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31)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132화(132/141)
제132화. 철권의 유산 (1)
화르르르륵!
잿빛 불꽃이 사납게 타오른다.
거칠게 일렁이는 불꽃이 주먹을 감싼다.
‘좀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사실 고민을 좀 하긴 했다.
그냥 전생에 했던 대로 봉인석을 전부 찾은 후 유적의 문을 열어 볼까, 하고.
‘시간 낭비야.’
유적 입구의 위치를 알고, 봉인을 부술 힘이 있다.
기말 평가 때처럼 공략 과정 자체를 평가받는 것도 아닌데, 굳이 정석적인 루트를 따라 움직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렇게 봉인석을 척척 찾아내고 봉인의 수수께끼를 한 번에 풀어 버리면 의문만 더 커지겠지.’
안 그래도 지금 이렇게 숨겨진 유적의 입구를 아무런 단서도 없이 바로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유렌의 의심을 사고 있는데 괜히 더 수상쩍게만 보이게 되리라.
아무리 파티원들이 날 신뢰해 주고 있다고 한들, ‘엘리샤 교수에게 정보를 얻었다’라는 조악한 변명만으로 그들을 납득하게 만들 수 없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뭐, 애초에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았다면 여기 와서는 안 됐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내 개인적인 선택이었다.
회귀자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숨긴 채 비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일 거냐.
아니면 의심을 사는 리스크가 있다고 하더라도 효율적으로 움직일 거냐.
나는 여기서 후자를 골랐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사실을 밝힐 테니까.’
회귀자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숨긴다고 다가올 미래의 재앙을 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거기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물론, 그렇다면 그냥 엘리샤 교수에게 정체를 밝혔듯 굳이 숨길 필요 없이 동료들에게 시원하게 정체를 밝히면 되는 거 아니냐는 의문이 마음 한편에 떠올랐지만.
‘그건….’
나는 쓴웃음을 삼키며 고갤 저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전생의 동료들에게 풀어놓을 마음의 준비가.
‘이 얘기를 소피아 선배가 들었다면 멍청하다며 혀를 찼겠지.’
어쩔 수 없다.
난 그녀만큼 현명하지 못했으니까.
화르르르륵!
생각을 이어 가는 사이, 주먹을 휘감으며 타오르는 불길이 한층 더 거세졌다.
“데, 데일 씨…!”
“괘, 괜찮은 거 맞아 데일?”
아이리스와 유렌이 주먹에 깃든 가공할 힘을 느꼈는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다들 뒤로 물러나 있어. 그리고 아이리스는 보호 마법 사용해 주고.”
“네. 아, 알았어요.”
아이리스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축문을 영창했다.
뒤로 물러난 파티원들이 새하얀 막에 둘러싸이는 걸 확인한 후.
“후우.”
베럴드 무투술.
“산 부수기.”
콰아아아아아아앙!!!
무시무시한 충격이 협곡 전체를 뒤흔들었다.
단단한 암석으로 이뤄진 동굴 벽면이 쩌적 쪼개지며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동굴 벽 너머에 보인 것은.
‘오랜만이네.’
복잡한 마법진이 새겨진 거대한 철문.
나는 씩 입꼬리를 올리며 마법진이 새겨진 철문 위에 손을 올렸다.
화르르륵!
태초의 불이 타오르며 철문을 보호하고 있는 마법진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몇 분 정도가 지나자 거대한 철문 위에 새겨져 있던 마법진은 모두 태초의 불에 타올라 사라져 버렸다.
“후우.”
한 번에 꽤 많은 양의 마력을 사용한 나는 지친 숨을 내쉬며 무너져 내린 돌덩이 위에 걸터앉았다.
“…다 끝나신 건가요?”
“응. 이제 나와도 돼.”
아이리스가 펼친 보호막 안에 있던 파티원들이 천천히 걸어 나와 주변을 살폈다.
“허어… 형님에게 배운 ‘산 부수기’가 진짜 이름 그대로 산을 부수는 기술인 줄은 몰랐소.”
베럴드가 무너진 동굴 벽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자, 이제 네 차례야 베럴드.”
