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70)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70화(70/392)
< 생과 사 (2) >
똑똑-
내가 머무는 방 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
나는 즉시 밖에 있는 손님을 향해 외쳤다.
“누구인가?”
“이 왕자님. 저, 지아니니 은행장입니다.”
나는 재빨리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차 한잔 함께하시겠습니까? 저녁 식사 후에 커피를 안 마셨더니 입이 너무 심심해서 말입니다.”
“들어오게.”
그러고 보니, 모건의 집에 온 이후로 지아니니와는 처음 이야기를 나누네.
바쁘게 살았기 때문이겠지.
뉴욕의 명사들이 날 가만히 두지 않았으니까.
다들 나와 식사 한번 하려고, 거의 애원하다시피 매달리고 있지 않던가?
“커피 두 잔 부탁하네.”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알겠네.”
나는 문밖에 서 있던 모건의 사람들에게 커피를 주문한 후, 방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잘 지냈는가?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리 정신없이 지내고 있네.”
“그야, 왕자님을 찾는 이들이 수두룩하니까요.”
지아니니는 인기남의 숙명이라며 날 위로했다.
“흠. 이것은······.”
지아니니는 탁자 위에 있는 서류를 스리슬쩍 곁눈질하며 무엇인지 궁금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
커피를 마시자는 건 핑계고.
이게 궁금해서 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아니니에게 막 작성된 서류를 건넸다.
“이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궁금한가 보이.”
“좀 전에 연방정부 직원이 왕자님께 서류를 건넸던데······ 저게 바로 그 서류인가 봅니다.”
“그렇다네. 한번 읽어 보겠는가?”
“홀리 몰리······ 감사합니다.”
지아니니는 마치 황금을 만지는 것처럼, 서류를 이리저리 조심스레 훑어보며 부럽다는 눈빛을 쏘아 댔다.
“연방정부의 보증서라니······ 이 말은 즉, 왕자님께서 아메리칸 신탁을 인수했다는 뜻이겠군요.”
“그렇다네.”
이 정도면 나로서도 만족할 만한 거래였으니까.
아메리칸 신탁은 니커보커와 함께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신탁이었으니, 300만 달러면 헐값이나 다름없었다.
‘이름만 해도 좀 있어 보이잖아.’
한 국가의 명칭이 박혀 있는 회사들은 보통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미국은 다양하게 불리지만, 그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호칭은 바로 ‘아메리카’다.
그다음은 ‘유나이티드 스테이트’고.
“대단하십니다.”
“대단하기는 뭘······.”
지아니니가 눈알을 굴리며 내게 향후 계획을 물었다.
“아메리칸 신탁 말고도 다른 금융회사 또한 인수할 예정이십니까?”
“증권회사나 투자은행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나? 상업은행은 자네에게 필요하지만, 이 둘은 내게 도움이 될 테니 말일세.”
“그렇지요.”
“같은 조건으로 연방정부가 보증을 서 준다면, 아마도 여기 있는 목록 중 두세 개 정도는 인수할 수 있겠지.”
보증서와 별도로, 모건이 건네준 목록을 지아니니에게 건넸다.
부실 회사 중 그나마 쓸모 있어 보이는 곳을 추린 목록이었는데, 지아니니는 이를 자세히 읽어 보다가 붉은색으로 표시해 둔 부분을 가리키며 물었다.
“왕자님. 여기 밑줄 쳐져 있는 것들은 뭡니까?”
“아, 그거······.”
나는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며 입맛을 다셨다.
“그새 록펠러가 알짜배기 증권회사 하나를 인수했네. 비교적 여유가 있는 다른 이들도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지.”
“아······.”
월가 놈들은 참으로 여우 같은 놈들이다.
두더지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나 싶더니, 내가 연방정부 놈들을 꾀어내서 보증을 받아 내자마자 즉시 움직인다.
마치, 이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럼 모건 씨 역시 여기 있는 목록 중 몇 개를 구제하겠군요?”
지아니니가 부실 금융기관의 목록을 보며 내게 재차 물었다.
“그렇겠지? 내게 두 회사 정도를 인수할 거라고 이야기했으니까.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면 그리 행동할 것이네.”
지아니니가 분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FXXX. 저 또한 나름대로 싸게 은행들을 사들이고 있다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역시······ 왕자님과 월가의 거물들을 따라갈 수는 없나 봅니다.”
나는 지아니니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를 격려했다.
“그런 말 하지 말게. 자네 역시 괜찮은 가격에 중서부 지역은행들을 인수하지 않았는가?”
“그렇긴 하지만······ 왕자님은 이 큰 회사들을 거의 공짜로 사들이지 않으셨습니까?”
씁쓸해하는 지아니니를 바라보며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자네도 요새 많이 바쁜 것 같은데 말이야. 새 친구들을 사귀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것 같던데.”
지아니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시간이 남아도는 상황인데 인맥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미국을 주름잡는 금융인들이 가득합니다. 이번 기회에 그들과 안면을 터놓아야지요.”
나와 친하다는 소리에 다들 지아니니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지아니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작은 상업은행들을 중심으로 새 친구들을 사귀고 있었다.
