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15)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116화(116/141)
제116화. 기말 평가 (6)
‘그래, 이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사람이 아니지.’
나는 거미줄에 묶인 채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 몸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우리 파티가 아무리 후보생이라 생각할 수 없는 실력자들만 모인 파티라고 해도, 상대는 그 엘리샤 볼드윈이다.
‘그대로 밀리고 끝났으면 좀 실망했을 거야.’
나는 거미줄에 묶인 우리 파티를 느긋이 걸어오는 엘리샤 교수를 바라봤다.
보랏빛 눈동자를 길게 가로지른 검은 동공.
마치 파충류의 눈을 연상케 하는 그 눈동자는 그녀가 ‘통찰의 가호’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엘리샤 교수님이 가호까지 꺼내 들었으니.’
나도 꼭꼭 숨겨둔 밑천을 조금 드러낼 타이밍이었다.
“쓰읍.”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심장 속 깊은 곳 잠들어 있는 ‘태초의 불’의 힘을 끌어올린다.
“피어라.”
화르르륵!
내 몸을 태우며 타오르는 잿빛 불꽃.
몸을 휘감고 있던 거미줄이 불에 녹아 사라졌다.
“호오.”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날 바라보는 엘리샤 교수.
그런 그녀를 향해.
쿠웅!
거칠게 발을 박차며 돌진했다.
“역시, 데일 후보생은 늘 나를 놀라게 만드는군.”
엘리샤 교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튕겼다.
피이이이잉!
그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수십 가닥의 은사가 서로 뒤엉키더니 날카로운 송곳 형태가 되어 날 노렸다.
‘잿불검 제2형.’
화인(火刃).
잿불로 이뤄진 칼날이 쏘아지는 송곳을 잘라냈다.
조각조각 흩어진 실 가닥 사이로 몸을 던지며 엘리샤 교수에게 바짝 접근했다.
“좋군!”
엘리샤 교수는 뒤로 넘어지듯 거리를 벌리며 양팔을 교차했다.
카드드득!
은사가 바닥에 깊게 파고들더니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마치 땅 밑에 매장해 둔 포탄이 터진 것처럼 은사를 따라 흙더미가 솟구쳐 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 톤에 달하는 흙더미의 해일이 날 덮쳤다.
“쓰읍.”
짧게 숨을 들이쉬며 오른발을 뒤로 당겼다.
마력을 한 점에 집중해 거세게 발을 휘둘렀다.
베럴드 무투술.
천둥 차기.
콰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흙더미의 해일이 터져 나갔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엘리샤 교수는?’
고개를 돌리자 흙먼지 너머로 거뭇한 사람 형체가 보였다.
반사적으로 그곳을 향해 검을 내질렀을 때.
촤르르르륵!
“음?”
거뭇한 사람 형체가 넓게 펼쳐지며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몸을 휘감았다.
‘실을 뭉쳐서 사람 형체처럼 만든 건가.’
몸을 휘감은 거미줄을 보며 눈을 찌푸리고 있을 때.
“끝이다.”
반대편에서 나타난 엘리샤 교수가 거미줄에 묶인 날 향해 은사를 쏘아 냈다.
그때.
“으아아아아아아!”
“……!”
“내, 내게도 역할이 있다고 했어!”
전투 내내 구석에 숨어 몸을 벌벌 떨고 있던 알버트가 쏘아지는 은사를 향해 몸을 던졌다.
애초에 알버트 자체를 ‘전력 외’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던 엘리샤 교수는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눈을 크게 떴다.
“크읏!”
만약 진짜 적이었다면 그대로 은사에 휩쓸리도록 놔뒀겠지만, 상대는 어디까지나 후보생이었다.
그것도 이곳에 있는 다른 후보생들과 비교해 훨씬 수준 낮은.
“흐읍!”
엘리샤 교수는 다급하게 은사 안에 깃든 마력을 거둬들였다.
탄환처럼 빠르게 쏘아지고 있던 은사가 힘을 잃고 하늘하늘 바닥에 떨어졌다.
“나이스 알버트!”
나는 잿불을 일으켜 몸을 묶은 은사를 불태우며 엘리샤 교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압!”
