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2)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13화(13/141)
제13화. 한계 시험 (1)
그렇게 첫 파티 수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는 전생에서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던 ‘가산점’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2점씩이나.
“삼안급 마수가 1점, 사안급 마수가 3점이다.”
“근데 왜 2점이야.”
“구속용 마도구를 부숴 버렸으니까.”
“제가 안 부쉈는데요.”
“파티는 연대 책임이라는 거 모르나?”
염병.
“책임이라면 교수님 책임도 있지 않습니까?”
“내 책임이라니?”
“죽이면 안 된다는 말은 한 적 없잖아요.”
“포획이라는 말뜻을 모르나? 훈련용 마수 한 마리 기르려면 얼마가 드는데 당연히 죽이면 안 되지.”
“반박할 말이 없어서 괜히 더 열받네요.”
끄응.
침음을 삼키며 교수실 의자에 널브러지듯 등을 기댔다.
“그나저나….”
루카스 교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넌 대체 왜 공강 시간마다 여길 제집처럼 들락이는 거냐?”
“그야 요즘 이런저런 소문 때문에 밖에 있으면 괜히 주목받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루카스 교수의 교수실은 후보생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하, 이 건방진 놈 보소. 내가 네 친구냐 인마? 어? 친구야?”
루카스 교수가 어딜 감히 신성한 교수실을 제 한 몸 피신할 장소로 쓰느냐며 일장 연설을 시작하려던 찰나.
“작년 가을 문화제 때.”
“앙? 문화제 때 뭐?”
“영웅들에게도 최소한의 문학적, 예술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시 짓기 대회를 열었었죠.”
“…그래서?”
“참가자가 워낙 없어서 그리 유명세를 타진 못했지만, 시 짓기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던 건 어느 익명의 후보생이 투고했던 애절한 사랑 시였습니다.”
“…….”
“짝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애틋하고 아련한 감정이 녹아 있는 아름다운 시였죠.”
“그, 그래? 시와는 영 거리가 멀어서 그런 대회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군.”
“그래요? 이상하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교수실 책장에 낀 ‘심화 전투 학습’ 책을 꺼내 들었다.
정확히는.
두꺼운 책 사이에 남몰래 숨어 있던 하얀 종이 한 장을.
“대회가 있었는지도 모르셨다는 분이 왜 작년에 우승한 시를 가지고 계신 거죠?”
“너, 너, 이 새끼 그걸 어떻게…!”
“흐음. 근데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요? 불현듯 나타나 익명으로 시를 투고해서 우승을 차지했던 후보생의 정체.”
“크읏!”
“루카스 교수님.”
방긋 미소 지으며 하얀 종이를 펼쳤다.
하얀 종이 안에는 루카스 교수의 필체로 적힌 애절한 사랑 시가 적혀 있었다.
“시 잘 쓰시던데요?”
나는 활짝 펼친 종이 안에 적힌 아름다운 글귀를 입에 담았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그, 그만!”
“내 한평생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멈춰!”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 알면서도.”
“멈추라고 이 새끼야!”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으아아아아아아!”
쿠웅!
맹수의 울부짖음과 같은 포효와 함께 루카스 교수가 달려들었다.
2미터에 가까운 거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
순식간에 다가온 루카스 교수가 내 손에 쥐어진 흰색 종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흣차.”
나는 빙글 몸을 돌리며 그의 손을 피하려고 했지만.
“어딜!”
루카스 교수는 마치 피할 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 내 손에 쥐어진 흰색 종이를 낚아채 가 버렸다.
‘빠르다.’
전력을 다해 피했던 건 아니었지만 이토록 허무하게 빼앗길 줄이야.
괜히 루카스 교수가 학교 교수진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억, 허억! 너 이 자식… 이건 대체 어떻게 찾아낸 거냐?”
“지난 겨울 방학에 여길 청소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죠.”
뭐, 정확히는 지난 겨울 방학이 아니라 앞으로 9개월 뒤에나 있을 3학년 겨울 방학에 발견한 거긴 하지만.
청소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는 건 사실이다.
“청소? 네가 내 교수실을 왜 청소… 아.”
눈살을 찌푸리며 추궁을 이어 가려던 루카스 교수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보통 학교 방학 기간에 후보생들을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어디 휴양지로 여행을 떠났지만, 데일처럼 고아 출신에 국비 지원을 받아 학교에 다니는 후보생들은 예외였다.
방학이면 생활 지원금이 뚝 끊어지기에 학교에 남아 청소나 시설 관리 같은 잡일을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다.
“…끄응.”
추궁할 거리가 사라진 루카스 교수는 나지막한 침음을 흘리며 손에 쥔 종이를 꾸깃꾸깃 구겼다.
“흥. 네놈이 이걸 우연히 발견했건 말건 증거가 없으면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아, 물론 지금 가지고 계신 건 복사본입니다. 원본은 제가 따로 잘 보관하고 있죠.”
“에라이.”
루카스 교수는 거친 욕지기를 흘리며 꾸깃꾸깃 구겨진 종이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하아.
교수의 입술 사이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 그래. 알았다 새끼야. 제집처럼 드나들건 그냥 여기서 살림을 하나 차리건 네 맘대로 해!”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하긴 개뿔.”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더 부탁해도 될까요?”
“야 이 양심 터진 놈이…!”
“저와 대련해 주실 수 있습니까?”
“…뭐?”
루카스 교수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련? 지금 나랑 대련하고 싶다고?”
“예.”
“뭐… 마력를 쓰지 않고 하는 대련이라면야….”
“아뇨. 전력을 다해 주셨으면 합니다.”
“…….”