“그래서, 새 친구는 많이 사귀었는가?”
“예. 덕분에 그동안 몰랐던 재미난 풍문들을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정리 좀 해 놓았는데 말입니다. 이 왕자님께서도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까?”
“오······.”
지아니니의 능력을 간과하고 있었네.
그는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생활 밀착형 금융전문가였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담보만 취급하던 관행을 깨고, 개인의 성실도나 사업의 미래성 등 신용을 담보로 사세를 확장하지 않았던가?
뉴욕 명사들의 정보들 또한 이런 식으로 조사하고 있나 보군.
나는 지아니니가 준 문서를 살펴본 뒤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이런 건 어디서 알아낸 것이지? 간간이 약점들도 보이는데 말이야.”
지아니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만 움직이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제 동생들 또한 모건의 집에서 열심히 밥값을 하고 있습니다.”
지아니니가 그의 패거리들을 언급했다.
“다들 저만큼 수완이 좋습니다. 아우들이 운전기사부터 집사들까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소문을 모으는 중입니다.”
하긴.
주변인들 공략만큼 좋은 뒷조사는 없지.
그들은 그들이 모시는 주인과 함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보낸다.
다시 말해, 볼 것 못 볼 것을 함께 공유하는 사이란 말.
이들을 통한다면, 지아니니의 말처럼 재미난 소문들을 여럿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다른 정보도 알아낼 수 있는가?”
“어떤 정보 말입니까?”
모건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
반대로 사이가 좋은 사람.
이 둘을 추려 달라고 지아니니에게 부탁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어째서지?”
“일단 여기 모인 다수는 모건과 척을 졌으니까요. 이번 사태에 다들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습니다. 모건의 성격,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일단 만만하면 윽박부터 지릅니다.”
모건 주니어가 어디서 계급론을 배웠나 궁금했는데.
제 아비한테서 물려받았구나.
“우호적인 인물만 추리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오! 그렇겠네.
만약 지아니니가 이를 추려 낼 수 있다면, 내게 큰 도움이 되겠는데?
‘보험 하나 정도는 마련해 두는 것이 좋지.’
모건은 능구렁이다.
보증 좀 서 달라고 부탁했는데, 정부에 떠넘기는 저놈의 행동을 보아라.
‘화장실 들어갔을 때 다르고, 나왔을 때 다들 수도 있으니까.’
월가는 정글이다.
약해 보이면 뒤에서 칼을 꽂고, 조금 강해진다 싶으면 단체로 우르르 올려와 풋내기들의 싹을 짓밟기도 한다.
지금이야 내가 필요하니까 가만히 두겠으나, 언제 어떻게 본색을 드러낼지 모른다.
‘뭐, 그래도 이민법은 쉬이 처리되겠지.’
현재의 위기는 중앙은행이 부재한 탓이 컸다.
즉, 중앙은행을 만들지 않는다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내 뒤통수를 치려면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했다.
‘그렇기에 날 적이 아닌 동지로 삼으려는 것이지.’
동부에 있는 금융기관들에 내 발을 담그게 하려는 목적이 뭐겠는가?
한배를 타게 만들어 나 또한 배신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겠지.
“아······ 시간이 벌써 이리되었군.”
나는 허리에 채워진 회중시계를 바라보며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아니니가 그런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선약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럼. 이래 봬도 꽤 바쁜 사람이네.”
나는 지아니니와 함께 객실을 나서며 그에게 잠시 작별 인사를 했다.
“이따 보세나.”
“예. 이 왕자님.”
* * *
“왕자님. 어서 오시지요.”
코텔류 재무장관이 깍듯하게 내게 인사를 했다.
“늦은 밤, 이 자리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닐세. 그대가 날 필요로 하니, 늦은 시간이라도 당연히 만나야지.”
코텔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작게 속삭였다.
“아까 드렸던 보증서는 확인하셨습니까?”
“이미 끝냈지. 그나저나 놀랐네. 내 편의를 이리 빨리 들어줄 줄은 몰랐으니까.”
“아닙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를 하셨는데요. 저는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코텔류가 모건이 있는 회의실을 노려보며 답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지요.”
“어째서?”
“여우 같은 월가 놈들이 왕자님을 방패 삼아 뒤에서 제 잇속을 챙기고 있지 않습니까?”
코텔류는 루스벨트 파 연방 관료다.
시어도어의 사람들은 보통 월가의 독점자본주의를 혐오했다.
그 때문에 나의 요구도 월가들의 뒷수작처럼 보여지고 있다.
“왕자님께선 제 예상보다 더 대단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오호.
이자 역시 나에 관한 정보를 조사했구먼.
“아닐세.”
“겸양이 심하시군요. 지난 2년 동안 재산을 어떻게 불리셨는지, 그 숨은 이야기를 전부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투자의 귀재십니다.”
이 양반이
왜 이리 칭찬을 쏟아 내는 거지.
분명.
무슨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말입니다만······.”
역시······.
내 예상은 정확하군.
코텔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내게 도움을 청했다.
