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29)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130화(130/141)
제130화. 여름 방학 (2)
넓은 도로.
자로 잰 듯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늘어선 회색 빌딩들.
“여기가… 공화국이군요.”
아이리스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기술의 나라라 불리는 공화국인 만큼, 성국의 건물들과 비교해 건물 하나하나가 높고, 반듯하게 지어져 있었다.
‘뭔가 다 비슷비슷해서 조금 삭막한 느낌도 들지만요.’
머릿속에 떠오른 감상을 마음속으로 삼키며 아이리스는 데일의 뒤를 따라 종종 발걸음을 옮겼다.
“데일 씨도 어렸을 적엔 이런 곳에서 사셨던 건가요?”
“아니.”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아이리스를 향해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 보육원 시절 기억은 거의 나지도 않지만.
“내가 있던 곳은 훨씬 더 시골이었어.”
“그래요?”
“응. 워프 게이트도 없어서 여기서 가려면 며칠은 걸릴 거야.”
“으음. 아쉽네요.”
“뭐가?”
“후후. 데일 씨가 있던 보육원에 가면 데일 씨의 어렸을 적 사진 같은 걸 구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어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반짝이는 아이리스.
“내 어렸을 적 사진 같은 걸 구해서 뭐 하게?”
“그야… 아이, 참! 그런 부끄러운 말을 어떻게 제 입으로 해요?”
“아니.”
대체 뭘 하려고 한 건데.
불안한 표정으로 아이리스를 바라보자, 그녀는 싱긋 미소 지었다.
한숨을 내쉬며 베럴드 쪽으로 고갤 돌렸다.
“집은 여기 근처냐?”
“아니요. 우리 집은 기차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좀 나가야 있소.”
“그럼, 일단 역 쪽으로 가야겠네.”
“흐흐. 따라오시오.”
베럴드는 성큼 앞서 걸어가며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나가자 회색 빌딩 숲으로 가득했던 풍경이 점차 들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기차를 탔을까.
“여기 역에서 내리면 되오.”
베럴드를 따라 밖으로 나가자 처음 본 공화국과는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한적한 시골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 외곽으로 조금만 나온 건데도 꽤 차이가 있네요.”
“흐흐. 성국이나 제국이나 다 마찬가지 아니오?”
“그건 그렇죠.”
“자, 이쪽으로 조금만 가면 되니 따라오시오.”
베럴드를 따라 한산한 시골길을 걷자 머지않아 큰 저택이 나타났다.
“여기가 우리 집이오.”
분가라고 해도 역시 류 가문의 저택답게 주변에 있는 다른 집들과는 규모 자체가 달랐다.
“나 왔소!”
베럴드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안에서 푸근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 허겁지겁 걸어 나왔다.
“아이고~ 베럴드 도련님 오셨습니까?”
“크흠. 거,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후후. 그럴 순 없죠. 뒤에 있는 분들은 도련님 친구분들이신가요?”
“그렇소.”
중년 여인이 우리 쪽을 돌아보며 정중하게 허릴 숙였다.
“만나서 반가워요 영웅님들. 저는 이 저택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안나라고 해요.”
“데일입니다.”
“아이리스예요.”
가볍게 인사를 마친 우리는 안나를 따라 접객실로 이동했다.
안나 말고 다른 하인은 없는지 넓은 저택 안은 황량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고요했다.
“여기 잠깐 계시면 마실 걸 내올게요.”
“아, 그전에 먼저 아버지를 뵈러 가겠소.”
“…어르신을요?”
안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베럴드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은 지금 2층 안방에 계십니다.”
안나는 머리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날 따라오시오.”
베럴드는 무거운 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
기다란 복도를 지나 가장 안쪽에 있는 방에 도착한 베럴드는 문 앞에 멈춰선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후우.”
잠시 숨을 고른 베럴드가 각오를 다진 듯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우웅~? 벌써 밥시간이야?”
안에서 들려오는 천진난만한 목소리.
다만 그 목소리는 아이의 것이 아닌, 굵은 저음의 어른 목소리였다.
“들어가겠소.”
“어? 와아! 덩치 큰 형아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베럴드와 비슷할 정도로 큰 덩치를 지닌 중년 사내.
침대에 누워 있던 그는 베럴드의 얼굴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짓더니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헤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베럴드를 바라보는 중년 사내.
베럴드는 입술을 짓씹으며 부서지라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버지.”
“응? 나 아버지 아냐. 내 이름은 길버트야.”
손가락을 입에 문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길버트.
“…….”
베럴드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떨궜다.
끓어오르는 격정의 가시를 억누르듯, 흔들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길버트.”
“응! 난 길버트야! 만나서 반가워! 우웅… 형아 이름은 뭐였더라?”
“나는….”
이미 몇 번을 반복했을 자기소개를 입에 담는다.
“…베럴드. 베럴드 류요.”
“아, 맞다! 베럴드! 베럴드였지! 헤헤. 전에 알려 줬는데 까먹었어.”
“…괜찮소.”
베럴드는 길버트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어깨 위에 올린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가르쳐 줄 테니.”
“헤헤! 역시 덩치 큰 형아는 착해!”
길버트는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몸은 좀 괜찮으시오? 어디 아픈 곳은 없소?”
“우으… 가끔 여기가 아파.”
길버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정수리 부근을 가리켰다.
“막 바늘 같은 걸로 쿡쿡 찌르는 것 같아.”
“…지금도 그렇소?”
