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RAW novel - chapter 178
악마가 아닌 자들은 하리의 불꽃에 안전했고, 악마이거나 타락자인 자들은 촘촘한 성력의 불꽃에 녹아내렸다.
성법의 미세 조절과 화염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하리였기에 가능한··· 성력 화염방사기.
“어때? 빠를 수밖에 없지?”
싱긋 웃는 하리의 미소에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했다.
“나 방금··· 참호전의 참상을 목격한 거 같아.”
“뭐랄까··· 불꽃의 성배기사들은 실내에서 무적인 거 아냐?”
이런 괴물들이 오십 명. 그중에서도 불카누스는 홀로 얼어붙은 대륙을 녹여버렸다는데, 참말인지는 모르겠다.
* * * *
극도로 공포에 질리면 우렁찬 비명이 아니라 절규 섞인 침묵이 나온다.
천소연은 그것이 그럴듯하다고 지금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퀘이는, 타락대공의 위치는 잘 모르겠다는 거죠?”
“그, 그렇, 그렇다아······.”
침을 질질 흘리며 무언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악마들과 타락자들.
그들은 조용히 절규하며 베아트리체의 질문에 대답했다.
‘폐하께선 여왕님을 호위하라 하셨지만···.’
과연, 이 마술사 여왕에게 호위라는 게 필요한 걸까?
천소연은 자신도 엄청나게 강해졌다 자부했다. 공식적인 랭크는 준S급. 하지만 잠재 포텐셜은 S급 이상임이 틀림없다고.
그런 그녀도 베아트리체 같은 초강자를 마주하면 강함이라는 정의가 달라지는 듯하다.
“소연 양.”
“예?”
“당신은 살육대공 아카샤가 원수였지요?”
“······네.”
살육대공 아카샤. 다른 이름으로는 방랑하는 마검.
사용자를 마검사로 전락하게 만드는 저주받은 마검의 본체.
천소연은 놈에게 아버지를 빼앗겼고, 마검사가 된 아버지의 손에 어머니와 가족 같았던 길드의 삼촌, 이모들을 잃었다.
복수를 위해 걸어온 길에서 기연이 있었고, 복수의 신을 만나 영혼을 저당 잡혔지만, 레온 덕에 아카샤의 영혼을 넘기는 것으로 복수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저는 당신이 참 부럽답니다. 훌륭하다고도 생각하고요.”
“예?”
“본디 대공급의 악마에게 복수한다는 건, 아니, 그 이전에 맞선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일이에요.”
레온이나 불카누스 같은 불합리의 극치인 존재들이 있어서 그렇지, 본디 필멸자들은 악마들에게 대적할 수 없다.
그들이 무한한 생명을 가진, 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베아트리체는 수없이 많은 악마들과 싸웠고, 죽이고 또 죽이고, 또 죽이고 또 죽여서 끝이 없을 때까지 죽여왔다.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잃었죠. 나의 백성, 나의 신하, 나의 형제와 자매.”
그 많은 것들을 잃고서도 복수는 꿈도 꾸지 못했다. 오히려 원수의 제안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녀의 평생의 한이었다.
“여왕님도··· 성공하실 거예요. 폐하가 계시니까요.”
“네, 정말이지 기연이에요.”
그래,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레온이라는 한 사람의 존재. 그 한 사람의 존재가 너무나도 웅대하기에 베아트리체도, 천소연도 복수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악마들의 숙적. 그를 따르고, 그에게 봉사하는 것만으로 불가능했던 복수를 실현할 수 있다.
“복수의 신과는 제가 계약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네요.”
“중계해드릴까요?”
“아뇨, 저는 영혼을 저당잡힐 수 없거든요.”
베아트리체의 목숨은, 그 영혼은 비단 그녀 한 명만의 것이 아니다.
타락의 정수가 심어진 채, 백 년의 타락을 반복해오던 그녀를 지키고자 했던 왕국의 대장군과 기사들을 위해서라도.
베아트리체 알리기에리 스페로는 온전한 그들의 유산으로 남아야만 한다.
“힘은 얻었으니······.”
스스로의 힘으로 복수를 해낸다면 그것만큼 기쁜 것이 없다.
두 사람이 객실을 연 순간이었다.
“오~ 이제 오셨군요.”
말끔한 정장차림의 미청년.
“······.”
얼굴도, 말투도, 목소리도 다르다.
하지만 특유의 비틀린 미소가, 내리깔아보는 듯한 시선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여왕이여, 나와 거래를 하자.]그 끔찍한 악의를 숨긴 낯을, 설령 얼굴이 바뀌고 모습이 변했다 해도 잊을 리가 없다.
[타락의 정수를 심고 백 년을 버텨낸다면, 이 세계를 침공하는 걸 멈추고 원래대로 돌려주마.]“소연 양.”
“네···!”
천소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범상치 않은 상대를 향해 돌진했다.
유사시를 위한 마술사의 전위 역할. 하지만 아리아나의 성검과 벤타시스의 마검을 쥔 그녀의 공격력은 가히 기사단장급이라 할 수 있다.
-까앙!
