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84)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84화(84/392)
< R&H 모터스 (2) >
“안녕하십니까, 이 왕자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내 예상이 또 맞아떨어졌다.
지난번에 디젤과 대화하며, 기존에 있던 자동차 회사 중 한 곳 이상이 날 찾으리라 예측했는데 말이다.
봐라.
2월이 되자마자 포드가 샌프란시스코 본가로 와, 내 집 문을 두들기지 않던가?
“오랜만이군. 그래, 그동안 어찌 지냈는가?”
“다들 그렇지만 저와 저희 포드사에도 이번 공황은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어찌 이 고난을 잘 이겨내긴 했습니다.”
그는 특유의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서류 가방에서 종이 뭉텅이를 하나 꺼냈다.
“이 왕자님. 지난번에 제게 권하셨던 주식 인수 제안 건 말입니다······ 혹시, 기억나십니까?”
“그럼. 내가 얼마나 자네 회사 주식을 가지고 싶어 했는데. 설마 그걸 까먹었겠는가?”
“혹시 그 제안, 아직도 유효합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과거의 내 제안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긍정했다.
이윽고, 포드는 탁자 위에 계약서를 올려놓으며 나의 반응을 조심스레 살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구주를 매각하는 것은 좀 어렵고, 신주를 넘기는 형식으로 이 왕자님께 지분 일부를 양도할 생각입니다.”
탁자 위에 있는 계약서를 서둘러 확인하고 싶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계약서에 관심 없는 척 딴짓을 했다.
인수 협상은 본디 급한 사람이 지는 싸움이니까.
“신주를 발행한다면, 혹시 증자할 생각인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발행할 생각입니다. 그편이 기존 주주들도, 더불어 왕자님도 득이 될 테니까요.”
그래.
유상증자하게 되면, 기존 주주들 역시 사비를 털어야 한다.
돈이 넘쳐나는 호황기 때야 괜찮겠지만, 지금은 불황기.
자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이도 있을 테니까, 포드사의 기존 주주들의 반발을 생각해서라도 이를 피해야 했다.
‘복잡하게 유상증자, 무상증자를 고민할 바에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발행하는 것이 더 편하기도 하고.’
신주인수권부 사채는 채권임과 동시에 주식이었다.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만기 때, 이자와 함께 원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채권과 비슷하지만.
만기 때 약정된 금액에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도 있기에, 주식으로 볼 수도 있는 결합형 금융 상품인 것이다.
‘나는 몇 푼 안 되는 이자와 원금보다는 신주를 선택할 것이다.’
미래를 아니까.
포드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내가 이자와 원금을 찾길 고대하겠지만.
포드 모터스가 얼마나 성장할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만기 때 이 종이 쪼가리를 주식으로 바꿀 생각이다.
“그런데 말이야. 생각보다 늦었구먼. 내가 제안했던 때가 지난해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포드에게 살짝 핀잔을 주었다.
왜냐고?
주가가 낮을 때, 그러니까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나를 찾아왔어야 내게 더 유리했었으니까.
“시장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잠시 숨 고르기를 했습니다.”
포드가 좀 더 성급했다면.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그래도 이게 어디야. 만족하자.’
지금은 금융 위기가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물론 유동성이 아직도 부족하기에, 공장을 빠르게 지으려는 포드의 무리한 계획에는 누구도 지원해 주지 않았다.
나는 계약서를 재빨리 훑어보며 상세 내용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조건이 별로네.’
뭐 그래도, 아예 투자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원 역사에서만큼.
그러니 포드사의 초기 투자자들이 2,500배의 수익률을 얻고 헨리 포드에게 주식을 재매각하는 횡재를 누릴 수는 없지만.
단물 정도는 충분히 빨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조건이 별로라고 생각하십니까?”
살짝 뜸을 들이자, 포드가 불안하다는 듯 물었다.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네만. 나는 자네와의 우정을 생각해서 계약에 당장 사인할 생각이네.”
“감사합니다.”
포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난날에 있었던 사건을 회상했다.
