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90)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90화(90/392)
< 7인회 (2) >
이번 7인 회동에서 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나를 제외한 여섯 세력은 그간 알게 모르게 서로 균형을 맞춰 가며 미국 금융계를 분할하고 있었는데.
내가 불쑥 끼어들어 평평했던 저울추를 뒤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자 급하겠지.’
이 시대 자본가들은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패는 죄다 쓰고 보는 편이 아니던가?
여섯 세력은 각자 자신들의 편으로 나를 끌어들이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날 꼬드겼다.
나 역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울질하며, 내 이익을 최대한 취하고자 행동했다.
“이 왕자님.”
“록펠러 대표.”
여섯 세력 중 록펠러를 선택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일단 그는 ‘순수’ 미국인이다.
이민자 1세대 출신이 아닌 미국에서 태어난 정통 본토인.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이민자와 순수 미국인을 나눈다는 것이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사회가 이따위인데 어찌하랴?
이탈리아나 아일랜드계처럼 가톨릭 계열 백인들 또한 짝퉁 백인으로 취급한 사회가 바로 20세기 초반 미국이었다.
나 역시 이렇게 출신을 두고 사람을 고기 나누듯 재는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미국의 현재 풍토를 이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이 점을 충분히 고려했다.
‘록펠러는 타지에서 불쑥 굴러들어온 나와는 다르게 그나마 정통성이 있는 기업인이야. 나의 약한 점을 많이 상쇄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지.’
더욱이 그는 부자다.
그것도 그냥 부자가 아니고, 미국에서 제일가는 부자.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이 안 된 로스차일드 남작을 제외한다면, 현재 미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자는 당연히 록펠러였다.
스탠다드 오일이라는 회사가 미국 정유업계의 9할 이상을 독점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기름은 미래의 권력이다.’
종이 쪼가리인 달러가 어떻게 파운드화와 금을 밀어낼 수 있었을까?
모두 석유를 달러로 결제했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나는 당연하게도 록펠러와 사전 조율을 위해 스탠다드 오일의 본사가 있는 뉴저지로 이동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바쁘실 텐데 서부에서 여기까지 오셨으니,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지요.”
나는 록펠러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댔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지난번보다 더 마르신 것 같습니다.”
록펠러는 안타깝게도 불치병을 앓고 있었다.
알로페시아라는 병이었다.
머리카락과 눈썹 등 신체의 있는 털들이 듬성듬성 빠지며 소화가 심히 잘 안 되는 병세가 동반된다고 한다.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불치의 병이 아닙니까?”
그래 보여.
이 시대 다른 경영인들의 비대한 풍채와는 다르게, 몸이 아주 홀쭉하니까.
더욱이 머리털까지 빠져서 그런지, 겉모습만 보면 미국 제일의 부자 같지 않았다.
오히려 빈자 같았다.
‘진짜 괜찮나?’
록펠러는 나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그의 집무실 안으로 안내했다.
“처음 의사가 이 병을 선고했을 때는 1년을 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허허.”
“하지만 벌써 십 년이 지났습니다. 이 왕자님. 저를 보십시오. 이리 멀쩡히 살아 있지 않습니까?”
록펠러는 지난날 의사의 오진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며, 자신이 지금껏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 덕분이라며 신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아직 저를 보고 싶지 않으신지 이렇게 쇠심줄처럼 질긴 생명을 제게 은총으로 주시며 절 지켜 주고 계십니다. 감사하게도 말이지요.”
사실 록펠러가 이리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래 살기 위한 그의 노력 덕분이다.
그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회사 일을 아들에게 전부 물려줬으며.
소식과 산책을 하고 금주, 금연도 실천하며 건강을 지키는 중이었다.
눈치가 없는 이라면 이를 한번 거론할 만도 하나, 록펠러는 신앙이 굉장히 신실한 신도였다.
그렇기에 나도 굳이 언급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이 왕자님께서는 전보다 더 건강해지신 것 같습니다.”
나야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까.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나의 만족을 위해 열심히 몸을 키우는 중이었다.
나는 살짝 몸부심을 부리며, 록펠러에게 진짜 많이 달라졌는지 재차 물었다.
“요새 건강을 챙기느라 운동을 좀 했는데, 진짜로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까?”
“예. 일단 얼굴색도 더 좋아 보이시고, 몸 자체도 많이 커진 것 같습니다. 더불어 머리숱도 더욱 풍성해지셨군요.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데도 말입니다.”
머리는.
지난해보다 살짝 더 길러서 그런 것인 것 같은데······.
‘뭐야. 황금이라도 보는 것처럼 내 머리카락을 자꾸 훑어보네.’
알로페시아 때문인지, 록펠러는 탈모로 고생하는 중이다.
그는 엄청나게 부러운 눈빛으로 내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털을 뚫어지게 보았다.
