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82)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82화(82/392)
< IN AND OUT (2) >
“저희 가문은, 미국에 온 다른 교민들처럼 농사지을 땅부터 먼저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이회영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속마음을 밝혔다.
그러자 동생이었던 이시영은 제 형의 뒤를 이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저희는 몰라도, 저희를 따라온 이들에게 먹고살 만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대한제국에선 공식적으로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을 통해 신분제를 철폐했다.
하지만 아직 사회 내에는 그 의식이 뿌리 깊게 잔존해 있었다.
‘꼬리표만 슬쩍 갈아 끼운 셈이지. 사노비들에서 머슴으로.’
이회영 일가를 따라온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회영 일가가 제공하는 잠자리와 급료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이회영이 미국으로 떠나겠다고 선언했으니.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일부는 대한제국에 끝까지 남고자 했겠지만, 다수는 그들의 주인이었던 이씨 일가와 함께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으로 떠나는 것도 어찌 보면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홀로서기 역시 그들로서는 엄청난 도전이었으니까.
‘일부 지식인들은 이를 보며 자주성이 없다고 손가락질하지만, 나는 좀 이해할 수 있다. 평생을 그리 살아 봤는데, 사람이 어찌 그리 쉽게 바뀌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과거 내 행적을 말해 주었다.
“그 마음 이해하네. 나 역시도 이곳에 오자마자 땅부터 알아보러 다녔으니까.”
“저, 전하께서도 그리 행동하셨단 말입니까?”
“그럼. 자네들만큼이나 딸린 식구들이 많았었으니까.”
나는 하와이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더욱이, 하와이에서 경험했던 한 사건 때문에 나는 더더욱 나만의 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네.”
“어째서 그리 생각하셨습니까?”
“사탕수수밭에서 짐승 취급을 받으며 일하던 하와이 교민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까. 하와이를 떠났는데도 그 모습이 내 눈에 계속 아른거렸네.”
“아······.”
“잘못된 계약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네. 계약이 끝나면 저들이 일할 농지를 제공해줘야겠다고. 그게 왕자로서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네.”
대화 사이사이에 이미지메이킹에 도움이 될 만한 일화도 끼워 넣으며, 나는 평판에도 신경을 썼다.
어찌 보면 가식적일 수도 있지만, 내 홍보는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
물론 자연스럽게.
“그래. 자네들은 어디 쪽 땅을 눈여겨보고 있는가?”
“일단은 남가주 쪽이나 묵서가 북쪽 땅 위주로 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음역어를 듣네.
나는 재미교포 출신이자 현대인이었기에, 미국의 지명을 소리 나는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 시대 한인들은 조국에서 썼던 명칭을 종종 사용하곤 했는데.
이회영 일가도 그런 것 같았다.
“남가주와 묵서가라······.”
“막내를 묵서가로 보내어 살 만한 좋은 매물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라 권유했습니다.”
“여기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좋은 땅이 많을 텐데······ 굳이 남쪽 땅을 알아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내게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네. 아, 그래. 그쪽 땅들을 사서 자네들 역시 벼농사를 지을 생각인가?”
“아닙니다. 저희는 밀을 경작할 생각입니다.”
“밀?”
잠시 의문을 표했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으니까.
밀은 우리가 사는 미국의 주 식량원이다.
농사짓기도 쉽고 판매할 곳도 많았기에, 중박 이상은 하는 작물이었다.
‘쌀만큼은 아니지만, 밀은 조선에서도 생소한 작물이 아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수수나 조와 함께 밀을 키우지 않았던가?’
밀 농사야 좋지.
앞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꿀을 빨 산업이 아닌가······.
나는 밝게 웃으며 그들의 다음 행보 또한 예측했다.
“그래. 계획했던 대로 일이 잘 풀리면 제분 산업 쪽으로도 한번 진출해 보게나.”
이회영과 이시영은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내가 생각보다 예지력이 뛰어나자, 놀란 것 같았다.
“그럴 계획이었는데 말입니다. 혹시, 전하께서는 다른 이에게 이를 미리 언질을 받으셨습니까?”
“아닐세. 밀 농사와 제분 산업은 같이 운영할 경우 상승효과가 있는 산업이라서 그런 것이네.”
일명 수직계열화.
내부에서 자신들끼리 가격을 맞출 수 있어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나 또한 밀 농장을 경영할 생각이기에 더 잘 알고 있지. 아직은 아니지만 말이야.”
처음에 새크라멘토 북쪽에 새크라멘토 분지 북쪽 땅을 샀을 때, 미국의 유명 인사들은 그 땅이 황무지라며 나를 만류했다.
그러면서 그 아래에 자리한 남쪽 땅을 내게 권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도 서부 개척을 위해 관개수로 공사를 지원할 것이라며 내게 귀띔해 줬는데, 나는 이를 기억한 후 돈이 남을 때마다 야금야금 이 지방 땅을 매입하라고 지시했다.
‘동부에 한동안 있다가 다시금 서부로 오니, 그 땅이 옥토가 되어 버렸지.’
최근에 사들인 땅은 쌀농사에도 적합하지만, 밀 농사 역시 쉬이 지을 수 있었다.