루카스 교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눈빛의 의미를 해석하자면 ‘이 새끼가 지금 미쳤나?’ 정도쯤 되겠지.
‘하긴.’
한낱 후보생 주제에 교수에게 전력을 다한 대련을 요청했으니 당연한 반응이겠지.
그것도 다른 교수가 아닌, ‘루카스 케인’교수에게.
‘피에 굶주린 사냥개, 루카스 케인.’
그는 수천, 수만에 달하는 영웅 중 랭킹 100위 안에 들 정도로 강한 영웅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랭킹’이라는 것은 후보생들의 우열을 가리는 ‘종합 평가 순위’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남들 줄 세우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만들어 낸 삼국 영웅 종합 랭킹.
아직 정식 영웅 자격증조차 발급받지 못한 후보생 종합 평가 순위와는 격을 달리하는 진짜배기 랭킹이 바로 삼국 영웅 종합 랭킹이었다.
‘물론, 정확도는 후보생 종합 평가 순위에 비해서 엄청나게 떨어지지만.’
후보생들처럼 정해진 테스트를 통해 순위를 가리는 게 아닌, 어디까지나 이런저런 소문과 업적들을 종합해서 만든 랭킹이기 때문에 정확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정확도가 낮다고 한들, 수만 명이 넘는 영웅 중 랭킹 100위 안에 들었다는 건 그만큼 영웅으로서 실력과 경지를 증명했다는 의미.
이제 막 실전 훈련을 치르고 있는 후보생이 감히 대련을 요청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이번 테스트에 적격이지.’
미래에서 회귀한 지 어언 9일째.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아직도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지금 내 수준은 대체 어느 정도인가.’
회귀하기 전, 동료들이 모두 죽고 나서 수천 년의 시간을 홀로 대륙을 떠돌았을 때.
나는 유렌에게 배운 검술과 베럴드에게 배운 무투술, 소피아 선배에게 배운 마법 이론들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해 발전시켰다.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홀로 수련을 이어 나가 봤자 무슨 의미가 있냐 싶겠지만.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미쳐 버릴 거 같았으니까.’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도 동료들에게 배웠던 검술과 무투술, 마법을 수련할 때만큼은 마치 그들과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과연 진짜 동료들에게 배운 것들을 ‘발전’시켰냐는 것.
‘레이날드 학교 창립 이래 최악의 둔재로 뽑히는 내가 발전시켜 봐야… 얼마나 좋아졌을지.’
막말로 말해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증거로 수백, 수천 년간 계속 수련을 이어 갔음에도 유렌이 입에 달고 살던 ‘극의’의 끝자락조차 잡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세상이 멸망하고 난 후.
외로움을 잊기 위해 발버둥 쳤던 수백, 수천 년의 노력이 진짜로 날 발전시켰는지.
지금 내가 낼 수 있는 ‘전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루카스 교수처럼 실력이 검증된 강자가 필요했다.
“전력을 다한 대련이라… 너랑, 내가?”
루카스 교수는 실소를 흘리며 사납게 나를 쏘아봤다.
“요즘 좀 사람이 달라졌다 생각했더니 진짜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거냐 데일?”
“저도 알고 있습니다. 허무맹랑한 제안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면서 왜?”
“지금 제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니까요.”
“…….”
내 눈에 깃든 진심을 읽어 낸 걸까.
루카스 교수는 사납게 쏘아보던 눈을 돌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 안 그래도 나도 궁금하긴 했거든. 네놈이… 대체 어디까지 힘을 숨기고 있던 건지.”
드륵.
의자를 밀며 몸을 일으키는 교수.
마치 한 마리의 맹수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순식간에 교수실 안 분위기가 바뀌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
루카스 교수는 교수실 벽에 걸어 둔 두 자루의 도끼를 들어 올렸다.
연습용 도끼 따위가 아닌,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쌍도끼가 섬뜩하게 번들거렸다.
“전력을 다한 대련의 의미를.”
피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질척한 살기가 나를 향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미리 준비해 온 진검을 꺼내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 * *
학교 내에 위치한 대련장.
“5분 주마.”
루카스 교수는 두 개의 도끼 중 하나만 손에 쥔 채 발끝으로 바닥에 둥그런 원을 그렸다.
발로 그린 원의 지름은 약 1미터 정도.
“그 안에 무슨 써서라도 날 이 원 밖으로 나가게 만들어라.”
“…전력을 다하는 대련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전력을 다하기 전에 네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부터 알아봐야지.”
아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좋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쓰읍.”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왼쪽 가슴에 정신을 집중했다.
성흔에서 뿜어져 나온 빛무리가 내 몸을 감쌌다.
“갑니다.”
회귀한 후.
처음으로 사용해 보는 ‘전력을 다한 공격’.
과연 그 공격이 루카스 교수에게도 통할지는, 나로서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육체 단련 수준도, 마력도 전생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상관없다.
내게는 수백, 수천 년간 홀로 갈고닦아 온 동료들의 유산이 있었으니까.
“후우.”
들이쉬었던 숨을 내쉬며.
타앙!
발을 박찬다.
태양검.
제2형, 참월(斬月)
카아아아아앙!!!
찢어질 듯한 쇳소리와 함께.
“…야 이 미친.”
도끼를 들어 가까스로 검격을 막아 낸 루카스 교수의 몸이 바닥에 그려진 원 밖으로 주르륵 밀려났다.
경악에 부릅뜬 두 눈이 나를 향했다.
“어때요?”
나는 순식간에 원 밖으로 밀려난 루카스 교수를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전력을 다하실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5분은커녕, 5초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해당 편에 나오는 시는 이상 시인님의 ‘이런 시’의 일부를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