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16)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117화(117/141)
제117화. 기말 평가 (7)
검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
이제 막 10살 정도 됐을까 싶은 어린 외모와 가슴께에 간신히 올 법한 작은 키를 지닌 소년.
하지만.
“…너는.”
광기에 번들거리는 붉은 눈동자.
한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 주변을 휘어잡는 압도적인 존재감.
굳이 정체를 밝히지 않아도, 눈앞의 소년이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헤헤! 난 세토라고 해!”
소년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소년의 밝힌 이름을 들은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광기의 대주교, 세토.’
수만에 달하는 마인의 정점에 서 있는 여섯 마인.
그중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괴물이 눈앞에 있었다.
“…다들 피해라!”
엘리샤 교수가 앞으로 나서며 양팔을 교차했다.
촤아아아악!
손끝에서 뿜어지는 수백 가닥의 은사.
아까 시험 중에는 보이지 않았던 보랏빛 오러가 수백 가닥의 은사 하나하나에 모두 맺혀 있었다.
수백 가닥의 은사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허공에서 뒤얽히며 세토를 노렸다.
그리고.
“헤에.”
소년은 활짝 웃으며 한 걸음 내디뎠다.
쿠르르르르릉!
거칠게 뒤흔들리는 내부.
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핏빛 가시가 사납게 덮쳐드는 수백 가닥의 은사를 모조리 잘라 냈다.
“네가 ‘흉안의 거미’구나?”
엘리샤 교수를 바라보며 가늘게 눈을 뜨는 세토.
“흐응.”
딱.
그가 가볍게 손을 튕기자.
콰르르르르르륵!
“크윽!”
주변을 뒤덮은 붉은 점액질에서 흘러나온 짙은 핏빛 연무가 엘리샤 교수의 몸을 휘감았다.
엘리샤 교수는 다급히 몸을 뒤틀었지만, 그녀의 몸을 휘감은 핏빛 연무를 떨쳐 내지는 못했다.
“너한테는 관심 없어.”
눈 깜짝할 사이 엘리샤 교수를 제압한 세토는 그녀를 지나쳐 내게 다가왔다.
그는 별처럼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내게 몸을 기울였다.
“난 데일을 만나러 온 거거든.”
“…….”
날 만나러 왔다, 라.
‘왜?’
적어도 이제까지 광기의 대주교와 엮일 만한 일을 한 적은 없었다.
대체 어쩌다가 광기의 대주교와 엮이게 됐는지 생각을 이어 가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유를 따질 때가 아니지.’
이유야 어쨌건 광기의 대주교는 나를 찾아왔고.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다.
“크읏… 데일! 어서 도망쳐라!”
귓가에 들리는 엘리샤 교수의 다급한 외침.
나는 핏빛 연무에 묶인 엘리샤 교수를 돌아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도망치긴.’
상대는 ‘그’ 광기의 대주교다.
순수한 무력으로만 따지면 여섯 대주교 중에서 서열 2위.
같은 대주교조차 그를 피해 다닌다는 괴물 중의 괴물.
그런 괴물을 상대로 쉽게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파티원들을 돌아봤다.
“크읏…!”
“아, 으….”
“숨이… 안, 쉬어져.”
세토에게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기운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유렌과 아이리스, 카밀라.
그나마 그중에선 유렌의 상태가 제일 나아 보였지만, 그것도 낫다 뿐이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알버트는… 벌써 기절했나.’
입에 거품을 문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알버트를 내려다보며 까득 이를 갈았다.
설사 도망칠 수 있다고 해도, 동료들을 여기 두고 홀로 도망칠 수는 없었다.
나는 광기의 대주교를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길 수 있을까.’
광기의 대주교와 전투를 머릿속에 그려 냈다.
전생에 그와 싸운 적은 없었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질리도록 들었다.
‘뇌신 라오넬 류가 광기의 대주교 손에 죽었지.’
아무리 내가 최근 급격히 성장했다고 해도 현 영웅 랭킹 3위인 뇌신과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하물며 그를 죽인 광기의 대주교라면 더더욱.
‘점화를 쓰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어도 이기는 건 불가능해.’
만약 아슈타로트와 싸웠을 때처럼 ‘화신’ 상태가 된다면 광기의 대주교고 나발이고 가볍게 짓밟을 수 있겠지만.
‘그건 내가 원한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때 어떻게 화신 상태가 됐는지 나조차 모르는데 그 가능성에 동료들의 목숨을 베팅할 순 없었다.
‘어떻게든 싸우지 않고 넘어갈 방법을 찾아야 해.’
다른 마인이었다면 이런 어설픈 생각을 하지도 않았겠지만.
상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광기의 대주교였다.
어쩌면.
싸우지 않고 이 상황을 넘어갈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게 무슨 볼일이지?”
나는 파티원들의 앞을 가로막듯 서며 세토를 바라봤다.
“히히, 널 찾아온 이유는 말이야….”
세토는 혀를 길게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그냥 궁금해서 찾아와 봤어.”
“…궁금했다고?”
“응! 메피스토한테 네 얘기를 듣고 엄~청 궁금했거든! 과연 네가 어떤 인간일지!”
“…….”
고작 그런 이유로 영웅 학교 시험장에 침입했단 말인가.
나는 싱글벙글 미소 짓는 세토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런데….”
세토는 고개를 빼꼼 옆으로 내밀어 내 뒤에 있는 파티원들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대했던 거랑 달리 좀 실망스럽네.”
짜게 식은 표정을 짓는 세토.
“너도 다른 놈들이랑 똑같구나?”
“…….”