“왕자님께서는 작금의 사태가 어찌 돌아가리라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이 혼란이 언제쯤 끝날 것 같냐는 뜻입니다. 왕자님의 지혜를 빌려주십시오.”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그건, 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은가?”
나의 예상에 코텔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모건이 결단을 내려야 끝난다는 말입니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러자 코텔류는 무언의 동의라고 생각한 듯 말을 이었다.
“그는 원하는 것을 가질 때까지는 이 사태를 해결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자님의 생각대로 말입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아는 척하며 입을 다물고 있으면 십중팔구는 술술 풀린다.
상대가 날 높이 평가하는 상황이니, 무슨 행동을 해도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전에 모건이 이리 말하더군요. 워싱턴에서 제게 부여한 2,500만 달러의 현금 권한을 자신에게 위임하라고 말입니다.”
역시, 이번에도 또 내 예상대로네.
‘모건은 진짜······.’
며칠 안 되긴 했지만, 나는 모건과 대화를 나누며 그의 성격을 대충 파악했다.
그는 통제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미친 통제‘광’이다.
‘자신 위주로 이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고 믿었으니까. 연방정부의 자금 역시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싶겠지.’
나는 고민하는 척하며 코텔류를 떠보았다.
“그래서 자네 생각은 무엇인가?”
“뭐, 제가 힘이 있습니까? 연방정부의 대책이 시장에서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 늦기 전에, 모건에게 이를 위임할 생각입니다.”
“그렇군.”
“왕자님이 보시기에 모건은 이에 만족할 것 같습니까?”
“글쎄?”
나는 이번에도 침묵했다.
이에 코텔류가 이를 또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그 이상을 원할 것입니다.”
“그 이상이라면······.”
“중앙은행의 설립이지요.”
“중앙은행?”
“예.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하니까요. 그는 민간 주도로 미국에 중앙은행을 설립하고자 시도할 것입니다.”
민간주도라고 포장되어 있지만, 모건 위주로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긴, 이 사태는 다 중앙은행의 부재 때문이긴 하지.”
“하! 루스벨트가 뭐라 쪼아댈지 벌써 골이 아프군요.”
루스벨트는 월가의 반독점에 크나큰 반감을 품고 있다.
그런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모건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가운데 있는 코텔류만 죽을 맛이겠네.
“힘들겠구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끔 코텔류의 말에 맞장구를 쳐 줬다.
또 어떤 정보를 내게 내놓을까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 * *
“그러니까 코텔류 재무장관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겁니까?”
“그렇다네.”
다음 날 아침.
조금 야비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난 저녁에 코텔류와 나눴던 이야기를 바로 모건에게 알렸다.
뉴욕에서 가장 처음 만났던 언론재벌 허스트의 박쥐 전법을 참고한 것이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 양반 그리 보지 않았는데, 은근히 약은 모습을 보이는군요.”
모건이 코텔류의 행동을 분석하며 못마땅하단 표정을 지어 댔다.
“아마도 코텔류 그자, 왕자님과 친분을 쌓고 싶었나 봅니다.”
“어째서지?”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 왕자님을 워싱턴의 편에 서게 만들기 위해서지요. 워싱턴은 현재 급합니다. 그들 곁에 누가 있습니까?”
모건이 콧방귀를 뀌며 팔짱을 꼈다.
“코텔류는 헛물만 켰군요.”
모건이 숨기고 있던 한 사실 또한 내게 밝혔다.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코텔류가 제게 전권을 위임하겠다고 말했는데 말입니다.”
“그래?”
“예. 2,500만 달러를 제게 맡겼습니다. 아! 왕자님이 인수하신 아메리칸 신탁 말입니다. 그곳에 연방정부의 예치금을 두둑이 배정하겠습니다. 오늘 제게 선물을 주셨으니 저 또한 이를 보답해야겠지 않습니까?”
모건은 나랏돈이 마치 제 돈인 양 인심 쓰듯 선언하곤 으스댔다.
“내일 전체 회의가 있기에, 이따가 따로 귀빈들 몇 분만 모아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혹시 시간 있으십니까?”
일요일이어서 오늘은 모든 장이 멈춰 있다.
이를 활용해 모건이 몇몇 지인들과 상의를 한 생각인가 보다.
“나야 좋지.”
나는 가슴을 툭툭 치며 모건의 계획에 찬성했다.
* * *
“이 왕자님. 안녕하십니까?”
모건 옆에 있던 록펠러가 내게 악수를 청했다.
“이전에 한 번 악수하긴 했지만, 이리 따로 이야기해 보는 것은 처음이군.”
“그렇네요. 오늘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서로 알아가 봅시다.”
“이 왕자님 여기는 제임스 힐입니다. 철도왕이라고 불리지요.”
제임스 힐.
개인 재산이 3,000만 달러쯤 되는 거부로 나 또한 쉬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모건은 제임스 힐 옆에 있던 노신사와 눈인사를 하며 아주 정중하게 그를 소개해 주었다.
“아, 이분은 영국에서 오신 아주 귀하신 분이십니다.”
노신사 역시 내게 손을 쭉 뻗으며 인사를 했다.
“반갑소. 나는 네이던 로스차일드 남작이라고 하오.”
< 생과 사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