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7)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7화(7/392)
< 덤 >
문 뒤에서 이근상이 정체를 밝히자, 나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귀비가 왜?’
이 먼 동경까지 사람을 보냈지?
나도 모르게 반걸음 물러섰다.
그 후,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빠르게 머리를 굴려 보았다.
‘혹시 일이 잘못됐나?’
귀비는 투기로 눈이 먼 중전 민씨 아래에서도 살아남은 여인이었다.
민비 사후 주인을 잃은 내명부를 한순간에 꽉 쥘 만큼, 그녀의 정치적 재능은 월등했다.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아주 작은 실수로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지.’
변수는 늘 존재한다.
만약, 헐버트가 고종과 귀비 앞에서 서툰 연기라도 했다면?
그래서 그 찰나의 순간을 그녀가 포착했다면?
이후, 헐버트를 추궁해 그가 내 계획을 만천하에 이실직고했다면?
후-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상상이었기에, 내 심장은 미친 듯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문밖에 있던 자와 아직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자가 왜 동경에 왔는지조차 모르는 상황.
미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혼자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졸일 필요는 없었다.
‘좋게 생각할 수도 있어.’
나는 그동안 계속해서 한양 정부를 압박하고 또 압박했다.
저들을 계속하여 밀어붙인다면.
다 만들어진 맛있는 떡은 아니지만, 맛있는 콩고물 조금은 떨어지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강의 기억이 이를 증명하지.’
지난 6년 동안.
이강이 귀국을 요청했을 때마다, 고종과 그의 신하들은 이강의 손에 학자금을 쥐여 주며 그를 미국으로 돌려보냈다.
그 액수가 적게는 1만 불에서 5만 불 정도 된다.
적은 돈 받아서 누구 코에 붙이냐 말할 수도 있겠다만, 1900년대의 5만 불은 상당히 큰돈.
2000년대의 물가로 환산하면 대략 100만 달러 정도가 된다.
돈 많은 부자를 지칭할 때 백만장자, 밀리어네어(Millionaire)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던가?
백만장자란 단어가 백만 달러에서 파생된 말이기 때문이다.
한 푼이 귀한 상황에서 5만 불은 내게 있어 생명수와도 같은 돈이었다.
그랬기에, 최근에 대마도행 표 또한 구했다.
짐도 다 꾸렸고.
내가 명령하면 언제든 동경을 뜰 준비가 된 상태.
‘내 계획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었더라면 고종이나 한양 관료들이 올 것이라고 여겼는데.’
귀비의 사람이 올 줄이야.
‘둘 중 어떤 게 맞으려나?’
계획이 망했을까?
아니면, 덤 작전이 통했을까?
상반된 두 가정을 머릿속에서 계속 상상하며.
끼익-
객실 문을 열었다.
“들어오게나.”
“감사합니다.”
간밤에 온 비 때문에 이근상의 전신은 홀라당 다 젖어 있었다.
“고생이 많군.”
일단 수건부터 건넸다.
그러면서 그가 취할 다음 행동을 슬그머니 지켜보았다.
“어휴······ 선착장에서 마차가 잡히지 않아 고생 좀 했습니다.”
이근상이 너스레를 떨며 내가 건넨 수건으로 머리부터 말리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그의 가까이 다가갔는데, 갑자기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물비린내가 나는군.’
손으로 코를 급히 가리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괜히 그런 모습을 벌였다간 이근상의 경계심만 높일 수도 있었으니까.
난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방긋 웃으며, 일단은 입지 않는 옷들을 그에게 건넸다.
그 후 옆방을 가리켰다.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저기 저 방에서 이 옷으로 갈아입게나.”
“예. 전하.”
손님방으로 가는 동안에도 이근상의 눈은 계속 팽글팽글 돌아갔다.
난 모르는 척하면서도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죽을 맛이군.’
내가 건넨 새 옷으로 그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지만, 여전히 그의 주위에서는 악취가 났다.
“자네도 한잔하겠는가?”
나는 진열장에 놓여 있던 술을 꺼내 들며 물었다.
술 냄새로 악취도 가릴 겸.
더불어 이근상의 정신도 좀 흐릴 겸.
“주신다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근상의 코는 상당히 빨갰다.
오는 길에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면 평소에도 즐긴다는 뜻이겠지.
“자, 받게나.”
자연스럽게 술을 건넸다.
나는 술잔을 홀짝이며 그가 술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폈다.
“크······ 술맛이 끝내줍니다. 전하. 한 잔 더 주시겠습니까?”
나를 만나러 왔다는 놈이······.
“크······.”
술을 연거푸 들이켠다.
내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한 잔 더 주십시오. 간만에······ 술을 마시니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천천히 마시게. 체하겠네.”
내가 한잔 마실 동안 이자는 다섯 잔을 마신다.
술잔을 비우고 또 비우는 이근상.