“동료를 지키느니~ 구하느니~ 하여간 영웅이란 것들은 하나같이 다 재미없단 말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세토.
“뭐, 그렇기 때문에 ‘진짜 모습’이 더 기대되는 것도 있지만.”
“진짜 모습?”
“응.”
세토는 붉은 눈을 빛내며 활짝 웃었다.
“벼랑 끝에 섰을 때 보여 주는 진짜 얼굴.”
흥분에 찬 듯 달뜬 숨을 내쉬며 말을 있는다.
“인간은 말이야… 아무리 좋게 자길 포장해도 결국 죽음 앞에서는 솔직해지기 마련이거든.”
거짓된 정의도.
어설픈 신념도.
구차한 도덕도.
모두 사라지는 그 순간.
“나는 그 순간의 네 얼굴이 보고 싶어, 데일.”
세토는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는 게임을 하나 제안하려고 해!”
“게임?”
“응!”
세토가 품속에서 무언갈 꺼냈다.
기역 자의 형태로 꺾인 자그마한 쇳덩이.
“…총?”
“아, 그러고 보니 너 공화국인이었지? 히히. 공화국인이면 총도 알고 있겠네.”
과거 공화국에서 쓰였다가 마력을 담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장된 무기였다.
“이건 리볼버라고 하는 총이야! 자, 요기 동그란 구멍 보이지? 이 안에 총알을 넣고 쏘면 빵! 하고 총알이 발사되는 거지!”
어린아이가 제 장난감을 자랑하는 것처럼 들뜬 목소리로 외치는 세토.
“자, 봐 봐.”
세토는 리볼버 안에 총알 하나를 넣은 후 실린더를 손으로 내리쳐 핑그르르 돌렸다.
“이렇게 총알 한 발을 넣은 다음 돌리고 쏘면….”
벽을 향해 리볼버를 겨눈 후 방아쇠를 당기는 세토.
찰칵.
나지막한 쇳소리와 함께 적막이 흘렀다.
“아, 첫 발은 꽝! 그럼 다음 발은… 두구두구두구!!!”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기자.
타앙!
총소리와 함께 벽을 향해 손톱만 한 크기의 탄환이 발사됐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앙!!!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핏빛 기운이 주변을 휩쓸었다.
“아싸! 당처엄!”
세토는 불끈 주먹을 쥐며 폴짝폴짝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이건.”
“히히. 어때? 신기하지? 원래라면 총알에 마력을 담는 건 엄~청 귀찮고 힘든 일인데 나니까 이렇게 쓸 수 있는 거라고?”
“…….”
물론, 굳이 말할 것도 없이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광기의 대주교 정도 되는 마인이라면 굳이 총알에 마력을 담아 쏠 필요 없이 그냥 순수한 마력 방출만으로도 이보다 더한 파괴력을 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걸로 무슨 게임을 한다는 거지?”
“룰은 간단해.”
세토가 총알 한 발을 다시 실린더에 넣고는 팽그르르 돌렸다.
그리고 제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는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총 6번. 나를 포함해 여기 있는 모두가 자기 머리에 한 번씩 방아쇠를 당기는 거야.”
세토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주변을 돌아봤다.
핏빛 연무에 휘감긴 채 묶여 있는 엘리샤 교수.
압도적인 중압감에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는 아이리스와 유렌, 카밀라.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해 있는 알버트.
그리고 나까지.
“어라? 한 명이 더 많네? 으음… 그럼 어쩔 수 없지. 저기 기절해 있는 놈은 빼고 우리 여섯 명이서!”
싱긋 웃으며 관자놀이에 겨눴던 리볼버를 흔드는 세토.
“꽝이면 사는 거고… 당첨되면 그대로 머리가 ‘펑’ 터지는 거지.”
세토는 머리 옆에 댄 손을 활짝 펼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다음 게임을 하는 거야.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낄낄낄.
세토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어때? 생각만 해도 재밌을 거 같지 않아?”
“개소리하지 마라!”
엘리샤 교수가 사나운 목소리로 외쳤다.
“어디 그딴 말도 안 되는 게임을… 크윽!”
“쉬잇.”
세토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날 바라봤다.
“어때? 만약 내 차례에 총알이 발사되면 남은 사람은 모두 살려 줄게.”
“…….”
나는 가늘게 눈을 뜨며 물었다.
“순서는?”
“응?”
“총을 쏘는 순서는 어떻게 정하지?”
“아하하! 진짜 게임을 할 생각이야?”
배를 잡으며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세토.
“순서는 원하는 사람부터. 대신….”
세토는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고는 입으로 ‘푸우’하는 소리를 냈다.
“한 번 쏘고 난 사람이 다음 사람을 지목하는 거야. 물론 이미 쏜 사람은 또 지목할 수 없고.”
“그래?”
나는 세토의 손에서 리볼버를 빼앗듯 가져갔다.
“그럼 내가 첫 번째로 시작하지.”
“흐음. 가장 살 확률 높을 때 쏘려고?”
실망스럽다는 듯 눈을 찌푸리는 세토.
“이러면 너무 시시한데… 뭐, 알았어. 난 한 번 뱉은 말은 꼭 지키니까.”
나는 관자놀이 총을 겨눈 채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나지막한 쇳소리와 함께 침묵이 내려앉았다.
“첫 발은 ‘꽝’이네.”
세토는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날 바라봤다.
“좋아. 다음 지목할 사람은 누구야?”
찰칵.
“…어?”
찰칵.
“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찰칵.
“빨리 다음 사람을 지목하라니까?!”
찰칵.
다섯 번의 방아쇠를 연달아 당긴 후.
나는 세토에게 리볼버를 내밀었다.
“다음 차례는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