“역시 이 왕자님께서는 안목이 있으십니다. 탐욕에 눈먼 월스트리트 가의 어느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이거 살짝 콕 찌르면, 유대인에 관한 험담이 줄줄 쏟아지겠다.
‘포드는 대표적인 유대인 혐오자니까.’
근데 그보다.
내게 제안하기 전에 여러 군데를 다녔나 보네.
하긴.
포드에게도 기존 거래 은행이 있을 테니까.
그들은 자금이 궁한 포드의 사정을 파악하고 포드가 제안한 조건보다 좀 더 가혹한 조건을 요구했을 거다.
‘욕심에 눈이 멀었군.’
포드는 성장 중인 회사다.
그 속도를 좀 더 가속하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공장 확장을 시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대출받지 않아도, 혹은 내게 제안한 채권을 발행하지 않아도 부도가 나지는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기존 거래처의 무리한 조건을 단번에 거절하고 내게로 찾아왔겠지.
‘뭐, 그들 덕분에 이리 포드사의 지분을 얻게 되었으니까.’
나는 오른손을 쑥 내밀며 포드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로써, 우리 둘은 더더욱 깊은 관계가 되었군.”
“그렇지요. 미래에 회사 주주가 되실지도 모르니까요.”
포드가 그의 옆에 서 있던 비서에게 손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비서가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아, 이 왕자님.”
“말하게.”
“함께 온 회사 임원진들을 좀 소개하려는데 말입니다.”
“나야 좋지.”
비서실장이 내 집무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포드의 직원들을 데리고 왔다.
포드는 그중 가장 땅딸막한 인물을 앞으로 이끌며 내게 소개했다.
“우리 포드사의 부사장입니다. 이 왕자님이시네.”
“안녕하십니까, 이 왕자님. 존 프랜시스 닷지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 *
포드는 활짝 웃으며 나와 악수하고 있는 닷지의 이력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닷지 부대표는 왕자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가솔린 엔진의 최고 권위자 중 하나입니다. 우리 회사의 엔진들은 모두 닷지 부대표의 손을 거쳐 간 것들입니다.”
와.
그러니까 대단한 공돌이가 지금 내 앞에 있다는 말이네.
탐나게 말이다.
‘닷지 또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인이었다지. 그의 동생과 함께.’
그보다 아직 포드랑 사이가 좋은가 봐?
아직 포드에서 부대표를 수행하는 것을 보면.
‘하지만 그것도 곧 끝이겠지. 조만간······.’
미국 경제인들의 일생에 관한 지식이 꽤 있는 나로서는, 이 둘의 관계가 곧 파탄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모델 T를 시장에 급히 내놓을 때부터 숱하게 싸웠으니까.
원 역사에선, 그때부터 사이가 틀어져 결국 둘은 각자의 길로 향한다.
‘약 5년 후, 닷지는 회사를 나와 새로운 자동차 회사를 차리게 되지.’
이 시대 유행답게, 자신의 이름을 붙여서 자동차를 차리게 된다.
닷지 모터스라고.
내 기억으론 크라이슬러 회사에서 꾸준히 생산되던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브랜드지.’
기름을 하마처럼 잡아먹는 픽업트럭이나 SUV를 생산하니까.
승용차 역시도 마초들이 탈 만한 큼직한 머슬카들로 위주로 제작한다.
그렇기에 한국인들은 닷지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1910년대, 군용 트럭을 생산하던 회사이기도 하다. 닷지 모터스는…’
그걸 만든게 바로 내 앞에 있는 존 닷지고.
정말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탐나는 인재란 말이야.
‘둘이 헤어질 때, 그때가 최적의 기회겠군.’
뭐.
닷지 형제들 역시 원 역사에서는 자기들 회사를 차린다.
기본적으로 야망이 있다는 말.
그렇기에 내 희망대로 일이 안 흘러갈 수도 있겠다.
‘차선책은 닷지가 새로이 회사를 새로 차릴 때, 2대 주주로 참여하는 거고.’
닷지 형제는 둘 다 나이가 꽤 있다.