어찌나 맹렬한지, 나는 한동안 그와 시선을 교환할 수 없었다.
“본인 또한 한때 서른이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때 참 좋았는데 말입니다. 머리도 풍성했고, 몸도 좋았었는데······.”
성공한 CEO들이 늘 하는 말.
나 때는 말이야.
내가 어렸을 때는.
라는 구문을 입에 붙이고 사는데.
록펠러도 좀 그런 이들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렇게 한순간에 비루한 몸뚱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월도 참 무심하게 말입니다. 이 왕자님, 한시라도 젊을 때 더 즐기십시오.”
록펠러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위기를 환기코자, 다른 행동을 한 것인데.
그는 자신의 집무실을 잠시 둘러보며 걷다가 이내 창밖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왕자님.”
“예, 대표님. 말씀하십시오.”
“파업이 들불처럼 퍼지며 미 전역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특히나 뉴욕을 비롯한 북동부에서 가장 격렬하게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던데 말입니다.”
록펠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습니다. 뉴욕도 그렇고 여기 뉴저지도 그렇습니다. 아! 이 왕자님의 회사는 좀 어떻습니까?”
“우리 회사야 뭐······ 평소처럼 열심히 연구하며 일하고 있지요.”
나는 마치 이번 파업이 남의 일인 것처럼 말했다.
진짜로 내가 소유한 회사들은 지금도 멀쩡히 아주 잘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호. 비결이 뭡니까? 혹시 조선인으로만 채용해서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나는 특정 민족을 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적절한 임금에, 적절한 노동환경을 제공했을 뿐입니다. 노동자들을 날로 부려먹지 않으면 됩니다.”
록펠러가 눈살을 찌푸리며 내가 한 말을 되새겼다.
“적절한 임금의 적절한 노동환경이라······.”
이 시대 자본가들은 아주 값싼 임금에 노동자들을 쥐어짜듯 굴려 가며 일을 시켰다.
마치 21세기 제3세계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어린이들이 일하는 운동화 공장처럼.
여기 미국에서도 똑같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다수의 어린 근로자들이 고단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지적하며 나의 기업윤리에 관해 이야기했다.
록펠러는 한동안 내 이야기를 경청하다가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왕자님께서는 장학 사업에도 굉장히 적극적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장학 사업은 3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지요.”
“본토에 사는 교민들을 구제하는 사업에도 적극적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맞습니다.”
“어찌 보면 대단하십니다. 아무리 같은 국적이라고 해도 비렁뱅이들을 구제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록펠러는 손가락을 튕기며 제 주장을 이어 갔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저 또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게으른 자는 당연히 굶어야 하고, 부지런한 자에게는 한 줌의 빵조각이라도 더 쥐여 줘야 하지 않습니까?”
맞다.
그게 자본주의 사상을 가진 자본가들의 기본 마인드였다.
“대표님 주장 또한 옳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다 순리대로만 돌아가지 않지요. 이것은 대표님께서도 더 잘 아실 것입니다.”
“······.”
“사회적 구조의 모순으로 부지런한 자 역시도 때론 배를 곯게 됩니다. 본인은 전체를 구제하기보단, 이런 사회적 모순을 겪고 있는 억울한 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돕고자 장학 사업과 재활 사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자선사업 취지를 설명하며 록펠러를 설득했다.
“대표님과 저 같은 이들은 배곯을 걱정 없이 교육을 받지만, 어떤 이들은 그날의 끼니를 걱정하며 어린 나이부터 일하지 않습니까? 전, 적어도 능력 있는 가난한 아이들에게만큼은 새로운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사실은, 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런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지만.
본래 사람은 자신의 본심을 남에게 전부 말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런 이중적인 인간이었기에, 좋은 면만 강조하며 나 스스로를 록펠러에게 홍보했다.
“흠······.”
이에 록펠러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왕자님과 이런 주제를 나누다 보니, 지난날 제 어머니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어머니요?”
“예. 돌아가신 모친께서도 이런 말씀을 이따금 하셨습니다.”
그 많은 재산을 다 들고 저승으로 들고 갈 것이냐며, 록펠러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슬슬 자선사업을 시작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록펠러는 일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들을 위해, 자신의 피 같은 돈을 사용하는 것을 아직도 꺼렸다.
“너무 큰 일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소액이라도 기부하며 지켜보시지요.”
“······.”
“대표님의 장학금으로 수혜자들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신다면, 생각이 좀 달라지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저는 그랬습니다.”
7인회 구성원 중 굳이 록펠러를 찾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본토인이라서?
돈이 제일 많아서?
미래의 권력인 석유 사업을 독점하고 있어서?
모두 다 맞다.
하지만 주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가 내년 그리고 내후년을 기점으로 ‘기업가’에서 ‘자선가’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록펠러는 올해로 69살이야. 원 역사에서는 앞으로 삼십 년이나 더 살지만······ 그리 장수할 줄 본인은 알았겠나?’