마력을 강제로 되돌린 충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엘리샤 교수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찰나.
삐빅! 삐비비비빅!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알람 소리.
“…시간이 다 된 것 같군.”
엘리샤 교수가 낮은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설마 마지막에 이런 추태를 보이게 될 줄이야.”
알버트를 돌아보며 피식 웃음을 삼키는 엘리샤 교수.
“수고했다.”
엘리샤 교수가 딱, 손을 튕기자 유렌과 카밀라, 아이리스를 묶고 있던 거미줄이 스르륵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럼….”
“시험 통과다.”
가슴께에 명찰처럼 달고 있던 다이아 증표를 내게 건네주는 엘리샤 교수.
“와, 와아! 데, 데일! 다이아 증표야 다이아 증표!”
알버트는 큰소리로 호들갑을 떨며 펄쩍 뛰어올랐다.
“끄응.”
“으… 뭔가 석연찮네요.”
“뭐, 그래도 1등 확정이잖아 이제.”
뒤늦게 거미줄에서 풀려난 카밀라와 아이리스, 유렌도 지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다들 훌륭했다. 솔직히 후보생 파티라고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더군.”
엘리샤 교수는 우리를 돌아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유렌 후보생.”
“예?”
“과연 ‘태양의 검사’의 후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의 실력이었다. 다만.”
팔짱을 낀 채 가늘게 눈을 뜨는 엘리샤 교수.
“지닌 마력을 아직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더군.”
“읏….”
“유렌 후보생의 마력량은 나조차 뛰어넘을 정도로 막대하다. 조금 더 마력을 활용하는 법을 익히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
“예, 조언 감사합니다.”
엘리샤 교수를 향해 꾸벅 머리를 숙이는 유렌.
“다음으로는 카밀라 후보생.”
“예, 교수님.”
“카밀라 후보생은 지나치게 검이 정직하더군. 조금 더 기교를 익혀 보는 것도 좋을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깍듯이 허릴 숙이는 카밀라를 뒤로하고 엘리샤 교수는 아이리스에게 다가갔다.
“전투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축복을 걸어 주고, 중간중간 보호 마법으로 서포트 해 주는 센스는 좋았다.”
“네.”
“하지만, 파티에서 지원 계열은 우선적으로 타겟이 될 확률이 높으니 좀 더 몸을 사리는 법을 익히는 게 좋을 거다.”
“새겨들을게요.”
아이리스는 공손히 손을 모으며 머릴 숙였다.
“그리고 알버트 후보생.”
“예, 옙!”
“마지막에 멋진 결단력이었다. 한 방 먹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알버트에게 당한 걸 떠올리는지 쓰게 웃는 엘리샤 교수.
“가, 감사합니다!”
“다만, 만약 실전이었다면 자네 목숨은 없었을 거란 건 알아 둬라.”
“히, 히익!”
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떠는 알버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리샤 교수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데일 후보생. 잠깐 따로 얘기할 수 있나?”
“아, 예. 물론이죠.”
“따라와라.”
엘리샤 교수는 전투의 여파로 인해 무너져 내린 암벽 뒤로 날 끌고 갔다.
“무슨 피드백을 해 주시려고 따로 얘기까지 하시려는 겁니까?”
“흐음. 피드백이라….”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 엘리샤 교수.
“내가 자네에게 피드백해 줄 수준은 아닌 것 같군.”
“예?”
“데일 후보생. 이번 시험에서 자네의 전력을 다 쓴 건가?”
“그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리자 엘리샤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더 숨기고 있는 게 있었군.”
그녀의 말마따나.
난 이번 시험에서 내가 지닌 밑천을 모두 드러내지는 않았다.
마검의 힘은 물론, ‘점화’조차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딱히 일부러 숨긴 건 아닙니다. 쓸 기회가 없었을 뿐이죠.”
시험의 내용은 5분간 엘리샤 교수와의 싸움에서 버티는 것이다.
굳이 싸워 이길 필요도 없는데 밑천을 다 까발리며 전력을 다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만약 전력을 다했으면….’
엘리샤 교수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자,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쓸 기회가 없었다, 라… 정말 그게 이유 전부인가?”
“…….”
“흐음.”
