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68)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68화(68/392)
< 끝판왕과의 협상 (2) >
“외람되옵니다만, 이 왕자님. 아까 했던 말씀, 한 번만 더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래서 W.A.S.P.(미국 주류 계급 – 백인, 앵글로, 색슨, 개신교).
일명, 와스프 녀석들을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다니까.
동양인이 거슬리는 소리 좀 하면, 꼭 외국어라도 듣는 것처럼 못 알아먹는 척 연기를 한단 말이지.
“내가 말을 너무 빨리했군. 모건 은행장, 다시 말하지······ 내게, 어떤, 선물을, 줄 것이냐고, 좀 전에, 물었네. 알아, 들었는가?”
모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굼벵이처럼 아주 천천히 단어를 나열했기에, 이번만큼은 그 역시도 못 알아듣는 척 연기할 수 없었다.
“모건 은행장.”
“말씀하시지요. 이 왕자님.”
“세상에 공짜는 없네. 더욱이 자본주의 사회인 여기 미국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나는 팔짱을 끼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 후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
짜증이 살짝 난다는 티를 J.P.모건에게 의도적으로 보인 거다.
“자네는 지금 내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네. 아마도 나의 과거 행동들 때문일 터.”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 일어났던 일을 언급했다.
모건이 잠시 고민하다가 속에 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이 왕자님께서는 마음씨가 따뜻하신 분이시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렇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오시면서 보시지 않았습니까? 뉴욕 시민들이 얼마나 힘들어합니까?”
마음씨가 따뜻해 보여서 도움을 청한다는 건가?
에이.
말은 똑바로 해야지.
지금 날 사람 좋은 호구로 보고 있잖아.
“당장 숏을 청산한다면 나는 백만 달러······ 아니지, 천만 달러 그 이상의 손해를 볼 것이네.”
다우존스 지수가 50 가까이 근접했다.
이미 바닥인 상황.
천만 달러는 너무 과장된 수치다.
하지만 회귀자나 예언자가 아닌 이상에야, 이를 단호하게 부정할 수는 없을 터.
바닥이라 생각했던 게 계속 뚫리는 걸 봐 왔을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모건에게 내 미래 이익을 부풀리며 큰소리를 뻥뻥 쳐 댔다.
이에 모건이 반박했다.
“왕자님. 그건, 알 수 없는 미래의 이익입니다. 주가가 오른다면 왕자님께서는 역으로 큰 손해를 보실 수도 있습니다.”
“자네의 말대로 뉴욕증시가 그리 흘러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대다수 시민은 주가가 더 내려가리라 믿고 있네. 나 또한 그렇고.”
“······.”
“이 상황에서 공매도를 접는 것은 손해일세. 주식은 사람들의 심리 싸움이기도 하니까.”
J.P.모건은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린아이 달래듯 나를 살살 꾀었다.
“이 왕자님. 방금 제 회의실로 들어오시면서 보셨지요? 지금 이곳에 얼마나 많은 은행장이 와 있습니까?”
“꽤 있긴 했지.”
“여기 모인 뉴욕의 저명한 명사들은 사채를 출원하며 이번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왕자님께서 이리 고집을 부리신다면······.”
나는 모건의 말을 급히 끊었다.
반박할 거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야기 한번 잘 꺼냈군. 여기 있는 명사들 말이야. 자네 생각에는 진짜로 대승적인 차원에서 사재를 출원했다고 믿는 것인가?”
“······.”
“솔직히 말해서 다들 뱅크런이 겁나서 그런 것이 아닌가? 더욱이 그들 역시 공매도에 뛰어든 공범들일세.”
모건아.
나 다 알고 있어.
나는 모건에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어필했다.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 때문에 이 판에 뛰어들었다가, 그것이 제 목을 조르게 되니 다들 깜짝 놀라며 손을 떼고 있지 않은가? 내 말이 틀렸는가?”
모건은 반박하지 못했다.
다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하던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들과 나는 상황이 다르네. 나 역시 은행 주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서부에 있지. 한마디로 이번 사태와는 별개라는 말일세.”
뱅크런은 동부, 그것도 뉴욕 인근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B.O.I.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는 말.
“더불어 리버모어 신탁회사의 상황 또한 여타 뉴욕의 금융회사들과는 다르네. 뉴욕 전역에 리버모어의 투자 경험담이 퍼진다고 생각해 보게나.”
리버모어는 미국에 있는 주식 투자자들에게 욕을 한 사발은 먹을 거다.
이번 주식폭락 사태의 원흉으로 낙인이 찍힐 테니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명성도 얻게 될 것이다.
100만 달러를 단 반년 만에 5,000만 달러까지 불린 악당이지 않은가?
‘뉴욕에는 돈에 영혼을 팔 놈들이 수두룩하다.’
이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리버모어 신탁회사는 대박이 날 것이다.
