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RAW novel - chapter 209
개인과 개인간의 거래, 기업과 기업 간의 거래, 국가간 국가간의 거래. 서로가 뒤섞이고 온갖 날림 계약서와 법 조항을 파고들어 구멍을 만들어두는 현대의 신용거래는 돈이 많을수록, 권력이 강할수록 아무렇지도 않게 휴지 쪼가리가 되고 만다.
하지만 드라고니아 교단의 중재를 받은 계약서라면?
신은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다.
신은 신도를 구분 지어 벌하지 않는다.
아무리 권력자라도, 아무리 재력가라도, 아무리 구멍을 만들어두고 도망칠 길을 열었어도.
신의 중재하에 계약을 어긴 자는 반드시 처벌받는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처벌일지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겠지.
-미쳤군. 당장 월 스트리트가 발작할 거야.
-하청기업을 내세운 꼼수도 차단할까?
-이건 혁명을 넘어서 시장의 판도를 바꿔버릴 거야. 모든 계약서의 신뢰도는 휴지 쪼가리가 되고 오직 드라고니아 교단의 계약서만을 원할 거라고.
이는 약자일수록 막대한 어드밴티지를 얻을 수밖에 없었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계약에서조차 서로를 강제로 믿게 만드는 계약서였다.
아무리 현대사회에서 불합리한 계약서나 계약 불이행에 민사소송 등이 제기된다 해도 재판을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질질 끌 수 있는 세상 아니던가.
금액이 크고 작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해자는 언제나 약자.
-이거 전세사기라도 저지르면 천벌 받아 뒤지겠네?
-기존 계약서들 다 휴지 쪼가리다 ㅋㅋㅋ 누가 민간 계약서 따윌 씀? 다 드라고니아 교단 계약서만 써댈걸.
-그것뿐만이 아니야. 임금 계약서, 보험 계약서, 하청 계약서··· 사회적 약자들이 고소도 못 하고 당할 수밖에 없던 모든 꼼수 계약들이 없어질 거야.
-드라고니아 교단 계약서 아니면 안 쓰면 됨 ㅋㅋㅋ
-사기꾼들 멸망ㅋㅋㅋㅋㅋㅋ
금융업계··· 아니, 인류가 지금껏 쌓아온 신용거래라는 이름의 경제를 뒤흔들어버리는 사상 초유의 신성이었다.
수수료가 고작 1%인 것도 수수료 부담 없이 막대한 신도들을 확보해 박리다매하기 위한 드라고니아의 계략.
금은보화를 사랑하며 탐욕스러운 용은 자신의 신성과 강령이 전세계 금융경제를 지배할 것임을 확신했다.
인간의 경제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절대준수계약의 힘은 막강한 힘을 발휘할 테니까.
* * * *
크리스마스 축하연은 고도의 정치적인 의도가 들어가 있었지만, 결국은 드라고니아라는 새로운 신성의 파격에 묻히고 말았다.
사람들은 만신전의 신도가 되어 드라고니아 신성의 계약중재를 받을 경우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안전성을 토론하기 시작했고, 크리스마스 전야의 특수성조차 뒤로하고 이것이 미칠 영향을 계산해야 했다.
공직자들과 세계 유수의 기업인들에게는 악몽 같은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카리나, 왕족의 품위라는 것이 있는데 역시 등을 노출한 건 좀 그렇지 않느냐. 지금이라도 이 아비의 정장을 걸치거라.”
레온은 그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신앙을 대리하면서도 관심 없다는 듯 제 딸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끈질기십니다.”
“아니, 너는 속도 없느냐? 불카누스 그 야만적인 것이 희롱을 하는데, 어찌 그걸 두고만 봐! 이 지구였으면 진작에 시선추행으로 잡혀갔을 것이야!”
“그딴 말도 안 되는 죄명이 있습니까?”
“요즘 세상엔 있다! 악마 놈들이 짐을 쳐다보면 참형에 처하듯이!”
“악마는 원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목을 따지 않습니까.”
시큰둥한 카리나의 대답에 레온은 다급해져 이리저리 말했다.
“왕족의 피부란 고귀한 것이다. 평민들에게 함부로 내보일 만한 것이 아니야. 네가 드라고니아 대공이지만, 이 사자심왕의 하나뿐인 왕녀가 아니냐.”
“······우리 세습제 왕국 아닙니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카리나. 그녀는 질린 표정으로 이 대화를 끊을 소재를 찾았고, 마침 의도치 않게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게 된 홉슨 대통령을 발견했다.
“홉슨 대통령, 영부인이 보이질 않으시는군.”
카리나는 화제를 돌리려 홉슨 대통령을 대화에 참가시켰다.
