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8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85화(85/392)
< 아메리칸 기레기 >
타블로이드지라면.
사실도 아닌 자극적인 기사를 아무렇게나 마구 싸지르는, 다시 말해 저질 언론사들을 뜻하는 곳 아니던가?
이 시대엔 정론지와 황색 언론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더욱이 타블로이드지가 정론지보다 지역 내 민심을 때론 더 빠르게 전달하기도 하여서, 나 역시도 종종 눈에 띄면 길가에서 이를 구매해 읽곤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심심할 때마다 읽곤 하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것인가?”
“그게 말입니다······.”
이거 참.
애태우지 말고 어서 입을 좀 열라고.
“괜히 오지랖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군요.”
평소에는 화끈하게 ‘효율’ 하나만 추구했으면서, 정작 중요할 때는 왜 이리 뜸을 들여.
“괜찮네. 자네가 알고 있는 정보, 정보부터 말해 주게나. 타블로이드지에서 뭘 봤기에 그리 안절부절못하는가?”
“그게, 왕자님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를 우연치 않게 보게 되었습니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결국 나를 견제하는 세력이 미국에 생겼다는 말이지?
“뭐, 그럴 수도 있지. 유명인이라면 한 번씩은 거쳐야 하는 통과 관문 같은 것이 아닌가? 마치, 신고식처럼 말이야.”
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애써 괜찮은 척했다.
그러면서 주변을 한번 슬쩍 둘러보았다.
“여기 캘리포니아는 여타 다른 지역보다 인종차별이 덜하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독일의 카이저처럼 이상한 망상을 머릿속에 품고 있지.”
황화론을 신봉하는 자들은 캘리포니아에도 제법 많다.
최근에 발의된 황인종 이민 제한법만 해도 그래.
조선인은 빠졌다만, 모두 그자들 때문에 이 법이 생겨나지 않았던가?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나. 별 시답지 않은 소리를 다 하여도 나는 참을 수 있네.”
아무렇지 않다는 나의 반응에도 포드는 심각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내게 보고했다.
“캘리포니아에서만 그랬다면 저 역시 그냥 넘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뉴욕과 워싱턴, 제가 활동하는 디트로이트에서도 왕자님 관련 이야기가 지역일간지에서 이따금 나오고 있습니다.”
“뭐? 언제부터 그랬나?”
“모두 다 최근이었습니다.”
포드가 서류 가방에서 신문뭉치 하나를 꺼냈다.
“놀랍게도 제가 읽었던 기사는 그 안에 있던 기사와 그 내용이 굉장히 비슷했습니다. 마치 한 사람이 쓴 것 같았습니다.”
“한 사람?”
“예.”
나는 재빨리 포드가 건넨 타블로이드지를 보았다.
‘데일리 캘리포니아라······.’
생전 본 적도 없는 아주 작은 지역 일간지인데.
따로 찾을 것도 없이, 나에 관한 기사는 눈에 바로 띄었다.
『본지 단독 입수, 이강은 사실 유부녀 킬러다? 동양에서 온 백마 탄 왕자의 비밀스러운 성적 취향.』
기사 제목부터 머리말까지.
굉장히 자극적이다.
나를 아는 혹은 재미난 것이 뭐 없나 갈망하는 미국 한량들의 구미를 아주 제대로 당기게 할 것 같네.
포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거짓 정보가 담긴 신문을 통째로 내게 건넸다.
“왕자님의 말씀대로 이런 기사들은 사실 신고식과도 같습니다. 저 또한 비슷한 일을 겪었으니까요.”
“자네도 타블로이드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고?”
“예. 이 나라에서는 조금 유명해졌다 싶으면 남을 헐뜯습니다. 기자들은 그걸 언론의 자유라고 포장하죠.”
포드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많이 분한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역시 제 회사가 커지자 이런 악성 루머가 디트로이트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왕자님처럼 미 전역에 이런 기사가 실린 것은 아니지만요.”
“······.”
“경쟁자가 기자에게 돈을 쥐여 줬을 수도 있겠고, 왕자님의 돈을 노린 기자가 이런 기사를 의도적으로 작성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순전히 악한 마음 하나로 이를 실었을 수도 있겠고.
포드는 그의 과거와 지금 나의 상황을 비교하며 그가 아는 사실을 열거했다.
“아까 말했던 대로, 캘리포니아에만 이런 가십 기사가 실렸다면 저 역시 통과 의례를 치르시는구나 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규모가 너무 큽니다.”
그래.
미 전역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지고 있으니, 합리적으로 의심해야 한다.
배후가 있지 않다면 이리 급속도로 퍼지기 힘드니까.
‘대충······.’
어떤 놈이 배후인지는 알 것 같단 말이지.
다만.
선입견을 품는 것은 자칫 실제 배후를 알아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에, 나는 빠르게 후보군에만 이름을 올려 두고 확신하진 않았다.
‘집에 돌아가면 좀 더 캐 봐야겠어.’
나는 포드의 어깨를 살짝 터치하며 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네.”
“아닙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오히려 제가 왕자님께 하고 싶습니다. 거금을 투자해 달라는 제 제안을 별다른 조건도 없이 승낙하시지 않았습니까? 호의를 먼저 베푸신 것은 왕자님이십니다.”
