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seon prince went to America and did not return RAW novel - Chapter (95)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95화(95/392)
< 거물과 거물의 만남 (3) >
나는 잭 마일로의 깜짝 제안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
만남을 피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후버의 광산 탐사 능력은 상당히 훌륭한 편이지. 괜히 백만장자가 됐겠어?’
무엇보다 후버는 원 역사에서 31대 미국 대통령이 된다.
그와 친분을 쌓는다면, 록펠러만큼이나 아주 든든한 후원자를 얻는 셈이다.
‘에델 록펠러가 나와 결혼하게 되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본래보다 일찍 지아니니 손에 들어갔으며, 시어도어 루스벨트 역시 3선에 도전하게 되었지. 하지만······ 역사의 큰 틀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당첨 확률이 아주 높은 복권이니, 신중히 다루어야 해.’
나는 재빨리 후버가 머무는 호텔로 발걸음을 옮기며 그와 접촉을 시도했다.
다행히도 후버는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 왕자님, 안녕하십니까?”
“반갑네. 너무 늦게 사람을 보냈다 보니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이야. 이리 흔쾌히 응대해 주니 고맙군.”
나는 어느 때보다 활짝 웃으며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영광이지요. 이 왕자님과 같이 유명하신 분과 언제 또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까?”
“하하. 그리 띄워 주니 쑥스럽구먼.”
“아! 제가 무례하게도 귀하신 분을 계속 서 계시게 했군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후버는 관례인양 내게 차를 한잔 대접한 후, 내가 건넨 문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왕자님. 이 문서 말입니다. 혹시, 마일로 대표께서 직접 작성한 것입니까?”
“아닐세. 여기 있는 테일러 대표가 만들었네.”
“아, 그랬군요. 어쩐지······.”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후버를 재차 쳐다보았다.
“왜 그러는가?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 것인가?”
“아닙니다. 처음 보는 문서 형식이라서 한번 여쭤보았습니다.”
“그래?”
“예.”
나는 슬쩍 팔짱을 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구체적으로 뭐가 다른가?”
“마일로 대표와 여러 차례 일을 함께했는데, 이렇게 세세하게 탐사 결과를 수치화한 것은 처음입니다. 가독성이 참으로 좋네요.”
후버의 칭찬에 앨버트 테일러의 안색이 밝아졌다.
뭐 하나 꼬투리 잡혀서 투자를 받지 못할까 한참 걱정하던 중에, 후버가 저리 띄워 주니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이다.
“그나저나, 여기 계신 테일러 대표님께서 이 보고서를 작성하셨다고요?”
“그렇네.”
후버는 앨버트 테일러의 이름을 잠시 되새김질하다가 이내 그에게 물었다.
“테일러 대표님.”
“예?”
“혹시 아버님 성함이 조지 테일러이신가요?”
“맞습니다. 혹시 제 아버님을 아십니까?”
“예. 잠깐이지만 함께 일했던 동료입니다.”
“오! 그런가?”
내가 대화에 끼어들며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후버는 자신의 과거 이력을 되새겼다.
“제가 청나라에서 일했을 때 조지와 한 육 개월 정도 함께 일했었습니다.”
“그래? 세상 참 신기하군. 이리 인연이 이어지다니 말이야.”
“그러게요.”
후버는 나와 테일러에게 한결 친근감을 느끼며 앨버트의 부친인 조지를 회상했다.
“황해 건너 조선에서 거대 금광 탐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에, 조지는 제가 있던 회사를 관두었는데 말이죠. 아마도 조지가 금광만을 전문적 탐사했기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후버는 과거 회상을 때려치우고, 다시금 제 손에 있는 문서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이내 내게 넘겼다.
“보고서의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는 가정 아래서 말하자면, 직산 금광은 아주 채산성이 높은 금광입니다. 세상에 잘 알려진 운산만큼은 못하지만, 그에 비견할 만큼 크나큰 수익을 안겨다 주겠네요.”
이제 막 30대 중반이 되어 가는 후버는 굉장히 열정으로 가득 차 보였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직산 금광 분석보고서를 해석했다.
“마일로 대표의 말로는 자네 역시 보헤미안 클럽의 회원이라던데 말이야.”