“아··· 부인은 지금 아이들과 함께 별장에 있습니다. 가족들과 보내기에는 워낙 큰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으로서 뒷수습을 해야지요.”
“그런가? 공직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나. 마땅히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이 의무인 것을.”
“하하하, 그래도 이리도 아름다우신 드라고니아 대공각하를 뵈어 손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아름다우십──”
홉슨은 카리나의 어깨 너머에서 심상치 않은 시선을 보내는 레온과 눈 마주치고는 다급히 변명하듯 말했다.
“제 아내와 아이들에게 대공과 폐하를 소개시켜드리고 싶군요. 제 나이가 올해로 육십셋입니다, 허허허허.”
저 아내도 있고, 애들도 있고, 나이도 들었음. 왜 그러세요.
“한창 때로군.”
응아냐. 한참 젊어. 안 믿어.
“하하하하··· 그나저나 사자심왕 폐하. 정말이지 멋지십니다. 양복이 정말 잘 어울리시는군요. 이거 부인 있는 남편들은 전부 경계하겠습니다 그려.”
적당히 유머러스하게 넘기려 센스를 발휘하는 홉슨 대통령. 거기에 카리나가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이다. 후계 문제가 있으니 밤놀이는 믿을만한 처녀와만 해야 할 것인데.”
‘여기서 그런 대답을?!’
왜 농담을 농담으로 안 넘기고 그러십니까? 홉슨 대통령이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냈지만, 카리나는 진심이었다.
“폐하, 이곳에서는 납치해서 비밀 결혼식을 여는 건 피하십시오. 이곳의 법도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납치?!’
“카, 카리나··· 짐은 여인을 납치해 거사를 치르는 호색한이 아니다! 네 어미 말고는 그런 적이 없어!”
‘했어?!’
“독수공방 이백 년 하셨으면 충분히 자격이 있으시지요. 하지만 주변에도 둘러보면 괜찮은 여인이 많으니 그쪽부터 건드려 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카리나!”
“저도 후계를 낳아야 하니 괜찮은 씨 종자 좀 구하는 게 뭐 어떻습니까.”
“그르륵···!”
레온은 반쯤 거품을 물며 드글드글 끓는 속을 애써 다스렸다.
이것이 정녕 삼백 살 먹은 아버지와 이백 살 먹은 딸의 대화인가. 홉슨 대통령은 사람이란 나이를 그렇게 먹어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가 싶었다.
“으음··· 제가 찾을 타이밍이 안 좋았나요?”
바로 그때, 백금빛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순백 드레스를 입은 미녀가 세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세 사람은 짧게, 눈에 띄지 않는 목례를 하며 그녀를 맞이했다. 아직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온 왕. 성공적으로 딸을 데려온 것을 축하드려요.”
운명의 여신 메리엘.
만신전이나 드라고니아처럼 다른 차원에서 온 여신.
“레온 왕. 당신을 향한 제 선물이 충분히 마음에 들었나요?”
그녀의 시선이 카리나를 향하더니 싱긋 미소 지었다.
* * * *
황금과 계약의 신 강령 선포와 축하연으로 떠들썩한 가운데, 레온은 여신 메리엘과 함께 독대하고 있었다.
“미국에 저를 불러들이신 건 당신이시지요.”
“딸의 운명과 관련된 것을 읽었다고 말이죠.”
레온 왕이 전력을 총동원해가며 이곳에 찾은 이유였다.
한국에서 만났던 운명의 여신은 자신의 운명을 확정 짓지 못했다.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돌아간 뒤, 두 번째로 연락했던 것이 바로 워싱턴 게이트에서 딸의 운명이 자신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던 것이다.
“운명은 모든 것을 말하면 쉽게 바뀌는 법입니다.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적절하죠.”
하여 메리엘은 최소한의 힌트만 주었을 뿐, 레온의 행동에 어떤 필요사항을 넣지 않았다. 실제로 레온은 카리나를 용화의 저주에서 구해냈고 자신의 딸과 해후했다.
“단지 그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눈치채셨나요?”
싱긋 웃는 메리엘에게 답한 것은 레온이 아니라 그 배후의 신성이다.
[나의 기사는 누구보다도 신성과 가까운 존재다. 그에게 신성과 관련된 일을 숨길 순 없어.]아리아나 여신의 말에 메리엘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곤 여유를 보였다.
“맞아요. 육신이라는 껍데기에 메인 나의 격으로는 레온 왕 정도 되는 자에 관여할 수 없지요. 하지만, 나처럼 영락한 존재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메리엘은 레온의 운명을 읽었으나 관여할 수 없었다. 그녀 자신의 격이 떨어진 것도 있지만, 반대로 레온의 격이 너무나 높은 것도 있다.