“음?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굳게 닫힌 철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네 ‘마법’을 보여 달라고.”
“아.”
무슨 의미인지 한 번에 이해했다는 듯, 베럴드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후후! 나만 믿으시오!”
굳게 닫힌 철문 쪽으로 다가간 베럴드가 살짝 벌어진 문틈에 손을 끼워 넣었다.
“흐아아아압!”
끼긱! 우드드드득!
거대한 철문이 우그러지며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언락아아아아악!”
쿠우우웅!
철문이 박살 나며 숨겨져 있던 유적의 문이 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유렌과 카밀라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뭔가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모두 부정당하는 기분이야.”
“동감이다.”
그렇게.
본격적인 유적 탐사가 시작됐다.
* * *
유적 내부에서 발견되는 골렘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
다른 하나는 신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
여기서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유적이 아닌 이상에야, 대부분의 유적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건 바로 ‘신의 손’으로 만들어진 골렘이다.
신의 손으로 만들어진 골렘…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유적 내부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골렘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여러 학자 간의 가설이 오갔다.
누군가는 유적 내부에 존재하는 잉여 마력이 뭉쳐 만들어진 거라 주장했고.
누군가는 유적이 자아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라 주장했으며.
누군가는 생물이 마신의 힘을 받아 마수, 마인이 되는 것처럼 무생물 또한 마신의 힘을 받게 될 경우 골렘으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가설만 많을 뿐.
정확하게 골렘이 어떤 원리로 유적 내부에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은 학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회귀자인 나도 골렘이 만들어지는 원리에 대해선 모르니까.’
그래도 골렘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몇 가지 있다.
유적 내부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며 한 번 부서지면 다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오로지 침입자만을 공격할 뿐 유적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다는 것.
이렇게 신의 손으로 만들어진 골렘에 대해서는 수호 골렘 대신 ‘가디언’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디언은 마수와 비교해서 마석을 떨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베럴드의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선 제물이 필요하다는 아이리스의 말에 망설임 없이 이 유적을 떠올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가디언이 만들어지는 유적은 많지 않으니까.’
유적이라고 해서 모두 가디언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가디언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유적은 전체 유적을 놓고 보면 극소수에 불과했다.
여하튼.
이렇게 가디언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데일.”
바로 우리 눈앞에 가디언 하나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전신이 바위로 이뤄진 가디언.
크기는 약 3미터 정도로 가디언치고 그리 큰 사이즈는 아니었지만,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무거운 중압감은 그가 기말 평가 때 상대했던 수호 골렘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지잉.
가디언의 눈동자에 섬뜩한 붉은빛이 떠올랐다.
“다들 피하세요!”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아이리스.
그녀는 다급히 양팔을 뻗으며 축문을 외웠다.
“일곱 신이시여! 그대의 아이를 보호하소서!”
새하얀 벽이 만들어지며 가디언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후우우우웅, 콰아앙!
“꺄아악!”
가디언이 휘두른 주먹 앞에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는 보호막.
마법이 강제로 부서진 충격으로 아이리스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성녀님! 크읏…!”
카밀라가 입술을 잘근 깨물며 가디언을 향해 돌진했다.
“하압!”
새하얀 오러에 휩싸인 클레이모어가 묵직한 파공음을 흘리며 가디언을 향해 휘둘러졌다.
[공격 감지.] [반격 프로토콜 활성화.]촤라라락!
단단한 암석으로 이뤄진 가디언의 팔에서 비늘이 돋아나듯 암석이 솟아오르더니 카밀라를 향해 발사됐다.
“크읏…!”
카가가강!
다급히 클레이모어를 비틀어 쏟아지는 암석 파편을 방어하는 카밀라.
그런 그녀의 허리를 가디언의 손이 붙잡았다.
“커헉!”
무시무시한 압력에 토막 난 숨을 토해 내는 카밀라.
“이놈이!”
베럴드가 거칠게 발을 박차며 붙잡힌 카밀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아아압!”
허공에 마력탄을 만든 후 집어던지는 베럴드.
쿠우웅!