“아, 맞습니다. 이사 중 두 분이 저를 아주 좋게 봐 주셔서 우연히 그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은근히 같은 클럽 회원임을 어필했다.
대놓고 후버와 친해지고 싶다고 신호를 보냈는데, 후버 역시 같은 생각인지 한껏 목소리를 높이며 클럽 관련 이야기를 해 댔다.
“아! 맞다. 전에 한번 이 왕자님을 클럽에서 봤었는데 말입니다.”
“나를? 언제?”
“면접을 보러 오실 때, 대기실로 가는 그 찰나에 본 것 같았습니다.”
그때.
클럽 정문으로 한 무리에 백인이 들어왔는데 말이다.
그중 하나가 후버였나 보네.
“허허. 우리 구면이로군. 진즉 말하지, 왜 이때까지 조용히 있었는가?”
“저는 구면이지만, 이 왕자님께서는 제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니까요.”
“그래도 말을 하지.”
후버는 내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같이 온 앨버트.
그리고 한인 수행원들에게까지 굉장히 친절했다.
‘나에겐 아니더라도, 내 주변인에게 은근히 꼽주는 인간들이 즐비한데······ 이자는 다르군.’
허버트 후버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진보주의에 아주 광적인 찬양자였다.
원 역사에서도 오랫동안 핍박받았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참정권을 최초로 부여했던 이였다.
이 사실 하나만 봐도, 저기 남쪽 지방에 사는 민주당 인종차별주의자들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후버에게 호감을 느끼며, 들고 왔던 서류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아, 이것은 자네를 위한 고용계약서일세.”
후버가 냉큼 계약서를 건네받았다.
그러곤 중간에 있는 중요사항을 내 앞에서 소리 내 읽었다.
“직산 금광 채굴권을 인수하여 운영할 경우, 광산을 운영할 신탁회사의 지분 중 3%를 제게 양도해 주신다고요?”
“그렇네.”
후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물었다.
“조건이 너무 후한데요?”
“글쎄.”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의 말에 동의치 않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에게 제시한 여러 계약 조건 가운데 하나이니, 계약서를 끝까지 읽어 보게나.”
후버는 계속하여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희 삼촌께선 이유 없는 악의는 있다 했어도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거 무언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만.”
그 아들의 그 아버지인가?
통찰력이 대단하신 삼촌인가 보네.
‘그거 뇌물이야.’
미래에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자에게 주는 뇌물.
‘무엇보다 후버가 직산 광산 운영회사의 신탁 지분을 가지고 있어야만 일본 놈들이 수작을 못 부리지.’
1910년대 일본이 미국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며 이래저래 넘어가지만.
20년대 후반부터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미쳐 날뛰며 개쌍마이웨이의 길을 걷게 된다.
직산 광산을 운영하는 신탁회사가 내 회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최악의 경우에는 이를 강제로 빼앗을 수도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보험을 하나씩 들어 놓는 것이 좋겠지.
나만 혼자 독식하지 않고.
미국의 유명인들에게 관련 지분을 나누어 주는 것이 베스트일 거다.
개중 최고는 록펠러 같은 대부호나 후버 같은 최고위 정치인에게 나누어 주는 거고.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잘 포장해서 후버의 의구심을 달래야 하지 않을까?
나는 머릿속으로 괜찮은 변명을 생각하다가 이내 정리해서 말해 주었다.
“금융위기가 아직 안 끝난 상황이네. 모건도 현금을 아끼는 판국에, 나 역시 주머니 단속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탐사비를 일시에 주는 것보다 지분 공유를 나누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네.”
“그래도······.”
나는 후버에게 다가가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댔다.
“게다가 우린 같은 보헤미안 클럽 구성원이 아닌가?”
“······.”
“이리 돕고 살아야지.”
“······.”
“정 마음에 걸리면, 내가 힘들거나 필요할 때 자네가 한번 날 도와주게나.”
높은 자리에 오르면, 돈보다 좋은 인연이 더 중요해진다는 강의 아닌 강의를 후버 앞에서 했다.
이에 후버는 내 뜻을 이해했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내게 계약서 내용을 따지지 않았다.
“아! 자네의 지난 고용인이 금융위기 때 파산했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그놈 때문에 제 일정이 붕 떠서 이 먼 뉴욕까지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후버의 다음 일정을 물었다.