하여 레온이라는 거대한 운명의 줄기에서 파생되는 가지라면 개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시험해본 것이다.
“카리나 드라고니아. 저는 레온 왕으로부터 그 아이의 운명을 읽었고, ‘개입’할 수 있었어요.”
다시 말해.
“워싱턴에 흑색 게이트가 발생한 건 제가 개입한 운명에 의해서죠. 게이트를 의도한 건 아니지만요.”
인류의 재앙과도 같은 흑색 게이트 소환의 배후에 자신이 있음을 시인했다.
“아, 이건 오프 더 레코드로 부탁해요. 미 정부가 치를 떨 이야기니까요.”
“신성의 말씀을 유출할 만큼 부도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문은 있군요.”
“무엇이든지 대답해드릴게요.”
“미 정부와는 오랜 동맹관계가 아닙니까. 여신께서는 그들을 배신한 것으로도 비칠 수 있습니다.”
흑색 게이트는 그 발생과 동시에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준다.
나라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어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패닉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비록 전세계에 동맹 헌터들을 불러들일 정도로 미국이 외교를 잘 구축해둔 것은 있지만, 그들을 불러들이는 것도 결코 공짜가 아니다.
이 사실이 외부로 유출된다면 미 정부는 메리엘 여신에게 뼈저리는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흑색 게이트가 소환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뭐, 이런 건 거짓말이겠죠.”
메리엘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자심왕을 바라봤다. 그 존재가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듯 호의를 숨기지 않으며.
“저는 레온 왕과 만신전의 신들보다 더 빨리 지구에 도착했어요. 제가 그간 느낀 것을 말해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이 지구의 아이들은, 방종하고 타락했어요. 레온 왕과 만신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요.”
여신의 목소리에 차가운 냉기가 감돈다. 그것은 분노나 증오가 아닌, 안타까움과 동정이었다.
“이 지구의 역사는 신의 이름으로 동족을 학살하고 박해하지요. 그 숱한 전쟁의 역사를 합해도 신의 이름으로 죽은 이들이 훨씬 많을 거예요.”
“지구에는 수많은 신의 이름이 있으나 그들은 거짓되었고 실존한다면 터무니없는 악신이에요. 제 아이를 인신공양하는 시험을 내리고, 마음에 안 든다 하여 온 세상을 물로 가득 채우죠.”
“문명화가 덜 된 지역은 어떤가요?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나라를 다스리면서 누구보다도 악마 같은 행위로 제 신의 이름을 더럽혀요.”
실재하지 않는 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신의 일화.
세계가 악마의 침공을 맞닥뜨렸는데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신.
이야기 속 전지전능한 신들은 이 지구에서 그 어떤 권능도 발휘하지 않는다.
“제가 수년 동안 이 지구에 있으면서 미 정부의 청탁을 들어준 걸 아시지요? 그들이 가장 바란 게 무엇인지 아나요?”
“······.”
“게이트의 방비? 악마와 마정석에 대한 진실? 세계평화쯤 되면 고위층 중 아무도 바라지 않는 모양이더군요.”
메리엘 여신은 그간 자신의 훌륭한 비즈니스 상대가 되어온 미국의 고위층들에게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분노나 증오는 아니었으되 한심함만큼은 충분할 정도로 전해졌다.
“더 많은 돈의 기회, 패권국이 되기 위한 리스크 감소. 적대국의 불운. 캐치 프레이즈를 인용하자면 미국을 더욱 위대하게.”
실망하고 또 실망한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라는 생명의 본질임을 여신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이 나타났지요, 레온 왕.”
메리엘 여신의 시선이 똑바로 레온을 향한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신들의 대리인이자, 마땅한 자격을 갖춘 인간의 왕.`
“마땅한 질서를 세울 수 있는 당신의 존재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동맹과의 거래보다 중요하다고, 저는 그리 판단했답니다.”
그를 위해선 미국을 등지는 한이 있더라도 상관없다고, 영락한 여신은 말했다.
돌아온 탕아
메리엘은 지구의 문명을 세워온 인간들의 방종과 그들이 믿는 무의미한 신앙을 언급했다.
이야기 속 전지전능한 신과 다르게 만신전의 신들은, 메리엘과 같은 이계의 신들은 전지하지 않되 자비롭고 전능하지 않되 행동한다.
그렇다면.
마땅한 신앙의 주체는 자신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오래가지 않아 레온 왕이 한국과 아시아 방면을 장악할 거라 여기더군요. 하지만 전 좀 더 크게 보고 있어요.”
만신전은 곧 세계를 장악한다.
“빠짐없이, 라는 건 아니겠죠. 이 세계에는 그릇된 신앙을 가진 광신도들이 많으니까요. 그쪽 교통정리가 좀 필요하긴 하겠지만, 전부 없애지는 못할 거예요.”
