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69)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69화(69/392)
< 생과 사 >
맨해튼 근방에 있는 브롱크스에서 작은 커머셜 뱅크를 운영 중이던 주안 밀런.
그 역시도 모건의 집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모건이 뉴욕 근처에서 사업하고 있는 은행장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호출했기 때문이다.
‘동창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죄다 아는 얼굴들뿐이네.’
회의장 안에는 뉴욕의 거물들이 가득했다.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내셔널시티 은행의 스틸만 은행장도 있고.
쿤 로브 컴퍼니의 대표인 폴 워버그도 있었으며.
연방정부 재무장관 또한 앉아 있었다.
‘저자는······.’
물론 개중에는 처음 보는 인물도 더러 있었다.
모건이 앉을 빈 좌석 옆에 방금 착석한 동양인처럼.
“저기 동양인 말이야, 소문의 그 왕자 맞지?”
“이름이 이강이라고 했던가?”
다들 며칠 동안 모건의 집에서 반쯤 감금된 채 살았고, 입을 터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재미난 소일거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대화뿐이었고.
때문에, 새로운 이는 그만큼 주목받기 마련이었다.
뉴욕의 명사들은 막 회의장에 들어선 낯선 동양인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헤이그에서 연설했던 왕자겠지?”
“아마 그럴걸.”
“듣기론, 그때 연설 때문에 왕자 작위가 박탈당했다던데······.”
“박탈은 무슨······ 한 번 왕자는 영원한 왕자이네. 듣자 하니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라던데.”
“그보다, 재산이 꽤 된다고 들었네.”
“재산?”
“그래. 소문에는 현금을 오천만 달러나 쥐고 있다더군.”
“미친, 오, 오천만 달러나?”
“그래. 그러니까 저어-기 모건 옆에 앉았겠지.”
회의장의 자리 배석은 언뜻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집의 주인인 모건과 가깝게 앉을수록 귀인이라 할 만했다.
구석에 배치되어서 모건이 있는 자리도 안 보였던 이들은 오른 자리를 꿰찬 이강을 바라보며 너 나 할 것 없이 부러워했다.
“저자의 재산 때문에 그 리버모어인가 뭔가가 이번에 대규모로 숏을 칠 수 있었다며.”
“리버모어라는 놈, 참으로 부럽군. 동양에서 온 호구를 잡다니.”
주안 밀런은 옆에 앉은 은행장들이 하는 이야기를 주워들으면서 이강에 관한 정보를 머리에 새겼다.
언제, 어떻게 이강을 만나서 도움을 받을지 몰랐으니까.
이런 신상 정보는 미리미리 익혀 두는 게 제일이었다.
“흠흠······.”
회의 중앙에 있는, 빈자리의 주인이 나타났다.
뉴욕의 지배자.
아니, 독재자로 변모한 J.P.모건이 등장한 거다.
“빈자리가 없는 것을 보니, 모두 다 참석한 것 같군.”
모건은 회의장을 쓱 훑은 다음, 중앙에 있는 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굵은 목소리로 개회를 선언했다.
“다들 잘 알 테니 소개는 생략하겠네. 본론부터 들어가도록 하지. 아, 한 분! 오늘 이 자리에 처음 오신 분이 계시는구먼. 내가 짧게 소개하겠네. 여기 계신 분은 이강 왕자님일세.”
모건은 이강의 소개를 빠르게 마치고.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회의장에 모인 뉴욕의 명사들을 제압했다.
“오늘 그대들을 이 자리에 한데 모은 것은······ 니커보커 신탁의 존폐를 가리기 위해서네.”
모건의 입에서 니커보커 신탁에 관한 정보가 쏟아졌다.
신탁의 규모는 얼마인지부터, 부채는 대략 어느 정도인지까지.
실상 모두 다 알고 있었지만, 모건은 회의를 주도한다는 걸 보여 주기라도 하듯 모든 정보를 쏟아 냈다.
“니커보커 신탁은 우리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신탁이네. 이 회사가 파산하게 된다면, 시장에 어마어마하게 충격을 주겠지.”
모건이 회의장 전체를 둘러보며 안에 앉아 있는 은행장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이후, 한숨을 한 번 내쉬곤 오늘 할 본론을 꺼내었다.
“혹시 니커보커를 구제할 영웅이 있는가? 이 안에 말이야.”
주안 밀런의 예상대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시장에 풀렸던 유동성 자금이 바짝 마른 상황이다.
