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19)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120화(120/141)
제120화. 개인 면담 (2)
똑똑.
엘리샤 교수의 교수실 앞에 선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들였다.
“들어와라.”
안에서 들여오는 목소리.
천천히 교수실의 문을 열었다.
“왔나.”
문을 열자 평소와 같은 검은 정장 차림의 엘리샤 교수가 연초를 입에 문 채 늘씬한 다리를 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앉아라. 마실 걸 내오지.”
연초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엘리샤 교수.
그녀는 선반 쪽으로 걸어가더니 날 돌아보며 물었다.
“위스키? 와인?”
“보통 커피나 차 아닙니까?”
“알코올이 없는 음료 중에 마실 가치가 있는 건 물 정도뿐이다.”
“알코올 중독자가 할 법한 대사네요 그거.”
“후후. 괜찮다. 어차피 영웅은 알코올 중독 따위 안 걸리니까.”
그녀의 말마따나, 영웅의 육체는 일반인과 비교해 훨씬 면역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아무리 알코올을 들이부어도 중독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영웅이란 게 사기적이긴 하네.’
성흔 만만세다.
“그럼 위스키로.”
“알았다.”
엘리샤 교수가 잔에 얼음을 채우더니 위스키를 졸졸 따라 가져왔다.
한 모금 마시니 오크 향과 함께 강렬한 알코올이 코를 자극했다.
평소 싸구려 맥주 정도나 마시던 내겐 익숙지 않은 맛.
“흐음.”
나는 괜스레 턱을 쓰다듬으며 맛을 음미하는 척 눈을 감았다.
사실 위스키의 맛 따위 전혀 구별할 줄 몰랐지만, 술에 관해선 괜히 폼을 잡고 싶어지는 것이 남자라는 생물인 법.
“첫맛에서 강렬한 오크향이 느껴지네요. 그 뒤에는 달콤한 바닐라 향이 입안을 감돌고, 끝에는 은은한 나무 향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제법 고급 위스키….”
“매점에서 산 27골드짜리 싸구려 위스키다.”
“옘병.”
아니, 기왕 줄 거면 좀 좋은 걸로 달라고…!
“후후. 데일 후보생에게 이런 귀여운 모습도 있었군.”
피식 웃으며 잔에 든 위스키를 기울이는 엘리샤 교수.
“자, 그래서.”
달칵.
엘리샤 교수는 잔을 내려놓으며 보랏빛 눈동자를 빛냈다.
“전에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나?”
“대답하기에 앞서서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흐음. 왜 그런 생각을 했냐, 라.”
엘리샤 교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팔짱을 꼈다.
“전에도 말했지만, 데일 후보생은 너무 강하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히 제가 강하기 때문에 미래에서 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다.”
나지막이 고개를 젓는 엘리샤 교수.
“강한 걸로 치면 자네만큼은 아니라도 유렌 후보생이나 4학년에 아론 후보생도 강하다. 그쪽도 ‘규격 외’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말이지.”
하지만.
엘리샤 교수가 가늘게 눈을 떴다.
“데일 후보생은… 뭔가 다르다. 노련미라고 해야 할까?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광기의 대주교가 침입했을 때 보여 줬던 침착한 모습은 나보다 훨씬 낫더군.”
그녀는 연초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이번만이 아니다. 전에 중간 평가 때 팔안급 마수가 시험장에 난입했을 때도, 헤리스 주교가 마을에 함정을 파 뒀을 때도 그랬지.”
그는 언제나 당황하지 않고 바로 대처에 나섰다.
마치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어 봤다는 듯이.
“데일 후보생이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건 그냥 재능이라고 넘어갈 수 있다. 데일 후보생 말마따나 이제까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후우.
연초 끝이 붉게 점멸한다.
“하지만 자네가 이제까지 보여 준 그 노련한 모습은… 재능과 노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미래에서 왔다는 결론에 도달한 건가.
“하하.”
나는 쓴웃음을 삼키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잔에 든 위스키를 벌컥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음?”
“미래에서 온 거 맞다고요.”
“…….”
물어본 본인도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엘리샤 교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물어본 건 교수님이지 않습니까?”
“…….”
혼란스러운 듯 이마를 짚는 엘리샤 교수.
“자네 안에 잠들어 있는 ‘두 개’의 힘… 그게 원인인가?”
“아마 그렇겠죠. 정확히는 저도 모릅니다.”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엘리샤 교수는 연초를 재떨이에 툭 털며 물었다.
“자네가 회귀자라면, 얼마나 뒤의 미래에서 회귀한 거지?”
“얼마나 뒤의 미래라….”
글쎄.
“모릅니다.”
“모른다고?”
“너무 길어서 정확히 세지 않았거든요.”
“…그게 무슨.”
“마지막으로 셌던 게 한 7,000년쯤 지났을 때니까… 어쩌면 만 년이 넘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 뒤에도 한참은 더 있었으니까요.”
“자, 잠깐. 7,000년? 만 년? 자네 지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엘리샤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왼쪽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소생의 가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설마.”
엘리샤 교수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죽음만이 아니라… 노화까지 막는 가호였나?”
“노화도 죽음의 한 형태니까요.”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보는 엘리샤 교수.