“그렇다는 말은······ 시간이 꽤 많이 남는다는 뜻이겠군.”
“예. 한 일 년 정도는 동아시아에 머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 그래?”
“왜 그러십니까?”
나는 다른 서류 하나를 꺼냈다.
여러 목록이 적혀 있는 문서였다.
“직산 광산 말고 조선과 남만주의 주요 광산을 좀 탐사했으면 하는데 말이야.”
“아······.”
“매장량 추정치와 채산성 위주로 살폈으면 좋겠군.”
뒷장에는 추가 고용계약서 또한 첨부되어 있었다.
후버는 이를 일일이 확인하곤, 이내 만족했는지 제 가슴을 퉁퉁 쳐 댔다.
“제게 맡겨만 주신다면 거짓 없이 탐사 보고서를 써 오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아닌 거짓 없는 탐사 보고서라······ 참 마음에 드는 답변만 하는군.”
나는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충, 할 일은 끝난 것 같았으니까.
“남은 것은 여기 있는 계약서들을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을 받고 공증받는 일 정도겠군.”
“예. 그렇겠네요.”
나는 슬쩍 내 곁에서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앨버트 테일러를 보며 다음 말을 했다.
“서두르세나. 테일러 대표가 아주 급해 보이는 것 같으니까.”
“아, 아닙니다.”
“아니긴. 직산 금광 채굴권이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갈까 걱정돼서 불안에 떨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리 말한 후, 명함첩을 꺼냈다.
계약을 검토할 변호사와 연락을 하기 위해서였다.
* * *
“뭐라? 휴업 중이다?”
“예. 유감스럽지만 그렇습니다.”
“아니, 왜?”
“안타깝게도 독감에 걸려 와병 중이라고 합니다.”
에라이.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이 왕자님. 제 전담 변호사도 출장 중이라서 지금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저, 저는 아는 변호사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테일러와 후버 역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재빨리 한 인물에게 연락을 취했다.
미래에 장인이 될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전하. 월리엄 록펠러 지사장님께서 사람을 보내 오셨습니다.”
“그래. 안으로 들라 하게.”
내 미래 장인의 비서는 내게 명함 하나를 건네며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카터 레드야드 & 밀번 회사라······.”
“예. 뉴욕에서도 알아주는 법률회사입니다. 이쪽으로 가시면 이 왕자님의 업무를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것입니다.”
“고맙네. 록펠러 지사장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해 주게.”
“예.”
어딜 가나 똑같겠지만, 미국은 유독 추천 제도가 발달한 나라다.
이는 아는 사람들끼리 해 먹는다는 뜻인데.
나 역시도 이 미국 문화에 익숙해서 그런지, 이런 추천 제도를 아주 잘 사용했다.
“아이고, 이 왕자님.”
미래 장인이 소개해 준 카터 레드야드 & 밀번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두 대표는 직접 나와서 나를 반겨 주었다.
“이쪽입니다. 이 왕자님.”
“아! 저희 직원들부터 소개하겠습니다.”
변호사는 직업 특성상 정·재계 인사들과 잦은 만남을 갖게 된다.
이번 기회에 전속 계약이라도 따고 싶은지, 두 대표 변호사는 내게 굽신거리며 자신의 법률회사 역량을 어필했다.
“아, 이 왕자님. 여기 있는 프랭클린 변호사는 이번에 막 입사한 신입이지만 아주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 루스벨트 대통령과 성을 공유하는 자라서 그런지, 머리가 아주 명석하답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말인가?”
“예. 이번에 새로 들어온 우리 변호사입니다. 혹시 아시는 자입니까?”
뭐야.
사람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내 옆에 후버가 있는데, 내 앞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있네?
‘31, 그리고 32······.’
무슨 비밀번호라도 읊는 것 같지만, 지금 내가 말한 숫자는 미국의 대통령들 순번을 말한다.
31대는 허버트 후버가.
32대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당선되었는데 말이다.
이 둘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재미난 장면이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혹시 불편하시면, 직원 소개는 이 정도만 할까요?”
대표 변호사 중 한 명이었던 밀번이 내게 작게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그의 호의를 거절했다.
‘이놈은 진짜잖아.’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네 번이나 대통령을 해 먹은 자니까.
나는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나는 이강이라고 하네.”
< 거물과 거물의 만남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