남들은 뱅크런을 걱정할 때.
뉴욕의 새로운 라이징스타인 리버모어는 새로운 투자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할 터.
그렇기에 J.P.모건은 이 소문이 퍼지기 전에, 리버모어를 제집에 반강제로 감금시키고 관련 정보 또한 쉬쉬하며 함구케 유도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를 강조했다.
“······.”
“······.”
이익을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나와, 대승적으로 희생하라는 모건.
둘 사이에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회의실 분위기는 점점 차갑게 식어 갔다.
“······.”
“······.”
모건과 나는 한동안 말없이 눈으로 싸우며 서로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럴 때 먼저 입을 떼는 쪽이 지는 쪽이 되겠지.
나는 끈기를 가지고 눈을 부릅뜨며 모건을 바라보았다.
나야 아쉬운 것이 없으니까.
똑똑-
그때였다.
적막을 깬 것은 모건 쪽이었다.
“모건 은행장님. 제임스 스틸만 은행장님께서 막 도착하셨습니다.”
모건은 바쁘다.
이 사태를 수습하려면, 뉴욕의 은행장들과 연쇄적으로 만나며 개인재산을 털게 유도해야 했으니까.
‘틱톡- 틱톡- 황금 같은 시간이 가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뉴욕의 은행에서는 돈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뱅크런 때문에 금융기관 3곳이 벌써 문을 닫고, 영업 정지를 선언했다.
이대로 시간이 좀 더 흐른다면 폐쇄되는 은행의 수는 더더욱 늘어나게 될 터.
그리되면 탄탄했던 모건의 은행 또한 위태로워지겠지.
뱅크런이란 대형 산불 앞에서는 그 어떤 은행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은행장님.”
비서가 다음 약속이 곧 시작될 것을 알리며 그를 재촉했다.
“스틸만 은행장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전하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네.”
“아, 예. 그리 전하겠습니다.”
모건의 비서가 재빨리 회의장 문을 닫았다.
모건이 손깍지를 끼며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왕자님의 이득······ 함께 고민해 봅시다.”
* * *
“아, 이득을 주제로 논의하기에 앞서, 왕자님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말하게.”
“왕자님께서는 제가 두렵지 않습니까?”
오호라.
권유가 통하지 않으니 이젠 협박을 다 하시겠다?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두려운 것과 내 재산을 지키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하네만?”
나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척, 뜸을 들이다가 그의 물음에 답했다.
“그리고 애초에 겁쟁이였다면 이역만리 떨어진 이 미국으로 오지도 않았네. 더불어 위험자산에 투자하지도 않았겠고.”
나의 답에 모건이 목소리를 높이며 나를 재차 압박했다.
“저는 왕자님의 생각보다 더 무서운 사람입니다. 제 목적을 위해선 왕자님을 이번 주가 폭락 사태에 배후로 엮을 수도 있습니다.”
“뭐? 나를?”
이제야 본 모습이 나오네.
그래.
모건은 이렇게 사람들을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협박하기도 하며 이 사태를 결국 수습하겠지.
‘하지만 이는 곧 그에게 독으로 작용할 거다.’
이런 협박 때문에 자존심 강한 뉴욕의 명사들 일부가 그의 적이 되니까.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이들에게, 방금 나에게 했던 것처럼 협박한다고 생각해 보아라.
그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말년이 불행했던 것도 이 때문이지. 이번 사태로 재산과 영향력이 배로 증가하겠으나, 동시에 적 또한 오지게 늘어났을 테니까.’
그런데 모건아.
미안한데, 나 이런 협박 안 통해.
‘익숙하지, 이런 분위기는.’
로비스트로서 협상할 때 이미 많이 겪었거든.
협상은 대게 하하 호호 세상 좋은 분위기로 끝나지 않으니까.
때론 멱살이나 머리끄덩이도 잡으며, 다신 안 볼 것 거처럼 싸우기도 한다.
그게 이 업계의 일상이다.
뭐, 이 정도는 약과지.
‘얕보이면 안 된다.’
협박하는 이들 앞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그럼, 진짜로 사람을 호구로 보니까.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허세를 부리며 오늘만 사는 것처럼 행동할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깔깔깔-
크게 웃으며 모건을 바라보았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난 자네가 은행장인 줄로만 알았는데 코미디언이었군.”
“······.”
“그래. 자네 이야기대로 말이야. 자네가 날 이번 사태의 배후로 지목했다고 치자고. 과연 사람들이 이를 믿어 주겠는가? 내가 이 사태의 배후라고? 나는 그동안 유럽에 있었는데 말이야.”
“그건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글쎄. 자네는 여기 뉴욕의 시민들이랑 대화를 안 나누나? 사람들이 다들 자네를 두고 뭐라고 하는데? 뉴욕의 황제라고 하네.”
