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79)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79화(79/392)
< 등대 (3) >
신민회 가입원 다수는 서북 지역에 사는 기독교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지도층들은 평회원들과는 다르게 출신과 성분이 좀 더 다양했다.
대를 이어 유교를 최고의 덕목으로 배웠던, 마지막 과거 급제자부터.
일제의 군대 해산 명령으로 백수가 된 옛 조선군 포병장교.
한때, 민족종교를 믿었다가 그 믿음을 깔끔하게 접은 신문사 주필까지.
종교, 신분, 직업, 출신지, 나이.
모두 다 달랐다.
“오랜만입니다.”
“의왕 전하와 대화를 나눈 지, 거의 사흘만이군요.”
같은 단체 출신인데도 입고 있던 복장과 행색마저 제각각이다.
진짜로.
‘국민을 계몽하겠다’라는 신념 하나 말고는 공통점이 없어 보였다.
“안색이 다들 별로십니다.”
“그러게······ 말들 좀 하십시오.”
“어째 지난번 의왕 전하를 뵙고 나서부터 벙어리처럼 입만 굳게 다물고 계십니까?”
신민회의 행동강령인 통용장정을 정할 때, 그때가 제일 불협화음이 많이 나던 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안창호는 그 생각을 바꿔먹었다.
지금 분위기가 그때보다 훨씬 더 무거웠기 때문이다.
‘자칫, 신민회가 해체될 수도 있겠어.’
그의 지도력 하나로 지난번 갈등을 간신히 봉합했는데 말이다.
신(新)정부의 최종 형태 하나를 두고 또다시 분열하는 중이다.
‘결국 미봉책에 불과했군.’
민주정이든, 입헌군주정이든.
우리 주권만 회복하면 되는데.
정부 형태가 뭐가 중요하다고 다들 이러는지······.
안창호는 속으로 이리 생각하며 양기탁과 시선을 교환했다.
“도산(안창호) 선생.”
“예, 말씀하시지요.”
양기탁이 안창호를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지난번에 전하께서 말씀하셨던 것, 혹시 기억하십니까?”
“한 나라의 주권은 그 나라의 국민 손에 달려 있다는 명문을 언급하시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신민회 지도층들은 이강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이강의 논리정연한 답변.
그리고 압도적인 카리스마 때문에 잠시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지만.
그들은 이내 현재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대화를 재개했다.
“조선 신민이 민주정을 원하면 민주정으로 갈 것이고, 군주제를 원한다면 군주제를 유지하겠다고 전하께서 말씀하셨던가요?”
“예. 그리 말씀하셨지요.”
“도산 선생. 국민이 절대왕권을 원한다면, 전하께서는 절대왕정을 부활시킬 수 있겠습니다? 달리 해석한다면 말입니다.”
“······그리 들리셨습니까?”
“예. 전 그리 들렸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저도요.”
민주정을 지지하는 세력은 살짝 뜸을 들인 후,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전하께서는 참으로 무서운 분이십니다. 대화를 나누어 보셨으니, 제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다들 아실 것입니다.”
이강을 향한 그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다.
원래부터 민주정을 지지했던 구성원들은 이강을 두렵게 여겼다.
마치 사이비 교주를 만난 것처럼, 미주의 교민들이 이강만을 바라보며 그의 명령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강 선생. 너무 비약하여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지난번 대화에서도 전하께서는 자신의 주장을 곡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안창호의 입헌 군주제 제안을 지지했던 신채호 같은 이들은 이강을 옹호했다.
이번 대화를 통해 왠지 모르게 그에게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곡해라니요.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우강 선생. 다시 한번 의왕 전하의 말씀을 곱씹어 보세요. 가만히 앉아서 침착하게 상기하면 다 맞는 말이 아닙니까?”
“지금 제가 이해도 못 한다고 보시는 겁니까? 도산 선생,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전하께서는 저는 몰라도, 우강 선생을 비롯한 여러분들은 그때 처음 보셨습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우리에게 전하께서는 십만 달러나 되는 큰 거금을 선뜻 맡기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
“다들 그 자리에 계셔서 기억할 것입니다. 조건을 걸었지만, 아주 호탕하게 약조하시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나라도 십만 달러를 지원하면 그 큰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해할 것입니다. 회계감사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아닙니까?”
신채호까지 거들자, 민주정을 지지하던 파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뒤로 살짝 내뺐다.
“모두 큰일입니다. 벌써 의왕이 건네주겠다는 지원금에 혹한 것입니까?”
“뭐라고요? 어찌 우리를 그런 소인배로 보신 것입니까?”
“설마 이때까지 그런 속마음을 숨기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민주정을 지지하던 이들은 이강에게 호감을 느끼는 이들을 옛 동지들을 바라보며 배신감을 느꼈다.
입헌 군주제를 지지하던 세력 역시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둘 다.