기존 금융기관들 또한 오늘내일하는데 누가 누굴 구제하겠는가?
‘니커보커는 끝난 건가?’
주안 밀런은 아마존 정글보다도 더 냉혈한 월가의 본모습을 보며 니커보커의 생존 여부를 회의적으로 보았다.
그때였다.
“이 왕자님.”
회의의 주최자인 모건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서, 제 옆에 앉아 있던 동양인을 쳐다보았다.
“이 왕자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
“이 왕자님께서는 여기 이 방에서 코텔류 재무장관과 함께 니커보커 신탁을 살릴 수 있는 유이한 분이십니다.”
모건의 주장대로 코텔류 재무장관은 여기 뉴욕 금융인들에게 한 줄기 구원의 빛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역시 들고 있는 실탄이 한정적이라는 것.
정부 특성상 한 번 도와주면 끝까지 책임져야하기 때문이었다.
특정 회사를 두둔할 수는 없으니까.
소문에, 재무장관은 이번 사태가 좀 진정될 때까지 몸을 사리는 중이라고 들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저 동양인이 진짜 현금 부자라면, 이번 위기의 구원투수 역할은 오직 그만 할 수 있었다.
“니커보커 신탁이라······.”
동양에서 온 왕자는 뜸을 들이며 모건의 마음을 애태웠다.
“마치 이 유리잔과 같군.”
왕자는 물이 담긴 유리잔을 하나 손에 들고는 천천히, 마치 와인의 향을 맡으려는 듯 흔들어 댔다.
방금 모건이 했던 질문과는 동떨어지는 대답이었다.
“왕자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아, 내가 한 단어를 빼먹고 말했군. 정확히는 5초 뒤의 이 유리잔과 같은 운명일세.”
왕자가 유리잔에서 손을 뗐다.
이에, 허공에 있던 유리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땡그랑-
바닥과 충돌한 유리잔은 그대로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이강의 갑작스러운 퍼포먼스에, 주안 밀런을 비롯한 뉴욕의 금융인들이 이강의 말에 집중했다.
“수익이 감소하거나, 대표가 막말하거나, 속한 분야의 장래가 불투명해지거나 하면 회사는 시장의 신뢰를 저버리게 되네.”
이강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쪼개진 유리잔을 바라보았다.
“앞선 것들은 노력하면 개선될 수 있네. 주가는 좀 폭락하겠지만. 하지만······ 때론 고쳐 쓸 수 없는 것도 있네. 마치, 저기 깨진 유리잔처럼.”
“······.”
“내 조국에선 엎어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말이 있네. 엎어진 우유 때문에 울지 말라는 그대들의 속담과 비슷하군. 과거의 잘못이라 한들 용서받을 수 없는 것도 있다네.”
동양의 왕자는 뭔진 모르겠지만 그럴싸한 말을 내뱉으며, 제법 멋있게 자신의 연설을 이어 갔다.
“니커보커는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네. 유나이티드 쿠퍼 회사의 주가 조작을 돕지 않았던가? 게다가 소문에는 회계까지 손을 댔다던데.”
왕자가 손가락을 튕기며 강조했다.
“주가 조작과 회계 부정. 이 두 가지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범죄네.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니까. 보게나······ 니커보커의 부정행위 때문에 시장 참여자들이 더는 은행들을 신뢰하지 않고 있네.”
이번 공황을 해결하려 각종 대책을 쏟아 내고 있으나, 아무도 모건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은 모건을 향해 좀 더 실질적인 대책을 주문하고 있었다.
이강은 이런 현실을 지적하며 냉소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난 이걸 구제할 바에야 거지들에게 적선하고 말 것이네. 그리한다면, 그나마 주린 자들의 배를 채울 수 있기라도 하겠군.”
모건이 이강의 얼굴을 쓱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왕자님께서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군요.”
“뭐······ 그런 셈이지.”
이강은 보통 왕자와는 달랐다.
이 정도면 굉장히 직설적으로 말한 거다.
“모건 은행장님.”
잠시 후.
모건의 오른팔인 벤저민 스트롱이 회의장에 서류를 들고 오며 모건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모건은 이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간략히 니커보커의 실사 결과가 나왔구려. 관련 정보를 여기 있는 귀빈들에게 즉시 공유하겠소.”
이강 왕자의 주장대로 니커보커는 주가 조작뿐만 아니라 회계까지 일부 손을 댔다.