마력탄에 맞은 가디언의 팔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붙잡혀 있던 카밀라가 바닥에 떨어졌다.
[목표 우선순위 변경.]가디언의 붉은 눈동자가 베럴드를 향했다.
쿵! 쿵! 쿵! 쿵!
육중한 굉음을 흘리며 베럴드를 향해 돌진하는 가디언.
사납게 휘둘러진 가디언의 팔이 베럴드를 후려쳤다.
“커헉…!”
쿠웅!
가디언의 팔에 맞은 베럴드가 공깃돌처럼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베럴드!”
유렌이 입술을 잘근 깨물며 가디언의 앞을 가로막았다.
허리춤에서 뽑은 검이 환한 금빛 오러로 타올랐다.
태양검.
제6형, 백광(白光).
한점에 응축된 금빛 오러가 가디언을 향해 쏘아졌다.
콰드드득!
백광에 맞은 가디언의 한쪽 팔이 으스러져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피해 상황 체크.] [전투 속행 가능.]가디언은 남은 한쪽 팔을 들어올리며 유렌을 향해 겨눴다.
우우우웅!
가디언의 팔에 마력이 응축되며 포탄이 발사됐다.
“아악!”
포탄에 휩쓸린 유렌이 거칠게 바닥을 굴렀다.
“…….”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파티원들을 돌아보며 나는 눈을 찌푸렸다.
‘역시 아직은 무리였나.’
하긴.
이 유적을 처음 공략했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이상이 지났을 시점이었다.
지금 유렌과 베럴드, 아이리스 모두 전생과 비교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해도 10년이라는 간극을 메우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뭐,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거니까.’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한테 달리기를 요구할 수 없는 법 아닌가.
지금 이 유적 안에 있는 가디언은 최소 구안(九眼)급 마수와 비슷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으니 이렇게 밀리는 것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전투 상황 분석.] [표적 확인.]가디언의 붉은 눈동자가 내 쪽으로 향했다.
쿵, 쿵, 쿵!
육중한 발걸음으로 돌진하는 가디언.
[표적 행동 패턴 분석.] [분석에 필요한 정보가 불충분.] [확실한 제거를 위해 섬멸포 가동….]“시끄러워 인마.”
달려드는 가디언을 향해 검을 내지른다.
화르르르륵!
잿불에 휩싸인 검이 가디언의 몸을 반으로 쪼갰다.
“아….”
“저, 저 가디언을 한 방에…?”
“데일 씨….”
순식간에 가디언을 처리한 날 보며 경악에 찬 표정을 짓는 파티원들.
나는 그들을 돌아보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사실 지금 수준에 상대하기 어려운 적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매번 괜찮다, 괜찮다 위로만 해 줄 순 없는 노릇.
동료들의 성장을 위해선 때로는 당근보다 채찍이 필요한 순간도 있는 법이다.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파티원들을 돌아봤다.
“미안. 내가 너희를 너무 과대평가했던 거 같네.”
쯧. 혀를 차며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고갤 돌렸다.
“그냥 유적 탐사는 관두고 돌아갈까? 지금 저희 실력엔 너무 난도가 높은 유적 같은데.”
“…….”
신랄한 평가에 유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유렌이 검을 지팡이처럼 짚은 채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더 할 수 있어, 데일.”
그의 눈빛에 타오르는 은빛 광채를 보며 나는 만족스럽게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 * *
“아이리스! 축복부터!”
“예!”
“베럴드, 카밀라! 가디언의 시선을 끌어 줘!”
“알겠소!”
“오래는 못 버틴다!”
유렌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파티원들.
“쓰읍.”
유렌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양의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더… 할 수 있어…!”
쿠르르르르릉!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뒤흔들리는 유적 내부.
아찔한 마력이 깃든 유렌의 검이 가디언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밀려나는 가디언.
“나도 가세하겠소!”
“흐아아아압!”
“죽여! 저 빌어먹을 고철 덩어리를 부숴 버려 카밀라!!!”
밀려난 가디언을 향해 우르르 달려들어 짓밟는 파티원들.
“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팔짱을 낀 채 침음을 삼켰다.
“효과가 너무 좋았나…?”