의왕과 대화를 통해 그들이 마음이 변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양측 다 정반대의 행보를 조금씩 보이니, 슬슬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쯧쯧. 다들 너무 순진하십니다. 그러다가······ 목줄이라도 차게 되면 어찌 되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과거 황제께서 어찌 행동하셨는지 잊지 마십시오.”
여기서 황제는 고종을 뜻했다.
현 황제는 일본의 계략에 허수아비 노릇을 하고 있다 생각했기에, 순종의 황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거다.
이는 두 세력 모두 공통된 의견이었다.
“황제의 옛 전력만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치가 떨립니다.”
“그의 손에 죽어 나간 우리들의 동지가 몇이나 됩니까? 우리 또한 차디찬 옥에서 적게는 수일, 길게는 수년을 지냈습니다.”
민주정을 지지하는 세력은 고종의 과거 행위를 하나하나 열거했다.
“나라가 망해도 자신의 권위만을 생각하던 자가 바로 황제입니다. 지난날 즉위 40주년 때, 그때를 잊었습니까?”
대한제국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은 상태에서도 자신의 취임 4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던 자였다.
무려 대한제국의 일 년 치 예산을 그 행사에 쏟아부으면서 말이다.
그러니 개화파가 아니더라도, 글 좀 읽는다고 하는 지식인이라면 다들 왕실을 못 미더워했다.
“그 일만 있습니까? 더한 일도 수두룩합니다······.”
그들의 입에서 황제의 만행이 줄줄 쏟아졌다.
하나같이 주옥같은 악행들이다.
이에 모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절대 이를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들이 조선 왕실을 못 믿게 된 것은 모두 고종 탓이다.
그는 정말이지, 제 조그마한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했으니까.
“그리고 의왕은 황제의 자식입니다.”
특히나 근대에는 연좌제 개념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랬기에, 고종의 자식 역시도 결국에는 고종처럼 될 것이라고 여겼다.
“옆에서 3년이나 모셨던 제가 장담합니다. 전하께서는 다르십니다.”
“저 또한 의왕은 믿지 못해도 도산은 믿기에, 이번만은 전하를 따르려고 합니다.”
“본인 또한 그렇습니다.”
“허허······.”
신채호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의왕 전하를 따르지 않겠다면, 혹 다른 대안이라도 있습니까? 우리가 의지하려고 했던 우당(이회영) 대감마저도 현재 우리를 피하고 계십니다.”
정확히 피하는 것보다는.
이강이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왔기에, 이회영과 그들 형제는 이강을 가장 먼저 만나려고 이를 준비 중이었다.
“다른 교민들을 알아봐야겠지요. 우리에게 도움을 줄 인물들 말입니다.”
“맞습니다. 정 안 되면 조선으로 돌아가 다른 후원자를 찾으면 될 것입니다.”
신채호가 가슴을 두들기며 답답해했다.
“허허······ 쉬운 길이 있는데 이리 돌아가려 하십니까?”
“그 길이 결코 옳은 길이 아니라 생각하니까 그런 것이지요.”
“그럼······ 돌아갈 때 돌아가더라도 이번 총회까지는 보고 갑시다. 전하께서 총회에서 무슨 말씀하실지 들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짜로 협회장을 양보할지, 아니면 그 시늉만 했는지, 안창호는 이를 지켜보자는 견해를 중재안으로 내놓았다.
이에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던 신민회 지도층들이 다시금 하나로 봉합되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죽도 밥도 안 되기에 안창호의 타협안에 힘을 실은 것이었다.
다시 한번 안창호의 협상력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 * *
양기탁을 비롯한 신민회 지도층들은 합성협회 총회에 참관인으로 참석고자 회의장에 발을 내디뎠다.
“어······ 자네들.”
“저 사람들. 전에 본토에서 왔다던 파렴치한 교육자들이 아닌가?”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파, 파렴치한 교육자들이라니?”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에서 교육사업을 한다고, 선생님이라고 칭송했던 교민들이······.
갑자기 그들에게 쌍욕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게······ 저 상놈의 새끼들이 이곳에는 웬일이래.”
“뭐, 뭐요?”
신민회 회원들은 성을 냈지만.
이에 질세라, 교민들 역시 신민회 회원들을 향해 계속 손가락질을 했다.
“지, 지금 우리 보고 그리 말했소?”
“그럼 그쪽들 말고 누가 있소?”
이에 안창호가 물었다.
“해륜 선생. 무슨 연유로 그리 저희를 안 좋게 보시는 것입니까?”
“아유. 도산 선생. 도산 선생이 여기 있었구먼.”
“도산 선생. 저쪽 놈들 나쁜 놈들이라고 여기 샌프란시스코에 쫙 퍼졌소. 물들 수도 있으니 냉큼 이쪽으로 오시오.”
“소문이라니요?”
“나도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사람이오. 전하께 저들이 어떤 요구를 했는지는 알고 있소.”
