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78)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78화(78/392)
< 등대 (2) >
유명인사가 되면 알게 모르게 삶이 편해진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에 따른 그림자 또한 생기는 법.
정치인으로서 급이 올라가게 되면, 불편한 점 또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지층들의 눈치를 엄청나게 봐야 한다는 거다.
‘아휴, 골이야······.’
3만여 명의 교민들과 5만여 명의 신규 이주민들.
그리고 미국에 잠시 방문 온 여행객들까지.
이들 중 누구를 가장 먼저 만나야 할지를 두고 나는 계속 고민 중이었다.
‘신중히 처리해야 해.’
교민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만을 주시하고 있으니까.
생각 없이 아무 사람이나 만났다간 의도치 않았는데도 이상한 말이 돌 수 있었다.
일반인이 보면 별걸 다 걱정한다고 혀를 찰 일이지만.
돈과 권력이 많은 정·재계 사람들은 의외로 사소한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나쁜 버릇이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이런 오해를 최소로 하기 위해서라도 만날 사람의 목록을 일단 쭉 적기 시작했다.
– 전 간도 관리사 이범윤
– 신민회 구성원들
– 미주에 이민 온 조선의 부호들.
– 교민사회 내 종교계 지도자
(한인교회, 한인 성당, 한인 천도교 사원 관계자들)
– 한미대학교(가칭) 설립 관련 인사
– 멕시코에 세울 군사학교 및 민간군사기업(PMC) 설립 관련 인사들
– 독일에서 온 교수진들
– 포드와 GM 등 자동차기업 사장들
– 독일에서 합류한 디젤과 하버.
– 라이트&리 사의 오빌 라이트
– 1기, 2기, 3기(예정) 합성협회 장학생들.
– 코리안 밸리 관계자.
– 캘리포니아 내 제분 & 유통 종사자들······
죄다 적고 보니 엄청나게 많네.
중량감이 떨어지는 곁가지들을 죄다 쳐 냈는데도 이 정도다.
‘여기서 또 한 번 걸러 내야 해.’
나는 목록들을 보며, 1순위/2순위/3순위로 급을 나누었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일수록 우선순위를 두었다.
※ 1순위
– 전 간도 관리사 이범윤
– 신민회 구성원들
– 미주에 이민 온 조선의 부호들.
반나절 동안 머리를 싸매니, 1순위를 셋으로 추릴 수 있게 되었다.
남은 것은 이들 중 누구를 먼저 상대해야 하냐는 것이겠지.
‘개인적으로는 대한제국에서 온 부호들부터 만나 보고 싶은데······.’
신민회나 이범윤과 만나면.
뭐 뻔한 말을 하겠지.
활동비를 지원해 달라고 내게 청원을 넣지 않겠나?
반면, 부호들을 만나면 일단 내 돈은 나가지는 않을 거다.
오히려 미주에 있는 교민들을 함께 지원하며 나의 고생을 덜어 주는 형태로 이야기가 진행되겠지.
그래서 재미교포 2세이자 로비스트 박병준으로서는, 개인적으로 마지막이 제일 끌렸다.
‘하지만 난 이강이다. 더는 박병준이 아니지.’
이강은 조선의 왕자다.
그러니, 돈보다는 조국의 독립에 좀 더 관심을 보여야 했다.
이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절대로 변치 않을 내 숙명과도 같았다.
‘어떻게 얻었는데. 절대로 교민들의 신망을 잃어선 안 돼.’
그리된다면, 내가 가진 강력한 패 중 하나를 버리는 셈이 되니까.
그런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해선 안 되지.
나는 부호들을 적어 두었던 곳에 엑스 표를 하며 나머지 두 항목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제 둘만 남는데 말이야. 누구를 고를까?’
쉬이 선택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게 뭐 고민할 거리인가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 선택은 내가 속한 합성협회의 노선을 결정하는 전초전과 비슷했으니까.
‘무장 항일 투쟁과 외교 노선.’
이범윤을 먼저 만난다는 것은 무력항쟁에 힘을 실어 주겠다는 뜻이겠고.
신민회와 만나는 건, 조선 내부에서 자생력을 키우며 영미권 외교활동에 집중하겠다는 뜻이겠지.
‘둘 다 버리고 싶지 않은데.’
응?
생각해 보니, 둘 중 하나를 꼭 선택할 이유는 없잖아?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디어를 냈다.
“우사(김규식의 호).”
“예, 형님. 부르셨습니까?”
“여기 목록에 있는 자들을 모두 우리 집으로 초대하게나.”
김규식이 목록에 적혀 있는 손님들의 이름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기 적힌 일곱 분 전부를 말입니까?”
“그래.”
김규식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내 표정을 보며, 내 생각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 * *
“의왕 전하. 그간 안녕하셨나이까?”
몸이 제법 날렵한 사내가 내게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소인은 간도 관리사인 이범윤이라고 합니다.”
“흠흠······.”