성마이검의 돌격을 막아내는 악마의 형상. 날카로운 두 손은 흉측한 이빨처럼 변형되어 있다.
“복수신의 성력입니까? 꽤 성가신 힘이죠.”
타락대공 퀘이의 가슴팍에서 무언가가 뛰쳐나왔다. 흉측한 아가리를 가진 촉수머리였다.
소연은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그것을 쳐냈으나 어디까지고 늘어져 가던 그것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소연의 배후를 노린다. 바로 그때──
대마도
십수 가닥의 괴물촉수들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대마도.
베아트리체의 손짓에 의해 머리가 날아간 촉수들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하하~ 대마법 수준의 마술을 무영창 수준의 고속영창으로 전개하다니. 여전하시군요, 마술사 여왕.”
머리를 잃고 쓰러진 촉수들이 다시 남자의 뱃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꾸득꾸득,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끔찍한 소리가 남자의 뱃속에서 부글거렸다.
“지혜와 탐구의 대악마들도 당신의 마술 실력은 호평하고 있답니다.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무엇을?”
“당신이 그대로 타락해 쾌락의 군주가 되었다면, 그 카라카엘에도 비견되는 대마법사가 됐을지도 모르는데요.”
“악마 따위가 되어서 이룩하는 경지 따위에 관심 없답니다.”
도시의 네온사인을 배경으로 악마가 웃는다.
그 웃음에서 전해지는 지독한 악의에 움츠러드는 소연.
살육과 파괴의 악마대공 아카샤가 순수한 폭력과 살의로 공포에 질리게 했다면, 저것은 밑바닥에서부터 끈적거리는 악의로 사람을 몰아넣었다.
‘악마 중에서는 전투력이 강한 계열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러나 이 압박감. 살의나 파괴의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기묘한 끈적거림이 너무나 불쾌하다.
당장이라도 핥는듯한 시선에 노출된 피부를 벅벅 긁어 버리고 싶다.
“소연 양.”
그때, 베아트리체의 차가운 손이 기분 좋게 소연의 뺨을 어루만졌다. 덕분에 정신을 차린 소연.
“성력을 끌어올리세요. 저것에게 파고들 틈을 주지 마세요.”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까? 고고한 정신의 마술사 여왕인 당신도 끝내 굴복했는데?”
“가능하고 말고요. 왜냐면······.”
-라이온 하트에···! 영광 있으라!!
“그분께서 함께하시니까.”
“······!?”
다음 순간, 섬뜩한 위압감을 느낀 퀘이가 뒤돌아보았다. 그가 곧바로 마주한 것은 객실의 창문 바깥. 전속력으로 하늘을 내달리는 천마와 성창을 든 사자심왕의 모습.
-꽈아아앙!
최강 돌격자의 돌격 앞에 객실째로 으스러진다. 미사일이라도 꽂힌 것 같은 굉음을 일으키며 건물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괜찮나, 두 사람.”
“덕분에요.”
레온은 두 여인을 챙기며 스탈리온의 위에서 성창에 묻은 핏덩이를 보았다.
확실한 손맛이 있었다. 대공급 악마라도 이만한 공격에 상처가 없을 수는 없다.
“이런··· 정말이지, 당신들은──”
“스탈리온!!”
레온은 타락대공의 간교한 혓바닥이 놀려지는 걸 기다리지 않았다.
베아트리체가 레온의 급습을 유도하기 위해 시간을 끌었다면, 레온은 문답무용 악은 지체 없이 멸하는 것이다.
마술사와 기사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레온의 파괴적인 돌격 앞에 퀘이는 도주하면서 입을 놀려야 했다.
“정정당당함은 기사도의 미덕 아니었는지?”
“하! 네놈은 짐승 사냥에도 매너를 지키느냐? 너희는 짐승이다. 아니, 짐승 이하다. 짓밟고 태워버려야 할 병균 덩어리지!”
병균과 대화 따윈 필요 없다. 그것이 라이온하트의 교리. 그 저돌적인 신성기사들 손에 악마들은 어떠한 계략도, 유혹도 시도하지 못하고 죽어나가야 했다.
“정말 당신들과는 상성이 안 좋아요.”
일찍이 라이온하트의 세계를 침공할 때도 그랬다. 일반 백성이나 관료는 어찌어찌 타락시켜도 기사나 귀족들은 어림도 없었다.
아주 운 좋게 말단 기사나 귀족을 추종자로 만들어도 악을 감지한 이단 심문관들이 곧장 쳐죽여버리니 원.
-카앙! 카캉!
“큭···!”
일방적으로 퀘이를 압박하는 레온. 전투 특화인 살육대공조차 레온과의 백병전을 감내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마도
────성마이검(聖魔二劍)
레온을 백업하는 두 사람. 가장 약한 천소연조차도 가히 S급에 성가신 이검 소유자. 퀘이는 금방 위기에 몰렸다.
“쿨럭···!”
요란한 충돌과 파괴 끝에 호텔 정원 한복판에 처박히는 퀘이. 그는 힘겹게 일어서며 고개를 긁적였다.
“강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거 상대도 안 되겠군요.”