“무력에 의한 개종은 라이온하트의 총의가 아닙니다.”
“하지만 선제공격 당하면 반격은 반드시 하는 주의죠? 권위가 깎여나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던데요.”
그 말이 맞았다.
라이온하트는 제국이라는 존재를 윤허할 정도로 같은 인간 상대로는 관대한 편이다.
불신 또한 인간의 선택. 그들이 실재하는 신들을 모욕하지만 않는다면, 굳이 믿음을 강요하진 않는다.
하지만.
불신을 넘어서 공격성을 보인다면,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은 기꺼이 그 검을 겨누었다.
“시대가 바뀔 거예요.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당신은 반드시 기존의 기득권에게 도전받겠죠. 황금과 계약의 신이라는 신성을 만신전에 받기로 했을 때부터 짐작했을 텐데요?”
황금과 계약의 신 드라고니아.
용의 탐욕과 박리다매라는 철저하게 현대 자본사회를 잠식하기 위한 드라고니아의 의도를 레온은 모르지 않았고 신들도 알고 있었다.
메리엘은 이미 레온이 세상을 잠식하기로 작정했음을 짐작했다.
‘역시 신성의 지혜를 속여 넘길 수는 없겠군요.’
[그래, 하지만 이 여신은 자신의 동맹에게 이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그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운명의 여신이시여, 당신께서 만신전에 한 자리를 원하신다면 신들께서는 기꺼이 받아들이신다고 하십니다.”
그 말에 메리엘은 말없이 웃어 보였다.
비록 인간들과 비즈니스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는 하나 그녀는 엄연한 신성. 영겁의 존재에게 찰나의 거래는 불분명한 것이다.
메리엘은 싱긋 미소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바쁜 이를 제가 오래 붙잡았군요. 이만 일 보시지요.”
레온은 일어나는 메리엘과 따라 일어나 그녀의 손등에 경의의 입맞춤을 하였다.
“운명의 여신께서 만신전에 귀의하실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후훗··· 저도 레온 왕처럼 훌륭한 대리인을 얻는 날이 기대되네요.”
-펑! 퍼엉! 펑!
바깥에서는 한창 화려함을 꽃피우는 불꽃놀이가 퍼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맺어진 암묵적인 밀약을 감추듯이 화려하게 불꽃이 퍼져나갔다.
* * * *
크리스마스 축하연의 피날레인 불꽃놀이가 끝나고 만신전은 자연스레 한자리에 모였다.
마술사 여왕 베아트리체와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 야크트 스피너, 전쟁과 불꽃의 성배기사 불카누스와 불타는 검 성배 기사단.
천소연 기사단장과 두 신의 신녀인 한하리를 비롯한 나주 기사단.
그리고 만신전의 대이동에 자연스럽게 따라나선 호기심 많은 이들까지.
-끼룩. 공정단계 마무리. 최종공정 진행 바람.
야피가 다가와 보고하자 레온은 만신전이 원형으로 둘러싼 가운데에 벼와 돌덩이들이 쌓이는 모습을 확인했다.
한국 나주에서 공수해온 축복받은 벼와 북아메리카 중서부 대평원에서 자라난 축복받은 옥수수와 밀까지.
그 양이 족히 수십 톤에 달하였으며 공물처럼 쌓이는 제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수백 구의 병장기를 제작할 만한 별철들, 끼끼룩족이 바다에서 캐온 진주와 산호초들. 산더미처럼 쌓인 황금들.
그것들은 틀림없이 세상의 귀한 것들이나 신들이 이를 축복하고 수확하기를 허락하였기에 더욱 귀하였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땅이 마치 라이온하트 영광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마치 그 시대를 재현하려는 것처럼.
레온은 그 한가운데로 가 온갖 귀한 것들로 둘러싸인 돌들을 보았다.
카리나가, 드라고니아 대공이 이백 년 동안 간직해온, 자신을 따라온 자들을 위해 짊어진 책무.
그들의 영혼을 위해 카리나는 스스로의 영혼과 육신까지 용에게 내어줬다.
그것이 결코 무가치한 일이 아님을, 귀족으로서, 대공으로서, 왕족으로서 마땅히 영광된 의무임을 알기에 레온은 이들을 위해 희생된 딸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공각하··· 아니, 도련님, 제 손자인 델보스케입니다. 이 아이가 카리나 아가씨를 보필할 겁니다.」
대대로 대공가를 섬겨온 집사가 있었다.
「감축드리옵니다, 이 가스파르. 목숨을 다해 카리나 대공각하를 모실 것입니다.」
전장에서 함께 싸웠던 북부의 기사가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