“아니, 지금은 안 그래.”
길버트는 베럴드를 보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형을 만나서 그런가 봐.”
“…….”
베럴드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그런데 형아… 저 뒤에 사람들은 누구야?”
길버트의 시선이 문밖에 선 채 기다리고 있던 우리에게 향했다.
“…….”
“…….”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가끔 머리가 아프다 하지 않았소? 그걸 치료하러 와 준 의사 선생님들이오.”
“의,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는 길버트.
“의, 의사 선생님 싫어… 매번 맛없는 약 먹으라 한단 말이야!”
“이번엔 그럴 일 없으니 걱정 마시오.”
“…진짜?”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소.”
베럴드가 안심하라는 듯 씩 웃었다.
저 멀리 뒷걸음질 쳤던 길버트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우응. 알았어… 아, 근데 형아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베럴드요.”
“아, 맞다. 에헤헤. 그새 또 까먹었네.”
길버트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럼 의사 형아. 나 뭐 하고 있으면 돼?”
“…일단 침대에 누워 계시면 됩니다.”
“응!”
길버트가 후다닥 침대로 달려가더니 이불을 덮고 누웠다.
“아… 누우니까 갑자기 졸리다.”
침대에 눕자마자 10초도 되지 않아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길버트가 금새 코를 골며 잠들었다.
“후우.”
길버트가 잠든 걸 확인한 베럴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우리 쪽으로 고갤 돌렸다.
“지금 이게 우리 아버지 상태요.”
“…베럴드 씨.”
아이리스가 슬픈 눈을 한 채 베럴드를 바라봤다.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군.”
유렌과 카밀라도 착잡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곯아떨어진 길버트를 바라봤다.
“일단 제가 상태를 좀 볼게요.”
아이리스가 침대 옆에 쪼그려 앉으며 길버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우우우우웅.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온 새하얀 빛무리가 길버트의 이마로 스며들었다.
푸른색이던 그녀의 눈동자가 무지갯빛으로 변했다.
“하아, 하아.”
잠시 후.
아이리스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 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어, 어떻소? 아버지 상태는?”
베럴드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성흔 자체에 직접적인 상처를 입으신 상태예요.”
“성흔?”
“예. 일곱 신께서 내려 주신 성흔에는 단순한 마력만이 아니라 영혼과 정신의 일부가 깃들게 되거든요. 길버트 씨는 그 성흔이 지금 손상되신 상태예요.”
“그, 그렇다면 고칠 방법이 없는 것이오?”
베럴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이리스가 길버트의 이마 위에 올렸던 손을 떼어 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제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에요.”
“아….”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는 베럴드.
“하지만.”
“…하지만?”
“제물이 있다면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어요.”
“제물이라니?”
“마석이나 마도구를 말하는 거야.”
아이리스가 답하기에 앞서, 내가 입을 열었다.
“신성 마법은 제물을 바쳐서 그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거든.”
“맞아요. 데일 씨 말대로 제물이 있으면 더 강한 치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요.”
“그, 그러면 마석만 구해 오면 아버지를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오?”
“시도는 해볼 수 있다는 뜻이지 저도 확실하게 고칠 수 있다는 장담은 못 드려요. 그리고….”
아이리스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마 최소 상급 이상의 마석이 필요할 거예요.”
“아….”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는 베럴드.
대량 생산이 가능한 중, 하급 마석과는 달리 상급 이상의 마석은 순수하게 마수를 사냥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그것도 팔안급 이상의 마수를.
“상급 마석이라니….”
베럴드는 이마를 짚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팔안급 마수를 잡기도 쉽지 않았지만, 심지어 잡는다고 해도 나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다고 돈을 주고 사기엔 상급 마석 하나당 수백만 골드가 들었다.
본가에서 오는 지원금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하.”
그때.
내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실소가 새어 나왔다.
“…형님?”
“이게 또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네.”
“그게 무슨 말이오?”
고개를 갸웃거리는 베럴드를 향해 나는 씨익 웃었다.
“내가 이번 여름 방학 때 유적 탐사 한번 가자고 했지?”
“그렇소만….”
“거기서 구할 수 있을 거다. 상급 마석.”
“……!”
베럴드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 * *
그렇게 상급 마석을 구하기 위한 유적 탐사가 결정된 후,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으음. 철의 협곡으로 간다고 했지?”
“응.”
“거기까지 가는 워프 게이트는… 당연히 없고, 따로 교통수단도 없으니 마동차라도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난처한 표정을 짓는 유렌.
“나 마동차 면허 없는데… 데일은 있어?”
“아니.”
마동차를 운전할 줄은 알지만, 면허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이리스랑 카밀라는?”
“저도 마동차 면허는 아직….”
“나도 없다.”
“끄응. 베럴드도 없지?”
“그렇소.”
하아.
유렌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면허가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마동차조차 없는 상황.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걸어가야 하나…? 꽤 거리가 될 거 같은데.”
“그거라면 생각해 둔 게 있어.”
“생각해 둔 거라니?”
나는 히어로 워치의 전원을 켜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기다려 봐, 내일이면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다음 날.
부우우우우웅!
이른 아침.
묵직한 엔진음이 저택 앞에 울려 퍼졌다.
새끈하게 빠진 검은색 마동차의 문이 열리며 선글라스를 낀 금발 미남자가 걸어 나왔다.
“아, 데일! 부탁한 대로 마동차 끌고 왔어!”
날 발견한 줄리엣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