이 나라는 밀의 수요가 쌀의 수요보다 높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기에, 나도 굳이 벼농사만을 고집할 생각은 없었다.
“아까 자네들에게 이 근방 땅을 왜 안 알아보았냐고 물었지 않았는가? 다 그 때문이네.”
“아······.”
이석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언가 입을 열 듯 말 듯했지만, 계속 내 눈치만을 살폈다.
답답한 마음에 진솔하게 대화하고 싶다고 떠보자, 동생이었던 이시영이 대신 입술을 열었다.
“외람되오나 소인들은 전하께 민폐를 끼칠까 싶어, 전하께서 하시는 사업과 최대한 겹치지 않게 사업 계획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뭐야.
별거 아니었네.
나는 콧방귀를 뀌며 가슴을 툭툭 쳐 댔다.
“에이, 자네들은 어찌 남의 눈치를 그리도 보는가?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아야지.”
“······.”
“······.”
“솔직히 자네들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일정 부분은 나와 사업 영역이 겹칠 것일세. 자네들이 사려는 토지만 해도 그렇네.”
뒤에 걸려 있는 미국 지도를 가리키며, 나는 내 땅이 있는 위치를 두 형제에게 알려 주었다.
“샌프란시스코 근교부터 새크라멘토 분지, 일부 델타 지역, 로스앤젤레스 인근, 그리고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까지. 나는 이곳에 있는 농장들을 조금씩이나마 다 가지고 있네.”
“······.”
“내가 사들인 땅 주위를 피하려면 저어-기 동부나 중부 지역으로 가야 할 것일세. 그러니 내 눈치를 너무 보지 말게나.”
“며, 명심하겠습니다.”
“기억하게나. 나는 독점은 별로 좋아하지 않네. 고인 물은 결국 썩게 되거든.”
나는 나의 기업 경영 신조를 두 형제에게 설파했다.
그동안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두 형제는 물론이고, 교민 사회에 이를 알린다면 좋을 것 같았다.
“자네들 역시 여기 미국에서 대농장을 나와 함께 경영하세나.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업하도록 하지. 아! 아까 제분 산업 쪽에도 관심이 있다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그대들의 가문이 제분 산업을 시작한다면, 내 우리 농사에서 수확한 밀들을 자네 공장에 맡기겠네.”
“정말이십니까?”
“그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닌가?”
유대인들이 어떻게 세력을 불려 왔는데?
자기들끼리 뭉쳐서, 그러니까 서로 힘을 합쳐 끌어주며 부를 쌓았다.
한인 교민들 또한 그리 행동할 수 있겠지.
물론 싹이 노란 놈들은 알아서 잘 피해야겠지만.
“나 또한 그쪽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영 귀찮아서 진출을 머뭇머뭇하고 있었네. 그런데 자네들이 나 대신 제분 쪽에 투자한다면야, 나야 한숨 돌릴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다음 말을 이어 갔다.
“그 대신, 그대들은 내 소유의 창고를 이용해 주게. 샌프란시스코 인근 부두에 아주 거대한 창고가 있네. 내 것인데 말이야. 혹시 임대료가 너무 부담되면 지분 일부를 인수하거나 장기 임대를 맺도록 하지. 내 편의를 봐주겠네.”
“감사합니다. 전하.”
나는 슬쩍 그들을 바라보며 두 형제에게 물었다.
“혹시 다른 쪽에는 관심이 없는가? 예를 들면 제당 쪽이나 목재 벌채 쪽 말이야.”
둘 다 내가 진출하려던 사업들이었지만.
영 손이 많이 가고, 별 흥미도 못 느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나는 이에 두 형제에게 한번 진출해 보라고 권했다.
“제당 쪽은······ 순천에서 온 김씨 일가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합니다.”
“그래?”
아······.
돈 좀 있는 교민들끼리 한번 모여 상의를 했구나.
하긴.
좁은 시장에 여러 경쟁자가 달려드는 것보다는 미리 협의를 통해 각자 한 우물을 파는 게 합리적이긴 하지.
“하와이 쪽에 사탕수수 농장주들과 접촉하고 있던데 말입니다.”
“아, 전에 남미 쪽 사탕수수 농장에 한인 몇몇이 들렸다는 소문이 있던데······.”
“맞습니다. 아마 순천에서 온 김씨 일가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목재 쪽 역시 평양에서 온 몇몇 교민들이 손을 뻗고 있다고 한다.
“저희 가문은 유통 쪽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전하.”
“그래?”
함경도 쪽에서 생산된 질 좋은 동물 가죽들을 들여와서 이곳에서 가공하고 싶다고 그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뭐, 예상은 했었네.”
“어째서 그리 생각하셨습니까?”
“여섯 형제 중 딱 둘만 미국에 있지 않은가? 물론 자네 항렬보다 아래인 이들은 다수가 교육 때문에 미국에 있지만 말이야.”
이회영과 이시영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들.
허허실실, 사람 좋아 보이게 생겼지만.
이래 봬도 익문사의 수장이라고.
주요 교민들의 핵심 정보는 대충 파악해 두고 있단 말이지.
