽으로 간 사이에 리버모어 신탁기금은 다른 뉴욕의 내로라하는 신탁회사만큼 커진 거다.
“아무튼, 잘했네. 아! 리버모어.”
“예. 이 왕자님.”
“자네가 체결한 공매도 건 말이야.”
“예.”
“이제 진짜 거둘 때가 되었네.”
리버모어가 잔뜩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권유했다.
“하지만 좀만 더 버티면······.”
역시.
사람은 탐욕의 동물이다.
4천만 달러나 벌었는데도 이리 뒤끝을 보이다니.
‘하지만 진짜로 찐 바닥인걸?’
다우지수가 50에 근접했다.
역사상 최고점에서 반 토막이 난 것.
이미 바닥까지 접근했다는 말이기에 나는 리버모어에게 숏을 거둘 것을 주문했다.
“리버모어.”
“예. 왕자님.”
“유럽으로 떠나기 전에 내가 뭐라고 충고했지?”
“······우리는 자본주의를 파괴하려고 숏을 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더불어 내가 자네와 계약했을 때 말이야. 어떤 특별 조항을 넣었던가?”
“왕자님이 스톱을 외치시면, 투자를 즉시 중단하기로 하였지요.”
“그래.”
나는 눈을 부릅뜨며, 양보하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리버모어는 체념했는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모건에게 말하겠습니다. 숏을 거두겠다고 말하면 절 풀어주지 않겠습니까?”
나는 급히 리버모어의 팔을 잡았다.
“모건에게는 내가 말하겠네.”
그냥 여기서 공매도를 끝낼 수는 없다.
모건과 대화를 곧 나눌 텐데, 나 또한 협상할 카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 *
“왕자님. 들어오시지요.”
막 모건의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회의를 막 마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무리한 조건을 거는군. 루스벨트가 이를 수락하지 않을 것이오.”
“그럼 수락하게 만들어야지. 그러지 않고서는 이 공황을 타개하지 못할 거요. 그대는 이 나라가 정녕 망하길 원하는 것이오?”
모건은 나를 쓱 보더니, 앞에 있던 사내와 하던 말을 멈췄다.
“아······ 다음 손님이 왔군. 이따 마저 말합시다.”
“그러도록 하지.”
낯선 사내는 이내 곧 내게로 다가와 오른손을 건넸다.
“그대가 이 왕자시구려.”
“누구십니까?”
“조지 코텔류라고 하오. 연방정부 재무장관이오.”
이자가 워싱턴에서 왔다는 ‘소방수’로구나.
나는 위아래로 빠르게 훑으며 코텔류를 관찰했다.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모건에게, 그것도 단단히.
‘이거 잘하면······.’
연방정부와 모건의 사이가 나쁘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 정도로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성을 내며 삿대질까지 할 정도면 보통 나쁜 사이가 아닌 것 같다.
잘만 이용하면 모건을 곤란하게 하는 좋은 패로 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모건과 사이가 틀어졌을 때, 혹은 내 이익에 반하는 일을 했을 때 써먹어야지.’
재무장관이 나가고.
J.P.모건은 나를 회의실에 앉혔다.
“이 왕자님.”
“말하게.”
“시간이 없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리버모어 신탁에 있는 돈, 전부 다 이 왕자님의 자금입니까?”
“그렇네.”
“실례지만, 리버모어를 좀 설득하셔야겠습니다. 미국의 증시 상황이 좀 어려워서······ 공매도를 멈춰야 합니다. 그자를 설득해 주십시오. 공매도는 현재 뉴욕 증시를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J.P.모건의 부탁에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음 말을 내뱉었다.
“그러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다만······.”
모건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내 말을 반복했다.
“다만?”
나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이로 인해 내가 얻는 이득은 무엇이지?”
< 끝판왕과의 협상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