도산 안창호가 헛기침했다.
자신의 옆에 서 있던 무리를 내게 소개하기 위함이다.
안창호는 그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내부터 한 사람씩 가리키며 신민회 회원들의 이름을 내게 알렸다.
“전하. 이 자의 이름은 신채호입니다.”
“반갑군.”
“미국에 온 지 무려 반년 만에 의왕 전하를 뵙는 것 같습니다. 먼저 인사부터 받으시옵소서.”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었다.
조선식으로 큰절을 하는 이도 있고, 일부는 서양식으로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 내게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이 넓디넓은 태평양을 건너왔는가?”
“전하.”
“말하게.”
먼저 입을 떼는 것이 중요한 법인데.
이범윤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신민회 회원들이 먼저 용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전하께 우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나이다.”
“감사 인사?”
“예. 전하께서 막 설립된 신민회에 금일봉을 하사하지 않으셨나이까?”
“아아, 그거. 얼마 안 되는데 고마워할 필요까지야. 조선의 신민들을 위해 그대들이 학교를 짓는다는데, 어찌 왕실의 일원인 내가 모른 척할 수 있단 말인가?”
신민회 회원들은 멍한 표정을 지어 댔다.
‘그거 얼마 안 되는데’라는 말에 놀란 이도 있고.
‘학교를 짓는데 당연히 왕실이 나서야지’ 하는 데 감동한 사람도 몇몇 보였다.
“그럼······ 활동비를 추가로 지원해 주실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정신 차린 신채호가 대표로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렇네. 교육 사업만큼은 아낌없이 투자할 생각이니까. 왜? 자금이 많이 모자라는가?”
“아닙니다. 지난번에 전하께서 하사하신 돈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차후를 생각하면 활동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아직 조선에 교육기관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니까요.”
나는 신채호 말고 다른 사람들과 시선을 교환하며 물었다.
“급한 거였으면 합성협회에 한번 문의 해 보지 그랬나. 내가 올 때까지 마냥 이곳에서 기다리지 말고.”
양기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 하신 말씀대로, 저희 역시 합성협회에 활동비 지원을 문의했었습니다. 다만, 전하의 허락 없이는 그 큰 금액을 지원할 수 없다고 협회에서 거절하였습니다.”
아······.
그렇겠네.
전체 기부금의 9할 이상이 내 돈이니까.
내 허락 없이 큰돈을 마구 쓸 수 없는 구조지.
그래서 이범윤 또한 연해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계속 있었구나.
“따로 미국에 정착한 교민들에게 지원을 요청하긴 했습니다만······ 자신들은 합성협회를 통해 조국을 돕고 있다며 다들 난색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리 전하만을 기다린 것입니다.”
떠나기 전, 정확히는 1기 합성협회 장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기부금 체계를 일원화했다.
이는 내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자, 교민들의 돈이 엄한 곳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단속하기 위함이었다.
‘먼저 정착한 이들은 다들 내 도움을 받고 있으니까. 내 말을 철석같이 따르고 있지.’
물론 새로 이민 온 이들한테는 내 영향력이 아직 적은 상태다.
하지만 기부금을 하나로 모아 일원화하라는 나의 지시를 함부로 어길 수는 없었다.
미주에서 일단 살아남으려면 내 눈치를 보지 않고는 불가능하니까.
적어도 정착 초기에는 나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알겠네. 하루빨리 합성협회 총회를 열어 관련 사항을 논의하도록 하겠네.”
나는 고개를 돌려 이범윤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딱 봐도 굉장히 불편해 보였다.
‘꼬장꼬장했던 우리 삼촌을 보는 것 같네.’
군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정통 유교 신봉자이이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융통성이 없어 보인다.
상관의 말을 진짜 잘 따를 것 같은 스타일이다.
“자네 역시도 비슷한 이유로 이 자리에 있겠지?”
“예?”
갑작스러운 물음에 이범윤이 당황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소인 또한 연해주에 있는 조선 의병들의 활동비를 지원받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래그래. 알겠네. 내 얼마나 쓸 수 있을지 알아보겠네.”
“감사합니다.”
분위기가 제법 화기애애해졌다.
그들의 목적이 반쯤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얼굴색을 바꾸며 뒤에 조건을 붙였다.
“그대들에게 한 가지 먼저 말해 주고 싶은 게 있네. 일정 금액 이상을 지원받게 된다면, 추가 조건이 따라붙을 걸세.”
“조건이라면······.”
“어떤 조건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범윤과 신민회 회원들 모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활동비를 펑펑 퍼 준다고 생각했나 보네.
“자금을 어떻게 쓰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합성협회 측에서 감사 인사가 딸려 나갈 것이네.”
“예?”
“더불어 활동비를 어디다 썼는지도 분기마다 보고해야 하네.”
“······.”
“······.”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그러다가 신민회 구성원 중 하나였던 이동휘가 내게 물었다.