“첫째는 조선에, 둘째는 만주에, 셋째는 연해주에, 막내는 아까 말했듯 멕시코에 있지 않은가?”
“······.”
“······.”
“세계 곳곳에 터를 잡고 있다는 것은 유통을 주력으로 삼을 계획 때문이겠지?”
나는 그들을 칭찬하며 그들의 계획을 높이 샀다.
“시작은 가죽 유통으로 하게나. 자네들이 아는 것처럼 연해주와 만주, 그리고 함경도에서 생산되는 가죽은 그 질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니까.”
이회영은 감동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답했다.
“소문대로 전하께서는 모든 것을 꿰뚫는 통찰안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저희 가문은 다른 사업보다 유통, 그중 해운 쪽에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잘됐네.
유통업은 현지 방문이 필수인데 말이다.
대리인을 보내도 되긴 하지만, 본래 사업을 하면 직접 뛰는 스타일인데.
내가 당장 중국이나 일본에 갈 형편이 못 되거든.
‘가까운 중국에 갔다가 일본 놈들에게 납치라도 당하면, 인생 종 치는 거지.’
나는 밝게 웃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전하.”
“최근에 총기류 제작 공장에, 자네 수하들이 출입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말이야······.”
나는 살짝 뜸을 들이며 그들에게 물었다.
“혹시 자네 가문, 방산 사업에도 관심이 많은가?”
* * *
주춤주춤.
이번에도 역시 이회영과 이시영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내게 무언가를 숨기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자, 끝내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비밀 계획을 내게 밝혔다.
“전하를 속일 수는 없군요. 맞습니다. 저희 가문은 유통 산업과 더불어 방산 쪽에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보아하니······ 농장이나 제분업, 유통업은 그저 가림막이고 방산이 주력인 것 같군.”
딱 봐도 그래 보인다.
미주에 오자마자 방산 관련 공장부터 찾는 것을 보면.
안 봐도 뻔하지.
“······맞습니다.”
“모두 다 대한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겠지?”
“······예.”
“아마도 조선반도에서 활동하는 의병들을 지원하기 위함일 테야.”
“예.”
나를 속이겠다는 것은 체념한 모양인지, 이젠 뜸도 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제법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 형제를 바라보았다.
“자네들의 강렬한 애국심이 내게도 느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참 좋군.”
그래.
이런 자들이 있었기에 현대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만간 간도와 연해주에 군수 물품을 보낼 예정이네.”
“아······.”
“일단은 미국 내에서 이를 사들일 생각이네. 차후에는 자네들이 세운 공장에서 이를 사들이고, 자네들의 해운사를 통해 이를 의병들에게 보낼 생각이네만.”
이회영과 이시영이 바짝 엎드려 내게 부탁했다.
“전하.”
“맡겨만 주시지요.”
나는 두 형제에게 다가가며 양손으로 그들의 손을 하나씩 잡아 한곳에 모았다.
“나 또한 부탁하네.”
잠시.
이회영, 이시영과 함께 조용히 시선을 나누던 나는 다시금 입을 뗐다.
“아······ 돌아가기 전에 한 가지만 조언하고 싶군.”
“말씀하시옵소서.”
“우리의 투쟁은 꽤 길어질지도 모르네. 최소 십 년······.”
만약에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거하게 삽질하며 독일 편에 서게 된다면 그리되겠네.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럴 일은 없어 보이지만.
“더 나아가면 삼십여 년 이상을 일본과 싸워야 할 수도 있네.”
“······.”
“······.”
“자네들 혹시 마라톤이라는 것을 들어 봤는가?”
“소인, 처음 듣는 단어입니다.”
“42km, 그러니까 약 100리에 걸쳐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경기일세.”
나는 이회영과 이시영은 번갈아 바라보며, 이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그들에게 설명했다.
“그런 경기에서, 마치 단거리 선수들이 달리듯 전력으로 질주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모릅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죽네.”
“······.”
“······.”
“혹은 체념하고 끝끝내 포기하게 되겠지.”
죽거나 변절하거나.
물론 일부의 독립운동가들이 살아남아 광복을 지켜보았겠지만.
대다수는 둘 중 하나로 빠지겠지.
“나는 자네들이 그리되지 않았으면 좋겠네. 그러니 너무 한 번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고 무리하지 말게.”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으니까.
그때를 기다렸다가 죽기 살기로 있는 자원을 다 투입해야,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이를 경고하며 이들에게 한 가지를 더 조언했다.
“아······ 대한의 진정한 독립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네들에게 찾아가 돈을 지원해 달라는 이들이 있을 걸세.”
진짜 독립을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있지만, 사람의 탈을 쓴 사기꾼들도 꽤 많이 보였다.
‘나 때문일 수도······.’
청나라에서 온 상인이나 일본인이 조선인으로 위장 혹은 대리인을 세워 독립운동자금을 빼먹으려는 일도 현재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모두 다 내가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앞선 경험을 공유하며, 나는 신중하게 그들의 배경을 살피라 조언했다.
“사람을······ 가장 조심하게나.”
< IN AND OUT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