한마디로 부실 덩어리라는 말.
“쓰레기네.”
주안 밀런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상스러운 단어가 나왔다.
다른 은행장들도 주안 밀런처럼 대놓고 욕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건이 니커보커를 살릴 것 같지 않아서다.
“니커보커. 최종적으로 인수하실 분 있습니까?”
“······.”
“없으면 오늘 회의는 이만 종료하도록 하지요.”
예상대로.
모건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동양의 왕자와 연방정부의 재무장관 역시 빈손으로 이 회의장을 떠났다.
사실상.
니커보커 신탁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 * *
황금 같은 시간이 계속 흐르는 가운데, J.P.모건이 말했던 회의 참가비의 정체는 금방 드러냈다.
‘니커보커 신탁회사를 인수할 의향이 있냐니, 허······.’
그 똥 덩어리를 어떻게 인수해.
그러다간 망해.
‘2000년대 금융위기 때가 연상되는군.’
한국의 산업은행이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하려다가 막판에 철회하지 않았던가?
만약 인수했으면, 리먼 형제의 빚덩이에 깔려 한참을 고생했을 거다.
나 또한 니커보커를 인수했다간 같은 꼴이 되었겠지.
『왕자님께서는 미래를 내다보시는 신묘한 통찰력이 있어 보이십니다. 분명, 차기 미국 금융의 헤게모니 또한 관심 있어 하실 텐데······ 이 사태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금융기관 여러 개를 소유하십시오.』
어제 모건은 나에게 이런 요청을 했다.
현재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금융기관을 하나도 소유하고 있지 않았기에.
더불어 현금이 제일 많은 현금 부자였기에.
그런 부탁을 했겠지.
‘나는 계속 인수 희망자로 회의에 참여할 거다.’
거기서 옥석을 가려내 좋은 회사들을 챙겨야겠지.
그래야.
연방준비제도가 설립할 때, 초기 구성원으로 낄 수 있지 않겠는가?
“속보입니다.”
잠시 어제 했던 말을 상기하고 있었는데, 회의장에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모건에게 구제받지 못한 금융기관들이 하나둘씩 파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찰스 바니, 니커보커 대표가 오늘 새벽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사유는 자살로, 아마도 회사가 파산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 * *
니커보커 회장의 자살 소식은 회의장 분위기를 더욱더 어둡게 만들었다.
여기 있는 다수가 다음 차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예금자산이 줄고 있기에, 뉴욕의 금융인들은 모두 애처로운 눈빛으로 모건만을 바라보았다.
“모건 은행장. 니커보커 신탁 파산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물론.”
“대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니커보커 신탁회사 파산 소식 때문에 신탁업계 전체가 위험해졌습니다.”
제 목숨이 달려 있기에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끼익-
그런 가운데 회의장 문이 열렸다.
이번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네 사람이 급히 이곳에 찾아온 것이었다.
“데이비드? 매커스?”
“자네들이 어떻게?”
니커보커에 이어 다음 타자들.
분명.
모건이 이들의 회의 참여를 허가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나는 비릿하게 웃고 있는 모건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모건 저놈이 또······ 정치질을 하기 시작했군.’
내 예상대로.
네 명의 대표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더니, 연방정부를 대표해서 이 자리에 온 재무장관에게 매달렸다.
“코텔류, 코텔류 재무장관······.”
“사, 살려 주시오.”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소.”
네 명의 사장은 재무장관 바지 끄덩이를 잡고 물고 늘어졌다.
뱅크런 때문에 자신들의 회사가 문을 닫게 생겼으니까.
“미안하오. 그대를 도와준다면 같은 사태가 터졌을 때, 다른 기관도 도와주어야 하오.”
“재무장관!”
“연방정부가 무슨 대책이라도 마련해 주시지요.”
코텔류는 거절했다.
이 사태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데 벌써 실탄을 전부 소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건!”
“자네가 우리를 구원해 주시오.”
“이젠 당신뿐이오.”
네 은행장의 추한 행동에.
“쯧쯧.”
“준비금 좀 쌓아 두지.”
“내 말이······.”
비교적 살림살이가 넉넉한 이들은 혀를 찼다.
뉴요커 특유의 약자멸시가 이 자리에서도 행해진 것이었다.
“······.”
“······.”
물론 전부 그리하는 건 아니었다.
다수는 제 몸 하나 챙기기도 바쁘니까.