자신은 빚지고는 못 산다며, 포드는 오히려 나를 더 걱정해 줬다.
“마지막으로 충고드리자면,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진 마십시오. 누군지는 몰라도 이자들, 아주 악질인 것 같습니다. 왕자님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없는 말을 계속해 지어 낼 것이니 단단히 대비하셔야 할 겁니다.”
* * *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비밀. 본지가 분석해 봅니다. <이강과 유부녀>』
포드가 건넸던 기사는 미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제목과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포드의 말대로, 안에 있는 내용은 도긴개긴 엉망이었다.
‘이성을 찾고 사태 수습부터 하자.’
사건이 터졌다.
나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맞다.
당연하게도 그 사건의 본질을 알아내야 한다.
‘내 평판을 깎아내리기 위한 반대 세력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
대충 목적은 알아냈으니.
그 수단을 조사해야겠지?
일단 어떤 소문부터 퍼트리고 있는지 상세 내용을 알아야 했기에, 각지에 퍼진 한인들과 익문사 요원들을 동원하여 관련 기사를 수집했다.
‘유부녀 이야기가 처음으로 나왔고.’
『이강 왕자, 사실은 왕자가 아니고 사생아다?』
후속 기사도 존재한다.
‘최초 기사가 작성된 것은 보름 전부터였다.’
여기 캘리포니아에서는 그제부터 이 기사들이 실렸고.
아!
그래서 이것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구나.
내 터전부터 공략했다면 빠르게 그 배후들을 찾아냈을 텐데.
요놈들.
머리 좀 쓴다.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내 집에 머무는 최현우와 우현식, 그리고 유길준을 불러모았다.
“자네들도 이 사실을 알았나?”
“아닙니다.”
“자네는?”
“소인 또한 몰랐습니다.”
“자넨?”
“앞선 둘과 같습니다.”
나는 오른손으로 관자놀이를 만지며,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를 식히고자 노력했다.
“내 기사 내용을 한번 정독해 보았는데 말이야. 아주 교묘하더군.”
나는 세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 달려들어서 기획 기사를 작성한 것만 같네.”
“에?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보게나. 나이 든 여성을 좋아하는 남자는 어린 시절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네. 나의 가족사를 상세히 아는 자만이 작성할 수 있지. 사생아라고 적은 것도 같은 이치고.”
패드립이 난무한다.
나의 죽은 가족까지 건드리는 기사에 내 부하들은 다들 눈알만 굴리며 바싹 마른 입술을 훔치고 있었다.
나는 다른 기사들도 직접 읽어 가며 그 근거를 댔다.
“여기. 이강은 미주에 막 정착한 유부녀들만 골라서 돈으로 그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부분도 그래.”
본래 거짓이 이쁘게 포장되려면 사실이 조금 섞여야 한다.
나는 최근에 조선에서 활동하는 의병들의 가족들을 대거 미주로 입국시켰다.
이후 그들에게 소정의 지원금을 쥐여 주며, 그들의 거처까지 일부 제공해 주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기존 교민들과 다르게 추가로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고.
‘관개수로 공사가 완료되었으니, 새 땅에 밀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는데 말이야.’
밀 농사는 쌀농사와 비교해 손이 덜 간다.
그랬기에 노동력이 덜 필요했는데, 농사와 가정을 병행해야 하는 의병들 가족에게는 딱 맞아 추천한 거였는데.
이런 편의를 봐 준 사실들이 아주 더럽게 왜곡되어 있었다.
‘순전히 애국자들의 가족들을 우대하는 정책에서 시작된 일인데 말이야.’
“자녀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을 빌미로 유부녀들만을 꼬시는 이강의 파렴치한 행위를 보아라. 이 부분 또한, 모두 내가 최근에 시행한 일이 아닌가?”
빠득-
나는 이빨을 갈며, 일단 대응부터 하기로 했다.
“구당(유길준).”
“예. 전하.”
“대응 기사부터 준비하게. 관련 타블로이드지에는 기사 정정을 요구하게나.”
“예.”
일단은 하나하나 반박할 생각이다.
사생아 설은 동양과 서양의 왕실 문화 차이를 설명하며, 내가 정당한 왕실 구성원이란 것을 주장할 생각이며.
내가 유부녀를 탐했다는 뜬소문 또한 그들이 일본과 맞서 싸우는 의병들의 가족임을 밝히며 분위기 반전을 꾀할 계획을 세웠다.
‘왜곡되지 않게 기사가 작성되었다면 찬양 글이 될 수도 있었는데.’
영웅은 고난을 통해 힘이 세진다.
비록 화려해 보이지만, 나는 사실 어린 시절부터 중전 민씨에게 생존의 위협까지 받으며 성장했다.
전형적으로,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다.
나는 이번 기회를 반전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
‘또 다른 기사만 해도 그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의병들의 가족을 챙겨주는 왕족이 이 시대에 어디 있는가?’
왜곡된 면만 도려낸 후, 스토리를 재구성한다면?
그 후 다시금 기사를 낸다면.
