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89)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89화(89/392)
< 7인회 >
사흘 뒤.
더럼 스티븐슨은 자신이 기고했던 데일리 캘리포니아에 정정 보도를 요구했다.
【정정 및 반론 보도】
본보는 지난 2월 8일 데일리 캘리포니아 1면에 보도한 ‘조선의 외교권 이양은 필연적이었다.’에 관한 사설을 기고자(더럼 스티븐슨)의 요청으로 공식 철회함을 밝힙니다.
더불어 미주 한인교민회인 합성협회의 반론 보도 요청에 따라, 오늘과 내일 본지 1면과 2면에 걸쳐 이를 싣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했는가?】
<유길준>
일본은 협박이라는 위력을 행사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았다. 국제법상 겁박에 의한 조약 체결은 그 효력이······
* * *
더럼 스티븐슨은 진정한 사과 대신 정보 조사 미흡을 이유로 기사 철회를 요청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때까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진 않았으니.
결국, 이강은 더럼 스티븐슨을 절반만 설득한 셈이었다.
“상놈의 자식, 끝까지 제 자존심을 지키려고 목을 뻣뻣이 드는 것 좀 봐.”
“전하께서 당부하지만 않았으면, 워싱턴으로 도망가기 전에 콱 패 죽였을 텐데.”
“이, 이 사람이······.”
“아, 왜!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 패 죽이겠다는 것은 아닐세.”
그렇기에 교민 일부는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썩 통쾌한 마무리는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전하께서 계셔서, 이리 기사도 정정되고 반론 보도도 나오지 않았는가?”
“맞아. 전하께서 앞장서지 않으셨다면, 양키들은 정말 우리가 게으르고 무능해서 외교권을 빼앗긴 줄로만 알았을 거야.”
그렇다고 교민들의 분노가 이강에게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다들 만족해하지는 않았지만, 이강이 이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교민들은 이날 이후 스티븐슨에 관한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몇 번의 해가 지고 다시 뜨기를 반복하자, 교민 대다수는 스티븐슨이 누구였는지도 잊기 시작했다.
이는 이강과 일본 정부의 비밀 협상 때문에, 한인들을 헐뜯는 기사가 더는 미 언론에서 보도되지 않아서였다.
언론이 조용해지니.
교민들은 역시 자신의 생업에 자연스레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놈, 결국에는 꽁지가 빠져라 워싱턴으로 내뺐군.”
“샌프란시스코 교민들도 너무 물러. 나 같았으면 그 개자식을 때려잡았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이 사건은 한 달 하고도 보름 뒤에 다시 한번 논란이 되었다.
이 소식이 본토로 전해지고.
일본의 음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가를 두고, 조선 신민들끼리 언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강이 이전에 말했던 구절을 다시금 입에 담으며 제 주장이 옳다고 주장했다.
“전하께선 엄정한 법에 따라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셨네. 개인과 개인, 나아가 국제 관계 역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셨지. 따라서 우린, 국제법 안에서 일본인과 맞서 싸워야 하네.”
“맞아. 무엇보다 지금 우리는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네. 우리 편을 드는 놈들이 하나도 없단 말일세.”
“적어도 양키 놈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해.”
“동시에 우리 역시 스스로 성장해야만 하지.”
“그러기 위해선 우리 기업인들이 나서야 하네. 현재 조선은 일본의 자본에 잠식되어 있으니까.”
“교육인으로서도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일세. 백성들을 신지식으로 무장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맞아. 적절한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우리는 조선의 이천만 백성들을 준비시켜야 할 의무가 있네.”
자강론자들은 그들 나름의 주장을 이강의 발언과 접목하며 백성들을 설득해 나갔다.
반면.
“무슨 소리. 전하께서는 조선인, 미국인, 유럽인에 한해서는 법치주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하셨네.”
“맞아. 일본인만 콕 집어 언급하지 않으셨지.”
“더욱이 전쟁에서는 기존의 법 체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도 강조하지 않았는가.”
“그래. 미국이야 우리 교민들의 방주 같은 곳이라지만, 여긴 달라. 서양 열강은 아직 인정하지 않지만, 조선 땅은 엄연히 전쟁터라고.”
무장투쟁론을 지지하는 이는 그들 나름대로 이강이 자신의 편이라고 주장했다.
“전하께서는 우리를 지지하시네.”
“글쎄. 전하께서는 무장 투쟁에 적극적으로 찬동하신다고 들었네만. 이범윤 장군 부대에 신무기가 들어오는 것 좀 보게. 그게 다 전하께서 지원해 주시는 무기일세.”
조선 사람이 둘 이상 모였다 하면, 이강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이강은 이제 왕위 후계 순위에서 밀려 버린 들러리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가 조선으로 흘러 들어가 인용될 만큼, 이강의 영향력은 교민사회는 물론 본국에서까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내 말이 정답이라니까?”
“아닐세. 내 말이 옳아!”
각자가 이강의 발언을 제 뜻대로 해석하는 가운데.