그들은 다음 차례가 될 수도 있었기에 아무 말 없이, 현 사태가 어떻게 해결될지 지켜보았다.
“벤저민.”
“예. 모건 은행장.”
“부탁 좀 하겠네.”
“예. 네 분, 이쪽으로 오시지요.”
재정 관련 정보를 전부 공개하면 구제 심사가 행해지겠군.
벤저민이 네 사장을 데리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쿵-
모건은 회의장 문을 단속하며 현 사태의 위중함을 알렸다.
“시간이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전에 조사해 둔 것이 있습니다. 자세한 부실 규모는 파악되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모건의 수하들은 사전에 조사했던 정보를 여기 모인 이들에게 공유했다.
대충 어느 회사가 취약한지 파악해 두었기에, 보고서가 이미 작성되어 있던 것 같았다.
“아메리칸 신탁. 혹시 관심 있는 분 있소?”
“링컨 신탁은?”
“더 퍼스트 신탁은? 다음으로······.”
니커보커에 이어 네 개의 회사가 호명되었다.
아무 말이 없자, 이번에도 그는 또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왕자님. 연극 무대의 막이 올랐습니다.”
모건은 이전과는 다르게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오늘만 네 주인공이 막 무대 위에 등장했군요. 이 넷 중에 이 왕자님 재량으로 살릴 수 있는 기관이 몇입니까?”
대답을 안 하자, 모건이 나를 보챘다.
“이 왕자님. 구제해 주십시오.”
“연극이라······ 자네가 그리 말하니 나 또한 문학 속 한 구절이 생각나는군.”
“예? 문학 속 한 장면이요?”
또다시 엉뚱한 말을 내뱉자, 모건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문학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셰익스피어의 소설 말일세. 그 있잖은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했던. 나는 살리느냐 죽이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 같군.”
생살여탈권을 쥔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 사색에 잠겼다.
이에 회의장에 모인 이들은 숨죽이며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주시했다.
“하나.”
나는 오른손 검지 하나를 펴며 말했다.
“대충 하나 정도는 살릴 수 있겠군.”
“그렇습니까?”
“그래. 아메리카 신탁 정도는 구제할 수 있을 듯하네.”
나는 재빨리 뒤에 말을 첨부했다.
“다만, 한 가지 약조가 선결되어야 하네. 그리해야······ 300만 달러를 사용할 걸세.”
“300만 달러.”
회의장에 모인 이들은 300만 달러에 집중했다.
하지만 모건은.
“약조라······.”
구제나 구체적인 구제 비용보다도 약조라는 단어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조건부터 들어 보도록 하지요. 어떤 약조가 필요하십니까?”
“여기 목록에 있는 부실 사항들 말일세······.”
나는 내 앞에 있는 종이 쪼가리를 흔들며 모건을 바라보았다.
“그거 말고, 추가로 확인되는 정크들(쓰레기-악성 채권)이 있잖은가.”
“예.”
“보증해 주게나. 추가 부실이 따로 발견된다면 이를 전액 탕감해 주기로.”
한마디로 알짜배기만 먹겠다는 뜻이었다.
“······.”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이지만, 차마 승인해 주기는 어려운 조건.
나는 이를 모건에게 들이밀었다.
“주체는 누가 되어도 상관없네. 단, 믿을 만한 이가 이를 꼭 서면으로 보증해야 하네.”
이민법과 마찬가지로, 입만 털어서는 안 된다는 걸 강조했다.
구두 약속은 여차하면 흐지부지되는 것들이니까.
모름지기 계약은 확실해야 한다.
“흠······.”
모건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요즘 따라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의 이마에 패인 주름이 더 깊어진 것 같다.
“일리가 있는 요구이군요. 긴급히 금융기관 하나를 구제하니까요.”
“그렇지.”
“네. 왕자님의 요구는 잘 알아들었습니다.”
모건은 탁자를 ‘탁’ 치며.
“아! 코텔류 장관, 잘 들으셨습니까?”
재무장관의 이름을 불렀다.
“응?”
모건 옆에 있던 코텔류가 관성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제 이름이 호명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건이 눈을 깜빡이며 코텔류를 다시금 바라보자.
“으응?”
코텔류는 ‘뭐야 이 분위기는’ 하고 모건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의 이름이 왜 호명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어어? 그러니까······.”
그렇다.
모건이······.
나의 보증 요구를 코텔류에게 떠민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영민하게.
< 생과 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