그런 이근상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봐도 간만이 아닌데. 쯧쯧······ 알코올을 즐기는 게 아니라 지배당하고 있군.’
술을 물처럼 마신다.
저 정도면 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알코올중독 수준이다.
로비스트라는 직업 특성상 술자리를 가질 기회가 많았다.
저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제법 많이 보았기에, 대충 봐도 알코올중독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한심하군.’
저자도, 그리고 저자를 고용한 이도.
‘중요한 일을 맡기에는 그 역량이 심히 모자라.’
그런데 왜 저자가 왔을까?
평소에는 멀쩡했나?
아니면, 귀비가 믿는 자는 저자뿐인가?
순간, 이강이 경험했을 기억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귀비뿐만 아니라 고종도 그렇고, 한양 정부도 그렇고.
그들이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이강의 기억 속에서 그것이 떠올랐다.
‘최악이군.’
특히나 외교 분야에서는 세세한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는데.
자신과 친한 관료라고 관직을 주고.
전문성 없는 이에게 중대한 일을 맡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관직을 팔기도 하고.’
왕실의 주 수입원이 무엇이던가?
바로 매관매직이다.
‘너무 높이 평가했군.’
나는 앞에 있는 자와 귀비, 두 사람을 다시 분석하며 그들에 관한 평가를 한 단계 아래로 내렸다.
이근상은 이런 내 속내도 모른 체 열심히 술잔을 비워 갔다.
그러다 자신이 왜 동경에 왔는지 깨달았는지, 여섯 잔쯤 마신 뒤에야 귀비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귀비 마마께서 전하의 안위를 걱정하고 계십니다.”
“귀비께서?”
“예. 석 달 전에 전하께서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귀비께서 접하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가슴 아파하셨는지, 소신은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리옵니다.”
남들이 이 대화를 듣고 있다면 오해하겠네.
귀비와 이강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은데 말이다.
‘뭐, 둘 사이도 처음엔 잠깐 좋았긴 했다만.’
귀비가 이강의 이복동생인 영왕 ‘이은’을 낳으면서 둘 사이는 급격하게 멀어졌다.
이강의 기억을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새어머니와 다 큰 자식과의 관계는 힘들지. 새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제 배로 낳은 자식을 먼저 챙기니까.’
서열만 놓고 보면 의왕 이강은 황태자 이척 다음으로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성품이 모나게 삐뚤어진 것도 아니고, 머리 또한 나쁘지 않다.
그렇기에 이대로 시간이 좀만 더 흐른다면 이제 열 살도 안 된 이은보다는 이강이 황태자 이척의 뒤를 이을 것이 뻔했다.
귀비는 이런 후계 구도를 뒤집고 싶어 했다.
그 때문에, 귀비는 지금도 베갯머리 송사를 열심히 하며 간계를 꾸미고 있었다.
제 아들을 다다음 후계자로 만들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던 거다.
‘그런 귀비가 날 걱정했다고? 오히려 내가 죽지 않아서 아쉬워했겠지.’
대한제국은 ‘효’라는 사상을 중요시한다.
귀비 역시 이강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기에, 이근상은 이를 언급하며 이강의 효심을 자극하려는 듯했다.
다만, 나는 이강이 아니었기에 이근상의 서두는 별 효과가 없었다.
“그래. 이 시간에는 무슨 일이지?”
“짐을 싸고 있으셨나 봅니다.”
내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제가 궁금한 것부터 묻는다.
이를 지적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이근상의 물음에 답해 보았다.
“그래. 짐을 싸고 있다네.”
헐버트가 곧 상해에 도착한다.
그러면 나는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헐버트가 안 들켰다면······.’
이근상은 내가 대한제국으로 갈 것이라 예상할 것이다.
반대라면, 미국으로 떠날 것이라 여기겠지.
“정녕 폐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데도 본국으로 돌아오실 생각이십니까?”
답이 나왔다.
귀비와 이근상은 지금 착각하고 있었다.
꽉 쥐었던 주먹이 풀어진다.
나는 긴장을 살짝 풀며 이근상에게 되물었다.
“나의 다음 행선지를 어째서 자네에게 말해야 하지? 자네가 내 상관이라도 되는가?”
나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이근상이 술을 또 홀짝이며 대답했다.
“귀비께서는 우려하시고 계십니다.”
“무엇을?”
“전하께서 무모한 짓을 하시어 폐하와의 관계가 영영 어그러질까 걱정하시옵니다.”
두 부자 사이가 이리된 것은 다 귀비 탓인데.
웃기는 여자로세.
내가 미동도 하지 않자, 이근상이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이 마수를 펼치고 있습니다. 조선반도를 목표로 놓고 뒤에서 수작을 벌이고 있단 말입니다.”