몇몇 열의에 가득 찬 독립운동가 지망생들은 이강의 진정한 뜻을 확인하고자 북쪽으로 향했다.
미주로 가려면 일단 연해주에 들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강을 직접 만난다면, 이강의 진심을 비로소 정확히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여기가 해삼위인가······.”
수많은 독립지사가 연해주로 이동하는 가운데.
‘김창수’라는 사내 역시도 막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 * *
“어째 날이 갈수록 한인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군.”
김창수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걸으며 혼잣말을 했다.
이 도시에 도착한 지, 근 두 달째.
김창수는 블라디보스토크가 고속 성장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어휴. 사람이 너무 많군.’
이번 달에만 무려 5만이 넘는 조선인들이 연해주로 향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1만이 넘는 한인이 새로 터를 잡았다고 하고.
‘방값이 미친 듯이 뛰는군.’
아직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미친 듯이 밀려든다.
아마도 일본 정부가 서울 이남 의병들을 대대적으로 소탕하겠다는 계획을 사전에 의도적으로 누출하면서 이런 일이 터진 것 같았다.
“지나가겠소이다.”
날이 풀리면 어찌 되려나?
김창수는 이를 살짝 걱정하며, 수많은 인파를 밀치고 매표소로 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도 미국으로 가는 표는 구할 수 없었다.
“어? 자네.”
그때, 김창수는 한 사내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를 높이며 그의 호를 불렀다.
“혀, 형파? 형파가 아닌가?”
“아이고, 백범. 자네로구먼. 오랜만일세.”
김창수와 안명근은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인근에서 서로 부둥켜안으며 반가워했다.
둘은 같은 황해도 출신으로.
지난해 안창호가 설립한 신민회의 평회원이기도 했다.
몇 번 집회에 함께하며 면을 트고 우정을 쌓았기에, 금세 대화가 무르익었다.
“자네가 이곳 해삼위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래, 여기는 무슨 일로 방문했는가?”
“나야, 미국에 가기 위해서 잠시 들렀네. 자네는?”
“나도 자네와 같지.”
“그렇군. 혹, 표는 구했나?”
김창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자신이 빈손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밝혔다.
“돈이 있는데도 표를 구할 수가 없네.”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다더니, 사실이었나 보군.”
“그래. 배표의 절반 이상은 의병들 가족들에게 우선 배당되지 않던가?”
“그렇지.”
그때, 안명근이 주변을 힐끗힐끗 보며 김창수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쩌려고 그러나?”
“어쩌긴. 한동안 이 근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돈이나 좀 모아야지. 신민회 간부들이 최근 이 근처에 학교를 세우지 않았던가?”
“들었네. 전하께 받은 지원금으로 보통 학교와 사관학교를 세웠다며?”
“그래.”
삐-삐-
경적이 울린다.
자동차 한 대가 그들 옆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그 뒤로 짐을 실은 수많은 마차 역시 부두로 향했다.
김창수가 안명근과 짐수레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우당 선생의 형제 되는 분이 이곳에 공장을 세웠다던데. 사실인가 보이. 요새 가죽들이 불티나게 미국으로 운반되고 있다 하네.”
김창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안명근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어찌할 생각인가?”
“나? 나야 표가 있으니 다음번 배편으로 미국에 가야지.”
“표, 표가 있다고?”
안명근은 누가 볼까 싶어 주변을 살피곤, 표를 슬그머니 꺼내 좌우로 흔들어 댔다.
“그래. 그것도 두 장이나 있네.”
김창수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안명근은 재빨리 남은 표의 주인을 알렸다.
“하나는 내 것이고, 하나는 내 사촌 형님 것일세.”
“사촌 형님?”
“그래. 표 주인이 없었으면 자네와 함께 갔을 텐데 말이야. 이거, 아쉽군.”
안명근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의 사촌 형이 이곳에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실 때가 되었는데······ 어?”
“자, 작은 도련님.”
“개똥이, 네가 왜 여기 왔느냐?”
머슴으로 보이는 사내가 고개를 숙이며 안명근에게 편지를 전했다.
“큰 도련님께서 집안에 사정이 생겨서 본가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안명근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김창수의 얼굴은 아주 작게나마 밝아졌다.
“허면······ 남은 표는 어쩌지?”
“내, 내게 팔게나.”
안명근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마치 면접관이 된 듯 김창수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자넨 무슨 일 때문에 미국으로 가려는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영어에 관심도 없고, 타지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려고 이민을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김창수가 주먹을 꽉 쥐며 자신의 포부를 말했다.
“전하를 만나기 위해서네.”
“전하를?”
“그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것이네.”
이강의 곁에 새 얼굴이 하나씩 보강되고 있었다.
각자 그들만의 전문 분야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김창수는 아직 비어 있는 자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전하께서는 무장 투쟁에도 관심을 보이셨다.’
사관학교를 설립하는 것도 그렇고.
의병에게 무기를 지원하는 것도 그렇고.