원 역사대로 흘러간다면, 1920년도쯤에 사망한다.
그들의 자식들은 자동차 회사 경영에 관심이 전혀 없었기에, 이를 크라이슬러에게 홀라당 팔게 되는데.
만약 내가 2대 주주로 남아 있는다면 그때 냉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아, 혹시 나와 함께 연구소에도 한번 방문하지 않겠나?”
“예?”
“우리 회사와 기술 협력 협정을 맺지 않았던가? 이번에 내가 주식까지 인수하면서 그 관계가 더욱더 돈독해졌는데 말이야. 연구소에 방문해서 우리 연구원들에게 조언이라도 좀 해 주게. 그리해 준다면, 내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야.”
포드는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시간 아깝게 연구소에는 왜 들르냐는 눈빛이다.
반면, 공돌이 출신인 닷지는 너무나도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같은 연구원들과 만나서 연구 개발 과정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싶어 보였다.
“자, 이쪽일세. 그리 차를 타고 가면 그리 멀지 않으니 따라오게.”
* * *
닷지는 전형적인 공돌이였다.
확장 중인 공장을 견학한 후, 그는 밝은 표정으로 우리 회사 연구소에 발을 내디뎠다.
“왕자님. 이자는 누구입니까?”
한참 연구 중이던 디젤이 내게 다가오며 눈알을 굴려 댔다.
이에 닷지가 제 허리에 손을 얹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포드사의 부대표이자 연구 책임자인 존 프랜시스 닷지일세.”
닷지가 반 발짝 앞으로 나서며 입을 뗐다.
“내 소개는 여기 이 왕자님께서 해 주셨고. 그대 이름은 뭐요?”
“나 말이오?”
“그렇소.”
“이 회사의 연구 책임자인 루돌프 디젤이요.”
“디젤?”
닷지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디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혹, 디젤 엔진을 개발한 그 독일인 발명가요?”
“그렇소.”
“특허를 만인에게 개방한 후, 빌어먹을 에디슨 녀석에게 역으로 고소당했다던 그 멍청이?”
“······.”
디젤은 잠시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하니 닷지를 쳐다보았다.
나 역시도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닷지가 이리도 갑자기 급발진할 줄은 몰랐으니까.
“흥분하면 앞뒤 구분 못 하는 산양 새끼가 또 일을 저질렀군.”
포드가 한탄하며 제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닷지는 이 시대의 전형적인 하류층 미국인으로, 지아니니만큼이나 입이 거칠었기 때문이다.
‘산양? 닷지의 엠블럼이 산양인데 그 때문인가?’
암튼 포드는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나와 디젤에게 사과했다.
신주 인수 건에 관한 협상 때 부대표인 닷지를 밖에 두었던 것도 이런 말실수가 있을까 봐 그랬다며, 포드는 계속해서 내게 사과했다.
“디젤 연구소장. 다시 한번 사과하겠소. 내 성격이 급해서······.”
닷지는 제 입을 두들기며 뱉었던 제 말을 수습했다.
디젤은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닷지를 쏘아보았다.
“뭐, 멍청한 짓을 했으니 그리 놀림받을 만하지요.”
“다시 한번 미안하다 사과하겠소.”
“······.”
“마지막 말은 너무 마음에 쌓아 두지 마시오. 에디슨 그 개새끼의 얼굴만 떠올리면 욕부터 나오는 버릇이 있어서 이리 실수를 하게 되었소.”
“예? 그러니까······ 그대도 에디슨 그놈에게 당했단 말이오?”
“그럼. 에디슨 그놈이 얼마나 악질인데······.”
어, 너도?
야, 나도!
본래 처음 보는 사람도 공통점이 있으면 친해지기 마련이다.
닷지와 디젤은 공통의 적인 에디슨을 두고 열심히 앞담화를 하기 시작했다.
“초반에 실례를 저질러서 큰일이 날 줄 알았는데 다행입니다.”
“그러게······.”