엘리샤 교수가 얼굴을 가까이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혹시 자네가 전력을 다하면 내가 다칠 게 걱정돼서 그런 건가?”
“…….”
끄응.
빌어먹을 통찰의 가호.
“후, 후후! 하하하!”
엘리샤 교수가 배를 붙잡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내 발칙한 생각이 가소로워서 웃는 건 아닐 것이다.
내가 전력을 다하면 본인이 이길 수 없을 거라는 건, 통찰의 가호를 지닌 엘리샤 교수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자네 대체… 정체가 뭐지?”
엘리샤 교수는 어깨를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껏 재능이 넘치는 후보생은 많이 봐 왔다. 교수보다 강한 후보생? 드물지만 없던 건 아니지.”
하지만.
“데일 후보생처럼 터무니없이 강했던 후보생은 없었다. 500년 역사상 단 한 번도.”
이레귤러라고 넘어가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5살 꼬맹이가 고등 수학을 풀면 천재 소리를 듣지만, 세계 7대 수학 난제를 풀어 버리면 괴물 소리를 듣게 되듯.
데일은 천재가 아닌 괴물이었다.
그것도 이해와 상식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수준의.
“글쎄요.”
나는 내 어깨를 붙잡은 엘리샤 교수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껏 역사상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한다는 이유가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자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엘리샤 교수의 손을 천천히 어깨에서 떼어 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굳게 입을 다문 채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엘리샤 교수.
“후우.”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떡잎에 침을 발라 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미 다 자란 나무였군.”
그것도 자신의 머리 위에 그늘이 드리워질 정도로 큰 나무.
“그래도 잊지 마라.”
엘리샤 교수가 씩 웃으며 내 입술을 검지로 살짝 눌렀다.
“떡잎이었건 다 자란 나무였건. 침을 발라 둔 건 똑같다는 걸.”
“…명심하죠.”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는 엘리샤 교수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삼켰다.
“어쨌든 시험은 다 끝났으니 슬슬 돌아가지.”
“예.”
“후후. 그나저나 데일 후보생은 이대로 시험이 끝나도 괜찮나?”
“예? 왜요?”
“여기서 1등을 하면 말석에서 벗어나게 될 텐데… 그러면 자네가 곤란해지는 거 아닌가?”
“곤란해지긴 누가 곤란해져요?”
“음? 일부러 성적을 낮게 받고 있던 게 아니었나?”
“…….”
아니.
원해서 꼴찌하고 있던 거 아니라고.
“흐음. 당연히 일부러 말석 자릴 고집한 줄 알았는데….”
“하아. 그런 거 아닙니다.”
“뭐,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쨌든, 그럼 미리 말석 탈출 축하하네.”
엘리샤 교수는 피식 웃으며 파티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그러고 보니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음? 뭐지?”
“저거 문 앞에 써 둔 수수께끼들… 엘리샤 교수님 아이디어였습니까?”
“후후. 재밌지 않았나?”
“그게 뭐가 재밌습니까?”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입구 쪽에 수호 골렘들 박살 내서 힌트를 주신 것도 그렇고… 교수님 센스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음?”
이어지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리샤 교수.
“수호 골렘들을 박살 내서 힌트를 줬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예? 이곳 비밀 공간 입구 앞에 수십 대의 수호 골렘들이 박살 나 있던 거 교수님이 그런 거 아니었습니까?”
“수호 골렘이 한 대에 얼마인데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하나?”
엘리샤 교수가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이 한 게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누가 수십 대나 되는 골렘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박살 냈단 말인가?
눈을 좁히며 생각을 이어 가고 있을 때.
쿠르르르르르르릉!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뒤흔들리는 지하실.
끈적한 붉은 액체가 주변 공간을 뒤덮었다.
“이건… 결계?”
“데, 데일 씨! 괜찮으신가요?!”
멀리 떨어져 있던 파티원들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엘리샤 교수님 이거… 설마 교수님이 준비하신 깜짝 이벤트는 아니겠죠?”
“…아니다.”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엘리샤 교수.
그녀는 손끝에서 은사를 뽑아내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때.
저벅, 저벅.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발소리.
고개를 돌리자 입구 쪽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안녕! 네가 데일이구나?”
소년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