여러 사실을 열거하면 분명, 이강은 무장 투쟁에도 관심 있어 보였다.
‘아직 남은 자리가 있어······.’
주요 요인 암살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분야가 남아 있다.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투쟁 방식으로, 김창수는 대한독립에 있어선 이 분야 역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흠······.”
안명근은 한참을 고민했다.
사촌 형이 다시금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시간을 끈 거다.
하지만 그의 사촌 형인 안중근이 끝끝내 돌아오지 않자, 그는 결국 남은 표를 백범 김창수에게 넘겼다.
그리고 보름 뒤.
둘은 미국으로 가는 배에 올라타게 되었다.
* * *
3월이 되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대하라! 확대하라!”
“확대하라! 확대하라!”
“아동 노동을 금지하라!”
“금지하라! 금지하라!”
교민사회가 진정되니, 다른 쪽이 시끄러워졌다.
미국 사회가 들썩인 거다.
뉴욕에서 시작된 노동자 권익 투쟁은 들불처럼 번지며 미 전역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임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환경 개선.
등등.
현대에도 늘 뉴스에 나오던 주제로 이들은 동맹 파업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업장 상황은 어떤가?”
“조용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내가 오너로 있는 회사는 다른 회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권이 보장된 회사니까.
휴게실도 두 개나 있고.
작업장이 쾌적하며.
다른 사업장보다 평균 노동 임금이 30%나 더 높다.
주 5.5일 근무를 시행하고 있고.
‘남들이 보면······.’
날 완전 진성 빨갱이처럼 볼 것이다.
현대보다 훨씬 더 열악한 근로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지만, 어느 미국의 회사들보다 선진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꼬우면 너희도 하든가?’
이렇게 좋은 근로 환경을 제공했을 때,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양질의 근로자가 내 기업으로 몰려든다는 거다.
단순 노동자보다는 연구원들을 많이 뽑고 있었기에, 그만큼 머리 좋은 이들이 많이들 우리 회사의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리&라이트 비행기 회사는 물론이고 R&H 모터스까지.
전체 산업계에 있어서 기술 선도를 할 날이 머지않았다.
“업무 효율성으로 이를 증명해야 한다고 전하게. 그래야 외부에서도 말이 안 나오리란 것도 노조 위원장에게 귀띔해 주고.”
“예.”
혹시 모를 파업에 대비하여 노동 환경을 재확인하고 있을 때.
“전하. 새 우편물이 도착했습니다.”
우현식이 봉투를 들고 내게로 찾아왔다.
“흠······.”
내용물을 뜯지 않았는데도 누가 이걸 내게 보냈는지 알 것만 같다.
딱 봐도 J.P.모건이 늘 쓰던 편지 봉투가 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뭡니까? 전하.”
우현식이 호기심 가득 찬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 역시 모건이 내게 편지를 보내 왔음을 안 거다.
우현식은 내 재정을 전반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자로 J.P.모건과 만날 때마다 크게 이익을 얻거나 크게 돈을 써야 했기에, 그는 걱정 반 기대 반의 표정으로 봉인이 뜯긴 모건의 편지를 살폈다.
“뉴욕에서의 발생한 파업 때문에 일정이 미뤄질 줄 알았는데, 예정대로 7인회 회동을 주최하겠다는군.”
“아······.”
지난번 금융 위기 파동 때.
J.P.모건은 자신의 집에 모인 은행장들에게 대책을 발표하기 전, 핵심 맴버를 은밀히 모아서 거액의 기금을 내라고 사전에 종용했다.
덕분에 나를 포함한 여섯은 아주 큰 돈을 기금으로 냈다.
‘우리 덕에 금융위기를 벗어나게 되었으니, 그 과실을 일곱 명이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심보로 회의를 여는 거지.’
당연하게도 나 역시 초대받았고, 이에 응할 생각이었다.
투자했는데······.
그 결과물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연방정부에 해가 되건 말건.
‘보자.’
나는 구성원들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떠올려 보며, 집무실 한편에 있던 금고문을 열었다.
중요 문서가 가득 쌓여 있는 가운데, 구석에 있는 캐비닛 하나를 꺼내 그 안에 있던 내용물을 탁자 위에 꺼냈다.
“전하. 이것들은 뭡니까?”
“지난달, 다른 7인회 구성원들이 내게 따로 서신을 보낸 것들이네.”
로스차일드 남작부터 제임스 힐, 록펠러 야곱 쉬프, 폴 와버그까지.
모두 내게 편지를 보내며 자신과 회의 전에 만나자고 제안했다.
‘미리 만나서 말을 맞추자는 거지. 같은 7인회 안에서도 각자의 이익이 서로 엇갈리니까.’
일반인이 보면, 다들 고놈이 고놈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서로 세력 차가 존재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견제하고 때론 연합했다.
‘딱 한 놈과 먼저 만날 수 있다면, 누굴 만나야 할까.’
초대장이라고 볼 수 있는 여섯 개의 서신들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내게 가장 도움이 되는 한 놈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 7인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