분명, 내 평판에 도움이 될 거다.
‘익문사 요원들도 소집해야겠어.’
정보가 가장 필요한 때니까.
미국에서 활동하는 세 익문사 요원들을 모조리 소환해야 한다.
“전하.”
“그래. 알아봤는가?”
최현우와 우현식에게는 추가 조사를 명령했다.
이 기사를 작성한 이들에 관한 정보 역시 필요하니까.
“데일리 캘리포니아에 기고한 이는 더럼 스티븐슨이란 기자랍니다.”
“다른 지역 일간지에 기사를 실은 두 사람의 신분도 확인했습니다. 각각 데이비드와 매커스라는 놈들이었습니다.”
나는 팔짱을 끼며 우현식과 최현우를 바라보았다.
“계속 말하게.”
“그리고 이 기자들에게선,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뭔가?”
“셋 다 최근에 일본 도쿄에 방문한 기록이 있습니다.”
“도쿄?”
“예. 일본 정부가 주는 자랑스러운 기자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 상도 있어?
만약에 진짜 있다면 가장 혐오스러운 기레기 상으로 명칭을 바꿔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이 중 스티븐슨은······ 최근 한양에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양?”
“예. 남산에 있는 통감부를 들렀다고 합니다.”
통감부라면······.
그곳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살고 있지 않은가?
‘오호라······.’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머릿속으로 온갖 대응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토가 이 일을 벌였다는 것은 그 뒤에 진짜로 일본 정부가 있다는 소리니까.
“보스! 보스!”
1층에서 아일랜드 삼 형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께서는 바쁘시네.”
“이쪽도 급한 일인데요.”
맥스는 최현우의 제지에도 2층으로 올라왔다.
그러곤 내게 종이 쪼가리 하나를 건넸다.
“뽀스. 허스트 언론 그룹의 대표가 사람을 보내 왔습니다. 급한 일이라고, 꼭 뽀스를 만나야 한다고 저희에게 간청하던데요.”
“허스트가?”
“예.”
허스트의 비서가 맥스에게 건넨 것은 작은 명함이었다.
흰 명함에는 부엉이 한 마리가 덜렁 그려져 있었고, 오른쪽 아래에는 내일을 뜻하는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클럽에 오라는 소리군.’
내일은 금요일이다.
보헤미안 클럽 비밀의 방에서 포커 게임이 열리는 날이라는 말.
“간만에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했다고 합니다. 뽀스의 얼굴을 꼭 보고 싶다고, 허스트의 비서가 그리 말했습니다. 왕자님께 할 말이 있다며 시간이 되면 꼭 들러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모호하게 말하는군.’
허스트는 이 나라에서 한 손 안에 드는 언론사의 총수다.
작은 샌프란시스코 지역지에서 언론 재벌로 성장하며 허스트는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
그랬기에, 그는 편지를 쓰거나 부하를 통해 자신의 말을 전하지 않았다.
그저 만날 장소만을 내게 알렸다.
‘아이러니하지.’
명색이 언론 총수라는 자가.
활자 자체를 신뢰하지 않으니까.
허스트는 직접 대면하며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였다.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한 거지. 설마, 이 상황을 알고 있나?’
그는 내게 빚이 있었다.
상류층들이 흔히 보유하고 있던 영국채권의 폭락을 내가 사전에 예언하며, 그에게 큰 이득을 보게 했으니까.
살면서 세 번은 내게 도움을 주겠다고 했었는데.
내 생각에는, 이번 기회에 그가 이를 갚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딱 이 시기에 나를 이리 찾을 리가 없었다.
“알겠네. 내 그리하지.”
언플에는 언플로 대응하는 것이 맞지.
나는 보헤미안 클럽에 방문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 *
‘좀 더 화려해졌군.’
가입 후, 포커 게임을 치른 것이 마지막 방문이었지.
서부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자주 출입하는 곳이지만, 그만큼 내가 바빴기에 이곳에 들르진 못했다.
“이 왕자님. 이쪽입니다.”
출입 카드를 건네자, 키퍼가 비밀의 문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 안에 들어서자,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다들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이 왕자님!”
“어서 오십시오!”
달라진 것은 그들의 눈빛이었다.
다들 날 적대하지 않고, 왜 이제야 나타났냐는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어떤 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게 접근하기도 했다.
“아이고! 이 왕자님! 이쪽입니다.”
허스트가 내게로 다가오는 이들을 밀어내며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다들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이 왕자님은 본인이 먼저 찜해 놔서 말입니다.”
나와 허스트.
단둘이 포커 게임장 안에 마련된 작은 방에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이 왕자님.”
“또 보는군.”
“그러게요. 이거, 참. 왕자님과 저는 인연이 깊은 것 같습니다.”
직원으로 보이는 자가 술을 내온다.
내가 한 모금 홀짝이는 걸 보고 나서야, 허스트가 입을 떼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했던 말 기억하시지요?”
“물론 기억하지. 내게 빚을 졌다고 자네가 말했었지.”
“맞습니다.”
허스트가 빙그레 웃으며 내게 답했다.
“그 빚을 갚을 때가 온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 아메리칸 기레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