내가 침묵하자, 이근상이 침까지 튀겨 가며 열변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쓰시마 해전에서 저들은 러시아 함대를 격파했습니다. 그 대단한 러시아를 말입니다. 그 후, 저들은 우리의 내정에 아주 노골적으로 간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귀비께서는 이제 방도가 하나뿐이라 여기십니다.”
이근상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비에 살짝 젖어 축축했지만, 한눈에 그게 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일본을 막을 세력은 미국뿐이라. 하······ 자네도 이 의견에 동의하나?”
미국으로 가는 표.
나는 종이 쪼가리를 흔들며 이근상에게 물었다.
“예.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신도, 그리고 폐하께서도 이에 동의하십니다.”
“그래서 나보고 미국으로 되돌아가라? 풍전등화 같은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렇사옵니다. 전하.”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 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개 왕자 나부랭이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전하뿐이십니다. 오직 전하만이 미국으로 가서, 저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서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미교포 2세였다.
그 때문에 난 한국사는 잘 모르지만, 미국사는 아주 잘 알았다.
‘미국은 네놈들이 생각하는 착한 놈들이 아니야.’
미국과 일본은 비밀리에 한 가지를 약조했다.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통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겠다고.
상부상조하겠다고 손잡고 있는데.
참, 하는 소리가 가관이다.
‘나를 미국으로 보내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면 국제 정세를 모르는 바보라고 여길 수밖에 없군.’
‘대한제국으로 돌아가진 않겠다’라는 건 이미 결심한 사항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그 결정이 옳은 것 같다.
이런 팔푼이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있는데 희망이 있을 리가.
“흠······.”
귀비와 고종에 관한 평가는 이쯤에서 하고.
나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 이근상을 바라보았다.
이자가 여기에 왜 왔는지는 대충 머릿속에 그려진다.
‘국제 정세 강의나 하려고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닐 테니.’
중요한 것은 그다음.
그래서 무슨 보따리를 들고 왔을까?
나는 그동안 세웠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은근슬쩍 돈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한 푼도 없는 비렁뱅일세. 이런 내가 홀로 미국에 도착해 워싱턴의 고위층과 대담을 나눈다? 자네 같으면 그자들이 과연 내 말에 듣겠는가? 일단 진짜 왕자인지 의심부터 할 것일세.”
내가 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이근상이 반응했다.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실 것이라는 건 귀비 마마께서도 예상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이것을 전하께 전하라 하셨나이다.”
건네받은 서류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수표와 채권으로 가득했다.
‘비자금과 함께 덤을 좀 받아 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횡재하는군.’
알뜰살뜰하게도 모아 두었다.
대략 오십만 달러 정도 되어 보이는 듯했다.
‘이거 먹고 미국에서 돌아오지 말라는 뜻일까?’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다다음 후계 위는 가까운 시일 내에 결정될 터.
대략 2년 정도만 내가 외방을 떠돈다면, 귀비는 평생의 소원을 달성할 수 있을 테다.
‘오십만 달러······. 이게, 후계자 위의 값어치란 말이지.’
귀비로서는 어떻게든 나의 입국을 막고 싶겠지.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데, 다른 변수가 생기는 것을 막고 싶을 테니까.
‘원 역사에서도 이리 돈을 제안했을까?’
의왕의 성격으로 보면, 역효과만 났을 텐데.
하지만 난 이강이 아니었다.
나는 미국으로 되돌아갈 생각이었다.
초기 정착 자금으로 쓸 돈을 이리도 많이 지원해 준다면, 그야말로 땡큐지.
‘하지만······.’
속내를 숨겨야 했다.
본디 협상이란 밀고 당기기를 해야 그 값어치를 제대로 받으니까.
“겨우 이걸 가지고 미국에서 활동하라니······ 궁 안에 오래 계시더니 현실 감각이 좀 둔해지셨구먼.”
자칫 상대의 화를 크게 돋울 수도 있으나, 지금은 강하게 나가야 할 때.
헐버트와의 비밀 계획이 들통나지 않은 상황이니, 지금의 갑은 나다.
그것도 슈퍼 갑.
“돌아가서 전하게. 이걸로는 턱도 없네.”
“저, 전하.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이 정도면······.”
안다, 알아.
궁내청이 1년에 쓸 예산 정도 되지 않던가?
하지만 무릇 첫 제안을 할 때는 자신의 모든 힘을 드러내지 않는다.
귀비 역시도 그럴 것이다.
국내에서 사용할 뒷주머니를 한가득 숨기고 있겠지.
“지난 6년간 미국에서 어설프게만 생활했었네. 그 결과가 어떤가? 이 꼴이지 않은가? 더는 좌절하고 싶지 않네. 그러니 이만 돌아가게나.”
귀비는 얼마나 제 아들을 사랑할까?
더불어 대한제국의 차차기 후계 위는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닐까?
나는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녀의 모성애가 얼마나 크고 반짝일지를.
< 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