지금 시기의 평균 나이를 생각하면, 록펠러는 슬슬 자신이 죽었을 때 천국으로 갈지 아니면 지옥에 갈지를 걱정할 나이다.
‘다른 이들은 나와 경쟁자가 될 수도 있지만, 록펠러는 그렇지 않지.’
물론 록펠러 2세와는 경쟁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아버지의 말을 아주 잘 따르는 효자 녀석이었기에.
록펠러만 잘 구워삶으면 아들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선의 길을 슬쩍 열어 주는 거다. 원 역사보다 더 빠르게 돈 쓰는 맛을 보여 주자.’
나는 록펠러와 이야기를 나누며 장학 사업이 얼마나 뜻깊고 뿌듯한 사업인지 열심히 설명했다.
록펠러는 평소에도 장학 사업에 관해서는 생각이 좀 있었는지, 나의 말을 유심히 경청했다.
“아, 벌써 해가 졌군요. 왕자님과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이 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잠시 바깥을 본 록펠러는 이내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내게 꺼내기 시작했다.
“이틀 뒤에 있을 회동에서 나올 주제를 미리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아마도······ 지난번에 저희가 냈던 기금의 중간 정산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각각 천만 달러씩을 각출했다.
구제금융 기금으로 쓸 자금을 따로 걷은 것인데, 이를 슬슬 중간정산한다고 한다.
모두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기 때문이겠지.
“그 뒤에는 연방준비은행 설립에 관한 이야기가 거론될 것이며, 그다음에는 공화당 예비후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이번 회동의 핵심은 연방준비은행 설립 문제였다.
하지만 록펠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연방준비은행 설립 문제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별일 아니라고 취급하며, 내게 스쳐 가듯 그 주제를 언급했다.
“나를 이리 부른 것은 이 세 가지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상의하고 싶어서겠군.”
“예. 그렇습니다.”
응?
록펠러가 자꾸 오른쪽을 힐긋힐긋 바라본다.
아무도 없는 방인데.
꿀단지라도 숨겨 두었는지, 시선을 자꾸 주며 눈알을 뱅글거렸다.
“이 왕자님. 그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일이 하나 있는데 말입니다.”
“뭡니까?”
“일단 왕자님께 이걸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록펠러가 건넨 것은 한 여인의 사진이었다.
동양인은 아니고 서양인이었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사진 속 여성의 정체를 록펠러에게 물었다.
“누구입니까?”
록펠러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내 물음에 답했다.
“제 조카입니다. 이 왕자님.”
* * *
“조카요?”
“예. 제 동생의 막내 되는 아이니, 조카라 부르는 것이 맞지요.”
제임스 힐도 그렇고.
로스차일드 남자도 그렇고.
다들 나와 엮이려고 자꾸 결혼 동맹을 제안하네.
록펠러 또한 급했는지, 제 조카를 끌어들이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올해로 스물여섯이 되는 아이입니다. 왕자님의 배필로 딱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한번 소개하고자 하는데 말입니다.”
스물여섯.
현대에는 별로 늦은 나이가 아니지만, 이 시대 기준으로는 꽉 찬 나이다.
보통 스무 살에서 스물두 살 정도에 시집을 가니까.
여기서 내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다면 광속으로 결혼까지 골인할 터.
‘로스차일드와 힐, 와버그에게도 아직 답하지 않았는데······.’
앞선 세 세력에게는 차일피일 답을 미루며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무언가 살짝 아쉬워서였다.
“어떻습니까? 이 아이.”
“많이······ 예쁘군요.”
사진 속 여성은 대단한 미모를 자랑했다.
물론.
실물 역시 이대로 대단히 훌륭하리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포토샵이 없는 시대지만, 조명과 각도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니까.
더욱이 2D와 3D는 다르다.
그렇기에 나는 사진만으로 사람의 외모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다.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귀가 빨개지신 것을 보니 말입니다.”
“······.”
귀, 귀가 빨개졌나?
황급히 귀를 만졌다.
그러자 록펠러가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 영감이······.’
자꾸 들었다 놨다 하네.
경계하고 있는 내 속을 읽지 못했는지, 록펠러가 내게 한 제안을 했다.
“한번 인사라도 나누어 보시겠습니까?”
“인사요?”
“예. 옆방에서 조카 녀석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와.
이 능구렁이 보소.
허를 찔렸다.
7인회 회담 내용을 주제로 한창 토의할 줄 알았건만.
소개팅 장소였어?
“에델. 들어오거라.”
그의 부름에, 완숙한 여인이 록펠러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와······.
눈이 부시게 예쁘다.
뒤에서 후광이 비추었다.
“안녕하세요. 에델 제럴딘 록펠러라고 해요. 이강 왕자님.”
난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록펠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힐긋힐긋 쳐다보았다.
< 7인회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