“그렇다는 것은 합성협회 산하단체가 되라는 뜻입니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 비약하지 말게. 나는 그저 나와 합성협회의 지원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일세.”
“그게 그 말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리된다면 자칫, 우리 신민회는 의왕 전하의 명을 수행하는 어용단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지, 다르지.”
나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윤강 선생.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네. 의병 활동비는 몰라도 신민회 지원금은 합성협회를 통해 나가게 될 것이네. 그런데 어찌 합성협회 감사를 두고 내 말을 따라야 하느냐고 내 뜻을 왜곡하는가?”
“전하께서는 합성협회의 협회장이시지 않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점은 동의했다.
“그래. 현재는 협회장이지. 다만, 조만간 협회장 자리가 바뀔 수도 있네. 지금까지는 임시 협회장이었고, 선거를 통해 재신임 여부를 물을 것이니까.”
“선거라 하셨습니까?”
“그래. 선거······.”
요즘 들어 대한제국 계몽주의 지식인들이 그리도 좋아한다는 민주정의 ‘선거’ 말이다.
“선거를 통해 협회장이 정해지면, 그자가 협회를 관리하게 될 것일세. 내가 연임할 수도 있고 다른 이가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지.”
진짜로, 마냥 활동비만 지원받으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겠지?
아무런 견제 장치도 없이 말이야?
‘소액은 괜찮아도, 금액이 커지면 말이 달라지지.’
정 자율성을 가지고 일하고 싶다면 혼자만의 힘으로 그 길을 개척하든가.
아니면, 회계를 투명하게 하든가.
‘내가 너무 현대인 박병준처럼 생각했나?’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나 역시 옳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는 성격이었기에 내 주장을 고수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는 이범윤을 바라보며 물었다.
“소인은 한양 정부의 소환을 거부할 때부터 이미 마음먹었습니다. 대한제국 신민들의 해방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것이라고요.”
연해주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의병들의 실상 역시 내게 말해 줬다.
동정심을 사기 위함인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려는지 그 의도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자는 자신의 자존심보다는 아랫사람들을 챙기는 지휘관인 것 같다.
“전하께서도 저와 생각이 같으신 것 같으니 소인은 전하의 밑에서 전하와 함께 일본군에 투쟁하겠습니다.”
나는 이범윤을 보며 계속 물었다.
“다른 궁금한 사항은 없는가?”
“당장은 저는 없습니다. 다만, 조만간 합성협회 회원들과 대담을 나누고 싶습니다.”
“대담?”
“예. 어떤 식으로 일본과 싸울 것인지 알고 싶으니까요. 저 또한 저만의 전략이 있으나 활동비를 지원해 주시는 합성협회의 의견도 한번 경청하고 싶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군.
나는 신민회 구성원들을 보며 물었다.
“그대들은?”
이동휘와 양기탁은 살짝 나를 경계하고 있고.
신채호와 안창호는 그런 둘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단체 내에서도 노선이 다른 것 같다.
정확히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 그 차이겠지.
“전하께선 어떤 꿈을 꾸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꿈이라?”
양기탁에게 물음에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구체적으로 물어보게.”
“전하께서는 이 나라가 민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군주제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신민회 회원들을 바라보았다.
“내 생각이 그리도 알고 싶은가?”
“예. 그렇사옵니다.”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려는 모양이군.
나는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다가 정답을 찾았다.
“참으로 멍청한 질문을 하는군.”
“예?”
“나는 항상 생각해 왔네. 한 나라의 주권은 그 나라의 국민 손에 달려 있다고 말이야.”
“그 말은······.”
설마, 뒤의 말에다가 ‘민주정’이냐고 묻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재빨리 양기탁의 말을 잘랐다.
“그 나라 국민이 민주정을 원하면 민주정으로 가야 하고, 그 나라 국민이 군주제를 원한다면 군주제를 유지해야겠지. 어찌 소수의 권력자가 밀실에서 야합하여 국민의 결정 이전에 이를 먼저 정해 두려고 하는 것인가?”
“그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실망이 가득한 티를 팍팍 냈다.
“자네들, 깨어 있는 지식인들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아직도 구태에 갇혀 있구먼. 20여 년 전, 갑신정변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군.”
“전하!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윤강 선생.”
“······.”
안창호가 안절부절못하며 양기탁을 만류했다.
양기탁은 이에 입을 꾹 다물었다.
어째, 나보다 안창호의 눈치를 더 보는 듯하다.
그런 양기탁을 바라보며 내가 쐐기를 날렸다.
“나는 자나 깨나 한 생각만 하고 있네. 여기 교민들, 그리고 조선에 사는 신민까지. 어찌하면 모두가 행복하게 먹고살 수 있을까, 이를 두고 항상 고민하고 있지.”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은 일어날 때니까.
“자네들도 혹시 나와 같다면, 그래서 지금 내가 오해하고 있다면······ 다음번 대화에서는 좀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
< 등대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