나는 포드와 시선을 교환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닷지와 디젤은 서로 에디슨에 관한 악담을 늘어놓다가 이내 우리 둘의 차가운 시선을 확인한 후, 다시금 일 이야기로 돌아왔다.
“혹시 이 회사에서 그대가 발명한 디젤 엔진 연구 개발을 이어 가고 있소?”
“물론이지. 안 그러면 이 왕자님께서 날 왜 이곳까지 부르셨겠소?”
“오······.”
닷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디젤에게 한 가지를 조언했다.
“포드사가 여기 이 왕자님의 회사랑 포괄적인 기술 제휴 협약을 맺은 기념으로 내 한마디만 하리라. 이번에는 절대 개발한 특허를 무료로 풀지 마시오.”
“물론이오. 내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겠소?”
“어떤 이는 고새 그것을 까먹고 두 번 당하기도 하오.”
“이 사람이······.”
초반보다는 분위기가 좋았다.
포드는 티격태격하는 닷지와 디젤을 바라보다가 내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아······ 왕자님.”
“말하게.”
“회사명은 뭐로 지으셨습니까?”
포드는 그 리스트들을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시발, 초발, 창세, 제네시스 중 하나를 선택하시겠다고요?”
“아직 확실하진 않네.”
“흠······.”
“왜 별로인가?”
“예. 좀 그렇네요.”
포드는 재빨리 자신의 자구책을 내게 알려줬다.
“어렵게 가지 마시고, 그냥 이 왕자님의 이름을 사용하십시오. 리(LEE) 모터스로 하시거나 이강 모터스가 낫지 않겠습니까? 왜 굳이 멀리 돌아가십니까?”
그래.
포드는 포드가 만들고.
쉐보레는 쉐보레가.
닷지는 닷지가 만들어서 회사명이 그렇지 않은가?
J.P.모건만 해도 J.P.모건이 설립하고 운영해서 회사명이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이들과 달라.’
나는 동양인이다.
왕자긴 하지만, 동양인은 동양인.
경쟁사가 나를 들먹이며 마케팅을 방해한다면, 자칫 제품 판매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명은 무난한 것이 좋아 보였다.
‘내가 인수한 기업들만 해도 그래. 아메리칸 신탁만 해도, 그 이름을 그대로 쓰잖아?’
아!
비행기 회사인 리&라이트는 그 경우가 조금 다르다.
일반 소비자에게 파는 것과 기업 혹은 정부를 상대하는 것은 예상외로 그 차이가 크거든.
‘라이트라는 단어가 뒤에 따라붙기에 동양적인 느낌이 상당히 반감되니까.’
더욱이.
정부를 상대로 협상할 땐, 내 이름이 오히려 득이 되는 때도 있고.
“아······ 그렇기도 하겠네요.”
포드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제가 듣기로 동양에서 많이 통용되는 한자의 경우 뜻을 지니고 있다 들었습니다.”
“맞네.”
“왕자님의 성은 이 씨고, 이름은 강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강(堈)은 무엇을 뜻합니까?”
“언덕(hill)을 뜻하네.”
“그럼 쉽게 힐 모터스로 사명을 지으시지요.”
“······.”
“아님, R&H 모터스도 좋겠습니다.”
“R&H 모터스?”
“예. 왕자님의 성은 LEE로도 쓰이지만 RHEE로도 쓰입니다. 더불어 왕자님은 왕족이니, R을 Royal로 해석할 수도 있는 중의적인 사명이 될 수도 있겠네요.”
“······.”
“혹시 제가 왕자님의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은 아니겠지요?”
아니다.
깔끔하게 힐 모터스나 R&H 모터스.
참 좋네.
“고맙네. 꼬였던 실타래가 탁- 하고 풀리는 것 같네.”
“다행입니다. 아······ 그리고 말입니다. 이 왕자님.”
포드가 잠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뭔데 또 말을 할 듯 안 할 듯 애를 태우는가?”
“그게······.”
포드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왕자님, 혹시 시중에서 팔리는 타블로이드지를 좀 보십니까?”
< R&H 모터스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