쿵! 그대로 공중에서 내리찍는 성창돌격을 피해 바닥을 구르는 퀘이. 바로 그 순간, 대마술사의 마도가 퀘이를 붙잡았다.
“유언은 그뿐인가요? 아니, 쉽게 죽을 거라고는 생각지 마세요. 당신의 영혼이 지르는 비명을 만끽할 생각이니까요.”
마술사 여왕의 손에 잡힌 악마는 차라리 죽음을 바라게 된다고 한다.
그 섬뜩한 소문은 퀘이도 알고 있었다. 부활하는 악마에게 대적하기 위해 육신이 아닌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남기다니.
“이런··· 유언이라니. 왜 그렇게 생각하죠?”
“벗어날 구석이 있다고 보시나요?”
소란이 일어난 호텔 한가운데에 고층과 저층을 오가던 만신전의 기사들이, 한빛궁의 성전사들이 집결한다.
퇴로는 도저히 보이질 않았다.
“있기는 하지요. ‘여왕, 당신이 존재하는 한’.”
“뭐?”
무언가를 느낀 스탈리온이 지면을 박쳤다. 맹우의 반응에 호응해 성창을 겨누고 돌진하는 레온. 하지만 늦었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어?”
[이런···! 설마 본녀가 억누르고 있는데도!]죽음의 여신과 그 신관장 동시에 의문을 가졌다. 그녀의 심장에 심어졌던 ‘정수’의 마력이 팽창하더니──
“······.”
그곳은 끝없이 넓은 광야였다. 오직 모래와 열기만이 가득한 사막지대.
레온은 허기와 목마름을 느끼며 신들을 찾았다.
“아리아나시여.”
빛과 정의의 여신께 기도를 청했으나 응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포마시여.”
바다와 파도의 신에게 나타나기를 청하였으나 답하지 아니하였다.
“플르시여, 비체는 어디로?”
꿈과 죽음의 신에게 당신의 신관장을 물었으나 역시 대답이 없었다.
“······.”
신들과의 연결이 끊기고, 끝없는 허기와 목마름만이 느껴지는 광야.
그곳에서 레온은 고립되었다.
타락의 시험
텅 비고 아득히 넓은 들.
광야에서 레온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걷는 것뿐이었다.
“후우······.”
레온은 사자심장을 지닌 자다.
성배의 수호자이며 스스로 성력을 활성화하는 성자를 넘어선 반신.
결코 지치지 않는 완벽한 활력과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존재.
“후우······.”
그런 그가 숨을 고른다. 수십 년을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도 견뎌낼 수 있음에도 그는 허기와 갈증을 느끼고 있다.
그에게 있어선 실로 오랜만인, 오히려 일찍이 성배기사로 승화하여 오래도록 잊은 감각이다.
신들이 그를 사랑하매, 완벽한 육신과 고매한 정신을 가졌으니 그가 천하무적인 것은 바로 그 덕이었다.
어느덧 밤이 찾아온다.
뜨겁고 건조한 태양의 시간이 지나고 춥고 싸늘한 달의 시간이 시작된다.
광야에는 그 어떤 생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냥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그 고기를 취하고 피로 목마름을 해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광야에선 레온의 욕구를 해결해줄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낮이군.”
태양이 떠오르자 그는 다시 걷는다.
굶주림과 목마름을 자극하는 열사의 뜨거움 위로 어떤 대비도 없이 그저 걷는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기사의 미덕이 아닌 탓이다.
설령 무의미한 한 발자국이라 할지라도 레온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신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아득하기만 한 수행길조차 그는 묵묵히 걸었다. 라이온하트의 세계에서 신앙조차 없었던 시절, 그는 까마득한 허상의 미래를 향해 계속 걸었다.
신의 은혜가 닿지 않는 외딴곳을 찾아 괴물을 쓰러뜨리고, 오크들의 습격을 받는 촌락을 구하기 위해 단기필마로 돌진했다.
축축한 육포를 질겅거리면서 늪지대를 헤쳐나갔고, 구더기가 생긴 짐승의 죽은 피를 마시며 정글을 탐사했다.
그의 생애, 멈춰선 일은 없었고, 오직 앞으로.
[정말이지, 대단하군. 사십 일 밤낮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다니.]사악한 영혼의 그림자가 레온 앞에 나타났다. 그것이 무어라 더 말하려는 순간 레온의 검이 그를 베었다.
그림자는 흩어지며 이내 형상을 되찾았고 음산한 웃음소리가 광야 전체로 퍼졌다.
[사자심왕이여, 이곳에서 너는 나를 상처입힐 수 없다. 이곳은 너의 생애로도, 신들의 예지로도 다다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지.]레온은 멈추지 않고 그림자를 계속해서 베어 나갔다. 베이지 않으면 베일 때까지 벤다. 그것이 기사의 삶, 기사의 무훈, 기사가 승리로 나아가는 법.
수백 번, 수천 번에 이르러 꼬박 하루가 지날 때가 되어서야 레온은 숨을 골랐다.
무의미한 공격 속에서 흩어지고 뭉치기를 반복하던 악마조차 질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