나는 창밖을 가리키며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일개 망국의 왕자가 뉴욕증시를 망쳐놓았다? 그것도 원격으로, 뉴욕의 황제를 제치고? 글쎄. 오히려 사람들은 뉴욕의 황제가 눈앞의 이득에 멀어 공매도를 치다가 자멸한 것으로 생각할 것일세. 그게 더 개연성 있는 소설이니까.”
길에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
전자보단 후자가 더 말이 되는 거지.
“무엇보다도 말이야.”
“······.”
“그런 소문이 퍼지면 난 유럽으로 떠나면 되네. 이래 봬도 난 유럽에 친구가 많거든.”
응, 떠나면 그만이야.
그동안 서부에 꾸려 놓은 내 영지가 조금 아깝지만, 내 수중에 있는 4,000만 달러면 어떻게든 다시 일어날 수 있겠지.
캘리포니아나 하와이에 있는 교민들은 멕시코로 이주하게 하면 된다.
그곳에서 제3의 인생을 살게 하면 될 터.
거긴 진짜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되는 국가니까.
이 정도는 무리도 아니다.
“왕자님.”
그때였다.
모건이 벌떡 일어나서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이 왕자님을 너무 쉽게 보았습니다. 그 점 고개 숙여 사죄하겠습니다.”
내가 쉬이 넘어오지 않으리라 견적이 나오자, 모건은 다시금 전략을 재차 수정했다.
비대한 몸과는 다르게 정말이지 기민한 협상 태도다.
“이 왕자님. 무엇을 원하십니까? 조건부터 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빠르게 인정했다.
동시에 나를 진짜 협상 대상자로 보며 내 의중을 물었다.
“흠······.”
죄송한데요.
급한 건 모건 당신이잖아요.
선 제시 좀 해 주시죠.
“자네 이야기부터 들어 보고 싶군.”
깔끔하게 ‘반사’를 외치자, 모건이 제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먼저 꺼냈다.
“우선, 이 왕자님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좋지만 그걸로는 좀 부족하군. 유럽의 국가들만 해도 다들 날 반기고 있다네.”
이번 사건으로 더 큰 부자가 되었으니, 더더욱 반길 거고.
‘믿는 구석이 많지.’
네덜란드도 있고.
영국도 있고.
특히 영국은 망국의 왕족들에게 굉장히 너그럽기로 소문이 났다.
이를 언급하자 모건이 다른 조건을 말했다.
“그렇다면, 이민법은 어떠십니까?”
“이민법?”
“예. 최근 이민법 개정이 워싱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듣자 하니 한인들을 그 안에 포함할지 말지를 두고 말이 많다고 합니다. 좀 아슬아슬하다던데 제가 연방의회 의원들을 압니다. 왕자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원 역사에서는 일본을 제외하고, 모든 동양인의 이민이 막힌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 거금을 들여가며 봉사했던 것은 이를 막기 위함이었다.
‘내가 활약하긴 했어도 인종차별주의는 뿌리 깊으니까. 아슬아슬할 수도 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회의실 한편에 있는 빈 종이를 그에게 건넸다.
“혹시 서면으로 작성해 줄 수 있는가? 만약, 이민법이 내가 원하는 대로 통과되지 않으면 나를 기만한 것으로 보고 이를 배상해야 할 것일세.”
말로 하는 약속은 구속력이 없으니까.
이리 서면으로 작성해야 그나마 구속력이 생긴다.
“그리해 드리지요. 아, 더불어 앞으로 일어날 중요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권리 또한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응?
무슨 꿍꿍이지.
이민법으로 퉁 칠 줄 알았는데······.
“물론, 회의에 참석하신다면 그에 따른 회비 또한 마땅히 납부하셔야 합니다.”
아······.
내 수중에 있는 돈이 탐나는구나.
하긴, 리버모어가 공매도를 청산하면 내 계좌에는 4,000만 달러의 현금이 찍히게 된다.
이를 이번 사태에 활용할 생각인가 보군.
“회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냐에 따라, 회비를 얼마나 낼지 생각해 볼 것이네.”
역시 만만치 않군.
하는 표정으로 J.P.모건이 나를 바라보았다.
“후회하진 않으실 것입니다. 왕자님께서 어떤 분이신데, 제가 왕자님께 손해 볼 제안을 하겠습니까?”
“좋네.”
모건과 빠르게 악수를 했다.
끼익-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리자, 비서가 급히 문을 열고 회의실 안 상황을 파악했다.
“은행장님. 그럼 스틸만 은행장님을 모셔 오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나와 악수했다고 해서 모건은 쉴 수 없었다.
그에게는 아직도 많은 숙제가 그의 앞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나는 회의실을 나오며, 현재 모건의 집에는 어떤 명사가 기거하고 있는지 그들의 면면을 한번 둘러보았다.
< 끝판왕과의 협상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