교민들은 신민회 지도층을 은혜도 모르는 금수들이라 칭하며 계속 욕을 해 댔다.
성을 내지 않고 있는 교민들 역시도 그들을 말없이 노려봤다.
이에 신민회 지도층들은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
“그만들 하십시오. 이 친구들은 일본과 맞서 싸우기 위해 이곳까지 왔습니다.”
“그럼 일본 놈들이랑 싸울 것이지, 어찌 의왕 전하와 싸우는 것이오?”
“맞소. 자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는구먼,”
뉴욕이 모건의 영지라면, 샌프란시스코는 이강의 영지다.
신민회 지도층들은 달라진 교민들의 반응을 보며 이를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여기서 의왕 전하의 도움 안 받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요.”
“맞아. 의왕 전하께서는 우리를 먹여 살리셨다고.”
총회에 참석한 교민 중 이강의 도움을 받지 않은 자는 거의 없다.
“내 2년 전에 이곳으로 왔는데, 그전까지는 사탕수수를 재배하며 백인들 밑에서 뼈 빠지게 고생하였소.”
“나도 이 친구와 함께 넘어왔지. 그때만 생각하면. 으······.”
초기에 하와이로 이민을 왔던 교민들이 자신의 사연을 설명했다.
그들이 서부로 넘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이강이 좋은 조건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소작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기 때문이다.
“전하께서 도움 주시지 않으셨다면… 지금쯤 기존 계약이 만료되었지만, 계속 그 농장에서 착취당하고 있을 거요.”
“옳소. 나 또한 그리되었겠지.”
“보, 본인 역시 의왕 전하께 빚이 있소. 모두들 대지진이 있기 전에, 전하께서 화재보험인가 뭔가를 꼭 들라고 하지 않으셨소?”
“그래. 전하의 조언 덕분에 보험을 들었고, 그 때문에 지금 사는 새집을 지을 수 있는 보험금을 타게 되었지.”
안창호나 박용만처럼 서부에 먼저 터를 잡고 살았던 이들은 어떤가?
이강 덕분에 생전 처음 듣는 보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제집을 잃지 않게 되었다.
“나 또한 구제받았네. 전하의 권유를 무시하고 보험을 들지 않았지만, 이 역시 3년 전에 협동조합을 통해서 구제받지 않았던가?”
“맞아. 나 또한 전하 때문에 죽다 살았네. 사막의 망령이 되지 않은 게 다행이지.”
멕시코에서 살이 벗겨져 가며 에네켄 농사를 지었던 교민들 역시도.
한반도에서 의병들의 가족이라고 탄압받았던 신규 이민자들 역시도, 모두 이강의 도움을 받았다.
다들 각자의 사연을 들어가며, 신민회 지식인들에게 지금까지 이강이 해 온 선행을 알렸다.
“이제 알겠소? 그대들은 몰라도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전하께서 우리들의 아버지이자 대표시오.”
“여기 합성협회라는 명칭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는 아시오? 모두 함께 성공하자는 뜻으로 전하께서 이 단체의 이름을 지어 주셨소. 그런데 그대들은······ 에잇. 은혜도 모르는 짐승들에게 내 말을 말아야지.”
교민들은 체념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곤 그들을 외면했다.
이에 신민회 회원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아닌데······.
우린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아닌데······.
그런 뜻으로 입헌 군주제를 반대했던 것은 아닌데, 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어댔다.
그때였다.
“의왕 전하 납시십니다.”
임시 협회장인 주인공이 나타났다.
이강이 총회로 들어온 것이었다.
* * *
나는 회의장으로 들어온 후, 신민회 구성원들과 함께 앉아 있던 안창호를 쓱 쳐다보았다.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군.’
울상이네.
아이고.
끼인 자의 비애로구먼.
나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총회에 참석한 교민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모두, 이 자리에 와 줘서 고맙네. 한동안 동부에만 머물러서 그런지, 교민회에는 통 신경을 쓰지 못했네. 내가 없지만 잘 돌아간 것 같아서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네.”
나는 연단으로 이동하며, 임시 대표로서 발언권을 행사했다.
“내 이리 총회를 소집한 것은 때가 다가왔기 때문이네. 교민회를 세울 때, 내 임시로 협회장을 맡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임시’라는 말을 강조하자, 교민들이 술렁거렸다.
나는 그런 교민들의 반응을 무시하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하와이에서도 전에 한번 말했었고, 여기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여러 번 말했었네. 교민회의 주인은 내가 아닐세. 바로 여기 앉아 있는 그대들이지.”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신 다음, 교민들에게 선언했다.
“슬슬 임시 대표 말고, 진짜 대표를 뽑아야 할 때가 왔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신민회 지도층들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교민들에게 외쳤다.
“선거의 시간이 왔네. 제1대 합성협회 대표를 다음번 총회에서 뽑도록 하지.”
< 등대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