그녀는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더니, 이내 쥐어 짜내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들려 줄 수 있나? 미래… 아니, 자네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길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엘리샤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후우.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말석으로 영웅 학교를 졸업하고 밑바닥 용병이 됐던 것.
10년 간의 용병 생활을 마치고 유렌과 아이리스, 베럴드, 소피아 선배와 함께 파티를 맺은 것.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될 ‘최후의 다섯 영웅’ 중 한 명이 됐던 것.
마신과 최후의 일전을 치르고 세상에 홀로 남게 됐던 것.
그 뒤로 태초의 불을 찾기 위해 수천 년간 대륙을 떠돌았던 것.
나만이 알고 있던.
나만이 품고 있던.
이제껏 그 누구에게도 들려준 적 없던 이야기들.
“…이상입니다.”
기나긴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는 교수실의 창문 너머에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달칵.
몇 잔째인지도 모를 위스키 잔을 비우며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
말없이 날 바라보는 엘리샤 교수.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데일 후보생 자네….”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을 이었다.
“대체… 대체 얼마나 끔찍한 삶을 견뎌 온 건가?”
엘리샤 교수의 눈가에 맺히는 눈물.
평소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무뚝뚝했던 그녀의 표정이 슬픔에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닙니다. 어차피 이미 다 지난….”
‘이미 다 지난 일이라고?’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너무나도 익숙한.
나의 목소리.
“…….”
순간.
시야가 뒤바뀐다.
눈앞에 펼쳐진 새하얀 설원.
휘몰아치는 눈보라.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하얀 입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발.
장막처럼 내려앉은 고요.
새하얗고.
새하얀 세계.
“…아.”
별일 아니라고?
이미 다 지난 일이라고?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아, 으.”
“데일 후보생…?”
밀려온다.
잊고 있던 기억이, 억눌렀던 감정이.
무너진 둑처럼.
콸콸콸 쏟아져 나를 덮친다.
“외로웠…습니다.”
넘쳐흐른 감정의 편린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다.
“죽을 듯이 외로워서… 근데 죽을 수도 없어서… 아무리 견디고, 견디고, 견디고, 견디고, 견뎌 봐도 끝나지 않아서….”
억눌려 있던 감정을 토해 낸다.
“환각인 줄 알면서도 병신처럼 웃고 떠들고… 이미 했던 얘기들을 몇백 번이고, 몇천 번이고 반복하고….”
“데일 후보생.”
“근데도… 끝나지 않는다고…! 머리를 부숴 봐도, 목을 잘라 봐도, 심장을 뜯어 봐도, 몸을 태워 봐도! 무슨 짓을 해도 되살아난다고…!”
“데일 후보생!”
엘리샤 교수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시야가 점멸하며 새하얀 설원의 풍경이 다시 원래 교수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정신이 좀 드나?”
“하아, 하아.”
나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잠깐 흥분했네요.”
“…….”
“그럼 오늘 시간도 늦었으니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몸을 돌렸다.
그때.
“데일 후보생.”
엘리샤 교수가 내 손을 잡아당기며 입술을 겹쳤다.
입술을 타고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
뒤얽히는 혀와 혀.
“…좀 괜찮아졌나?”
짧은 키스 이후, 엘리샤 교수가 내 두 뺨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물었다.
“…….”
나는 입술에 남은 온기를 손끝으로 매만지며 피식 웃었다.
“담배 냄새 납니다.”
“흐음. 방금 입을 맞춘 상대에게 할 소리는 아니군.”
엘리샤 교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날 살며시 끌어안았다.
토닥토닥.
마치 우는 아이를 달래듯 등을 두드린다.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미안하다.”
“…….”
“흐음, 그나저나….”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을 이어 가던 엘리샤 교수가 눈을 반짝이며 손을 튕겼다.
“그러면 사실상 데일 후보생의 나이는 수천 살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나?”
“뭐… 전생까지 치면 그렇게 되긴 하겠죠.”
다만 솔직히 말해 ‘나이를 먹었다’는 감각은 별로 없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여러 경험으로 인한 정신적 성숙을 뜻하는 거라면, 그 설원 속에서 내가 겪은 거라고는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뿐이 없었으니까.
“흐음. 흐으음. 흐으으음.”
“…뭡니까.”
“후후. 그렇다면, 데일 후보생이 나보다 연상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어딘가 들뜬 표정으로 보랏빛 눈동자를 반짝이는 엘리샤 교수.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그녀를 바라봤다.
“누가 연상인지가 중요한 겁니까?”
“중요하지.”
엘리샤 교수는 씨익 웃으며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꽜다.
“앞으로는 데일 후보생을 ‘데일 오빠’라고 부르도록 하지.”
“…….”
“데일 오빠.”
어째서일까.
남자들이 듣고 싶은 호칭 순위 1~2위를 다투는 호칭을 들었음에도.
달콤한 설렘보다는 피부 위에 벌레가 돌아다니는 듯한 불쾌감이 드는 이유는.
“엘리샤 교수님.”
“후훗. 왜 그러나 데일 오빠?”
“…….”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 어울립니다.”
“…칫.”
그렇게, 엘리샤 교수님과의 은밀한(?) 개인 면담이 끝났다.
어딘가 마음 한편이 홀가분해진 듯한 느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